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더빌 박사의 철학 체계 590

악덕과 미덕의 구분을 완전히 없애버린 듯이 보이는 또 다른 철학체계가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철학체계의 경향은 전체적으로 유해하다. 맨더빌(Mandeville) 박사의 철학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학자의 견해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틀렸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떤 특정한 태도로 인성(人性)의 일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들을 관찰하면, 처음에는 그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거칠고 촌스럽기는 하지만 생동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멘더빌 박사의 말솜씨로 묘사되고 과장되어 있는 이 표면적 현상들은 그의 학설에 일종의 진실성과 가능성의 분위기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숙맥(菽麥)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속아 넘어가기 쉬운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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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번영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591

그가 관찰한 바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진심으로 자신의 번영보다 다른 사람들의 번영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동기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언제나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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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익정신은 단지 인류에 대한 기만이자 속임수에 불과 591∼592

인간의 다른 모든 이기적인 격정들 가운데 허영심이 가장 강렬한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의해 쉽사리 우쭐해지고 기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동료들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들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에 대해 매우 유쾌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그들은 반드시 자신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냄으로써 그들의 만족감을 표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부터 기대하는 쾌락은, 그의 생각에도, 이것을 얻기 위해 그가 포기하는 이익을 능가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행동은 사실상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이고, 또한 천박한 동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행동은 전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우쭐대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런 무사(無私)의 동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의 행동은 그 자신의 눈에나 또는 다른 사람의 눈에나 어떤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모든 공익정신은 단지 인류에 대한 기만(欺瞞)이자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처럼 자랑을 많이 하는 인류의 미덕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서로 많이 갖추려고 노력하는 인류의 미덕이라는 것은, 사실은 단지 자존심에서 생겨난 아첨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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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덕행은 우리 격정의 감춰진 방종(放縱)에 불과 598

맨더빌 박사는 경박한 허영의 동기를 통상 유덕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행위의 근원으로 설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덕행이 기타 많은 점에서도 불완전함을 지적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간의 덕행은 그것이 자칭하는 바의 완전한 자아극복(自我克服:self-denail)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 격정의 정복이 아니라 통상 우리 격정의 감춰진 방종(放縱)에 불과하다고 한다. 쾌락에 대한 우리의 자제(自制: reserve)가 최고의 금욕적 절제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것을 순수한 사치(奢侈)와 육욕(肉慾)으로 취급한다. 그에 의하면 인성(人性)의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초과하는 모든 것은 사치이며, 따라서 깨끗한 셔츠나 편리한 주택의 사용도 일종의 악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가장 합법적으로 결합되는 경우의 성욕(性慾)의 충족까지 그러한 격정을 가장 유해(有害)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경우의 육욕(肉慾)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는 이처럼 아주 저렴하게 실행될 수 있는 절제나 정결(貞潔)을 비웃는다.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의 설명 속에 들어있는 교묘한 궤변은 언어의 애매모호함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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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들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 개인의 악행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결론 599∼600

맨더빌 박사의 저서(『꿀벌들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의 큰 오류는, 모든 감정들은, 그것의 정도 및 그것이 향하는 대상 여하를 불문하고, 전부 악덕(惡德)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실제의 감정, 혹은 다른 사람들의 당위적 감정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 허영심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결론, 즉 개인의 악행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결론을 확립한 것은 바로 이러한 궤변에 의해서이다. 장엄(壯嚴)한 것에 대한 애호, 우아한 예술품과 생활수준을 제고하는 것들에 대한 취향, 복장과 가구와 마차 등 사람을 유쾌하게 하는 일체의 것들에 대한 취향, 건축·조각·미술과 음악에 대한 취향이, 어떤 불편도 없이 이러한 격정에 빠져들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사치·육욕(肉慾)·겉치레로 간주된다면, 분명히 사치와 육욕과 겉치레는 공공의 이익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상스러운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그가 생각한 이러한 특성들이 없으면 우아한 예술은 결코 장려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것은 쓸모가 없어서 틀림없이 시들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맨더빌 시대 이전에 유행했던,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격정들을 완전히 근절시키고 없애버리는 데 미덕이 있다고 본 일부 금욕주의 학설들은 이 방종적(放縱的) 체계의 진정한 기초였다. 맨더빌 박사가 다름과 같은 명제(命題)를 증명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첫째, 인간은 결코 실제로 이러한 격정을 완전히 정복한 일이 없었다. 둘째, 만약 인간이 그 자신의 격정을 보편적으로 정복하게 되면, 그것은 모든 산업과 상업을 종지(終止)시키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인류생활의 모든 업무를 종지시킴으로써, 그것은 사회에 대하여 유해(有害)하다.

그는 이 두 가지 명제 중에서 첫 번째 것을 통해서, 진정한 미덕이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소위 미덕이라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사기(詐欺)이자 기만(欺瞞)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을 통해서는, 개인적인 악행이 없으면 어떤 사회도 번영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인 악행은 공중의 이익(利益)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맨더빌 박사의 체계이다. 비록 이 체계 때문에 이것이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많은 악행이 야기되었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다른 원인에서 생겨난 악행들로 하여금 더욱 뻔뻔스럽게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었으며, 그리고 이전에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함으로 그 부패한 동기(動機)를 공개적으로 선언(宣言)하도록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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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도 없는 독자에게까지도 황당하고 가소롭게 보일 것 602∼603

자연철학을 연구하는 저자가(이하는 맨더빌 박사를 지칭한 말이다. 맨더빌은 본래 의사로서 자연과학자이다-역자) 우주의 위대한 현상들의 원인을 규명한다고 자처하거나,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설명한다고 자처하는 경우, 그런 것들에 관해서는 그는 자기 좋을 대로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그럴 듯한 범위 내에 있는 한, 그는 우리가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갈망(渴望)과 감정이 생겨나는 근원이나 우리의 시인(是認)과 부인의 감정이 생겨나는 근원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마치 그가 우리가 살고 있는 교구의 여러가지 사정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겠다고 자처하는 것과 같다.

비록 이런 경우에조차, 게으른 주인이 자신을 속이는 집사(執事)를 믿는 것처럼, 우리 역시 속아 넘어가기 쉽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의 설명을 그대로 다 믿고 넘어갈 수가 없다. 적어도 그 중의 일부 내용들은 정당해야 할 것이고, 매우 과장된 내용들마저 약간의 근거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늘 그래 왔듯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슬쩍 한번 살펴보는 정도의 관찰에 의해서도 그의 사기행각(詐欺行脚)은 들통 나고 말 것이다. 천연적인 감정의 원인으로서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천성(天性)이나 또는 그것과는 어떤 유사성도 전혀 없는 원리(原理)를 제시하고 있는 저자는, 가장 분별력도 없고 가장 경험도 없는 독자에게까지도 황당하고 가소롭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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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우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으로 이끈 사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애덤 스미스가 쓴 중요한 저서《도덕감정론》이 버나드 맨더빌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도덕감정론》은“사람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생각되더라도”라는 말로 시작되어, 이기심에 따른 사람들의 행위가 정당한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방탕과 사치 같은 인간의 악덕을 옹호한 맨더빌의 사상이 사회에 퍼지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자유경쟁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은 당시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무역 등 산업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자유경쟁을 보장함으로써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기업과 상인들도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덕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인간 악마(Man-Devil)라 불렸던 맨더빌(Mandeville)은 167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레이던 대학에서 철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 이후 173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다. 맨더빌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그가 1723년《꿀벌의 우화》라는 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책에는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이라는 풍자시와 함께 맨더빌이 직접 단 주석과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자선과 자선학교>, <미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글을 함께 수록해놓았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들섹스 지역의 대배심으로부터 “종교와 미덕을 깍아내린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당시 사람들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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