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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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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는 항상 국내 유일혹은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고 다니지만, 나는 그의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인터뷰이의 섭외 능력이나 인터뷰이들이 간혹 칭찬하곤 하는 치밀한 자료조사, 그리고 꾸준히 책을 출간하는 직업적 성실함은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그 결과물들은 그다지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그렇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다.

 

먼저 내용 얘기를 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interview’‘in-taboo’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짤막한 인터뷰라면 관심 사안이나 쟁점에 대한 의견 피력으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인터뷰로 온전히 한 권을 채우고 있는 책이라면, 인터뷰이의 의견을 듣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이가 인터뷰이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의 인터뷰집을 새로 사서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전 발언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집이라고 한다면 이미 공개된 내용 이외의 내밀한 속내를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 사생활을 파헤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도 인간인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모순들, 즉 그의 말과 말 사이, 말과 삶 사이, 삶과 삶 사이에 놓인 간극을 끄집어내고 들춰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인물에 대한 심층적 탐구라는 인터뷰집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없다면 굳이 인터뷰집을 새로 사서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가 직접 쓴 책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테니 말이다. 인터뷰집이라고 한다면 독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궁금증들, 다소 불순하고 공격적일 수 있는 질문들까지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대문을 열지 못하는 한국 경찰이란 부분에서 표창원은 경찰들이 책임 있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한다. 즉 폭력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도 신고받고 갔을 때 문을 부수질 못합니다. ‘열어주세요하고 기다려야죠. 부수고 들어가면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게 돼요. 손실보상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으니까 경찰관이 형사민사상의 소송을 당해요. 그러니까 안 들어가는 거예요.”(113)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조금 뒤에선 이러한 제도적 면책의 필요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의 경우, 결과가 나빴지만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지휘관들에 대해서 면책을 해줘야 된다, 이건 또 아니거든요.”(159)라고 말하면서 지휘관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답은 단순히 지위가 가지는 책임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넓게 보면 공적 업무에 있어서 제도적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공무 집행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당한 법 집행과 시민의 인권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표창원이라는 인물이 가진 법과 사회 그리고 정치에 대한 철학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승호의 인터뷰집에선 이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승호의 인터뷰를 맞장구 인터뷰라고 부르는데, 그의 책에서 그의 역할은 그저 대화의 방향을 잡아주고 인터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 머물기 때문이다. 인터뷰이가 신나서 떠들 수 있게 추임새만 넣어주는 것이다. 인터뷰이가 평소에 책이나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역할도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표창원과 같이 책도 여러 권 쓰고, 신문 칼럼이나 트위터를 통해 활발하게 발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같은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읽기 전에 예상했던 대로 이 책에 담긴 내용 역시 표창원이 평소 칼럼 등을 통해 했던 말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정의의 부재에 대한 일침들, 즉 사회적 불신을 야기하는 경찰, 검찰, 법원 등의 행태, 사회적 반성 능력의 부재, 뒤떨어지고 체계적이지 못한 범죄 대응 시스템의 문제,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견 등이 그것이다. 물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지나치지 않을 이야기지만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왜 이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다. 인터뷰집도 한 권의 책이다.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은 계획된 목차에 맞게 내용들이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제를 구분하고 이에 맞게 논의를 이끌어가는 것도 인터뷰어의 능력이긴 하겠지만 글이 아닌 대화라는 형식의 특성상 이러 저리 튀고 곁가지로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터뷰는 사후작업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과감히 잘라내고 한정된 주제에 맞게 대화들을 재정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쩌면 정리 작업이 인터뷰보다 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정리 후 눈에 띄는 부족한 내용은 추가 인터뷰를 통해 채워 넣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수고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다소 실망스럽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곳곳에서 동일한 주제, 사례, 주장들이 반복된다. 날 것의 생생함을 전하고 싶다면 그냥 녹취된 내용을 오디오북으로 내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절한 편집을 통해 대화를 정리 정돈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절반 분량으로도 훌륭한 인터뷰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불만을 늘어놓긴 했지만, 이 책은 표창원이란 사람의 이름을 얼핏 들어본 이들에게는 훌륭한 표창원 입문서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표창원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선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일각에서 자꾸 오판을 하고, 시민들을 자극하고, 둘로 나누고, 국론 분열을 하고, 자꾸 북한 문제를 들먹이면서 안보 내세우고, 색깔론 들이밀고. 이렇게 나가면 그건 비극입니다.”(410)라는 지적은 지금 우리 사회가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암담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실패로부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실패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개선책을 찾고, 더 나아가는가가 중요하거든요. 또 하나는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거죠. 위기관리 시스템.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가 없어요.”(19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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