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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가 돌아오지 않던 밤 ㅣ 창비청소년문학 7
마르타 헤센 지음, 김영진 옮김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음 그러니까 아마 15년 즈음 전에, '딥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후천적 자폐아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마음의 벽을 깨뜨리기까지 무진 애를 쓴 선생님의 수기,형식이었다.
뜬금없이 '딥스' 이야기를 꺼낸 건, 이전에 초점을 맞추고 썼던 혹은 읽었던 이야기의 중심이 '아픈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돌보는 아이'로 변화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장애아' 혹은 '문제아'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장애아'나 '문제아'도 그저 다른 아이들과 같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피력했다거나 아니면, 그네들을 돌보는 '어른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내 독서의 폭이 좁았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이런 이유로,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붕괴 직전의 가족'의 모습과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대단히 슬프지도 않고, 대단히 괴롭지도 않고, 대단히 희망적이지도 않은 소설,이라고 말해야 겠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이 때때로 얼마나 숨막히는지, 때때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은 특별하고 다른듯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내가 자라온 가족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키는 듯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종종, 숨이 턱 막히는 장면을 풀어 놓는다. 사건들은 불친절하게 나열되어 있어 꽤나 공들여 읽어야 한다. 허니, 사건을 따라가지 말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좀더 와닿는 독서가 될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동생 마츠에게만 몸과 마음을 쏟는 엄마와 마츠를 이해하지 못함을 견디지 못하는 아빠. 이런 가족 안에서 아직 아이일 뿐인 '나'가 동생에게 갖는 애정과 책임감과는 별개로 느낄수밖에 없는 소외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엄마의 죽음 이후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상황 속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그 처절한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가족이라는 것은, 늘 지고 가기도, 버리고 가기도 어려운 존재이다. '나'와 '가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늘 고민되는 일이며 '나'를 우선시했을 때 드는 죄책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다짐했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럴수밖에. 가족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고, 가족애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고, 사랑이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늘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런 삐걱댐을 안고 지내야 한다. 아빠와 마츠는 서로에게 한 발 다가갈지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테고(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아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역자의 말 말미를 인용해야 겠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음을 고백하건데,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거나 마츠의 특별함이 자폐증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인과의 맥을 찾는 데 매달린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분명 '수고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저 별 몇 개로 평가해버리고 잊어버릴, 한 달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 소설 가운데 한 권, 그 이상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한 번만 다시 첫 장을 펼쳐 보십시오. 그리고 쓸쓸한 한 소년의 마음을 차분히 따라가 보십시오. 이번에는 열네 살 아이의 숨 막힘이 선뜩하게 읽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