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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이승우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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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나 청력이란 말은 있는데, ‘후력, 미력, 촉력은 왜 없을까. 오감을 떠올린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피부감각. ‘이 의미하는 미묘한 차이에 주목한다. 시력 검사나 청력 검사는 건강검진에서도 하지만, 후력이나 미력, 촉력 검사는 없다. ‘! 이 냄새가 얼마나 구린가요?’ 상상해보니 좀 웃기다. 측정하기 애매할 수 있겠다.

혹자는 인체 구조를 빗대어 보는 것듣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코와 입은 한 개인데, 왜 눈과 귀는 두 개나 있는지 아느냐며. 객관적인 말들을 차치하고라도 주관적으로도 눈과 귀는 중요하다. 좋아하는 책과 음악과 미술을 가까이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감각이니.

 

<사랑의 생애>를 읽고 저자의 작품에 호기심이 생겨 선택한 책이다. ‘보는 것에 대한 에세이로 읽었다. ‘신앙과 문학과 삶에 관한 사색이라는 부재가 붙어있지만,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서술어는 보다였다,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디를 보아야 할지,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상대를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영혼의 창으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1눈 맞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과 만난다.(p98)’며 영혼과 마주치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는 부딪쳤을 뿐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 모르는 사람들이다.(p37)’ 인용된 김광규의 시에서 진정한 존재의 마주침을 생각한다. <아는 여자>라는 영화 제목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본다고 해서 상대를 진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다고 해도 알지 못하는 관계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시간은 물과 같다. 흐르는 물과 같아서 반복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막 낼 수도 없다.(p58)’는 문장에서 소설 한 편을 떠올린다. 김중혁의 단편 소설 <요요>에서 시간에 대한 내용을 읽고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이런 시각으로 먼저 시간과 시계를 바라보았구나.

 

2신의 일식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포함되어있다. 1,2,3부의 전체적인 구성이 성경 구절에서 시작된 일화와 서술이라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이지만, 종교가 없는 내가 읽어도 거북하지 않다. 성경과 비슷한 무게감으로 곳곳에 인용된 시나 문학 작품의 영향 때문일까. 성경과 시의 구절이 공명하면서 일상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마르틴 부버의 <신의 일식>이라는 관점에 놀란다. 달에 의해 태양이 가려지는 일식처럼 신의 존재도 여러 장애물에 의해서 가려져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흐린 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볼 때마다 그 위에 여전히 빛나고 있을 태양을 상상하곤 했는데, 이런 현상을 종교와 결부시킨 사람도 있다니.

정현종의 시을 인용하면서는 창이 부재에 가깝게 투명할 때, 우리는 창을 잃는 대신 그 창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다. 창이 투명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창을 얻고 그 대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p140~141)’라 쉽게 풀이해준다. 내 영혼에 대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는 마음을 생각한다.

하늘은,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에만 하늘이다.(p159)’라는 문장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세상이 갑자기 넓어진다.

 

3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인용된 이 문장은 사막으로 비유되는 삶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황량하고 건조하고 막막한 사막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샘이라니. 힘을 내어 삶을 걸어갈 수 있게 다독여주는 말이다.

남극 대륙 빙하의 4km 아래에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가 있다고 한다. 보스토크 호수. 영하 60의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수백 만 년 단절된 230km 길이의 호수. 학자들은 지열에 의해 빙하의 하단부가 녹아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호수가 만들어지는데, 우리의 삶에도 샘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이 많다. ‘전시가 삶이 되었다. 가진 것을 전시하고, 전시하기 위해 가지려 한다.(p245)’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있던 몇 년 전이 생각난다. 음식을 먹기 전, 접시를 재배열하고 가장 먹음직스럽게 사진을 찍은 후에야 젓가락을 들 수 있던 때도 있었지. 그 때를 회상하며 잠시 웃는다. 맛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는데. 전시용 사진에 맛이 담기는 것은 아니었으니.

 

드라마용으로 구매했던 안경을 일상에서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노안이 오고 있는 건가 싶어 살짝 우울해하는 중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임을 알고 있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게 될 원인이 눈이 피로해서일까봐. 가능하다면 오감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라는 감각이기에.

오래도록 시력이 유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향일 것이다. ‘시선의 방향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p264)’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 문장이다. 내 삶의 방향은 내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일 것이고,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은 옮겨질 것이니.

어디를 바라볼까. 어디를 향해 갈까. 샘을 찾고, 샘을 바라보며, 샘을 향하고 싶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자그마한 샘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선 나의 샘을 찾고, 그 샘이 얼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저마다 품고 있을 샘을 찾고 싶다. 혹시나 얼어붙어 있다면 나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녹여주고 싶다. 그렇게 만들어질 샘이 곧 내 삶의 샘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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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이민경 추천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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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소원이었다. 한 번이라도 나만의 방을 가져보고 싶던 건.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퇴근 후 동네 커피숍이다. 둥그런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과 책 한 권, 왼 편으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있다. 음악이 향긋한 공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이다. 몇 시간동안 나는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된다. 집보다 마음이 더욱 편해지는 곳. 집 안 곳곳 널려있는 가사에 대한 의무감에서 잠시 벗어난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다. 주인장이 여기를 니 방으로 허한 적 없다 해도 상관없다. 지불한 커피 값 2,500원의 효력이 다할 때까지 이곳은 나의 영역이 되리니. 어떤 종류의 밥값에 버금가는 비용이라 처음에는 주춤하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한 나, 스스로에게 이 정도의 허용은 해도 될 듯하여.

울프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p18) 커피 값조차 버거웠더라면 이런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이런 공간이 없었더라면 독후감이나 시를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흰 바탕에 배열한 초록색 성냥개비를 연상시키는 표지,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이 테이블 위에서 당당한 좌석표인 듯 말을 건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다룬 에세이다. 케임브리지 강연문을 토대로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한 저자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말한다. 아직도 이물감을 느낄 정도로 낯선 영역으로 다가오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이 책은 이념을 떠나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깊게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분량이 가뿐해서 만만하게 보았다가 문체가 낯설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몇 번이나 도돌이표를 찍어야 했다. 적응이 되고 난 후반부에는 그런대로 잘 흘러간다. 내용이나 글의 전개 방식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비평 글 느낌도 난다. 소설가이자 비평가로도 활동한 사람이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p71)’여성을 향한 차별의 역사가 이토록 뿌리 깊게 지속되어 왔다니! 작은 관심조차 없었다.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어쩌면 수없이 반짝이며 소설가 혹은 시인이 되었을 수많은 여성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은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습니다.’(p65)라는 문장에 많이 놀랐다. 생각하는 자유가 생..... ‘해방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생각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는 반증 아닌가.

미용실을 다녀온 다음 날, 거울 속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머리에 대한 푸념을 짧은 글로나마 풀어도 그렇게 위안이 되었는데, 일상의 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상황이라니! 그 시절을 살았다면 매일 아침,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을 것을.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겸허해져야한다.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않고 누려왔던 자유가 시대에 따라서는 꿈꿀 수조차 없던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저자는 생각의 폭이 넓은 사람이다.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p152) 여성만을 옹호하거나 남성을 폄하하지 않는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하고, 홍시는 홍시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성을 뛰어넘어 인간을 향하는 시선을 가진 이다.

 

목마를 타고 떠난 소녀와 잠시 콜라보 되신 분. 그녀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인터넷으로 저자의 생애를 훑어본다. 참 치열했겠다, 글과 삶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이란 삶에 대한 어떤 거울 같은 유사성을 가진 창조물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p108~109)라 말한 저자는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작가의 작품을 통해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통찰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한계점의 원인을 그들이 처한 현실적인 삶에서 찾는다.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매순간 섬세하게 반응하고 싶다. 내 글 어딘가 에도 내 삶이 묻게 될 테니.

 

픽션은 사실에 충실해야 하고, 사실이 진실에 가까울수록 픽션은 더욱 나아진다.(p34)’너무나 사실적이라서 픽션인지 다큐인지 헷갈리는 소설들이 생각난다. <잠실동 사람들>이나, <소년이 온다>, <도가니>같은. 장르가 무엇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발화점은 한 가지로 점철된다. 진실이 담겨있다면 글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

나만의 방에서 어떤 글을 써야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 책이다. 어떤 글을 쓰든 진실할 것이고, 삶 속에서 진지하고 당당할 것이다. 시선은 보다 낮은 곳을 향할 것이며 문득 걷다 살짝 스치는 향이라도 민감하게 맡아내고 글에 담아낼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p28)’,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p155)’라는 말에서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방금 머금은 마지막 커피향이 향긋하다. 오늘따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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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4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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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녹는점이었다. 글을 경계로 추웠던 마음은 따뜻함을 향해 허물어졌다. 농담이 아니었다. 외롭다, , 격하게 외롭다. 소름 돋는 이 고독을 냉큼 예술로 승화시켜야 해. 우스갯소리로 포장하여 친한 이에게 건네곤 했던 이 말은 사실 진심이었다. 내 말은 아재개그처럼 썰렁했지만 가끔은 웃겼고, 그 말 직전에는 더 자주 외롭고 추웠던 마음이 늘 앞서 있었다.

10여년 남짓 되었을까. 외로울 때면 책을 읽고 느낌을 글로 적었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을 단지 글로 표현했을 뿐인데, 거울인 듯, 자화상인 듯 나의 글은 잔잔하게 내 자신을 보여주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글을 쓰는 나는 글 안에 있는 나를 보는 관찰자가 되어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토닥이고 있었다. ‘불완전하고 상처 입은 자신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삶의 예술이다. 흠과 결함을 더 창조적인 것으로 변신시키기 때문에 예술인 것이다.(p241)’아직 불완전하고 결점 많은 문장이 결정적인 흠이지만, 그래도 꿋꿋이 예술이라 세뇌하며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긴다. 그때마다 거짓말처럼 외로움이 위로가 되는 마법을 경험하며.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 붕대 감긴 곳을 보라.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네게 들어온다.(p183)’외면하거나 감추지 않기로 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당신의 가슴에 담긴 것들이다.(p266)’라는 말처럼, 가슴 뛰는 순간들을 많이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공전 소리는 너무 커서 오히려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깊은 슬픔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듯이, 이 책이 그랬다. 이러다가는 책 한 권 통째로 필사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옮겨 적기가 어려웠다. 근 한 달 동안 사무실 책상 위에, 안방 머리맡에, 커피 옆 테이블에 이 책이 놓였던 이유다. 난해한 문장은 단 한 줄도 없었건만 소설책 읽듯 쭉쭉 읽어 내릴 수 없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잡는 손가락은 습자지를 넘기듯 조심스러웠다. 마음 역시 느린 화면이 재생되듯 천천히 움직였다. 명상록인 듯 잠언집인 듯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내용들로 가득한 51편의 산문집이다. 나는 걷기 명상을 하는 사람이 되어 느릿느릿 문장의 뒤를 따라 책 속을 산책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문장들이 발끝에 닿는 풀잎인양 마음 곳곳을 툭툭 건드렸다.

 

마음속으로 다양한 부호들이 쏟아졌다.

물음표가 들어온 어느 날은 하루의 매듭을 묶기 전에 책 속의 문장을 따라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p112~113)’, ‘오늘 놀라운 일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감동받거나 인상 깊은 일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은 무엇이었는가?(p191)’

쉼표가 들어온 또 다른 날은 과감히 직장 일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일(=웹 소설 판타스틱 남장신부몰아보기)을 했다.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한 한다.(p15)’심적으로 힘들다는 친한 지인에게 카카오 톡으로 이 문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는 위로가 되었다며 격하게 공감을 했다.

느낌표가 들어온 날도 있었다. 많은 위로를 받고 잠이 들었다.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p45)’간혹 주춤거릴 때가 있었다. 시를 쓰거나 글을 쓰면서 퇴근 후의 시간을 보낼 때, 전공과는 전혀 반대편에 있는 이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 걸까 하는 생각에. 그 때에도, 으슬으슬 몸이 떨려 털스웨터에 야상까지 입고 굳이 커피숍에 온 4월 하순의 지금도, 나의 글에는 나의 온 마음이 담겨있으니. 이 길은 분명 좋은 길일 것이다. 박하사탕을 입에 넣은 듯 마음이 화해졌다.

화살표가 들어온 날에는 든든한 동지를 얻은 듯했다.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 누군가는 그 길을 걸었으며, 지금도 누군가는 나처럼 길을 걷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p78)’문장에서의이 물리적인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디를 향하든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면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책을 읽는 모든 날이 좋았다. 잠시 무로 돌아가셨던 그분이 떠오를 정도로 내내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

 

마음의 연필을 들고, 나와 나의 삶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케치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내가 행복해지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며 비관적인 시선을 가졌던, 어느 책 속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던 때가 있었다. 우물을 향해 던져진 작은 돌멩이가 개구리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대상이 되듯, 마음을 할퀴는 상처는 철저하게 상대적이다. 누구도 절대적인 크기로 상처의 깊이를 속단할 수는 없다.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그러안은 나는 어리석게도 세상을 탓한다.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피하거나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쏘는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p139)’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주워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온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독일의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맺는 두 종류의 관계를 -의 관계와 -그것의 관계로 분류했다고 한다.(p256) 그의 시선이 참신하다. 주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본다. 어떤 이는 이고, 또 다른 이는 그것에 가깝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있는 그것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내 글도.

 

이번 달 독서모임의 토론도서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지쳐있던 한 달 전, 소설을 한 호흡으로 길게 읽어 내려가기 부담스러웠을 때, 이 책을 가볍게 집어 들었다. 근 한 달간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은 나는 이틀 만에 토론도서 읽기와 독후감을 클리어 한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 준다.(p83)’우회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머문 셈이다. 선물과도 같은 책이고, 따뜻한 책이고, 스스로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책이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p204)’가장 위로가 된 문장이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처럼, 이렇게 잠시 쉬어도 가면서 가슴 뛰는 순간들로 내 삶을 채워가고 싶다. 마음 어딘가 달려있을 나만의 날개를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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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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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키스>를 보던 순간, 정적이 흐르듯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하다. 어떤 사진이나 영상보다 에로틱하게 다가왔던 강렬함은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금빛이 뿜어내던 색채감이었는지, 서로를 감싸 안은 두 연인의 포즈였는지, 제목이 연상시키는 설렘이었는지, 이 모든 것이 뒤엉킨 복합적인 분위기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무엇이 나를 끌어당긴 건지, 그것이 부분이었는지 전체였는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분명한 건 그 그림에 매혹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강렬한 매력이 육박해올 때 평소의 취향은 발언권을 내세우지 못한다.(p114~115)’ 연보라, 하늘? 초록도 좋고. 간혹 좋아하는 색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노란색은 어떤 식으로든 언급된 적이 없다. <키스> 후로 노란색이 추가된다. 어쩌면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노란색을 좋아하는 성향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그림을 계기로 봉인 해제된 건지도.

그때부터였다. 카드형 USB나 휴대용 손거울이나 머그컵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소지품을 선택하게 된 기준이 뛰어난 성능에서 변경된 것은. 명화 하나면 족했다. 시골 느낌 나는 도시 근교에 직접 지었다는 멋들어진 집으로 집들이를 갔어도, 그저 부러웠던 건 전면이 통유리인 거실 너머로 펼쳐지던 초록의 흔들거림도, 큰 숨 한 번으로도 깨끗함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던 공기도 아니었다. 주방 한 벽에 자리 잡은 거대한 황금빛 타일 하나면 충분했다.

책장을 펼쳐보기도 전에 이미 절반 이상은 맘에 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책 제목이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는 말라비틀어진 동태 덩어리처럼 보이던 표지그림이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그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책에 대한 호감지수는 급속도로 치솟는다. ‘벌써 재밌다, 보검아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p9)’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랑의 생애에 대한 정밀묘사다. 책에서 언급되는 현미경 아래 사랑이라는 프레파라트를 올려놓고 구석구석 관찰이라도 하듯, 그 속성을 연구한 학자가 쓴 논문처럼 사랑을 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인물의 의식이나 그 이면에 잠재된 심리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는 점에서 심리학의 냄새가 짙다.

형배, 선희, 영석, 준호, 민영, 형배의 부모님이 하는 사랑은 어느 것도 같지 않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색상도 다르고 채도도 다르기에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 이들의 사랑 중 몇 가지 요소를 엮어 순서쌍으로 결합시킨 후, 자신만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유키를 입력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기억 속의 사랑이 된다.

주로 등장하는 세 인물 이외에 주변인들의 사랑에도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스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새 한 마리에 해당하는 살점의 무게가 한 사람 전체와 동일하다며 존재의 중요성을 어필한 우화처럼, 그 어떤 사랑도 가볍지 않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감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마다 그 대상마다 다른 미묘한 차이는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없음을 말해준다. ‘모든 사랑이 다 다르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규정되지 않으니까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걸 따로 정할 수도 없다.(p145~146)’라는 말처럼.

내 사랑의 패턴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에게 끌리고, 이별로 이어지는 과정도 비슷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끌어당기는 공통된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서는 비슷했다는 느낌이 들던 걸 보면.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거야 하면서 어느 순간 또 다른 상대에게서 매혹의 지점을 발견해내던 자신이 이해되지 않던 적도 있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관념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사랑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관념의 속성 때문이다.(p289~290)’이 문장이 그에 대한 답이 되는 걸까.

관계를 이어가면서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한 지적이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굳이 현미경으로 볼 필요가 없고, 또 현미경으로 보지도 말아야 한다.(p231)’,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p221)’, ‘눈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유도된 것을 본다.(p253)’,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낸다.(p228)’ 사람의 말이나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심리에 대한 서술이 당황스러울 만큼 적나라하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상대에게 했던 행동과 당시 느꼈던 선명한 감정을, 말하자면 부드러운 말 뒤에 숨겨두었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묘하게 설득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점이 더욱 당황스럽다.

책을 읽다가 새로 옮긴 직장에서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직장 동료에게 마음에 꽂혔던 문장을 카카오 톡으로 보냈다.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p54)’ 제 이야기 같다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읽다보면 사랑이 사람으로, 사람이 삶으로도 읽힌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사랑이란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므로 일반적인 관계에 적용해도 도움이 많이 될 만한 내용이다.

표지를 다시 본다. 하얀 바탕에 쓰인 제목 ....’. 동그라미 4개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의 자만 동그라미가 길쭉하다. 사랑을 뜻하는 와 중의적으로 겹쳐진다. .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추리소설에 버금갈만한 심리소설을 읽다보니 감각이 예민해졌다. ‘다르고 다름을 알았다고나 할까. 무심코 나오는 말에 조사 하나에도 많은 심리가 담겨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이나, 굳이 귀로 들리는 것이나, 하필 이 순간에 코끝으로 흘러들어오는 향기도, 새삼 부드럽게 느껴지는 감촉도, 이렇게 맛있었나 싶은 음식 하나도 그냥 나를 지나치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이 새삼 소중해진다.

 

사랑이 목표였던 적이 있다. 멋진 사람을 보면 설레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던 것은 오로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사정권 안에 들어있는 따뜻한 이성이었다. 설렘으로 가슴 뛰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더라. 기억이 희미해져갈 무렵, 내게 다시는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울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간지 남은 많았다. 드라마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들의 띠는 심폐소생술처럼 나의 심장을 부활시켰다. 만지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런대로 삶은 다시 즐거워졌고 상상의 힘은 가끔 꿈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살아가다보니,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이성 말고도 많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되었음을 확인하던 순간, 이상형을 앞에 둔 듯 콩닥콩닥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의 대상이 굳이 사람으로 한계 지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p285)’라 말한 저자의 메시지는 사랑 앞에서 주춤거리고 망설이며 관찰자 입장에서 상상하며 판단해버리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하다. 이생에서의 사랑이 일단락된 형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준호의 또 다른 사랑이 피어오를 것이 암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속박에 대한 준호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 나는 아무래도 결혼에 적합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설정한 형배의 사랑에서 희망을 찾는다. 카카오 톡에 저장된 이름 사랑’, 가끔은 사랑이라 쓴 두 글자가 웬수로 읽히는 남자. 거실에서 발가락을 만지면서 그 손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저 인간에게, 또 누가 아는가. 형배가 선희를 다시 만난 그 순간에 느끼던 사랑처럼, 다시 두근거리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말의 영향은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을까.(p130~131)’라 말한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니까. 하여 내 폰의 주소록에 저장된 닉네임은 앞으로도 줄기차게 내 사랑 ㅇㄱ일 것이다. 사랑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니까. 나의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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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왕 아모세 -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285
유현산 지음, 조승연 그림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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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마지막으로 무언가 상상을 해본 것은. ‘만약에 내가 무엇이라면?’이라든지,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든지. 초등학교 때에는 종종 상상하기를 좋아했건만. 동화 소공녀는 어린 나의 가슴을 늘 뛰게 했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느껴지던 그 짜릿함이란!

도둑왕 아모세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언젠가부터 닫혀버린 상상력의 방문을 슬그머니 두드렸다.

 

책이나 영화를 접할 때 거부감을 느끼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역사, 추리, 피 질질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것들의 종합선물세트 같던 책. 솔직히 은빛 사과 스티커 하나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발동하였기에.

 

역사를 안 좋아했던 탓에 관련 지식도 얄팍하다. 외울 것도 많은데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연도별로 나열하다보면 머릿속에선 쓰나미가 지나간다. 낯선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생소한 용어와 생활 방식에 대한 묘사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던 앞부분은 1차 갈등을 일으킨다. 계속 읽어, 말어?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책장을 펼쳐야하는 대하소설보다는 낫겠다싶었다.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그나마 들어는 보았던 파피루스, 스핑크스등의 용어들이 등장한 것이 다행이랄까. 중국어가 간판 속 무늬처럼 보이던 중국 난징에서 친숙한 햄버거 로고를 발견했던 순간,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과 겹쳐졌다.

 

읽어 보았던 몇 안 되는 추리 소설들은 하나같이 음산했다. 이야기가 추리 쪽으로 흘러간다 싶을 때 2차 갈등이 일었다. 주춤거리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으흠? 은근히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거다. 도무지 결말이 상상되지 않았기에 조용히 숨을 죽이며 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추리 소설이 주는 반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피 질질까지는 아니었지만, 투탕카멘의 무덤과 미라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3차 갈등이 생겼다. 자고로미라라 하면, 군데군데 풀린 누리끼리한 붕대에 강시처럼 두 팔 내밀고 눈까지 덮인 헝겊 사이로 시뻘건 레이저 눈빛 쏘아대며 요리조리 사람들을 잘도 쫓아다니는 공포어린 존재 아닌가. 무덤이 연상케 하는 퀴퀴하고도 음산한 기운에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무덤 안에는 아직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까도 까도 계속 까야하는 양파왕, 투탕카멘. 여러 겹으로 된 관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장면에서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듯 은근히 긴장감이 생겼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서사와 수학의 결합이었다. 눈알 그림 하나에 담긴 수학적인 의미는 매우 치밀하여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오롯이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을 끌어가는 힘이 상당하다.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사실적인 문체로 이어져 깔끔한 느낌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 느낌을 주는 그림도 독특하고 마음에 든다.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는 종종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메시지가 보석처럼 발견되기 때문이다. 용기 있게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헤쳐 나가며 도전하는 주인공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

이색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집트라는 공간적 배경,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이라는 생경한 시간적 배경에 덧입혀진 신비로운 이야기. 갑자기 상상하고 싶어졌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가는 꿈을 꿀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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