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의 대표가 일식집에서 낮술을 먹은 걸 두고 논란이 뜨겁다. 그 날이 하필이면 '일본의 제2차 경제 침략'이 자행된 날이었으니 국민들의 펄펄 끓는 분노 게이지가 한 순간에 불끈 솟구치지 않았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이다. 폭염만큼이나 짜증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워낙에 시국이 엄중한 때인지라 자칫 사소한 일이 크나큰 빌미가 되어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사람'으로 내몰려도 할 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인데, 그걸 둘러싼 공방이 더욱 한심스럽다.

 

물론 대범하게 보자면 사과 한 마디쯤 건네고 그칠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사안이다. 그런데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비난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지 싶은 사람을 편드느라, 물불 안 가리고 마구 뛰어들어 온갖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의 언행들이 분노를 더욱 솟구치게 만든다. 일식집에 가서 사케 한 잔 먹는 것도 못마땅하냐? 그러면 일식집은 다 망하라는 말이냐? 하고 안하무인 식으로 상대편을 무턱대고 나무라고 도리어 꾸짖는 태도를 어느 누가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아전인수와 견강부회가 따로 없다.

 

이번 무역 갈등 사태가 확전일로로 치달은 데에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현 정부와 집권당에게 일말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아무리 치졸하고 부당하게 도발했더라도 양국 사이의 갈등을 최대한으로 누그러뜨리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정부와 여당몫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를 두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사코 갈등을 부추기고 이만큼이나 일을 키워 온 데 대해 선봉장 역할을 떠맡아온 당사자들이 '일식당에서 사케 한 잔 먹은 게 무슨 잘못이냐'는 식으로 비판자들을 향해 도리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드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어디에 있는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 가장 많이 언급된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도 사자성어로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내로남불은 우리말의 '단순한 축약형'이지만,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비슷한 뜻을 지닌 말들도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게 아전인수, 견강부회, 적반하장, 지록위마 등이다. 아전인수의 반대말이 역지사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니, 내 논에만 물을 끌어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견강부회나 지록위마에 담긴 뜻에도 '억지를 부린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야말로 초딩들에게나 어울리는 한심스런 생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발 좀 억지와 변명은 이제 그만 부리고 대범하게 위기를 풀어내는 쪽으로 머리를 맞대 보라. 백성들의 삶은 하루 하루 나락으로 내몰리는 판국인데, '사케 한 잔' 먹고 나서도 반성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비판하는 국민들과 상대편들을 향해 거센 언사들을 총동원해 이토록 뻔뻔하게 우길 참인가.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는 정부의 고관대작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벼슬이 꾸며주는 위세에 도취된 채 꼴사납게 으시대는 오만방자함을 날카롭게 꾸짖는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우연히 함께 휴가를 얻어 궁궐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고관대작은 혹시라도 저잣거리에 '성인 같은 사람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수레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때 만난 인물이 점 집 주인인 사마계주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한마디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 두 사람은 관의 끈을 고쳐 매고 옷깃을 여민 뒤 똑바로 앉아서 그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 * *

 

 

사마계주는 이렇게 말했다.

 

어진 이의 행동은 도를 바르게 실천하여 바르게 충고하고, 세 차례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벼슬에서] 물러납니다. 남을 칭찬할 때에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남을 미워할 때에는 원망을 돌아보지 않으며, 나라에 편리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을 임무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벼슬이 자기에게 알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며, 봉록이 자기 공로에 알맞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바르지 못한 사람을 보면 그가 비록 귀한 지위에 있더라도 존경하지 않으며, 오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 비록 그 사람이 높은 신분이라도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벼슬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벼슬에서 물러나도 원통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몸이 묶이는 치욕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들께서 말하는 어진 사람이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자입니다. 몸을 낮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며, 권세로 서로 끌어들이고 이익으로 서로 이끕니다. 도당을 만들어 바른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높은 영예를 구하고, 나라의 봉록을 받고 있으면서 사사로운 이익만을 꾀하며, 나라의 법을 어기고 농민들을 착취합니다. 관직을 위세 부리는 수단으로 삼고 법을 무기로 삼아 이익만을 찾아 포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행하니, 비유하자면 흰 칼날을 잡고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처음 벼슬에 나갔을 때에는 교묘한 수단으로 실력을 두 배로 보이게 하고, 있지도 않은 공적을 꾸며 말하며, 있지도 않은 일을 문서로 만들어 임금을 속입니다.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는 것을 좋게 여겨 벼슬에 임명될 때 어진 사람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말할 때에는 거짓을 보고하기도 하고, 사실을 과장하기도 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기도 하고, 적은 것을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높은 지위를 구합니다. 그리고 주연과 놀이를 일삼으며 미녀와 노래하는 여자를 좇느라 부모를 돌보지 않고, 법을 어겨 가며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텅 비게 합니다. 이것은 창과 활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도둑질하는 것이고, 칼을 쓰지는 않지만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속였지만 아직 그 벌을 받지 않고, 임금을 죽였으나 아직 그 벌을 받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높고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무리는] 도적이 일어나도 막을 수 없고,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아도 평정할 수 없으며, 간사한 일이 생겨도 막지 못하고, 관직의 기강이 어지러워져도 다스릴 수 없으며, 사계절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조절할 수 없고, 그해의 곡식이 흉년이 들어도 조절할 줄 모릅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가에 대한 불충입니다. 능력도 없이 관직에 앉아 위에서 주는 봉록만을 탐하고 어진 사람을 방해한다면 이는 벼슬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도당을 거느리고 있는 자가 등용되고, 재물이 있는 자를 예우하는 것은 거짓된 행위입니다. 공들께서만 유독 올빼미(소인)와 봉황(군자)이 함께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십니까? 난, 지, 궁, 궁藭 같은 향기로운 풀은 넓은 들판에 버려지고, 蒿와 蕭가 숲을 이룹니다. 군자가 물러나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는 자들은 바로 공들 같은 사람입니다. (773∼775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일자 열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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