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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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제 3 권

1. 유용성과 정직성에 대하여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
870


나라가 동란에 빠지고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마당에 박쥐같이 휘뚝거리며 마음이 어느 편으로 움직이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훌륭하다거나 명예롭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를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길도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운의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이다."(티투스 리비우스)


배신이라는 사명 876

이러한 사명에는 우리에게 수치와 처벌을 주는 명백한 표징이 있다. 이런 사명을 그대에게 주는 자는 그대를 비난하는 것이며, 그대가 잘 이해한다면 그는 그것을 부담과 형벌로서 그대에게 주는 것이다. 공공의 사무가 그대의 공로로 덕을 보는 만큼 일은 나빠지는 것이다. 그대가 거기서 잘하는 만큼 손해가 된다. 그리고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긴 자가 그것으로 그대를 벌 준다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며, 아마도 어떤 정의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 배신은 어느 경우에는 용서될 수 있다. 다만 배신을 배반해서 처벌하는 데에 사용될 뿐이다.

배신 행위들 중 상당수는 그 행위의 혜택을 받을 자들에 의해서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처벌당한 일이 있다. 피로스의 의사에 대한 파브리키우스의 고발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배신 행위를 시켜 이용하고 난 뒤, 비열하게 자기 자신을 포기하여 노예같이 복종해 준 자를 무시하고, 열렬히 바라던 권한과 세력은 거절하며 엄격하게 그 배신 행위를 벌준 경우도 있다.


제일차적인 신의 877


자기 주인 술피키우스를 배반하고 그 숨은 곳을 가르쳐 준 노예는 필라와의 약속에 따라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공적인 이유의 약속에 따라서 자유인이 된 그를 실라는 타르페이아의 바위 위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들은 약속한 상금이 든 지갑을 이런 자들의 목에 달아 주고는 교살해 버린다. 이것으로 제이차적인 개인에 대한 신의를 지켜 준 다음, 제일차적인 일반적 신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명예롭지 못한 정도로 그만큼 유용한 직책 877∼878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를 어떤 악덕스런 행동에 이용하고 나서, 그 다음엔 마치 양심적인 보상과 장난을 행하듯, 아주 얌전하게 선심과 정의의 행위를 거기에 결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뿐더러 그들은 이런 끔찍한 범죄를 맡아 행하는 자들을, 자기들을 향해 문책하는 자로 보고 있다. 그들을 죽임으로써 이러한 일처리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그 증거까지 인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그대가 타기해야 할 극한의 방법으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해 준 공로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대에게 상을 준다 해도, 그렇게 해 주는 자는 그 자신이 그런 인물이 아니라면 그대를 타기해야 할 저주받은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며, 그는 그대에게서 배신을 당한 당사자보다도 더 그대를 배신자로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인도 반박도 할 수 없는 그대가 실천한 행위에서 그대의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를 잡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는 마치 누가 '높은 정의의 집행자'로서 사회의 한 쓰레기 같은 인간을 이용하듯, 명예롭지 못한 정도로 그만큼 유용한 직책에 ㄱ대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은 비굴할 뿐 아니라 양심의 타락이다.


2. 후회에 대하여



항상 변하지 않는 성질도 더 느린 흔들림일 뿐이다
884


내가 묘사하는 글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해 간다 해도 그릇되게 그리지는 않는다. 세상은 영원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거기서는 모든 일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땅이나 코카서스의 바윗돌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모두가 다 같이 흔들리며 하나하나 흔들린다. 항상 변하지 않는 성질도 더 느린 흔들림일 뿐이다.

(나의 생각)

'돌'조차 일 초에도 몇 조 번을 진동하고 있음을 지적한 앙리 베르그손의 책『창조적 진화』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 재료를 다루어 본 자는 없었다 885

작가들은 자기를 특수하고 외부적인 표징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나는 맨 먼저 미셸 드 몽테뉴로서의 내 보편적 존재인 나를 전해 주는 것이지, 문법학자나 시인이나 법률가로서의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들이 내가 너무 내 말을 많이 한다고 꾸짖는다면, 나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불평하겠다. 그러나 행동 습관이 이렇게 다른데도 나를 널리 알려 준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에서는 모양을 내고 기교를 부리는 일이 신용을 얻고 권위를 가지는 터에, 나 같은 생소하고 단순한 본성, 그것도 아직 극히 허약한 내 본성의 소산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학문도 기교도 없이 책을 짓는다는 것은 돌 없이 담을 쌓거나, 그와 비슷한 수작을 하는 길이 아닐까? 음악가의 환상은 예술에 의해서 지도된다. 내 망상은 운으로 지도된다.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여 행하는 일에 관해서는,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 재료를 다루어 본 자는 없었으며, 이 제재에 관해서 나는 어느 누구도 못 당할 만한 학자이며, 둘째로 어느 누구도 나만큼 자기 재료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 보지 못했고, 더 특수한 그런 부분들도 없다는 것이 내 나름으로 얻은 바이다.

이 목적을 완수하려고 나는 충실성밖에 가져 볼 거리가 없다. 충실성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성실하고 순수한 것으로 있다. 나는 진실을 말한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지는 못하지만, 감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말한다. 그리고 늙어 가며 좀더 과감해진다. 나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를 자주 보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악의 886


악의는 그 자체의 독을 대부분 들이마시고 제 독에 중독된다. 악덕은 몸의 종기와 같이 영혼에 후회를 남긴다. 이 후회는 항상 제 상처를 긁어서 피를 흘린다.


지난날의 악덕 887

남이 칭찬해 주는 것이 도덕적 행동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근거가 불확실하고 어지럽다. 특히 지금처럼 부패하고 무지한 시대에는 사람들이 좋게 보아 주는 것이 도리어 모욕이 된다. 누구의 말을 믿고 칭찬할 만한 일을 볼 줄 안다고 할 것인가? 내가 날마다 보는 것처럼, 각자가 이것이 명예스런 일이라고 자기를 추어올려서 말하는 식의 착한 사람이 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의 악덕은 오늘날에는 풍습이 되었다."(세네카)

 

우리 따위 887∼888

우리의 개인 생활을 자신에게밖에 보여 줄 데가 없이 살고 있는 우리 따위는, 주로 우리들의 행동을 검열하기 위해서 우리들 속에 모범을 세우고, 그것으로 행동을 심사하며, 거기에 따라서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고 정제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제거한다면 전부가 와해된다 888

나는 나를 판결하기 위해서 내 법률과 재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데보다도 거기에 호소한다. 나는 남의 의견을 잘 따라서 내 행동을 억제한다. 그러나 내 의견에 의해서밖에는 행동을 확대시키지 않는다. 그대가 비굴한지 잔인한지, 믿음직하고 착실한지 신앙이 깊은지, 아는 것은 그대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불확실한 추측으로 그대를 짐작한다. 그들은 그대의 기교를 보는 만큼 그대의 본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판결에 매이지 마라. 그대 자신의 판결에 매여라. "그대가 자신에게 하는 판단을 그대는 사용해야 한다."(키케로) - "양심이 자신에게 해 주는 악덕과 도덕의 증명은 한층 더 막중하다. 이것을 제거한다면 전부가 와해된다."(키케로)

 


후회 888

후회는 우리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며, 우리를 아무 데로나 되는 대로 끌고 돌아다니는 미친 생각에 대한 반대 심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 자에게 지난 날의 도덕과 순결성을 부정하게 한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888∼889

자기의 개인 생활에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인생에서 보는 일이다. 저마다 광대놀이에 참가하여, 무대 위에서는 점잖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허용되고 모든 것을 감추어 두고 있는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 보는 일이다. 그 다음 단계는 아무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고, 연구도 기교도 없이 살아가는 자기 집에서 평소의 행동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그 때문에 비아스는 가정 생활에서의 훌륭한 태도를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가정의 주인은, 그가 밖에서 나라의 법과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워서 처신하는 식으로 집안에서도 그대로 행해야 한다." 줄리우스 드루수스가 장인(匠人)들에게 한 말은 점잖은 말이었다. 장인들이 그에게 3천 에퀴만 내면 그의 집을 전과 같이 이웃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6천 에퀴를 주겠으니, 누그든 어느 기둥이나 주춧돌을 들여다보아도 좋게 만들어 놓으라." 아게실라오스가 여행할 때에 항상 그의 숙소를 사원 안에 정하며, 사람들이나 신들이 모두 그의 개인적인 행동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칭송할 만한 일로 주목된다. 자기 아내와 하인이 보아도 별로 눈에 띌 일이 없게 살아간 자는 세상에서도 놀라운 인물이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공적 행동으로는 황공해서 저자를 그의 집 문 앞까지 바래다 준다. 그 자는 그의 옷과 더불어 역할도 벗어 놓는다. 그는 높게 올라갔던 정도로 낮게 내려온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는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다. 질서가 서 있다고 해도 이런 변변찮은 행동 속에 그것을 알아보려면 예민하게 식별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뿐더러 질서는 침침하고 희미한 덕성이다.

성벽을 무찌른다, 외국으로 사절단을 데려 간다, 한 국민을 다스린다 하는 것은 혁혁한 행동들이다. 자기 집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부드럽고 올바르게 꾸지람하고 웃으며, 팔고 사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교섭하고 되는 대로 일하지 않고, 자기 말을 어기지 않는 것 등은 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더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알렉산드로스 VS 소크라테스 890


개인은 관직에 있는 자들보다도 더 힘들고 고매한 도덕을 섬긴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우리는 양심보다도 명예욕으로 영예로운 자리에 채비하고 나선다. 영광에 도달하는 가장 가까운 길은 우리가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을 양심으로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활동 무대에서 보여 준 덕성은, 소크라테스가 그 변변찮고 희미한 행동에서 보여 준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드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소크라테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자리에 있었다면 훌륭히 해 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소크라테스가 한 일을 해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전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어 보면, 그는 '세상을 정복하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후자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면, 그는 '타고난 조건에 맞게 인생을 살아가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보다 더 일반적이며, 더 중하고 정당한 지식이다. 심령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에 있지 않고, 질서 있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변경되고 극복되지 않는다 891

타고난 경향은 교육의 도움을 받아서 강화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변경되고 극복되지 않는다.

야수들은 숲 속의 습관을 잃고 포로 생활에 젖어
위협하는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지배가 습관화되어도
만일 한 방울의 붉은 피가 그들의 타오르는 입술에 닿기만 하면,
광분과 용맹성이 되살아나와 피의 단맛에
코끝이 벌려져 살기가 끓어오른다.
이런 광분은 무서워 떠는 주인을 발기발기 찢지 않고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루카누스)


고유한 형체 892


우리의 경험에 본성이 어떻게 비치는가를 좀 보라. 자기 말을 들어 보고, 자기가 받은 교육에 대항해서, 마음에 반대되는 격정의 폭풍에 대항해서 싸우는 고유한 형체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나로 말하면, 무슨 충격으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일은 결코 없다. 나는 몸이 무겁고 묵직한 사람들이 하듯, 거의 늘 내 자리에 있다. 자리에 있지 않는다 해도, 나는 늘 가까이에 있다. 나는 방자하게 놀아도 심하게 탈선하지는 않는다. 아주 극단적인 것이나 괴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적으나마 나는 건전하고 힘찬 회복력을 갖는다.


비로소 잠 깨어 생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조건들 895

인간의 본성에는 드러나지 않게 잠겨 있고, 때로는 그 사람 자신도 모르며, 어느 사정에 부닥쳐서 비로소 잠 깨어 생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조건들이 있다. 내 예지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불평하지는 않는다. 이 예지의 책임은 그 능력의 한도 안에 있다. 사건이 나를 억누른다. 사건이 내가 거절한 편을 든다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내 탓이 아닌 운을 비난한다. 그것은 후회라고 부를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일은 우주의 큰 흐름 속에 있다 896

모든 일이 지나간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되었건 나는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일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면서 번민할 것을 면한다. 즉, 일은 우주의 큰 흐름 속에 있으며,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원인들의 연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대의 사상은 과거나 미래를 통틀어, 모든 사물들의 질서가 뒤집혀지지 않고는, 소원으로나 사상으로나 그 속의 점 하나라도 움직여 놓을 수 없다.


나이 탓 897

나는 나이 탓으로 일어나는 우발적인 후회감을 혐오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나이 탓으로 탐락에 끌릴 필요도 없어졌다고 고마워하던 사고방식은 내 의견과는 다르다. 나는 결코 나이 때문에 좋은 일을 누릴 수 없음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약점까지도 최선의 사물들의 열(列)에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의 뜻은 그 피조물에 적대적이 아니다."(퀸틸리아누스) 우리의 정욕도 노년기에는 희박해진다. 끝난 다음에는 심한 포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점에서 양심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침울과 허약은 우리에게 류머티즘에 걸린 비굴한 덕성밖에는 남겨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판단력을 변질시킬 정도로 자연적인 변화(늙음)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지금 힘주어서 이성을 조심스레 진작시키고 있는 나는, 이제 늙어 가며 약화하여 못 쓰게 된 것이 아니라면, 내 이성은 더 방자하던 시절과 같은 상태로 있다고 본다. 신체의 건강에 해로울까를 고려해서 이성이 나를 이 탐락의 도가니 속에 집어넣기를 거절하는 것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정신 건강을 위해도 그런 짓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성이 전투력을 잃었다고 해서 더 용감해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나의 유혹받은 마음은, 너무 시달리고 부서졌기 때문에 이성으로 대항할 거리가 못 된다. 나는 오히려 손을 앞으로 내밀며, 이런 유혹을 간청할 뿐이다. 누가 그 옛날의 색욕을 내 이성 앞에 내어 준다면, 나는 이 이성이 옛날에 가졌던 만큼 거기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는 이성이 그때 판단하던 것을 벗어나서 달리 판단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것이 어떤 새로운 광명을 얻었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거기에 무슨 회복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나빠지게 된 회복이다.

(나의 생각)

'옛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은 아마도 소포클레스의 대답을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中에서




나는 내 계절의 풀과 꽃과 열매를 보았다 898

내 육체 상태의 경과가 모든 일을 그 계절에 맞추어 이끌어갔다는 것은, 내가 운명에게 고맙게 여기는 중요한 사항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내 계절의 풀과 꽃과 열매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말라가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되어 온 노릇이니 다행한 일이다. 나의 질병들은 모두 제철에 왔으며, 그들은 지난 날의 오랜 행복을 더 쉽게 회상시키는 만큼, 이 불행들을 더 수월하게 참아 넘긴다.


노년의 주름살 899

우리의 심령은 노년기에는 젊은 시절보다 더 번거로운 폐단, 불완전과 질병에 매이기 쉬운 것 같다. 어리석고 노쇠한 자존심과 진력이 나는 잔소리, 사귈 수 없는 가시 돋친 성미, 미신, 그리고 사용할 기회도 없는데 재간에 관한 꼴같잖은 걱정 따위 말고도 더 많은 시기심과 부정과 악의를 발견한다. 노년은 우리의 이마보다도 정신에 더 주름살을 붙여 준다. 그리고 늙어 가며 시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심령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사람은 그 전체가 성장과 쇠퇴로 향해 간다.


저절로 흘러드는 강력한 질병 899

나는 노년기가 수많은 내 친지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보았던가! 노년이란 자연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저절로 흘러드는 강력한 질병이다. 노년이 우리에게 짋어지우는 결함을 피하려면, 적어도 그 진전을 막으려면, 대단히 많은 연구와 조심스러운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아무리 몸을 아껴도 이 노년이 한걸음 한걸음 나를 이겨감을 느낀다. 나는 힘 닿는 대로 버티어 볼 뿐이다.


3. 세가지 사귐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 vs 사는 것 900


우리는 자기 성격과 기질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요 능력은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할 줄 아는 일이다. 필요에 몰려서 한 가지 길에 매여 지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지 사는 것은 아니다. 가장 훌륭한 심령들은 가장 변화가 많고 적응력이 있는 심령들이다.

내 식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 내게 달린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한 조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게 거기에 매여 지내기를 원할 정도로 좋은 방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인생은 고르지 못하고 불규칙하고, 여러 가지 형태인 움직임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좇으며, 너무 자기 경향에만 매여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비틀어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친구로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주인 노릇은 더 못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자신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독서는 판단력을 일하게 하는 데 쓰인다 901

심령의 됨새에 따라서 자기 사상을 다루는 일보다 더 약한 일도 더 강한 일도 없다. 위대한 인물들은 이것을 천직으로 삼는다. "그들의 삶은 사색함이다."(키케로) 그런 만큼 자연은 심령에게 우리가 이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도, 이보다 더 심상하고 손쉽게 몰두할 수 있는 행동도 없도록 하는 특권을 베풀어 주었다. "이것은 신들의 직무이며, 거기서 동시에 신들의 복지와 아울러 우리의 복지가 나온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독서는 특히 여러 가지 소재로 내 사색을 잠 깨우며, 기억력이 아니라 판단력을 일하게 하는 데 쓰인다.

그러므로 김 빠지고 노력이 없는 대화는 내 주의를 멈추는 일이 드물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중후함과 심오함만큼, 또는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채우며 사로잡는 게 진실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교제에서 내 마음은 잠들며, 거기에 내 주의력의 껍데기밖에 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힘빠진 비굴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어린아이가 하기에도 유치한 꼴사나운 군말이나 천치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든가, 또는 더 서투르고 무례한 수작으로 고집하며 곧잘 침묵을 지킨다.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902

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902

나는 유약한 행동 습관에서 오는 거칠고 쓴 일은 상대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게서 적의나 시기심 같은 것은 쉽사리 벗어 던진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움 받지 않기로는 나만큼 기회를 얻은 자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람과의 교제에 냉담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잃었고, 그 사람들이 나의 이러한 태도를 나쁜 의미로 해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힘과 꾀는 따로 간직해 두라 904


그대와 함께 있는 자들의 수준으로 몸을 좀 낮춰서 때로는 무식한 체도 해야 한다. 힘과 꾀는 따로 간직해 두라. 보통의 만남에는 거기에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들이 좋아하거든 그 동안 땅을 기어라.

학자들은 흔히 이 돌에 잘 채인다. 그들은 항상 학자 투를 뽐내며 책에서 얻은 지식을 사방에다 뿌리고 다닌다. 요즈음 그들은 이런 것을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과 귀에 너무 심하게 쏟아 넣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 실질은 파악하지 못했을망정 적으나마 그런 인상을 풍긴다. 모든 종류의 제목과 재료에, 그녀들은 아무리 변변찮고 평범한 일이라도 새롭고 박식한 말투와 문장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말투로 그녀들은 무서움과
분노, 기쁨, 걱정, 마음의 비밀 모두를 쏟아 놓는다.
이 밖에 또 무엇을?
그녀들은 사랑의 고백까지도 박식하게 한다.                                                                           (주베날리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증언해 줄 사물들을 가지고, 구태여 플라톤과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인용해서 말한다. 그녀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지 못한 학설은 그녀들의 혀끝에 머물러 있다.


점잖은 여인들이 내 말을 믿는다면 904∼905


점잖은 여인들이 내 말을 믿는다면, 그녀들은 그 고유의 자연스런 보배들을 빛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녀들은 밖에서 들여온 미(美)로 자기들의 미를 덮어 감춘다. 빌려 온 광채로 빛나기 위해서 자기의 광채를 없애는 일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녀들은 기교 속에 덮여서 묻혀 있다.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얼굴이다."(세네카)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녀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녀들이 기술에 영광을 주며, 백분으로 분칠해 주는 것이다. 그녀들은 사랑받고 숭배받고 살아가는 것 외에 무엇이 또 필요할까? 그녀들은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가졌고,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있는 소질들을 잠 깨워 일으켜 주는 것밖에 다른 필요가 없다. 그녀들이 수사학이나 법학이나 논리학이나 이와 비슷한, 그녀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헛된 처방전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을 충고하고 있는 남자들이 이런 핑계로 여자들을 지배할 권한을 가지려고 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진다. 과연 거기에 다른 변명이 있을 것인가? 그녀들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우아한 눈을 유쾌하고 엄격하게 또는 상냥하게 굴리며, 거절할 때도 쌀쌀하고 은근하게, 그리고 호의를 지닌 눈초리를 곁들여 줄 줄 알면 충분하고, 그녀들에게 봉사하려고 하는 말에 통역을 붙여 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지식만 가지면, 그녀들은 회초리를 손에 든 것이고, 선생들과 학교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남자에게 무엇이건 양보하기가 싫고 호기심으로 서적 등과 사귀고 싶어진다면, 시는 그 필요에 맞는 취미이다. 그것은 여자와 같이 촐랑이고 미묘하고 장식적인 말재간이며, 재미 있고 화려한 예술이다. 역사에서도 역시 여러 가지 편익을 얻을 것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에 소용되는 면에서, 남자들의 심경과 조건을 판단하고 남자들의 배반에서 몸을 지키며, 자신의 벅찬 정욕을 조절하고, 그녀들의 자유를 아끼고, 인생의 쾌락을 누리며, 하인의 하는 일이 믿음성이 없다든다, 남편이 혹독하게 대한다든가, 나이 들어 주름살이 잡히는 걱정 등등, 이와 같은 일들을 인간적으로 참아 내게 하는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자들에게 학문에 관해서 지정해 주고 싶은 부문들이다.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 905∼906

사람들 중에는 은둔적이고 내향적인 특수한 성질도 있다. 나의 본질적인 형태는 나를 표현하고 사람과 교제하는 데 적합하다. 나는 천성이 사교와 우정을 즐기며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보여 준다. 나는 외롭고 쓸쓸함을 즐기고 권유하지만, 그것은 주로 내 심정과 사상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데 그치며, 내 생활이 아니라 욕망과 근심을 제한하여 압축하기 위함이며, 외부의 일이 되어 가는 형세로 외로워지는 것도 단념하고, 굴종과 부담을 극도로 피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다. 내 사는 자리가 외롭고 쓸쓸한 것은,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나를 뻗쳐서 밖으로 키워 준다. 나는 혼자 있을 때에 더 즐겨서 국가와 우주의 일에 열중한다.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 906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점잖고 재능이 있다고 알려진 위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자들은 싫증이 난다.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우리 중의 가장 희귀한 전형이며, 주로 본성에서 받아 온 전형이다. 이 교제의 목적은 단지 친분과 우의와 이야기 친구를 갖는 것이다. 즉, 심령의 단련일 뿐이고, 다른 성과는 없다.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무슨 제목이든지 똑같다. 무게나 깊이가 없어도 상관없다. 거기에는 늘 아담한 풍치와 온당성이 있다. 모든 것이 거기서는 성숙한 지조 있는 판단으로 물들어 있고, 호의와 솔직성, 쾌활미와 우정이 섞여 있다.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 907∼908

예쁘고 우아한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도 내게는 포근한 재미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 점에 박식한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키케로) 그렇다. 심령은 이 점에는 먼젓것만큼 누릴 거리를 갖지 못한다 해도, 이 편에 더 많이 참여하는 육체적 감각은, 내 생각으로는 그 비중이 서로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와의 교제는 전자에 가까운 정도의 무게를 준다. 하나 이 방면의 교제에는 미리 경계하며 다가서야 한다. 특히 나와 같이 육체 생활의 비중이 큰 자에게는 그렇다. 나는 젊었을 적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의 절도없이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자들이 당한다는 식으로, 이런 일에 뜨거운 거동을 보고, 모든 광분의 고통을 겪었다. 이 호된 매를 맞은 것이 다음에 내게 교훈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르고의 함선을 타고
카팔레아의 암초를 피해 온 자는 누구든지,
항상 에우보이아의 수로(水路)에서 이물을 돌린다.                                                    (오비디우스)

우리의 모든 생각을 거기에 매어 두고 무분별하고 맹렬한 정열로 덤벼드는 것은 철부지 같은 짓이다.


연극배우처럼 908


그러나 한편에는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연극배우처럼 풍습과 나이가 모두 하는 버릇이라고 거기에 달려들며, 말로만 하고 마음을 주지 않는 일은 사실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지마는, 그 비굴한 꼴은 마치 위험이 무서워서 명예도 이익도 쾌락도 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교제를 실천하는 자는 아름다운 심령을 감동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아무런 성과도 바랄 수 없다. 진심으로 누려 보았으면 하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야만 한다. 운이 부당하게 그들 가면의 사랑을 유리하게 꾸며 준 때에도 말이다. 이런 일은 여자들이 아무리 팔자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해도, 자기가 아주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나이로나 그 웃는 모습으로나 그 동작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여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하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예쁜 여자가 없듯이 전체가 못생긴 여자도 없다. 그래서 브라만 교도의 처녀들은 다른 장점이 없으면 장터로 나가서 이런 취지로 소리질러 광고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에 여자의 부분을 들춰 보이는데, 적어도 그것만으로도 남편을 얻을 값어지차 있나 없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믿음직하고 착실하게 섬기겠다고 하는 첫번 맹세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남자들이 여자를 예사로 배반하는 결과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피하려고 서로 단결해서 스스로 뒤로 물러서거나 자기들끼리 놀게 되었다. 또는 어느 때는 우리가 보여 주는 본을 떠서 그녀들도 연극을 꾸미면서 정열도 생각도 사랑도 없이 교제해 온다. "자기에게서 오건, 타인에게서 오건, 정열에 무감각하며"(타키투스), 플라톤에 나오는 리시아스가 설복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여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을수록 그만큼 그녀들은 우리에게 유리하고 편리하게 몸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극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연극 배우들만큼의, 또는 더 많은 재미를 볼 것이다.

나로 말하면 어린애 없는 모성애를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큐피드 없는 비너스를 생각해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을 서로 빌려 주고 서로 부채를 지고 하는 사물들이다. 그러므로 이 속임수는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에게 부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대신 그는 쓸모 있는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다. 비너스를 여신으로 만든 자들은 그녀의 미(美)를 비육체적이며 정신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이 찾는 여자는 인간적인 것도 아닐 뿐더라 짐승과 같은 욕정을 지닌 것도 아니다. 짐승들도 그렇게 둔중하고 속된 것은 원치 않는다. 짐승들은 무리 속에서 이성(異性) 간에 그들의 애정에 쓸 것을 쓰고 버릴 것은 버리며, 그들 사이에 오랜 호의의 교분 있는 것을 본다.

늙어서 체력이 다한 놈들도 아직도 몸을 치떨며 사랑으로 이히잉거리며 울부짖고 전율한다. 우리는 이 짐승들이 일에 앞서 희망과 열성으로 충만함을 본다. 그리고 육체가 할 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추억의 달콤한 맛에 취하며, 거기서부터 의기양양해서 뽐내며, 피로하고 포만하면서도 경축과 승리의 노래를 불러 대는 것을 본다. 신체를 생리적 욕구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밖에 없는 자는 그렇게 복잡한 마음씨를 준비하여 남에게 바쁘게 굴 필요는 없다. 그것은 무례하고 수준 낮은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음식은 아니다.


책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 한층 우리의 차지이다 910

 

······ 이 두 가지(우정과 사랑) 교제는 우연적이며 다른 자에 매여 있다. 하나는 얻기가 드문 것이 흠이고, 또 하나는 나이와 더불어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내 인생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였다. 세 번째 것으로서 책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 한층 우리의 차지이다. 이것은 다른 장점에서는 먼저 것들만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제 몫으로 언제나 꾸준하며, 그 봉사를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으며 어디서나 나를 도와 준다. 그것은 노년기에, 그리고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 나를 위로해 준다. 그것은 내가 한가로울 때 권태의 무게를 덜어 준다. 그리고 어느 시간에라도 내게서 귀찮은 동무들을 떼어 준다. 또 내 번민이 극도로 심하지 않을 때에는 고통을 덜어 준다. 불쾌한 생각을 덜어 보려면 책의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책은 쉽사리 그런 생각을 흩어 주며 빼앗아 간다. 그렇지만 서적들은 그보다 더 실제적이고 생생한 자연의 쾌락인 이런 다른 편익을 얻지 못하는 때에만 그들을 찾는 것을 보고도 불평을 하지 않고 늘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 준다.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910∼911

 

병자는 그 치유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 가련하게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내가 서적들에서 끌어내는 모든 성과는 이런 어구의 실천과 적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책을 모르는 자들만큼이나 책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책을 가지고 즐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때에 언제든지 그것을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이것을 소유하는 권리에 포만하도록 만족을 느낀다. 




내가 인생 행로에 갖추고 있는 최상의 장비  911

 

나는 평화시나 전시나 책 없이는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이건 몇 달이건 책을 들추어 보지 않고 보내는 수도 있다. "조금 있다가 하거나 내일 하거나 아무 때라도 생각날 때에 하지" 하고 나는 말한다. 세월은 달음질쳐 흘러간다. 그렇다고 그 동안에 마음이 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책이 내 옆에 있으며, 내가 읽고 싶은 시간에 언제든지 쾌락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내 마음이 안심하여 가벼워지며, 얼마나 이 책들이 내게 도움을 주는가를 이루 다 인정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인생 행로에 갖추고 있는 최상의 장비이다. 그리고 이해력 있는 사람으로 이런 준비가 없는 자들을 지극히 가련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것만은 내게 결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오락은 아무리 변변찮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911∼912


집에 있을 때에는 나는 좀더 자주 서재에 들며, 거기서 집안일도 손쉽게 보살펴 간다. 나는 입구에 자리잡고, 내 아레에 정원과 양계장, 안마당 그리고 내 집안의 대부분을 내려다본다. 거기서 나는 이때에는 이 책, 저때에는 저 책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들춰 보며, 때로는 몽상도 하고 때로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기에 보듯이 내 생각하는 바를 불러 주며 적어 가게도 한다.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2층은 나의 예배실이고, 3층은 거처하는 방과 그 부속실이며, 혼자 있고 싶은 때에는 거기서 자는 일이 많다. 위에는 커다란 의장실이 있다. 그것은 지난날 내 집에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이었다. 나는 이 서재에서 내 생애의 대부분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밤에는 결코 거기에 있는 일이 없다.
 
······ 이 탑은 삼면으로 풍부하고 끝없는 조망이 내다보이며 실내에는 직경 16보의 공간이 있다.

겨울에는 나는 줄곧 거기 있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 집은 그 이름이 말하듯 언덕 위에 올라앉아 있어서, 여기보다 더 바람 타는 곳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떨어진 곳이라 찾아오기도 힘들어서 사람들의 소란도 물리쳐 주고 글을 읽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든다. 여기가 내 자리이다. 나는 이 장소를 내 지배하에 두고, 이 구석 하나만은 아내이건 자식이건 일반 사람들이건 공동 생활에서 구애받지 않고 간직하려고 한다. 다른 데는 나는 모두 본질상으로 확실치 못한 명목상의 권위밖에 갖지 않았다. 자기 집에 있으며 자기대로 있을 곳도, 자기만의 궁전을 차릴 곳도, 몸을 감출 곳도 없는 자들은 내 생각으로는 아주 가련한 신세들인 것 같다!

 


큰 재산 912

"큰 재산이란 큰 노예 생활이다."(세네카) 그들은 물러나 들어앉을 편안한 자리 하나 없다.
 

 

책은 그것을 택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많은 유쾌한 소질을 가졌다 912∼913


나는 그날 그날을 살아간다. 그리고 좀 말하기가 거북하지만 나를 위해서만 살아간다. 내 의도는 거기서 그친다. 나는 젊어서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공부했다. 다음에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였다. 지금 이 시간에는 재미로 한다. 결코 소득을 위해서 한 일은 없다. 이런 종류의 가구(책을 말함)를 가지고 내 필요에 충당할 뿐 아니라, 서너 걸음 더 나가서 나를 덮어 치장하려던 낭비적인 헛된 심정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책은 그것을 택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많은 유쾌한 소질을 가졌다. 그러나 좋은 일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다. 이것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순수한 쾌락은 아니다. 거기에도 상당히 힘든 그 자체의 불편이 있다. 심령은 거기서 훈련받는다. 그러나(그것도 나는 보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신체는 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며 힘빠지고 우울해진다. 나는 이렇게 노쇠해 가는 나이에 이것을 과도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내게 해롭고 피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총애하는 내 개인의 세 가지 직무이다. 나는 국민의 의무로 세상에 대해서 부담하는 직무를 말하지 않는다.




4. 기분 전환에 대하여


여자들의 비탄 914

여자들의 비탄은 그 반대로, 거들어 주고 권장해 주며 그것이 어느 점에서 지당한 일이라고 증명해 주고 변명해 주어야 한다.


자주 장소를 옮겨서 요양시켜야 한다 916

의사들은 카타르(염증)를 씻어 낼 수 없을 때에는 그 방향을 전환시켜서, 위험이 적은 다른 부분으로 돌려 놓는다. 나는 이것이 심령의 질병에도 무난한 치료법이라고 본다. "때로는 정신을 다른 취미·생각으로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 결국 정신은 기력을 차리지 못하는 병자와도 같이 자주 장소를 옮겨서 요양시켜야 한다."(키케로) 정신의 고통에는 직접 충격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 상처는 부추기거나 꺽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기율여서 세력이 빗나가게 한다.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 918

크세노폰은 화관을 쓰고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아들 그릴로스가 만티네아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이 소식을 들은 첫 충격으로 화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대단히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화관을 다시 집어서 머리에 썼다.

에피쿠로스도 역시 그의 종말에는 자기 문장의 영원성과 유용성에 위안을 느꼈다. "영예와 명성이 수반하는 모든 노고는 견디기가 수월하다."(키케로) 똑같은 상처이며 똑같이 처지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군대의 장수는 병사만큼 그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크세노폰은 말하였다. 에파미논다스는 승리가 자기 편으로 넘어 왔다는 소식을 받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어 갔다. "이것이 진실로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이다."(키케로) 그리고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사물 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빗나가며 헷갈려진다.


우리 정열의 고민을 고쳐 주는 가장 좋은 치료법 920

어떤 괴로운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그것을 억제하기보다는 바꾸는 편이 간단하다고 본다. 그 반대의 일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다른 것을 거기에 바꿔 넣는다. 언제든지 변화는 덜어 주고 풀어 주고 흩어 준다. 싸워서 그것을 이길 수 없으면, 나는 빠져 나가며 그것을 피하려고 비켜 선다. 나는 계략을 쓴다. 장소와 일과 친구를 바꾸고 다른 직무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달아난다. 그러면 그 속에 휩쓸려서, 나는 그만 내 자취를 잃는다.

본성은 이렇게 절개와 지조 없이 혜택을 입으며 진척한다. 본성은 우리 정열의 고민을 고쳐 주는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우리에게 세월을 주었다. 세월은 주로 우리가 생각할 거리로 다른 일을 연달아 대어 주어서, 처음 우리를 사로잡은 심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것을 풀어서 흩어 버리며 삭여 버린다.


가짜 애인 때문에 921

나는 여자들이 사람들의 평판과 추측을 전환시키고 쑥덕공론을 빗나가게 할 목적으로, 가짜 연애를 꾸며서 진짜를 숨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여자가 이렇게 꾸며 보다가 정통으로 걸려서 가짜 애인 때문에 진짜 애인을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자기가 진짜라고 안심하며 이런 가짜 수작을 묵인하는 것은 바보짓임을 이 여자로 인해 알았다. 사람들 앞에 터놓고 응수하며 이야기하는 역할이 이 꾸며 댄 심부름꾼에게 맡겨졌을 때에, 결국 그 자가 그대 자리를 빼앗고 그대를 자기 자리로 밀어내지 못한다면, 그는 약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그것은 마치 남에게 신어 달라고 구두를 재단하고 꿰매는 수작이다.


얼마나 더할 수 없이 적은 일이 922

나의 담석증은 특히 남근에 완고하게 붙어, 어느 때는 사나흘 동안이나 소변을 못 보게 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처지이니, 이런 상태에서 오는 고통이 아주 잔학하다고 그것을 피하기를 바라거나 요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 오, 저 착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죄인들의 남근을 잡아매게 하여 소변을 못 보게 하여 죽게 했으니, 그 얼마나 잔인한 사형 집행이던가! 내 사정이 그렇게 되고 보니, 나는 얼마나 미미한 원인과 목적으로 상상력이 인생에 대한 애석감을 가꾸어 주는 것이며, 얼마나 더할 수 없이 적은 일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무겁고 힘드는 길로 만들어 주는 것이며, 이렇게도 중대한 사건에서 얼마나 변변찮은 생각에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개 한 마리, 말 한 필, 책 한 권, 유리잔 하나, 또 다른 무엇들이 내 죽음에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리석게 그들의 야심에 찬 희망이나 금전·학문·지식 따위로 속을 썩이고 있다.


얼굴이 창백해진 것 923

퀸틸리아누스는 어떤 배우들이 초상당한 자의 역할에 너무 열중해서 자기 집에 가서도 울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자기도 남이 받은 마음의 충격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져서 눈물을 흘렸을 뿐 아니라, 진짜로 비탄에 잠긴 사람의 태도로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들켰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뭐? 이유? 우리 마음을 흔드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924

뭐? 이유? 우리 마음을 흔드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형체도 명목도 없는 공상이 지배하며 뒤흔든다.

내가 공중누각을 쌓아 보면, 공상은 거기에 온갖 호화판을 꾸며 내 마음은 그것을 흡족히 느끼며 즐거워진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이런 그림자 때문에 정신이 비애와 분노로 혼미해지며, 광상적인 격정에 쏠려서 심신이 변질되는 것인가! 이런 몽상은 얼마나 우리 얼굴의 상을 비틀며, 웃음 같은 혼돈된 표정을 일게 하는 것인가! 얼마나 우리의 팔다리와 목소리를 뒤흔들며 격발시키는 것인가! 이 자는 혼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내심의 악마에게 박해당하는 헛된 환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 변화를 일으키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보라. 도대체 대자연 속에는 무(無)로 양육되며 무의 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들밖에 또 무엇이 있는가?

캄비세스 왕은 자기 동생이 페르시아 왕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자기가 믿어 왔고 사랑하던 그를 죽여 버렸다. 메세니아의 왕 아리스토데모스는 자기 개가 짖는 소리를 나쁜 징조로 잘못 생각하고 자살하였다. 그리고 미다스 왕은 그가 꾼 불쾌한 꿈을 가지고 속을 썩이다가 똑같은 짓을 하였다. 꿈 때문에 생명을 버리다니, 그것은 생명을 바로 그 가치대로 평가한 증거다.


5.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노령기의 상태
925∼926

노령기의 상태는 너무나 내 정신을 경계하여 타이르고 나를 사리 분별을 할 능력이 있게 만들고, 내게 설교한다. 과도한 쾌활성을 가졌던 나는 이제 반갑지 않게 지나친 근엄성에 빠져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은 일부러 좀 방자하게 생각을 바꿔 본다. 그리고 때로는 경박한 젊은 생각에 마음을 쓰며, 마음만은 거기에 머문다. 나는 이제 너무 침착하고 둔중하고 노숙해졌다. 나이는 날마나 내게 냉철과 절제를 가지고 훈계한다. 이 몸은 무절제한 생활을 피하며 두려워한다. 이번에는 육체가 정신을 개선하도록 지도할 차례이다. 신체는 제 차례로 더한층 혹독하게 강압적으로 지배한다. 신체는 자나깨나 죽음과 인내와 금욕을 가르치기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옛날에 탐락에 대해 하던 식으로 지금은 절제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절제는 얼떨떨해질 정도로 나를 뒤로 끌어당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의미로서나 내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에지에도 지나침이 있어서 어리석음 못지않게 절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연에서 이탈한다 927

나는 빨리 늙는 것보다는 노년이 짧은 편이 낫다. 쾌락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장 조그만 쾌락의 기회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여러 가지 신중하고 강력하고 영광스런 쾌락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문 때문에 여간해서 나는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한다. 나는 이런 쾌락이 광대하고 장엄하고 호화롭기보다는, 달콤하고도 바로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것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연에서 이탈한다. 우리는 어느 점으로도 좋은 지도자가 못 되는 세상 사람들의 의견을 좇는다."(세네카)


전에는 긁힌 자국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 928

나는 가장 가벼운 상처도 피한다. 전에는 긁힌 자국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 지금은 나를 꿰뚫는다. 그런데도 내 버릇은 이제 어떠한 불행과도 기꺼이 사귀기 시작하다니! "허약한 신체는 가장 가벼운 부상도 견디지 못한다."(키케로)


금이 간 물건 928

금이 간 물건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깨진다.      (오비디우스)
 


재미있게 사는 것 928∼929 

나는 재미있게 사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으므로 쾌활하고 고요한 생활을 1년 동안 얻을 수 있다면, 세상의 저 끝까지라도 달려가 보겠다. 우울하고 우둔한 안정은 내게도 넉넉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혼미하고 완고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만족할 수 없다.

전원에나 도시에나, 프랑스이건 다른 곳이건, 가만히 있는 성미이거나 싸다니는 성미이거나, 어느 인물이나 어느 패가 있어 내 기분이 그들에게 맞고 그들 기분이 내게 맞는다면, 손바닥으로 휘파람만 불어다오. 난 그들에게 가서 살과 뼈로 내 《에세이》를 제공하련다.


건강에도 한몫을 주지 않는 것은 잘못 929

우리 스승들이 정신의 경탄할 만한 비약에 관해서 그 원인을 찾아볼 적에, 이것을 거룩한 황홀감이나 사랑이나 전투에서 맹렬히 분개함이나 시의 영감이나 술의 탓으로 돌리는 이외에 건강에도 한몫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옛날에 젊음과 안정된 생활이 그 융성한 발육으로 내게 공급하던 것과 같은, 부글부글 긇고 힘차고 충만하고 한가롭던 그 건강 말이다. 이 쾌활성의 불길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타고난 역량에 넘치며, 정신을 잃은 정도는 아니나마 유쾌한 열성 속에, 맑고도 생기 있는 정신의 섬광을 일으킨다.

그러니 내 정신이 이와 반대되는 상태에 억눌리고 못박혀 지내며, 그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거슬린다 930

자기 생각이 방자한 데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자들은 내 문장의 방자함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을 것임을 나는 잘 안다. 내 글은 그들의 심정에는 잘 맞지만, 그들의 눈에는 거슬린다.


불행에만 집착하는 마음씨를 혐오한다 930

나는 음침하고 울적해서 자기 인생의 쾌락은 넘겨치우고 불행에만 집착하는 마음씨를 혐오한다. 그것은 마치 파리 떼와 같이 반반하고 매끈매끈한 물체에는 붙어 있지 못하고 더럽고 거친 곳에만 앉는 식이며, 마치 거머리가 나쁜 피만 찾아 빨아먹는 격이다.


몽테뉴의 소원 931

어떻든 나는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말하기로 작정했다. 공표할 수 없는 생각이 있다는 것까지도 불쾌하다. 내 행동이나 상태들 중의 가장 나쁜 것도, 그것을 감히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추하고 비굴한 일이라고 보는 정도로, 그렇게 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고백하는 데는 조심스럽다. 행동에 있어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당돌하게 실수하는 일은 그것을 당돌하게 고백하는 일로 어느 면에서 보상되고 억제된다. 모두 말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자는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의무를 질 것이다. 내 지나친 방자함이 우리의 결함에서 생겨난 저 겉모양만 꾸미는 비겁한 도덕을 벗어 나서 사람들을 자유 속으로 끌어내고, 내 무절제한 행위의 부담으로 그들을 사리에 맞는 점까지 끌어 온다면, 그것이 바로 내 소원이다!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려면 931

"어떤 악한도 자기의 악덕을 고백하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그것은 그가 아직도 악덕의 노예인 까닭이다.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려면, 잠에서 깨어야 한다."(세네카)


오입과 거짓말 931∼932

나는 거짓을 꾸미기에 몹시 힘이 든다.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나는 남의 비밀을 맡아 두기를 피한다. 침묵을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을 부인하기는 괴롭고 속이 상한다. 정말 비밀이 되려면 그 본성으로 그래야 되지, 의무로 그래서는 안 된다. 왕을 섬기려면, 덮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고는 비밀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가 오입한 일을 엄숙하게 부인해야 할 것이냐고 밀레토스의 탈레스에게 문의했던 자가 내게도 물어 보았더라면, 나는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오입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탈레스는 아주 다르게 충고하며, 작은 잘못으로 큰 잘못을 막기 위해서 맹세하며 부인하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 충고는 악덕을 골라 내는 일이 아니고 늘려 가는 것이다.


곱사등이를 보고 933

모든 일을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하는 자가, 자기의 진실한 존재는 사람들에게 감춰 두고 가면을 씌워서 보여 준다면, 그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곱사등이를 보고 체격이 잘생겼다고 추어올려 주어 보라. 그는 그것을 욕으로 들을 것이다. 그대가 겁보인데 사람들이 용감한 사람이라고 숭배한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대일까? 그대를 딴 사람으로 본 것이다. 누가 수행원 중의 가장 변변찮은 한 병사를 장수로 잘못 알고 올리는 인사를 그가 만족하게 받는다면, 나는 그 꼴을 똑같이 귀엽게 보아 줄 것이다.

(나의 생각)
장렬하게 전사한 어느 '호위무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아, 그는 내게 물을 끼얹은 것이 아니야 933

마케도니아 왕 아르케실라오스가 거리를 지나는데, 누가 그에게 물을 끼얹었다. 그의 부관이 그 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이 사람아, 그는 내게 물을 끼얹은 것이 아니고, 나를 다른 누구로 오인하고 그 사람에게 끼얹은 것일세" 하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누가 그에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자, "그 자가 말하는 것은 내게 관한 일이 아니고" 하고 말했다.


성적(性的) 행동 933∼934

성적(性的) 행동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도 자연스럽고 필요하고 정당한 일을 사람들은 수치를 느끼지 않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며, 신중하고 점잖은 어법에서 제외하는 것일까? 우리는 "죽인다, 훔친다, 배반한다"라는 말은 과감하게 입 밖에 낸다. 그런데 그 일은 입 속에서만 우물거릴 뿐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단 말인가? 우리가 그것을 말로 적게 내뱉을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 생각을 키워 갈 권리가 생긴다는 말인가?

과연 가장 덜 사용되고, 덜 적히고, 가장 잘 침묵이 지켜진 말이 가장 잘 알려지고 보편적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어느 나이에도, 어느 풍습에서도 빵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없다. 이 말들은 표현도 되지 않고 소리도 없고 형태가 없어도 각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침묵의 권한 아래에 둔 행동이며, 그것을 비난하기 위해서라도 침묵에서 끌어내면 범죄가 된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새장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939

우리는 결혼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혼을 천하게 다루며 살아간다. 그래서 새장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밖에 있는 새들은 그 속에 못 들어가서 발버둥치고, 속에 갇힌 것들은 어떡해서든 밖으로 나가려고 똑같은 수작을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내를 얻는 편이 좋으냐, 얻지 않는 편이 좋으냐고 누가 묻자 "둘 중에 어느 편을 취하건 사람은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신(神)이 아니면 승냥이나 이리지"(베르길리우스)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이 관계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손 저손 전해져 온 아름다운 규칙 940

한번 걸려든 뒤에는 발버퉁쳐 보아도 때가 늦었다. 자기 자유는 조심스레 아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의무에 복종한 다음에는 공동의 책임과 법칙을 지켜야 하며, 적어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다음에 증오와 경멸을 품고 살아갈 생각으로 이 흥정을 체결하는 자는, 부당하고 난처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신성한 신탁(神託)처럼 여자들 사이에 이손 저손 전해져 온 아름다운 규칙-

상전처럼 네 남편을 섬겨라.
그리고 배신자같이 그를 경계하라.      (원전 미상의 옛 시)

이 말은 "강제되고 적대하며, 경계하는 존경심으로 그를 대하라"는 뜻이니, 전투와 도전의 외침 같아서 똑같이 부당하고 곤란한 일이다. 그러한 가시 돋친 심정을 품기에는 나는 너무 연약하다. 진실을 말하면, 내 정신은 사리와 정의롭지 못함을 혼동하고, 내 욕망에 맞지 않는 질서와 규칙을 우스개로 넘길 정도로 교묘한 민첩함과 세련된 재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랑의 기초 942

사랑은 오로지 쾌락에만 기초를 둔다. 그리고 더 도발적이고 강렬하며 더 흥분시키는 쾌락이다. 얻기가 힘드니 더 불길이 일어나는 쾌락이다. 찌르고 지지는 맛이 필요하다. 살이 없고 불길이 없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부인들은 너무 너그러워서 결혼 생활을 후하게 해 주기 때문에, 애정과 정욕의 자극을 둔하게 만든다. 이 폐단을 피하려고 리쿠르고스와 플라톤이 법을 만들 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라.


하루에 여섯 번, 한 달에 세 번 942∼943

카탈로냐에서 한 여자가 자기 남편이 너무도 끈덕지게 요구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도, 내 생각으로는 그 여인이 불편을 느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 여인은 결혼 생활의 기초적 행동인 이 점에서 이것을 구실로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권한을 삭감하여 억제하고, 남편의 심술궂게 행패하는 성질이 결혼의 잠자리를 넘어서 비너스의 상냥한 우아미까지도 짓밟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이 남편을 고발한 것이다.

이 소송 사건에서 그 남편은 참으로 변태적이고 짐승 같은 남자로, 그는 단식일까지도 열 번을 않고는 못 배긴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 아라공 여왕은 회의를 열고 충분히 토의한 끝에, 정당한 결혼 생활에 요구되는 절도와 겸양의 본이 될 규칙을 모든 시대에 내어 주기 위해서 합법적이며 필요한 한도로 하루에 여섯 번을 명령하였다. 여왕은 이것으로 자기 쪽 정욕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서 완화시켜 주며, 실행하기 쉽고 따라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규칙을 세워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박사들은 "우리의 정욕에 관해 이렇게까지 서로 다른 판단, 그리고 법률학파의 시조 솔론이 결혼 생활에서의 동침에 실수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한 달에 세 번밖에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여자들의 이성과 지혜와 도덕이 이런 비율로 제정되는 이상, 그 정욕과 음란은 얼마만한 것인가?" 하고 개탄했다. 이런 말을 믿고, 설교하고 나서 우리는 여자들에게 최후의 극형까지 과해 가며, 특별히 정조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자들의 전생은 난봉꾼 남자였다고 하는 플라톤의 말 945

여자들이 격식을 집어치우고 아무 말이나 마음대로 하게 두어 보라. 우리는 여자들에 비해서 이 학문에는 아직 어린아이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쫓아다니며 수작하는 것을 여자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들어 보라. 가르쳐 준 일이 없지만, 여자들은 모두 알고 있으며,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여자들의 전생은 난봉꾼 남자였다고 하는 플라톤의 말은 이런 뜻일까? 어느 날 내 귀는 우연히 여자들끼리 한 자리에서 거침 없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왜 이런 말은 못할 것인가? "성모님, 맙소사!" 라고 나는 말했다. 자, 지금 바로 아마디스의 문장과 보카치오와 아레티노의 이야기 책을 공부해서, 좀 약아져 보자. 우리는 참 시간을 잘 이용해 오는군! 말이건, 본보기이건, 일처리이건 여자들이 우리 책보다 더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여자들의 핏줄 속에서 훈련되어 나온다.

비너스가 직접 여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베르길리우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다 이 음양의 결합으로 귀결된다 946

세상의 눈을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여자들의 본성이 이 맹렬한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치스러운 꼴을 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다 이 음양의 결합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모든 곳에 배어든 동기이며, 모든 사물들이 향하는 중심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옛날 현명했던 로마에서 행한 사랑의 봉사를 위한 가르침과 소크라테스가 창녀들을 깨우쳤던 교훈을 알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소책자들도 비단이불 위에 굴러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호라티우스)


포악한 기관 948

신들은 우리에게 말을 안 듣는 포악한 기관을 제공하였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것은 맹수와도 같이 그 맹렬한 정욕으로 모든 것을 굴복시키려고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는 극성맞게도 탐욕스런 한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은 때맞추어 먹이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늦게 주는 데 조바심이 나서, 제자리를 박차고 나와 여자들의 몸에 광증(狂症)을 불어넣고, 목구멍을 틀어막아 숨을 못 쉬게 하고, 결국 갈증나게 한 목적물을 들이마셔서 자궁 속에다 풍성하게 물을 주어 씨를 뿌려 주기까지는 가지 각색의 병폐를 일으킨다.


동정과 처녀 951

나는 동정을 지키키보다는 한평생 갑옷을 입고 있는 편이 더 쉽다고 본다. 그리고 처녀를 지키는 서약은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서약보다 더 고상하다고 본다. "마귀의 힘이 신(腎)에 있다"고 성 히에로니무스는 말한다.


승리의 대가는 겪은 고난으로 계산된다. 여자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것 952

승리의 대가는 겪은 고난으로 계산된다. 그대의 봉사와 그대의 공로가 여자의 마음에 어떠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여자의 몸가짐에 비춰서 재어 보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았는데 많이 준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도 있다. 받은 혜택에 대한 의리는 전적으로 그것을 허락하여 주는 자의 의사에 관련된다. 소득이 될 다른 사정들은 말할 거리가 못 되고, 생명이 없고 우연적이다. 여자의 남자 친구가 그가 가진 경우를 여자에게 주는 것보다 여자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것을 그에게 주기가 더 힘들다. 어떤 일의 희귀함이 가치가 된다면, 그것은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작은 일인가를 보지 말고 얻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를 보라. 돈의 가치는 그 주형과 장소의 표지에 따라서 다르다.


사랑의 증오만큼 억누를 수 없는 일은 없다 955

질투심이 이 허약하고 저항력 없는 가엾은 심령들을 사로잡을 때에, 그 때문에 여자들의 마음이 가혹하게 끌리며 찢기는 모양은 보기에도 가련하다. 질투는 애정의 가면을 쓰고 스며든다. 그러나 이 격정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애정의 기초가 된 이유가 원수간의 증오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질환이며, 많은 사물들이 그것을 북돋아 주는 반면에 진정시켜 주는 일은 드물다. 남편의 도덕과 건강과 인격과 명성은 여자들의 증오와 광분의 불쏘시개가 된다. 


사랑의 증오만큼 억누를 수 없는 일은 없다.
      (프로페르티우스)

이 열병은 여자들이 다른 면에서 가진 아름답고 좋은 점을 모두 경직시키고 부패시킨다. 그리고 질투가 심한 여자는 아무리 정숙하고 살림을 잘해도, 그 행동 모두가 불쾌하고 어색하게 되지 않는 것이란 없다. 질투는 광분한 격동 상태이며, 행동을 그 목적의 전혀 반대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로마의 옥타비우스는 재미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폰티아포스투미아와 자고 난 다음, 그 쾌감에 애정이 더욱 솟구쳐서 결혼하자고 끈덕지게 졸라대다가 끝내 여자를 설복할 수가 없자, 이 극도의 사랑은 그를 가장 잔학하고 치명적인 적의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 여자를 죽인 것이다.


상대할 여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956

여자들은 여성인 이상, 음욕과 정욕을 억제하기란 정숙한 여자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여자들의 의지만을 상대한다면 우리는 어찌될 것인가? 만일 한 남자가 날개가 돋아서 새처럼 날아다니며, 눈이 없어 보지 않고, 혀가 없어 말을 않으며, 그를 맞아 줄 여자 하나하나의 품에 들어갈 특권을 가진다면, 상대할 여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만일 우리가 여자들의 공상을 억누를 수 없다면, 달리 무엇을 구속할 수 있을 것인가? 행동을? 사람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행위를 얼마든지 하고 있으니, 그런 것으로 순진성은 얼마든지 타락될 수 있다.

여자는 곧잘 증인 없는 일을 한다.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아마도 가장 위험한 인물일 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없는 죄악이 가장 악질적이다.


이놈아. 내가 마에케나스를 위해서만 잠들고 있는 것을 못 보느냐? 959

그러나 이런 곳에서 밝혀도 좋을 더 속된 예로는, 오로지 자기 남편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시키는 명령과 중매로 자기 몸을 빌려 주는 여자들을 우리는 날마다 보지 않는가? 옛날에 아르고스 사람 파울리오스는 야심을 품고 자기 아내를 필리포스 왕에게 제공하였고, 마찬가지로 갈바는 마에케나스를 식사에 초대했을 때에, 자기 아내와 그가 곁눈질하며 수작하는 것을 보고 잠이 와서 못 견디는 체하고 방석 위에 쓰러져 그들이 일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거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을 기분좋게 고백하고 있다. 마침 이때에 하인이 들어와서 당돌하게도 탁자 위의 음식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그는 "이놈아. 내가 마에케나스를 위해서만 잠들고 있는 것을 못 보느냐?" 하며 소리쳤다.


여자란 지혜롭다 960

자기 재간으로 여자들을 묶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자물쇠로 잠가 두라, 감금하라, 문지기를 두어 보라.
그러나 문지기는 누가 감시하지?
여자란 지혜롭다.
여자들은 문지기부터 손을 댄다.     (주베날리스)


호기심은 어디서나 악덕스럽다 960

호기심은 어디서나 악덕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는 해독을 끼친다. 처방전을 써 보아도 더 악화시키고 더 키워가기밖에는 못할 질병의 속을 밝혀 보려고 하는 것은 미친 수작이다. 그 불행의 수치는 주로 질투 때문에 더욱 불어가며 세상에 알려진다. 여기에 대해서 복수해 보아도 우리 마음을 덜어 주기보다는 우리 자녀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대는 속을 알 수 없는 일을 밝히려다가 바싹 말라 죽어 갈 것이다.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960∼961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961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바가지 962∼963

마르세유의 원로원이 자기 아내의 바가지를 면하기 위해서 자살하겠다는 자의 소청을 들어 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몸뚱이를 없애지 않으면 없앨 방법이 없는 재앙이며, 그 일은 양편이 모두 매우 어렵지만 피하든가 당하는 일밖에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잠든 귀머거리를 건드렸다가는 크게 코를 다친다 963∼964

메살리나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 올리는 것이다 965


그들의 언어는 지조 있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충만하며 벅차다. 그들은 꼬리뿐만 아니라 머리와 배와 다리 전부가 풍자시이다. 거기에는 억지가 없고 길게 잡아 늘린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태세로 진행된다. "그들의 사상은 남성적 미의 상징이다. 그들은 단지 말을 꾸며서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것은 가시 없는 무른 웅변이 아니고, 힘줄이 박히고 담담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보다는 채워서 황홀하게 하며 가장 강력한 정신들을 감복시킨다. 이러한 훌륭한 문체가 그렇게 생기있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말이 잘됐다고 하지 않고 생각이 잘됐다고 말한다.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올리는 것이다. "웅변을 만드는 것은 흉금이다."(뮌틸리아누스) 우리네는 속이 찬 개념들을 판단력이니 언어니 아름다운 문장이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묘사는 숙련된 문장력으로써 되는 일이 아니고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다. 갈루스는 단순하게 말한다. 그것은 그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호라티우스는 피상적인 표현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가 마음먹은 것을 말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물을 더 명확하게 더 멀리 내다본다. 그의 정신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말과 모양의 곳간 전체를 뒤져서 옭아내 온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예사로움을 벗어나므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언어가 필요하다. 그는 사물들을 통해서 라틴 말을 본 것이라고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재간 있는 작가들 966

재간 있는 작가들이 조종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언어를 개혁한다기보다는 더 힘차고 다양한 수단으로 채우며, 그것을 늘이고 휘고 해서 언어에 가치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새 낱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낱말을 풍부하게 갖추며 언어의 의미와 용법에 무게와 깊이를 주고, 보통 쓰이지 않는 표현법을 쓴다. 그러나 조심스럽고 묘하게 언어를 표현해 준 작가들 중에 그런 재치를 가진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는, 이 세기의 많은 프랑스 작가들을 두고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보통의 표현법은 경멸하며 쓰지 않을 정도로 매우 과감하다. 그러나 그들은 착상과 사리분별이 결핍되어서 실패한다. 거기에는 괴이한 문투로 가련하게 뽐내는 표현법과 멋쩍고 어리석은 거짓꾸밈밖에 없기 때문에, 재료의 품위를 높이기는커녕 도리어 못쓰게 만들어 놓는다. 새 멋으로 자기 속을 채우기만 하면 문장의 효과는 어찌되건 상관없다. 새로운 낱말 하나 잡기 위해서 흔히 그보다 더 힘줄이 박히고 강력한 보통의 표현법을 버린다.


좋은 작가들 967

내가 글을 쓸 때에는 책을 동무삼거나 읽은 것들을 회상하는 일은 없다. 실로 좋은 작가들은 너무 나를 억눌러서 용기를 꺾어 버리기 때문이다.

 

플루타르크의 저서 967∼968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내 글의 주요 목표와 완성은 968

내 글의 주요 목표와 완성은 남의 것이 아닌 정확한 내 글이 되는 데에 있다. 나는 서투르게 써 나가기 때문에 문장에 오류가 가득 차 있는데, 우연히 저지르는 오류는 고쳐 가겠다. 그러나 내 글에 흔한 일이고 버릇으로 된 불완전한 점을 제거한다는 것은, 내 글에 대한 배반이 될 것이다.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 968

나는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시를 써 본다는 수작을 했을 때엔(라틴어로 밖에는 써 보지 않았다), 그 시는 당시 최근에 읽은 시인의 티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내 최초의 시도 중의 어떤 것은 외국풍의 냄새를 풍겼다. 나는 파리에서는 어딘가 몽테뉴에서와는 다른 말을 쓴다. 누구이건 내가 주목해서 관찰해 본 다음에는 무엇인지 그의 티가 내게 박힌다. 바보 같은 모습이건, 불쾌하게 웃는 꼴이건, 우스꽝스런 말투이건, 내가 유심히 본 것을 나는 몰래 빼앗아 온다. 그것이 악덕이면 더하다. 그것은 나를 찌르기 때문에 더 잘 내게 걸린다. 그리고 뒤흔들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나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남을 본떠서 욕질하는 것을 본다.

마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끔찍하게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무서운 원숭이의 수작만큼이나 몸을 잡치는 모방이다. 이 원숭이들은 달리면 잡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본뜨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들을 잡는 방법을 빌려 주고 있는 셈이다. 사냥꾼들은 그것들이 보는 데서 끈이 많이 달린 구두를 꼭꼭 묶어 신고, 머리에 올가미가 달린 두건을 뒤집어 쓰고, 눈에 끈끈이로 바르는 체한다. 이렇게 하면 이 가련한 짐승들은 멋모르고 흉내를 낸다는 것이 제 눈에 끈끈이 칠을 하고 끈으로 몸을 묶어 얽어 놓는 것이다.


'폐하'나 '전하' 소리를 사흘 동안 계속하고 나면 969

나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이런 피상적인 인상을 쉽사리 받아 들이기 때문에, '폐하'나 '전하' 소리를 사흘 동안 계속하고 나면 여드레 뒤에는 이런 입버릇이 '대감'이나 '영감'이라고 할 자리에서도 튀어 나온다.

(나의 생각)
여러 친척분들을 앞에 모셔 놓고 간단한 인사말을 한다는 것이, 느닷없이 "고객님~"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 미리 막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술에도 많이 취했고 밤이 매우 늦은 시각이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자리'였다고는 하나 '내심'으로는 많이 놀라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970


그러니 어떻든 책은 치워 두고 더 단순하게 말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한 욕망의 대상에 대한 향락의 갈증밖에 다른 것이 아니며, 비너스라는 것은 자기 기관에 찬 것을 비우는 쾌감에 불과한데, 이것이 절제가 없거나 근신하지 않을 때에는 악덕이 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사랑은 미(美)의 중개에 의한 생식의 욕망이다. 그리고 이 쾌감의 꼴같잖은 근질거림, 그것으로 제논과 크라티포스의 마음도 뒤흔들던, 어리석게도 정신 없고 열빠진 동작과 조심성 없는 광증과 사랑의 달콤한 성미에 광분과 잔인성으로 불타는 얼굴, 그리고 아주 미치광이 같은 행동에 있는 장중하고 엄숙하고 황홀한 점잖은 표정, 우리의 탐락과 오물을 한데 뒤섞어 놓았다는 것, 이 지극한 탐락이 고통과 같이 기절하며 신음하는 면을 가진 것 등을 여러 번 고찰해 보면, 플라톤이 말하는 바 인간은 신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 무슨 잔인한 희롱인가!      (클라우디아누스)

자연은 인간을 우롱하느라고 우리에게 가장 혼란되고도 평범한 행동을 주어서 우리를 모두 동등하게 만들었고, 미치광이와 현자들을, 그리고 우리와 짐승들을 대등하게 만들었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들을 만들어 내는 동작 971

우리는 짐승과 같이 잘 먹고 마신다. 그러나 행동이 우리 심령의 작용을 막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행동에 관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행동(성욕)은 모든 다른 상념에 굴레를 씌우며, 강제적인 권위를 가지고 플라톤에 나오는 신학과 철학을 학대하며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데서는 그대는 어느 정도 점잖은 태도를 지킬 수 있다. 다른 모든 행동에는 점잖음의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행동은 악덕과 꼴사나움밖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좀 보게, 거기 현명하고 조심스러운 방법을 찾아보게.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주로 이 행동과 수면에서 자기를 없애는 존재임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수면은  우리 영혼의 소질을 질식기켜서 말살해 버린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영혼의 소질을 흡수해서 흩어 버린다. 진실로 이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부피의 표지일 뿐 아니라, 우리가 무력한 불구자라는 표지이기도 하다.

한편 본성은 이 욕망에 그의 동작 중의 가장 고귀하고 유용하고 재미있는 작용을 결부시켜서 우리를 밀어넣는다. 다른 면에서는 본성은 이 동작을 무례하고 점잖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피하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금욕 생활을 권한다.

우리들을 만들어 내는 동작을 금수와 같다고 하는 우리가, 정말 금수와 같은 것은 아닐까?


인간이란 얼마나 괴상한 동물인가? 972

사람은 제각기 출생을 보는 것은 피하며, 죽는 것은 서로 찾아가서 본다.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대낮에 광막한 벌판(전쟁터)을 찾아가며,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좁고 컴컴한 구석에서 흥겨워한다. 아기를 만드는 데는 부끄러워서 숨는 것이 의무이고, 파괴할(죽일) 줄 아는 것은 영광이며, 거기서 여러 가지 도덕도 나온다. 하나는 욕되며, 하나는 혜택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어느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기란 그를 죽이는 일이라고 한 것이 그 나라의 어떤 말에 있다고 하였다.

아테네 인들은 이 두 가지 행동이 상서롭지 못함을 대등하게 보고, 델로스 섬을 정화하고 아폴론 신에게 자기들의 결백을 변명하게 되었을 때에, 이 섬의 경내에서 사람을 낳거나 묻는 일을 금지했다.

어느 나라에서는 밥을 먹을 때에 몸을 가린다. 내가 아는 분으로 대단한 가문의 한 귀부인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씹을 때의 용모를 불쾌하게 여기며, 그것이 우아로운 미모를 몹시 천하게 만든다고 여기고, 남의 앞에서 밥먹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분은 남이 밥먹는 것도, 자기가 밥먹는 장면을 남이 보는 것도 참아 내지 못하며, 배 속을 채울 때나 비워 낼 때나 똑같이 사람을 피한다.

터키 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해지기 위해서 밥먹을 때에 남이 보지 못하게 하는 자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밖에 밥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 얼굴과 사지를 찢고 째는 자도 있고, 아무한테나 전혀 말을 않는 자도 있으며, 자기 본성을 못쓰게 만들면서 본성에 영광을 준다고 행각하고, 자기들을 경멸함으로써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신체를 악화시킴으로써 자기 신체를 보완하고 있다는 광신적 인간들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징그럽게 여기고, 쾌락을 고통으로 느끼며, 불행에 의지해서 지내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괴상한 동물인가!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감추는 자들도 있다.

주거와 따사로운 가정도 버리고 도피의 길로 떠나다니!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자기 몸을 숨겨 두는 자도 있고, 건강과 쾌활한 상태를 인간성에 적대되는 해로운 소질이라고 구태여 피하는 자들도 있다.

여러 종파들뿐 아니라 여러 국민들은 자기 출생을 저주하며 죽음을 축복하고 있다. 태양을 파기하고 암흑을 숭배하는 국민도 있다.

우리는 우리를 학대하는 일 외에는 재간이 없다. 그것은 실로 우리 정신력의 노리갯감이다. 정신력이란 인생을 혼란시키는 위험한 연장이 아닌가!

불행한 자여! 자기의 쾌락을 죄로 삼다니.   (프세우스 가르스)

이보게! 가련한 인간이여, 그대는 일부러 꾸며내서 늘리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앙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불행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대는 인간 조건 자체로 너무나 불행하다. 그대는 공상으로 그런 것을 꾸며내지 않아도 본질적으로 추악한 것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 그대는 편안한 것이 불쾌하게 되어 주지 않으면 편안이 너무 지나치다고 보는가? 그대는 자연이 그대에게 맡겨 주는 모든 필요한 직무를 완수하였고, 그대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서 갖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할 일이 없고 한가롭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의심해선 안 될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을 모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파당적이며 광신적인 그대의 법에 집착한다. 그 법이 특수한 것이고 불확실하고 더 모순됨으로 그만큼 그대는 더 애를 쓴다. 그대가 꾸민 실천적인 규칙에 잡혀서 매여 지내며, 그때 교구(敎區)의 규칙, 즉 법칙과 우주의 법칙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고찰을 입증하는 실례를 좀 섭렵해 보라. 그런 것으로 그대의 온 인생이 이루어져 있다.


반사한 때 974

태양 광선이나 바람을 쏘이는 것은 직접 닿는 것보다 한번 부딪쳐서 반사한 때에 더 세차다고 한다.


더듬더듬 974


마르티알리스는 아무리 비너스의 치마폭을 들추어 보아도, 그를 통째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모두 털어서 말하는 자는 바로 물려서 싫증이 나게 한다. 더듬더듬 잘 말해 주지 않는 자는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종류의 겸손에는, 특히 이런 작가들처럼 반쯤 열어 보이며 우리들 공상의 큰 길을 터놓은 겸손에는 배신이 있다. 그리고 그 내용과 묘사는 동시에 좀도둑질하는 수법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


층계와 계단 975


층계와 계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지막 자리는 더 높고 명예롭다.


갑자기 & 이미 975

여자들이 갑자기 우리들 것이 되면, 우리는 이미 그녀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변덕스런 정욕을 충족하고 나면 바로
약속이건 맹세이건 모두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한다.      (카툴루스)

그래서 그리스 청년 트라소니데스는 자기의 사랑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애인의 마음을 얻고 난 다음에는 그가 영광으로 품고 키우던 그 불안스런 정열이 향락 때문에 없어지고 넘쳐나서 해이해 지지 않게 하려고 사랑을 즐기기를 거절하였다. 



그런 여자들은 단지 한쪽 궁둥이만을 가지고 있다 977


나는 상대편의 동의와 욕망 없이 한 육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이나 감정이 없는 몸뚱이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모든 향락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윤리적이며 기운 빠진 향락도 있다. 호의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유로 우리는 부인들의 이 선물을 얻을 수가 있다. 그것은 애정의 충분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다른 일에서와 같이 배신도 거기 굴러들 수가 있다. 그런 여자들은 단지 한쪽 궁둥이만을 가지고 있다.

냉랭하기가 마치 신에게 분향과 제삿술을 준비하듯
여자는 그곳에 없거나 대리석으로 된 것 같으니라.      (마르티알리스)

나는 자기의 마차보다도 그것을 더 쉽게 빌려 주고, 그것으로만 교제하는 예를 알고 있다. 그대가 같이 있어 주는 것이 여자들에게는 다른 목적으로 마음에 드는지, 또는 마구간의 뚱뚱보 하인처럼 단지 그 일만으로 상대하는지, 어떤 지위나 가치로 그대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녀가 그대에게만 허용하는 것인지
또는 흰 분필로 이 날짜를 표해 두는 것인지.      (카툴루스)

뭐라고? 그녀가 그대의 빵을 더 기분좋은 공상의 소스에 적셔서 만든다면?

그녀는 그대를 껴안고 있으면서
지금은 없는 다른 애인을 위해 한숨 짓는다.      (티불루스)


그녀들의 역할
979

나는 여자의 총애를 얻으려면 오랜 시일과 단계를 두라고 권한다. 플라톤은 모든 종류의 사랑에서, 용이성과 신속성은 당사자들에게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여준다. 주책없이 소란스럽게 통째로 넘어가는 일은 색을 탐하는 특징이 되는 것이니, 여자들은 모든 꾀를 부려서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 여자들은 몸가짐에 절도를 지키고 질서 있게 처신하면, 우리의 정욕을 더 잘 속여 넘기고 자기의 정욕도 또한 감출 수 있다. 여자들은 항상 우리들 앞을 피해야 한다. 붙잡히기를 바라는 여자들이라도 그래야 한다. 그녀들은 스키타이 족들처럼 달아날 때 우리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진실로 그녀들이 본성으로 타고난 법칙에 따라서 여자들이 나서서 남자를 욕심내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다. 그녀들의 역할은 당하고, 복종하고, 동의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그녀들은 계속적인 능력을 본성으로 타고난 것이다. 그 능력은 우선 남자들에게는 드물고도 불확실한 것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우리들의 시간에 대비해서 수동적인 역할을 타고났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의 욕망을 뛰어나게 드러내어서 선언하게 하는 반면에, 여자들의 것은 은밀하게 안으로 들어가며 내보이기에는 부적당하며 방어 태세를 가지게 해 주었다.


사랑의 본성,
영원한 포만이나 그 종식(終息)을 명령할 수도 없다 980

사랑은 어떻든 맹렬하지 않으면 사랑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고, 사랑이 지조를 지킨다면 그 맹렬하다는 본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리고 놀라서 떠들어대며 그것이 믿을 수 없이 타락한 일이라고, 그 병폐의 원인이 여자 속에 있다고 보는 자들은 어째서 그들이 이 병폐를 자신들 속에 가지며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놀라지도 않는 것인가! 아마도 사랑에 지조를 발견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정열이 아니다. 탐욕과 야심에도 그 끝이 없다면 음욕에도 끝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음욕은 포만시킨 다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영원한 포만이나 그 종식(終息)을 명령할 수도 없다. 이 음욕은 항상 그 소유한 것의 밖으로 나간다.


오십 고개를 넘은 자,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982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자연은 이 나이를 꼴사납게 만들 것 없이, 가련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주일에 세 번쯤 허약한 힘으로 일어나며, 뱃속에 당연히 해낼 어떤 위대한 힘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꼴이 보기도 싫다.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그리고 지금 둔중하게 얼어붙어서 볼이 꺼진 이 나이에 이렇게도 생기 있게 팔딱거리는 자극이 놀랍다. 이런 욕망은 청춘의 꽃다운 시절에나 가질 일이다. 이런 충동을 믿고, 그대에게 있는, 이 피로할 줄 모르게 꾸준하고 충만하고 장엄한 열기를 한번 거들어 보라. 좋은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만큼의 미련이 있는 동안에는 985


나는 여자들에게 느끼고 있는 실질적인 애정 이상을 보여 주지는 않았고, 애정의 쇠퇴·왕성함·시작·발작·정체 등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그 일은 늘 고르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약속해 주는 일에는 인색했고, 내가 의무를 진 것이나 약속한 것보다는 더 지켜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자기들의 변절에 대해서까지 내가 진실하게 처신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터놓은 변절 행위를 때로는 몇 번이고 거듭하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편에게 실오라기 하나 만큼의 미련이 있는 동안에는 결코 관계를 끊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들이 아무리 절교하여 마땅할 구실을 만들어도 경멸이나 증오를 받을 정도로 그녀들과의 사이를 끊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비밀 관계가 가장 수치스러운 조건으로 기회를 얻은 것이라 해도, 나는 그 여자들에게 어떤 호의를 가져야 할 의무를 느낀다.


예상 외의 힘든 방법 986

나는 할 수 있는 한 여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밀회의 위험을 나 혼자만의 책임으로 맡았다. 그리고 의심을 덜 받으려고 예상 외의 힘든 방법을 쓰며, 뿐만 아니라 내 의견을 따라서 더 성공하기 쉬운 길로 사랑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응당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소는 가장 들키기 쉬운 곳이다. 사람들이 덜 두려워하는 일은 발각의 위험이 더 많고 더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그대가 감히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일을 그대는 더 쉽게 감행할 수가 있다. 그 일은 어렵기 때문에 더 쉬워진다.


사랑은 미치는 자들에게밖에는 해롭지 않다 987


나는 거칠고 일에 힘들게 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가롭게 오그라져 잠드는 생활도 혐오한다. 하나는 나를 꼬집어뜯는다. 하나는 나를 졸게 한다. 나는 뼈가 부러지는 부상만큼의 파열상도, 멍들게 하는 타격만큼 터뜨리는 타격도 좋아한다. 나는 이 흥정에서 제법 그런 일을 할 만하던 무렵에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을 택했다. 사랑은 개운하고 생기 있고 유쾌한 격동이다. 나는 번민도 고통도 받지 않았다. 그보다도 열이 올라서 갈증을 느꼈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 사랑은 미치는 자들에게밖에는 해롭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988

한 청년이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에게, 현자도 사랑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 보자, "현자는 치워 두라. 그러나 자네와 나는 현자가 아니니까, 우리를 타인의 노예로 만들고, 자신을 경멸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마음 뒤집히는 강렬한 일에는 걸려들지 말자"고 대답하였다. 이런 사태의 충격을 지탱할 수 없는 심령에게는, 그 자체로 격정을 일으키는 일에 몸을 맡길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진실이며, 예지와 연애는 병행할 수 없다고 한 아게실라오스의 말을 압도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헛되고 부적절하고 수치스럽고 옳지 못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둔중한 육체와 정신을 잠 깨워 주기에 적당하고 건전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내가 의사라면, 나와 같은 기질과 조건을 가진 인물에게는 나이가 지긋하기까지 생기를 돋우고 정력을 일으키며 늙음에 잡히는 일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다른 어느 처방보다도 이 처방전을 적어 줄 것이다. 우리가 아닌 그 주변에 머무르는 동안, 맥박이 아직 뛰는 동안,

처음으로 흰 머리칼 겨우 생기며
노령(老齡)은 아직 강건하고 몸을 가눌 수 있는 동안
운명의 여신 라케시스에게 뽑을 실이 남아 있는 동안
아직도 내가 다리를 쓰며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좋을 동안,       (주베날리스)

우리는 이런 따위의 몸이 찌르르 울리는 정열로 초대받고 애무받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저 현명한 아나크레온에게 젊음과 정력과 쾌활성을 얼마나 돌려 준 것인가를 보라.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보다도 훨씬 더 늙어서 사랑의 대상을 두고 말했다. "내 어깨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내 머리를 그의 머리에 가까이 하며, 우리가 같이 책을 들여다보노라니, 거짓말 아니라, 내 어깨는 무슨 짐승이 무는 듯 찌르르하더니, 그 뒤 닷새 동안을 두고 근질거리며, 나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저린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 어깨를 접촉한 것만으로도, 나이 탓에 식어 쇠약해져 가는 심령을 덥게 하다니! 그리고 인간 심령 중의 제1의 심령을 개혁해 주다니, 그럼 왜 못할까?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아무것도 되려거나 닮으려고 하지 않았다.


두 가지로 쪼개 놓는 것 989

우리가 이 지상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은 순전히 육체적인 것도 순전히 정신적인 것도 없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이 두 가지로 쪼개 놓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노년의 사랑 990


나는 숨가쁘게 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어떠한 다른 정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면 나처럼 일정한 직업이 없을 경우, 탐욕·야심·싸움·소송 사건 같은 일에 마음이 잘 매여 지내지만, 나로서는 사랑에 매여 지내는 편이 더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은 다시금 내게 주의력과 소박성과 우아미와, 내 인품에 대한 생각을 가꾸게 하고, 이 늙음의 얼굴 찌푸림이, 이 측은할 만큼 비뚤어진 찌푸림이 나의 용모를 타락시키지 않게 보장해 주고, 나에게 다시 건전하고 현명한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그래서 내 정신이 자신과 자신의 쓸모에 관해서 절망하는 심정을 없애고, 자신에게 다시 정이 붙게 하여 더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할 일은 없고 건강 상태는 나빠지기 쉬운 이런 나이의 수천 가지 불쾌한 생각과 우울한 번뇌를 흝어 준다. 또 적어도 공상으로라도 대자연에 버림받기 시작하는 이 피에 다시 따스함을 넣어 주며, 이제 마지막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가련한 인간에게 턱을 괴어 주고, 근육과 심령의 정력과 쾌활성을 조금은 연장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간해서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몸은 허약해지고, 오랜 경험으로 우리 취미는 한층 더 연약하고 꾀까다로워져서, 내놓는 것도 별로 없이 요구만 많아지며, 용납될 만한 가치가 아주 없는 터에 가장 좋은 상대만 고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젊었을 적만큼 과감하지도 못하며, 사람을 더 믿어 주지도 못한다. 우리 조건과 여자들의 조건을 알고 있는 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사랑받을 자신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저 피끓는 새파란 청춘들 사이에 끼여 있기가 부끄럽다.


사랑은 같은 종류의 돈으로밖에는 치르지를 못한다 991


사랑은 같은 종류의 돈으로밖에는 치르지를 못한다. 진실로 이렇게 기뻐하여 즐김에서는 내가 주는 쾌감은 받는 것보다 내 공상을 더 달콤하게 애무해 준다. 그런데 자기가 쾌락을 주지 못하며 남의 쾌락을 받는 자는 조금도 떳떳한 것이 못 된다. 모든 일에 남의 덕만 보려고 하며, 상대편에게 부담이 되게 교제하고, 남의 신세만 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마음이 비굴한 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건 아담한 취미이건 친밀성이건, 활달한 대장부가 이런 대가를 치르고 바라야 할 만큼 정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들이 겨우 측은한 마음으로밖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없는 것이라면, 남이 시주한 재물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훨씬 낫겠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하는 식으로 "당신을 위해서 내가 좋은 일을 하였다"고 라든가, 키로스가 자기 군대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고 하던 식으로 여자들에게 사랑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싶다.

"그대와 같은 조건의 여자들과 맺으라. 팔자가 같은 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오, 그 얼마나 멋쩍고 어리석은 타협인가!

나는 죽은 사자의 수염을 뽑고 싶지는 않다.      (마르티알리스)


억지로 손질하여 꾸민 미모 992

나는 제1급의 추악으로서 억지로 손질하여 꾸민 미모를 든다. 키오 섬의 소년 에모네즈가 타고나지 못한 미모를 장식품으로 꾸미고, 철학자 아르게실라오스에게 가서 현자도 사랑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철학자는 대답했다. "하고말고, 다만 너처럼 가짜로 꾸며서 만든 미모가 아니면 말이다." 나는 칠하고 닦아 놓은 것보다는 드러내 놓은 못난이나 늙은 모습이 덜 추하다고 생각한다.


장년기와 노년기 993

나는 장년기에는 미모가 이미 자리를 떴다고 본다. 더욱이 노년기이면 말할 거리도 없다. 993


서른 살 993

나바르의 여장 마르그리트는 여자이니 여자의 장점을 한껏 연장시키며, 서른 살에 이르면 그 칭호를 '예쁜'에서 '착한'으로 바꾸라고 명령한다.


풋내기들이 스승이다 993


우리 인생의 지배력을 사랑에게 짧게 줄수록 우리는 그 만큼 더 가치가 생긴다. 사랑의 자태를 보라. 그것은 젖내나는 모습이다. 사랑의 학파에서는 모든 처사가 질서에 역행하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공부나 훈련이나, 행동 습관이 무능력으로 향하는 방도로 된다. 거기서는 풋내기들이 스승이다.


비틀거리며 촐랑대며 가는 사랑 993


사랑이 얼마나 비틀거리며 부딪치고 촐랑대며 가는가를 보라. 그것은 현명하게 기술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칼을 씌우는 일이다. 사랑을 더부룩하고 덕적덕적한 손에 맡긴다는 것은 그의 신성한 자유를 속박하는 일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귀한 교환 993


나는 우리가 여자들의 육체적 미를 고려해서 늘 여자들의 정신적 허약성을 용서해 주는 것은 보았으나, 여자들의 정신이 아무리 현명하고 성숙했다고 해도 그 정신의 미를 위해서 다소나마 쇠잔해 가는 육체를 여자들이 변호해 주려고 하는 것은 아직 본 일이 없다. 여자들 중의 어느 누구라도 저 소크라테스식의 육체와 정신의 고귀한 교환으로 자기 엉덩이의 가치를 가장 비싸게 올릴 수 있도록 그 엉덩이의 대가로 철학적이며 정신적인 지성과 생산을 사들일 생각은 어째서 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같은 틀 994


나는 수컷이나 암컷이나 같은 틀에 부어 냈다고 말한다. 교육과 풍습을 제외하고는 그 사이에 그리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부지깽이가 냄비 바닥의 껌정을 비웃는다고 하는 말 994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에서 공부나 경기나 부담이나 전쟁 직무나 평화 직무나 모든 모임에, 양편을 다 무차별하게 불러들인다. 그리고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는 여자들의 도덕과 우리의 도덕 사이의 모든 구별을 철폐해 버렸다. 한편의 성(性)을 비난하기는 다른 편의 성을 변명하기보다도 훨씬 더 쉽다. 부지깽이가 냄비 바닥의 껌정을 비웃는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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