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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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착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믿으니까, 작은 것들의 위대함을.

사이다처럼 청량하고 호숫가처럼 맑은 소설을 만났다.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소설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이 바로 그러한 소설이다. 정보국 출신의 스파이가 등장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지긴 하지만 그다지 긴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에는 이나와시 호숫가라는 접점이 있는 두 세계가 나타나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도와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살아간다는 주제를 말하는 듯한 예쁜 소설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이사카 고타로 작가가 음악 축제를 위한 썼다는 첫 번째 단편 소설은 장장 7년에 걸쳐서 매년 단편 소설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로맨틱 코미디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모험 소설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음악 소설이라고 한다. 축제에 등장했던 일본 밴드들의 노래 가사들이 고스란히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좋은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래 속 주인공들의 삶이 그려지기도 하지 않는가? 소설을 읽다 보니 인용된 노래들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첫 부분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가 알쏭달쏭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하루토라는 이름의 정보국 요원이 등장하더니, 아버지와 친구들의 폭력에 쫓기는 한 소년을 구해준다. 둘은 도망치기 위해서 엔진이 없는 글라이더에 올라탔는데, 엔진이 없지만 어찌어찌 하늘을 날게 된다. 다시 장면이 바뀌고 다른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평범한 남자 마쓰미사는 여자친구로부터 " 엔진이 없는 비행기 " 즉 추진력 하나 없는 글라이더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충격을 받은 그는 이나와시 호숫가로 차를 몰고 와서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다가 " 엔진을 단 사람 " 이 되자라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렇게 따뜻하고 귀여운 소설이 다 있을까? 싶다.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도호쿠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 매년 개최된 음악 축제 오하라 ☆ 브레이크. 첫 번째 단편은 이 음악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책자에 실렸다고 한다. 아마도 한 밴드의 노래 가사인 " 연료 탱크 지도 내비게이션 처음부터 없어 끝까지 / 옆에서 보면 그야 테평하지 / 하지만 아슬아슬해 " " 낮은 채로 언제까지나 내릴 장소 찾았지 / 찾다 보니 멀리 갔지 " " 엔진이 없어서 조용하지 / 이젠 아무 문제도 없어 / 가자 떠올라서 가자 "에서 비롯된 소설인 것으로 보인다. 7년에 걸쳐 이어지는 연작 소설에서 엔진이 없어서 한심했던 남자는 연인을 만나고 하루토와 소년은 양쪽 세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서로의 세계가 겹쳐지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데...

역시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소설이다. 자칫하면 심각하고 진지해질 뻔한 대목에서도 솜사탕 같은 가벼움이 터진다. 이 세계와 저 세계는 분명히 떨어져 있지만 신비로운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무심코 한 일이 서로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때마다 마음속에서 무지개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느낌, 우리는 삶을 해피엔딩으로 이끌 수 있다는 느낌, 그런 안심이 되는 느낌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일본 도호쿠 지방 이나와시 호숫가로 한번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오하라 ☆ 브레이크 축제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호숫가를 돌다 보면 매미와 하루살이를 동반한 스파이를 만날 수 있으려나.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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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라키의 머리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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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거야? 보았고, 들었잖아?

일본은 특히 초자연적 현상이나 심령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니면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아서 호러나 심령 장르가 많이 발달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여, 뭔가 섬뜩하면서도 소름끼치는 귀신, 심령 이야기, 언제든지 환영이다. 내 경우는 실생활에서는 이상한 경험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더라도, 초자연적 존재가 있을 것으로 보는 쪽이다. 그래서 뭘 아는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고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않는다.

이 책 [나도라키의 머리]를 쓴 사와무라 이치 작가는 예전에 [보기왕이 온다], [시시리바의 집] 등등을 썼다. 둘다 일가족을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사악하고 강력한 존재에 대한 소설인데, 당시 느꼈던 소름과 공포가 아직도 척추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숨통을 조이는 듯한 불안과 공포를 잘 아는 작가랄까? 호러 단편집 [나도라키의 머리]도 보이지 않지만 매우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 제3의 존재 ” 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히 단편 [나도라키의 머리]는 시골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다루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나의 경우, 단편 [학교는 죽음의 냄새], [술자리 잡담] 그리고 [나도라키의 머리]가 재미있었다. [학교는 죽음의 냄새]에서 주인공 미하루는 미쓰카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영적 능력이 있어서 귀신을 볼 수 있는 미하루는, 비오는 날에만 나타난다는 학교 괴담 속 하얀 소녀의 영혼을 체육관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반복적으로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목이 부러진 뒤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 그녀... 이 에피소드에 사와무라 이치 작품의 주요 인물 히가 마코토도 등장하여 미하루에게 소녀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 결국 꼬마 탐정 미하루는, 소녀와 관련된 학교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단편을 다 읽고 나면 후루이치라는 학생이 왜 “ 죽음의 냄새가 나니까.” 라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술자리 잡담]이 제일 재미있었다. 말단 여직원이 상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배짱과 기개가 있다는 사실이 통쾌했다. 숨겨진 비밀이 드러날 때, 이런 식으로 독자들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놀라운 반전이 마음에 든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이시자키와 오자키 그리고 나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말단 여직원인 " 하루미 " 에게 풀고 있다. 그녀를 술집으로 불러내어 말같지도 않는 여성 비하와 성희롱을 하면서 하루미를 괴롭힌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하루미. 소심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그녀가 아닌데...

[나도라키의 머리]는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마을에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내려오는데, 이 “ 나도라키 ” 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주인공 데라니시는 어릴 적에 부모님과 함께 친할아버지 댁에 놀러갔다가 사촌형인 유지와 “ 나도라키의 머리 ”를 보러 동굴에 갔다가 끔찍한 공포와 맞닥뜨린 이후로 밤에 자꾸만 악몽을 꾸게 된다. 이제 고3이 된 노자키와 데라니시. 평소에 심령에 관심이 많은 노자키는 악몽에 시달리는 데라니시를 위해 직접 동굴에도 가고 추적 조사를 하여 진상을 밝혀내려 하는데....

책으로도 영화로도 혹은 드라마로도, 나는 이런 초자연현상이나 심령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악령이나 악귀의 존재들은 " 카더라 " 통신에 의해서 퍼지는 경우가 많고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공포심을 일으키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를 날때부터 싫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 장르가 인기를 얻기도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이 단편집 [나도라키의 머리]와 같은 소름끼치는 장르가 있기에 무더운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 앞으로도 사와무라 이치 작가가 더더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들고 와주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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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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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외로움'을 좀 더 다정하게 대할 수 있기를....

당신의 '외로움'이 이 이야기들 속에 닻을 내릴 수 있기를...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외로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시간이나 지점 그리고 상황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일생에 한번 정도는 진한 외로움을 겪게 된다. 이 책 [Alone]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이다. 솔직히 말해서 줌파 라히리라는 유명 작가의 이름을 보고 읽고 싶었다고 생각한 책이지만 다른 작가들이 표현한 " 외로움 " 도 아주 간절하게 다가왔다. 이들 작가들은 서로 다른 배경, 상황 그리고 맥락에서 외로움을 다루고 있고, 나와 다른 문화권 출신에 다른 나이대이지만 몇몇 글들에서 나는 아주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상실감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타협하는가? 엄마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다. 도대체 내가 누구와 대화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78쪽 -

놓아보내기 에서 작가 마야 샨바그 랭은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산다. 병을 앓기 전에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아리셉트의 임상 시험을 담당했던 그녀의 엄마. 정신과 의사로 수십 년을 일한 뒤 막 임상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작가가 엄마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뛰어난 인간이었던 엄마가 이제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간 관념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를 간병하느라 사회 생활을 거의 못하게 된 작가는 스스로가 굉장히 고립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엄마를 요양시설로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시설에서 적응을 잘하게 된 엄마를 보며 작가는 스스로를 되찾겠다고 다짐한다.

" 때로는 릴리언이 누렸던 고독이 부럽기도 하다. 아니, 고독을 넘어 릴리언 올링이 지닌 야생적 기질과 목적의식의 특이성 역시 부러웠다. 그녀가 원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집을 향해, 혼자, 걸어가는 것. " - 33쪽

홀로 걷는 여자 에서 작가 에이미 션은 1920년대에 ' 모든 것과 작별하겠다 ' 라고 결심하고 뉴욕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했던 여인 릴리언 올링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릴리언 올링은 가벼운 짐에 원피스와 테니스화를 신고 그 먼 여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녀가 거대한 포부라거나 뚜렷한 목적 없이 그러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음에 감탄한다. 그리곤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매우 외로웠고 그녀로 하여금 크나큰 불행을 느끼게 만들었다. 야성적이고 독립적인 여자, 릴리언 올링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 에이미션도 혼자서 걸어가는 길을 택한다.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혼자 사는 인생을 택한 그녀는 극단의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 여성으로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이나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

-131쪽-

기묘하고도 힘겨운 기쁨에서 헬레나 피츠제럴드는 여성으로서 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험이나 서사시의 주인공들은 주로 남자들, 그들은 홀로 모험을 떠나고 외로움이라는 호된 시련을 겪으며 스스로를 단련한 후에 완성형으로 사회에 돌아오는 것으로 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문학이나 문화 속에서 그려지는 홀로 있는 여성들은 주로 두려움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사회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고, 참된 자아를 찾고, 영웅이 되어 귀환활 기회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작가의 의견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성찰하고 더 책임감 있고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려면 혼자 있는 삶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작가의 생각이다. 우리 여성들은 혼자 사는 삶이라는 낯설면서도 풍요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로움이나 고독에 대한 작가들의 경험이 매우 특별하다거나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의 질병과 죽음 그리고 배우자와의 이혼으로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이나 고독은 어찌 보면 성인들이 겪게 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가들이 아닌가?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양하고 표현법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표현하는 외로움 그리고 고독이 사람들의 가슴 한 가운데를 두드리는 느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런 시간들이 불안하고 힘겹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시간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걷고 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더 성장하고 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이제 나는 놓아 보낸다고 해서 잃는 건 아니란 걸, 놓아 보내는 행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다시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안다. 이렇게 다시 자신과 재회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실로 엄청난 기쁨이다 ." - 놓아보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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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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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추리나 스릴러 등의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일본 소설을 많이 읽었었는데 하루는 언니가 " 개미 "라는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면서 내게 읽어보라 권했다. 거대한 개미 한 마리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던 길쭉하고 두꺼웠던 책. 나는 속으로 도대체 개미를 소재로 한 소설이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막상 읽어본 소설 개미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런 지경?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전개이지만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 안 자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 개미 "에 홀딱 반한 나는 그 이후로도 타나토노트, 나무, 신, 기억 등등등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쓴 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샀었다. 소설뿐 아니라 그가 쓴 에세이나 잡학 사전도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 "개미"는 첫사랑이었지만 진짜 사랑은 타나토노트였다. 내가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거나 ( 말 그대로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았음) 우주를 유영하는 꿈을 왜 꾸는지 설명해 주는 책인 것 같았다. 몸과 영혼을 연결하는 은빛 사슬을 부착한 채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황홀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라는 책은 소심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작은 아이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내게 너무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DNA도 그의 천재성에 한몫했겠지만 결국 그가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능을 인정해 준 주위 사람들과 다양하고 폭넓은 삶의 경험 덕분이었던 걸로 보인다. 어릴 적에는 기억력이 부족해서 늘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다고 하지만, 벼룩의 관점에서 쓴 인간 신체 탐험기를 읽고 웃으며 지지해 준 선생님 덕분에 첫 단추를 잘 꿴 게 아닐까? 캠프에서 만난, 명상과 요가를 사랑하던 친구 덕분에 영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고, 대학 가서 만난 컴퓨터 전문가 친구 덕분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기자였고 과학자였고 탐험가였으며 어떻게 보면 괴짜 발명가였다. 집에 거대한 수조를 설치해서 개미 왕국을 직접 다스리는 경험을 통해서 신이 인간을 다스리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인턴 기자가 되어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무서운 개미 떼를 취재하기도 했다. 개미라는 책만 읽었을 땐 괴짜 은둔형 작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모험을 했던 그의 모습을 보니 내가 더 신이 났다. 개미라는 책이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대목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가 작가를 좋아하는 만큼 작가도 우리들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을 때 작가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소설이 왜 이렇게 항상 재미있게 다가왔는지 알 것 같다. 그는 미지의 분야를 꾸준하게 개척해왔고, 사물이나 동물을 보는 관점을 뒤집어왔던 것 같다. 우리가 보는 벼룩, 개미가 아니라 벼룩, 개미가 보는 인간의 모습은 색다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다. 내 생각엔 어릴 때 부모님이 만났던 영매의 예언처럼 그는 과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글로 과학을 풀어내는 그런 과학자가 되었다. 만약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곤충의 세계를 어떻게 알았고, 뇌가 중독에 되어가는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과학 잡지에 실리는 형식의 과학은 조금 딱딱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영원히 살아서 끊임없이 작품을 써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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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연인들 안전가옥 쇼-트 18
김달리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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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연인들이라 해서 진짜 자연 속의 밀림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밀림이란 건 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 즉 메타버스였다. 매우 정교하고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진 공간이라서 현실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곳이다. 가상 공간이란 것도 한계가 있는 지금과는 달리, 이 책 [밀림의 연인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연애를 가상 공간인 " 밀림 "에서 이룰 수가 있다. 말하자면, 회사에 따로 오피스 와이프를 두듯, 이 사람들은 가상 현실 " 밀림 "에서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둘 수 있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이지만,,,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주인공 고다미는 남편 석영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엄청난 부와 미를 소유한, 계층으로 말하자면 다이아몬드 수저 고다미. 그러나 그녀는 엄마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삶에 대한 의지를 거의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공허한 눈빛과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마치 심해 같은 마음을 가진 여자 고다미.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공지능인 키미만이 그녀를 이해한다. 어쨌든 아름답고 우아한 말씨와 몸짓과는 다르게 치명적인 어두움을 품고 사는 듯한 그녀.

흙수저였던 석영과 고다미는 엄청난 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루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그렇게 로맨틱했던 남자가 이제는 가상 공간 " 밀림 " 만 끼고 산다. 사교생활과 쇼핑 그리고 성생활까지 밀림에서 처리하는 석영.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목소리에 물기를 띈 채 누군가를 달콤하게 부르는 석영을 발견하게 되는 고다미. 그녀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 밀림 "에서의 연애가 일회성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는 그녀. 고다미는 해커의 도움을 받아서 석영의 아바타인 파르렛과 상대 여자의 아바타인 초코페가 가상 공간에서 지은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이 만든 아이 " 모닝 스타 "를 발견하게 되는 고다미. 비록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부모의 사랑과 양육이 부족해 죽어가는 아이를 보고는 자신이 유산한 아이 샛별을 떠올리게 되는 그녀... 고다미는 과연 이 불륜 커플을 어떻게 처리하게 될 것인가?

현실보다 가상 현실이 더 생생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미래 세상. 거기에서도 여전히 불륜 커플은 존재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어도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본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결혼 생활과 개인의 정신적 문제들은 여전히 미래 세상에서도 존재했다. 함께 사는 인간인 남편보다도 인공 지능인 키미가 고다미를 더 이해하고 케어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지금 외로운 사람들은 여전히 외로웠다. 처음엔 SF 소설로 시작했던 책 [밀림의 연인들]은 조금씩 사건이 더해지면서 스릴러로 변해 간다. 굉장히 미묘한 심리 스릴러라고 해야 하나? 단순한 연애 이야기인 줄 알았던 "밀림의 연인들" 은 어느 순간 욕망이 충돌하고 범죄에 범죄가 더해지는 아찔한 스릴러로 변해 갔다. 병적으로 거짓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은 죽이는 등장인물들... 그러나 빌런들이 이렇게나 매력적일 줄이야. 스토리부터 캐릭터 구성 그리고 막판 깜짝 반전까지 너무 재미있었던 소설 [밀림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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