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스를 타지 마시오 보름달문고 28
고재은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사람 많은 전동차 안에서 찔끔 울어버린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선전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부모에게 혹은 환경에게 억압당하던 아이가 자아를 찾고 해방감을 맞본다는 이 단순한 구조를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먼저, 감탄했던 일러스트 작업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 글과 연결되어 있고, 글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책 날개가 밖으로 접혀 있는 앞 장. 날개를 접었을 때 있던 아이가, 날개를 폈더니 사라졌다. 이 아이, 준수는 타지 말라는 버스를 타버린 것이다. 이 버스는 책 안으로 들어가 화살표를 따라 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책 안의 준수의 얼굴은 모두 다 흐릿하다. 준수를 노려보는 '마라'의 눈만이 또렷할 뿐이다. 그랬던 준수가,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그리게 된다. 그리고 화살표를 따라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면, 앞에서 혼자 벤치에 앉아있던 준수의 옆에는 동생 준기가 앉아있고 그 뒤로는 엄마가 심었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잎을 드리우고 있다. 자 이 날개를 접었을 때 이 나무는 그냥 나무지만, 날개를 폈을 때 안에 가려져 있던 은행나무는 마라의 눈을 달고 있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 있다. 바로 나에게.


  이 문장과 함께 스스로 얼굴을 그리고 있는 아이 그림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책 뒷표지에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아니기 위해' 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하지 마라'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억압되어 있었는지, 그네들이 속 안에 담아두고 있던 화를 어떻게 풀었는지, 그 화를 풀지 않고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이 동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걸 원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고,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버지처럼 되어버린 준수의 모습에서 억압과 통제를 싫어했던 어린 시절을 잊고, 우리가 싫어했던 어른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함께 하게 되며 여전히 억압되어 살고 있으며 '나'를 누르고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준수가 얼음골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중반 즈음 지났을 무렵, 패턴의 반복, 대사의 반복으로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가 지루하거나 어렵진 않지만 초등 고학년 이상이더라도 조금 집중력을 요하는 이야기이지 싶다. 게다가 억압하는 아버지와 울기만 하는 어머니의 구도는 판타지 구조에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준수가 억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자신을 인정하면서 마라들이 물러나고 마라아니가 준수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마지막 스스로 얼굴을 그리고 있는 그림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읽을만 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다양한 상징과, 상상의 세계의 재료들을 끌어다 만든 알찬 이야기를 오랜만에 뿌듯한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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