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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남의 뒷담화는 재밌다. ‘글쎄 걔가 그랬다더라식의 이야기는 술자리의 흥을 돋는 애피타이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얼마동안은 흥미롭고 재밌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밤새 계속된다면 지겹고 짜증나기 마련이다. 결국 밤샘 술자리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험담보다는 서로간의 진솔한 속내를 고백하는 일이나 서로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프로이트의 험담을 읽는 일은 약간은 고역이었다.

 

물론 방금 말한 험담이란 표현은 근거 없는 비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프로이트의 모든 저작과 접근 가능한 서간들에 대한 꼼꼼한 검토를 통해 프로이트의 사상을 비판한다. 이런 비판을 통해서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나는 이 책을 빌려 프로이트의 생각을 무효화시키거나 할 생각은 없고, 다만 프로이트의 이론이 철저하게 그 개인의 자전적인 존재론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34)고 말한다. 이는 아마도 정신분석학을 잘 정립된 하나의 과학으로 굳게 믿고 있는 이들에게 정신분석학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적 심리학이 아닌 단지 문학적 심리학에 불과함을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이를 위해 이와 같은 두꺼운 분량이 필요했을까. 혹시 그에 대한 두꺼운 상찬의 글들과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는 피터 게이의 전기 <프로이트>는 우리나라에 출간된 번역본의 경우 1000페이지가 넘는다. 그러나 상찬이든 험담이든 길면 지겨워지는 법이다. 더구나 프로이트 사상의 모순을 지적하는 책이라고 하지만 군데군데 감정적 혐오의 뉘앙스가 풍기기도 한다. 평소 프로이트를 싫어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저자의 독설과 비꼼에 신나게 맞장구를 치며 읽어나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예를 들어 나와 같은 사람이 이 긴 글을 읽어나가기란 다소 힘든 일이다.

 

이 책은 긴 글이긴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 한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프로이트는 이전 시대의 혹은 동시대의 여러 사상가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지우고 자신만의 독창적 생각인 양 꾸미려 했다. 그의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온갖 모순된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한낱 개인적 경험에 불과한 내용을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과학으로 포장하려 했다. 그리고 이러한 포장을 위해 환자의 사생활을 거침없이 공개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하기도 했고, 치료되지 않은 환자를 완전히 치료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으며,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동료들을 내치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세속적 탐욕, 즉 돈과 명예,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구에 매몰된 인간일 뿐이다.

 

이건 내가 요약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이 단지 저 내용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일한 비판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을 위해 저자가 주로 참고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여러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저자는 잘 정리된 저작과 달리 그때그때의 감정을 담은 편지가 오히려 프로이트의 진심을 담고 있는 것이라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는 혹시 프로이트의 방법론이 아닌가. 의식적인 저술과 무의식적인 편지라는 도식, 그리고 무의식적인 편지에서 그의 진실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렇기에 그는 프로이트의 후손과 추종자들이 몇몇 편지들의 열람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상가에 대한 비판이라고 한다면 그의 공식적 생각이 담긴 저작만을 가지고 할 순 없는 것인가. 굳이 그 사생활이 담긴 편지들을 낱낱이 까발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게 최근 자주 논란이 되는 신상털기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저자가 생각하는 프로이트 사상의 문제를 들어보자. 그는 무엇보다도 정신분석학이 프로이트 개인의 몽상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다시 요약해보자. 그가 과학 저서라고 내놓은 두꺼운 책에는 그의 전기적 요소가 바탕이 된 자기 성찰이 주를 이룬다. 꿈과 어린 시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내용도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험적인 방법론을 적용한 유일한 훈련이 바로 꿈과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적 요소는 그의 이론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로 쓰였으며 프로이트가 대상을 해석한 방식에 따라 해석이 곧 이론의 핵심이 되었다.”(134)

 

그러나 과연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이 잘못인가? 데카르트는 난롯가에서 꾼 꿈을 바탕으로 <방법서설><성찰>을 썼다. 케큘레는 뱀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꿈을 바탕으로 벤젠 구조식을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는 우리가 타인의 생각을 직접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텔레파시의 가능성을 믿었다고 하지만) 타인의 생각을 직접 알 수 없기에 한 인간의 판단과 행동의 준거는 자신의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유아론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그런 자신의 판단 및 행동이 다른 이들의 판단 및 행동과 충돌하기도 한다는 경험을 얻기도 한다. 즉 인간은 실천 속에서 서로 다른 준거들의 충돌을 경험하게 되고 이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준을 수정하게 된다. 이는 과학에서 한 이론이 다른 실험을 통해 동일하게 재연되지 않거나 반대되는 실험 증거가 나타나면 거부되거나 수정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정신분석학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는 중이고 과거에 가지고 있던 절대적 지위가 많이 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는 프로이트학이 이러한 충돌을 애매하고 은유적인 수사로 교묘히 피해가려 한다고 지적한다.프로이트가 만든 세계에서 우연은 없다. 다만 순수하고 신비로운 필연성이 존재할 따름이다.”(433) “논술을 하듯 작문을 하고 주석을 달고 분석, 객관적인 번역을 하는 것보다 주관적으로 주석을 달 듯 내용을 파악하는 쪽이 일반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타인이 말하는 진리보다는 자기만의 독단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경향이 강하다.”(448) 그래서 정신분석학을 하나의 사회에 비유하면 그 사회는 철저하게 폐쇄적인 닫힌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547)

 

저자의 지적처럼 이러한 폐쇄성은 종교의 영역에서는 허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엄격한 의미의 과학의 영역에서는 용납되기 힘들다. 정신분석학의 지위가 약화되고 있는 데는 바로 이런 폐쇄성이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신분석학을 다룬 책인 <광기>에 대한 감상에서도 말한 적 있듯이,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정신분석학이 엄밀한 과학 혹은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엄밀한 과학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상담-분석에 치중하기보다는 뇌신경학 같은 학문들과 긴밀히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이 어떤 현실적 유용성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신의학이란 일종의 문학과 같은 것이어서 현실에 대한 정밀화는 아니지만 인간 삶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고,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저자가 정리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프로이트는 이렇듯 인간 존재를 피할 수 없는 비극으로 보았다. 행복은 원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기본 전제다. 다만 일시적인 쾌락, 나중에 환멸감을 주는 쾌락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을 뿐이다. 행복과 건강한 삶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설이 제기되지만 결과는 허망하게 실패로 끝날 뿐이다. () 전체가 힘을 합쳐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고 극한의 이타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결과는 늘 실패로 끝나고 만다. 사랑이라는 것은 원래 위험 요소를 가중시키는 감정이며, 부부나 가족의 결함은 결국 나중에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더해줄 위험이 높다. 그리고 정치는 인류의 환희에 찬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582~583)

 

비극적 진단이긴 하지만 현실의 어떤 장벽 앞에서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고 한다면 저 문구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런 공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프로이트의 사상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또는 문학이나 영화 혹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오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비아냥거리듯 정신분석학자들은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완전한 세상의 허무주의를 견뎌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침대를 제공했다.”(679)고 말하지만, 나는 저런 침대가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눕고 싶다.

 

요는 이런 것이다. 간혹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신분석학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굳이 저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연금술에 빠져있던 뉴턴을 그 누구도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듯이 최면술에 빠져있던 프로이트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과학 이론이든 철학 이론이든 현실과의 접점 속에서 자연스레 도태되거나 수정되거나 안착하게 될 것이다. 굳이 지위를 끌어내리기 위한 험담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역자는 대체로 읽기 쉬운 문장을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방대한 분량이고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음에도 쉽게 읽힌다. 그런데 간혹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이 눈에 띈다.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다시 읽어보게 되는, 그래도 여전히 애매한 문장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다지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또 내가 프로이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것도 아니기에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음을 밝혀둬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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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경 과학의 철학

뇌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항상 관심 도서로 올려두는 편이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올 해 나온 책들 중 가장 재밌어 보이는 책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바로 책소개에 있는 다음 구절 때문이다. "신경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의 권위자 두 사람의 협력을 통해 철학적 함의를 간과한 신경 과학의 탐구를 비판하는 책이다."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소개로만 보면 신경 과학의 발전이 철학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과연 그게 가능한가? 환원론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궁금하다.

 

 

 

 

 

2. 지구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의 새 책이다. 책소개에 따르면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인류학, 심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을 종횡무진 오가며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는 도덕,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의 기원을 밝혀낸다."고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 이후로는 계속 비슷한 얘기들만 반복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윌슨과 같은 대가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기에 관심 도서로 꼽아본다.

 

 

 

 

 

 

3. 물리학자의 철학적 세계관

이제는 슈뢰딩거나 하이젠베르크와 같이 과학과 철학을 함께 다루는 대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두 분야가 서로 접점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화, 세분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학문 영역에서의 과학의 승리와 철학의 몰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철학을 의미 있게 여기는 과학자를 찾기 힘들다. 이 책은 과학자들이 철학을 의미 있게 여기던 마지막 시대의 유물이 아닐까.

 

 

 

 

 

 

4. 시민의 탄생

10기 신간평가단 선정 도서였던 <인민의 탄생>의 후속편이다. 몇 가지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 재밌게 읽었었고, 후속작도 꼭 읽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드디어 2년 만에 다음 권이 나왔다. 책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19세기 후반 더 이상 기존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주체 의식과 함께 존재론적 자각을 하며 등장한 조선의 인민이 근대적 개인을 거쳐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지난 책의 논지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발전하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5.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매일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책 정도는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마지막 추천 도서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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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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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는 항상 국내 유일혹은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고 다니지만, 나는 그의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인터뷰이의 섭외 능력이나 인터뷰이들이 간혹 칭찬하곤 하는 치밀한 자료조사, 그리고 꾸준히 책을 출간하는 직업적 성실함은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그 결과물들은 그다지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그렇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다.

 

먼저 내용 얘기를 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interview’‘in-taboo’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짤막한 인터뷰라면 관심 사안이나 쟁점에 대한 의견 피력으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인터뷰로 온전히 한 권을 채우고 있는 책이라면, 인터뷰이의 의견을 듣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이가 인터뷰이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의 인터뷰집을 새로 사서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전 발언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집이라고 한다면 이미 공개된 내용 이외의 내밀한 속내를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 사생활을 파헤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도 인간인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모순들, 즉 그의 말과 말 사이, 말과 삶 사이, 삶과 삶 사이에 놓인 간극을 끄집어내고 들춰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인물에 대한 심층적 탐구라는 인터뷰집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없다면 굳이 인터뷰집을 새로 사서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가 직접 쓴 책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테니 말이다. 인터뷰집이라고 한다면 독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궁금증들, 다소 불순하고 공격적일 수 있는 질문들까지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대문을 열지 못하는 한국 경찰이란 부분에서 표창원은 경찰들이 책임 있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한다. 즉 폭력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도 신고받고 갔을 때 문을 부수질 못합니다. ‘열어주세요하고 기다려야죠. 부수고 들어가면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게 돼요. 손실보상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으니까 경찰관이 형사민사상의 소송을 당해요. 그러니까 안 들어가는 거예요.”(113)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조금 뒤에선 이러한 제도적 면책의 필요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의 경우, 결과가 나빴지만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지휘관들에 대해서 면책을 해줘야 된다, 이건 또 아니거든요.”(159)라고 말하면서 지휘관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답은 단순히 지위가 가지는 책임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넓게 보면 공적 업무에 있어서 제도적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공무 집행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당한 법 집행과 시민의 인권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표창원이라는 인물이 가진 법과 사회 그리고 정치에 대한 철학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승호의 인터뷰집에선 이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승호의 인터뷰를 맞장구 인터뷰라고 부르는데, 그의 책에서 그의 역할은 그저 대화의 방향을 잡아주고 인터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 머물기 때문이다. 인터뷰이가 신나서 떠들 수 있게 추임새만 넣어주는 것이다. 인터뷰이가 평소에 책이나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역할도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표창원과 같이 책도 여러 권 쓰고, 신문 칼럼이나 트위터를 통해 활발하게 발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같은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읽기 전에 예상했던 대로 이 책에 담긴 내용 역시 표창원이 평소 칼럼 등을 통해 했던 말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정의의 부재에 대한 일침들, 즉 사회적 불신을 야기하는 경찰, 검찰, 법원 등의 행태, 사회적 반성 능력의 부재, 뒤떨어지고 체계적이지 못한 범죄 대응 시스템의 문제,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견 등이 그것이다. 물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지나치지 않을 이야기지만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왜 이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다. 인터뷰집도 한 권의 책이다.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은 계획된 목차에 맞게 내용들이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제를 구분하고 이에 맞게 논의를 이끌어가는 것도 인터뷰어의 능력이긴 하겠지만 글이 아닌 대화라는 형식의 특성상 이러 저리 튀고 곁가지로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터뷰는 사후작업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과감히 잘라내고 한정된 주제에 맞게 대화들을 재정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쩌면 정리 작업이 인터뷰보다 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정리 후 눈에 띄는 부족한 내용은 추가 인터뷰를 통해 채워 넣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수고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다소 실망스럽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곳곳에서 동일한 주제, 사례, 주장들이 반복된다. 날 것의 생생함을 전하고 싶다면 그냥 녹취된 내용을 오디오북으로 내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절한 편집을 통해 대화를 정리 정돈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절반 분량으로도 훌륭한 인터뷰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불만을 늘어놓긴 했지만, 이 책은 표창원이란 사람의 이름을 얼핏 들어본 이들에게는 훌륭한 표창원 입문서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표창원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선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일각에서 자꾸 오판을 하고, 시민들을 자극하고, 둘로 나누고, 국론 분열을 하고, 자꾸 북한 문제를 들먹이면서 안보 내세우고, 색깔론 들이밀고. 이렇게 나가면 그건 비극입니다.”(410)라는 지적은 지금 우리 사회가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암담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실패로부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실패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개선책을 찾고, 더 나아가는가가 중요하거든요. 또 하나는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거죠. 위기관리 시스템.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가 없어요.”(19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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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도계의 철학

이 책이 번역되고 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출간되어 나왔다. 책소개는 아주 간단하다. "온도계의 온도가 없던 시절 어떻게 온도를 측정하고, 개념을 만들며 온도계를 발명했는가를 다룬다." 다시 말해 온도의 과학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책과 같이 특정 분야나 특정 주제를 다룬 과학사 책이 요즘 자주 나오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책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고가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 혹은 변화되어 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비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2. 무로부터의 우주

로렌스 크라우스는 리처드 파인만의 전기인 <퀀텀맨>을 통해 알게 된 과학자이다. <퀀텀맨>을 읽으며 관련된 여러 과학적 주제들을 비전문가도 알기 쉽게 풀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매우 인상 깊었었다. 나름 많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 책이 나왔다. 책속개가 무척 흥미로운데, "이 책의 목적은 "우주는 왜 비어 있지 않고 물질의 존재를 허용하는가?"라는 질문에 과학이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있으며, 지금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질문에 과학이 다시 한발을 내딛는 상황이 흥미롭다.

 

 

 

 

  

3. 식물의 왕국

요 몇 달간 식물과 관련된 책들이 자주 눈에 띈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나오고 있었는데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것일 테지만. <식물은 똑똑하다>나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같은 책들을 관심도서로 저장해 놓았는데, 이 책도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책소개를 보면, "세포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생물로 생물에서 식물로 그리고 해양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식물의 진화 여행의 시작점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고 씨를 퍼뜨리고 꽃을 피우는 등 식물의 다양성이 만개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5억 년의 시간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고 한다. 앞의 두 책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인듯 싶다.

 

 

 

 

 

 

4. 돈의 철학

몇년 전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보았는데 마침 돈이 모자라 그냥 나온 적이 있었다. 며칠 후 돈을 마련하여 책을 사러 다시 헌책방에 갔었는데 이미 팔려나가 안타까워했던 경험이 있다. 마침내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물론 최근 재번역 출간되는 고전들이 그러하듯 묵직한 가격까지 함께 달고 나왔다. 게오르그 짐멜은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소개가 되지 않은 사회학자라고 흔히 언급된다. 나 역시 헌책방에서 놓친 후로 짐멜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5. 에티카를 읽는다

스티븐 내들러는 스피노자의 평전인 <스피노자>를 읽은 적이 있다. 스피노자에 대한 방대하고 꼼꼼한 서술에 좀 질리는 책이긴 했지만, 그만큼 한 인물에 대한 전문가로서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저자의 에티카 해설서라고 하니 더욱 신뢰가 간다. 지난 번 신간평가단 도서이기도 했던, <눈물 닦고 스피노자>와는 다른 에티카에 대한 충실한 설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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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어떤 CEO가 수십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거나 퇴임 공직자가 법무법인에서 단 몇 달 고문 역할을 한 대가로 수억을 받았다는 기사는 이제 너무 흔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흔하디흔한 얘기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안드로메다 너머에는 이러저러한 종족이 살고 있단다 같은 수준의 이야기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느 책에선가 박정희는 수입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고위 공직자의 집을 불시방문하기도 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세대가 지나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지금, 석 달간 고문 역할을 한 대가로 15천여만 원의 월급을 받은 일은 관례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넘어간다.

 

다시 한 번,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1 99’ 혹은 ‘0.1 99.9’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숫자들은 불평등의 간극을 보여주며, 한줌도 안 되는 소수의 인간들이 지구상의 부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언급된다. 그러나 저 숫자들이 말해주는 또 하나의 진실은 ‘99’ 혹은 ‘99.9’에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고만고만하고 엇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 ‘99’ 혹은 ‘99.9’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99’ 혹은 ‘99.9’에 속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1’ 혹은 ‘0.1’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는 불평등을 용인한다기보다는 불평등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라는 물음은 객관적 수치로 측정된 사회를 보면 얼핏 당연한 문제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상인들의 현실 속에서 실감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하다.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21~22) 이는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며,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뻔히 보이는 정당의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현실을 설명해 준다. 다시 강조하자면, 오늘날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생존경쟁의 몸부림과 일상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소비라는 유혹이다. 바우만은 이를 함정에 빠져 버린 세계라고 부른다.함정에 빠진 사람들에게, 세계는 의심과 용의자들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비춰진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부 혹은 거의 전부는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인 반면, 무죄 선고는 추후 통지가 있기 전까지는 언제든 상소나 즉각 파기의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는 임시변통일 뿐이며 요구 즉시 탈퇴 가능을 명시해놓은 조항을 동반한다. 헌신은 무모한 것이 된다. () 우리는 안전을 위해 인간의 선의와 친절보다는 입구에 있는 CCTV, 무장경호원에 의존한다.”(105)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세계, 친절한 협력, 상호 관계, 공유, 상호 신뢰, 인정, 존중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생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갈망을 경쟁과 경합으로 대체한”(109) 세계, 즉 파국, 바로 이것이 우리가 처한 문제이다.

 

이제 궁금한 것은 이러한 파국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우만은 이러한 세계에 대해 어떠한 대안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결론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대안 아닌 대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여러 세계 가운데 가장 맹목적인 것으로 규정할 세계에 살면서도 그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의 존재다.”(113)라는 말을 들으면,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보다는 어떤 무기력이 느껴지고, 그런 이들의 사례로 진실을 외쳤으나 외면당하고 말았던 여러 예언자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는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일까, 위기가 도래했을 때, 경고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87)라는 바우만의 경고도, 그저 씁쓸한 자조적 독백으로 들린다. 짧지만 우울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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