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광 아토다 다카시 총서 2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서재를 돌아다니다가, 나와 취향이 비슷한 듯한 사람의 서재를 발견하고, 그 사람이 이 책을 극찬하였기에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는데, 이런, 실수했다. 그 서재 주인은 남자였지 참.

  1979년의 공포는 너무 낡았고(일상의 공포,라고 해봐야 이제는 더 이상 공포스럽지 않다. 아니, 하지만 여전히 랭보의 시는 옭죄여오는 맛이 있는데-), 이 작가의 성적 코드가 가미된 익살과 풍자는 내 취향이 아니며(오히려 나는 마르셀 에메나 에드워드 고리쪽이다.), 번역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렇게 쓰고 보니, 마음에 드는 역보다 안 드는 게 훨씬 많구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걸까.)

  표지 그림은, 띠지에 있는 나폴레옹 표정과, 띠지를 벗겼을 때의 표정이 다르다는 것은 신선하였으나, 표지로서는, 글쎄-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건, 표제작인 '나폴레옹광'과 책의 무게, 정도였던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에드가 엘런 포의 환상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기괴함,이라고 써있는 표지에 혹,하여 구입.

  결론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저 광고는 도를 지나쳤다,랄까.

  표지 그림은 정말 일러스트레이터 데려다 좀 때려줘도 될 것 같고(아무리 작가 데뷔작이 주니어 소설이라지만 이 말도 안 되는 그림체는 무엇이냔 말이다.) 에디터는- 그냥 일 그만두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단편집인데, 전체적인 밸런스는 나쁘지 않은 편. 편편이 풍기는 분위기나 사용하고 있는 환상의 요소들도 적절한 편이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마지막 편인 물소 떼. 마치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단편집 하나를 읽고 난 후 들기 시작한 생각인데, 시리즈 격인 단편들을 책으로 묶을 때 작가가 얼만큼 캐릭터를 고려하였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중복되는 캐릭터, 그러니까 탐정 역할을 하는 캐릭터와 조수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 소설에서는 백작,과 나,일테지)의 설명이 단편 첫머리마다 설명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리는 게 아닐까 싶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경우 이 캐릭터들의 특성을 딱히 지금 직업이 뭐고 어떻게 생겼고 성격이 어떻고,를 따로 공간을 할애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독자가 받아들이게끔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샤바케에서도 그렇고, 백기도연대 시리즈도 그렇고, 이 아시야가의 전설에서도 여덟 편이나 되는 단편을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캐릭터 설명을 읽어야 하는 건, 사실 좀 고역스럽기까지 하다.

  뭐, 나쁘지 않지만 추천도서,에 들어가는 것은 고민을 좀 해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버스를 타지 마시오 보름달문고 28
고재은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사람 많은 전동차 안에서 찔끔 울어버린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선전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부모에게 혹은 환경에게 억압당하던 아이가 자아를 찾고 해방감을 맞본다는 이 단순한 구조를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먼저, 감탄했던 일러스트 작업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 글과 연결되어 있고, 글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책 날개가 밖으로 접혀 있는 앞 장. 날개를 접었을 때 있던 아이가, 날개를 폈더니 사라졌다. 이 아이, 준수는 타지 말라는 버스를 타버린 것이다. 이 버스는 책 안으로 들어가 화살표를 따라 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책 안의 준수의 얼굴은 모두 다 흐릿하다. 준수를 노려보는 '마라'의 눈만이 또렷할 뿐이다. 그랬던 준수가,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그리게 된다. 그리고 화살표를 따라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면, 앞에서 혼자 벤치에 앉아있던 준수의 옆에는 동생 준기가 앉아있고 그 뒤로는 엄마가 심었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잎을 드리우고 있다. 자 이 날개를 접었을 때 이 나무는 그냥 나무지만, 날개를 폈을 때 안에 가려져 있던 은행나무는 마라의 눈을 달고 있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 있다. 바로 나에게.


  이 문장과 함께 스스로 얼굴을 그리고 있는 아이 그림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책 뒷표지에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아니기 위해' 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하지 마라'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억압되어 있었는지, 그네들이 속 안에 담아두고 있던 화를 어떻게 풀었는지, 그 화를 풀지 않고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이 동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걸 원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고,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버지처럼 되어버린 준수의 모습에서 억압과 통제를 싫어했던 어린 시절을 잊고, 우리가 싫어했던 어른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함께 하게 되며 여전히 억압되어 살고 있으며 '나'를 누르고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준수가 얼음골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중반 즈음 지났을 무렵, 패턴의 반복, 대사의 반복으로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가 지루하거나 어렵진 않지만 초등 고학년 이상이더라도 조금 집중력을 요하는 이야기이지 싶다. 게다가 억압하는 아버지와 울기만 하는 어머니의 구도는 판타지 구조에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준수가 억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자신을 인정하면서 마라들이 물러나고 마라아니가 준수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마지막 스스로 얼굴을 그리고 있는 그림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읽을만 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다양한 상징과, 상상의 세계의 재료들을 끌어다 만든 알찬 이야기를 오랜만에 뿌듯한 마음으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네딕트 비밀클럽 비룡소 걸작선 51
트렌톤 리 스튜어트 지음, 김옥수 옮김, 카슨 엘리스 그림 / 비룡소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질문에 레이니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외로움으로부터, 극한의 상황에서 공포로부터, 순간적인 즐거움을 외면해야 하는 괴로움으로부터, 레이니는 '용감한 아이'가 아니라 '용감해지고 싶은 아이'였다. 날때부터 영웅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친구를 믿고 용감해지는 그런 아이였다.

   700쪽 짜리 동화라니. 그것도 모자라 추리 혹은 모험 이야기라니. 하지만, 양에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가독력 하나 만큼은 끝내주니까. 대충 읽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네 시간 반 즈음 되는 것 같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정신 차려보면 어느 새 책은 끝나 있었다.


  서로 다른 캐릭터의 네 아이들이 거대한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비밀작전을 펼친다,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적절한 캐릭터의 조합, 선악이 미묘한 구도, 완료되지 않은 결말, 현대의 '통제'와 '자유'에 대한 위험성 제시 등 수없이 말할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모모'가 시간도둑들과 외로운 싸움을 했다면, 이 '베네딕트 비밀클럽'의 네 아이는 자기 자신과, 혼자가 되는 두려움과,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커튼 선생님과 외롭지만 한편으로 외롭지 않은 싸움을 한다.

   이 싸움 과정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함께 해결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보다 함께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크고 많다는 것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등돌리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쯤은 있다는 것도. 

 
  종종 아이들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네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른이 된 다음의 세상만큼 넓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실 세계가 단순하기 때문에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의 세계는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속삭임'은 어른의 말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늘, 그런 아이들을 통제하고 이용하려는 어른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지키는 건 역시 어른이 되어야 하며, 어른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건 아이들이 된다.


  사람의 내면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으며 항상 침착하고 노력하는 레이니, 소심한 기억능력자 꼬챙이, 뛰어난 운동신경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케이티, 제멋대로에 고집쟁이이지만 이유없이 제멋대로굴지는 않는 콘스턴스. 이 아이들은 모험을 통해 모두 '용기'와 '따뜻한 마음'과 '가족'을 배웠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모험을 겪은 많은 어린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라 믿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츠가 돌아오지 않던 밤 창비청소년문학 7
마르타 헤센 지음, 김영진 옮김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음 그러니까 아마 15년 즈음 전에, '딥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후천적 자폐아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마음의 벽을 깨뜨리기까지 무진 애를 쓴 선생님의 수기,형식이었다.
  뜬금없이 '딥스' 이야기를 꺼낸 건, 이전에 초점을 맞추고 썼던 혹은 읽었던 이야기의 중심이 '아픈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돌보는 아이'로 변화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장애아' 혹은 '문제아'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장애아'나 '문제아'도 그저 다른 아이들과 같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피력했다거나 아니면, 그네들을 돌보는 '어른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내 독서의 폭이 좁았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이런 이유로,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붕괴 직전의 가족'의 모습과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대단히 슬프지도 않고, 대단히 괴롭지도 않고, 대단히 희망적이지도 않은 소설,이라고 말해야 겠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이 때때로 얼마나 숨막히는지, 때때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은 특별하고 다른듯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내가 자라온 가족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키는 듯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종종, 숨이 턱 막히는 장면을 풀어 놓는다. 사건들은 불친절하게 나열되어 있어 꽤나 공들여 읽어야 한다. 허니, 사건을 따라가지 말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좀더 와닿는 독서가 될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동생 마츠에게만 몸과 마음을 쏟는 엄마와 마츠를 이해하지 못함을 견디지 못하는 아빠. 이런 가족 안에서 아직 아이일 뿐인 '나'가 동생에게 갖는 애정과 책임감과는 별개로 느낄수밖에 없는 소외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엄마의 죽음 이후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상황 속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그 처절한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가족이라는 것은, 늘 지고 가기도, 버리고 가기도 어려운 존재이다. '나'와 '가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늘 고민되는 일이며 '나'를 우선시했을 때 드는 죄책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다짐했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럴수밖에. 가족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고, 가족애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고, 사랑이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늘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런 삐걱댐을 안고 지내야 한다. 아빠와 마츠는 서로에게 한 발 다가갈지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테고(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아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역자의 말 말미를 인용해야 겠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음을 고백하건데,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거나 마츠의 특별함이 자폐증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인과의 맥을 찾는 데 매달린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분명 '수고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저 별 몇 개로 평가해버리고 잊어버릴, 한 달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 소설 가운데 한 권, 그 이상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한 번만 다시 첫 장을 펼쳐 보십시오. 그리고 쓸쓸한 한 소년의 마음을 차분히 따라가 보십시오. 이번에는 열네 살 아이의 숨 막힘이 선뜩하게 읽힐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