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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평점 :
어렸을 때부터 추리나 스릴러 등의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일본 소설을 많이 읽었었는데 하루는 언니가 " 개미 "라는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면서 내게 읽어보라 권했다. 거대한 개미 한 마리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던 길쭉하고 두꺼웠던 책. 나는 속으로 도대체 개미를 소재로 한 소설이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막상 읽어본 소설 개미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런 지경?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전개이지만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 안 자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 개미 "에 홀딱 반한 나는 그 이후로도 타나토노트, 나무, 신, 기억 등등등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쓴 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샀었다. 소설뿐 아니라 그가 쓴 에세이나 잡학 사전도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 "개미"는 첫사랑이었지만 진짜 사랑은 타나토노트였다. 내가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거나 ( 말 그대로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았음) 우주를 유영하는 꿈을 왜 꾸는지 설명해 주는 책인 것 같았다. 몸과 영혼을 연결하는 은빛 사슬을 부착한 채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황홀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라는 책은 소심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작은 아이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내게 너무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DNA도 그의 천재성에 한몫했겠지만 결국 그가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능을 인정해 준 주위 사람들과 다양하고 폭넓은 삶의 경험 덕분이었던 걸로 보인다. 어릴 적에는 기억력이 부족해서 늘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다고 하지만, 벼룩의 관점에서 쓴 인간 신체 탐험기를 읽고 웃으며 지지해 준 선생님 덕분에 첫 단추를 잘 꿴 게 아닐까? 캠프에서 만난, 명상과 요가를 사랑하던 친구 덕분에 영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고, 대학 가서 만난 컴퓨터 전문가 친구 덕분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기자였고 과학자였고 탐험가였으며 어떻게 보면 괴짜 발명가였다. 집에 거대한 수조를 설치해서 개미 왕국을 직접 다스리는 경험을 통해서 신이 인간을 다스리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인턴 기자가 되어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무서운 개미 떼를 취재하기도 했다. 개미라는 책만 읽었을 땐 괴짜 은둔형 작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모험을 했던 그의 모습을 보니 내가 더 신이 났다. 개미라는 책이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대목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가 작가를 좋아하는 만큼 작가도 우리들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을 때 작가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소설이 왜 이렇게 항상 재미있게 다가왔는지 알 것 같다. 그는 미지의 분야를 꾸준하게 개척해왔고, 사물이나 동물을 보는 관점을 뒤집어왔던 것 같다. 우리가 보는 벼룩, 개미가 아니라 벼룩, 개미가 보는 인간의 모습은 색다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다. 내 생각엔 어릴 때 부모님이 만났던 영매의 예언처럼 그는 과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글로 과학을 풀어내는 그런 과학자가 되었다. 만약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곤충의 세계를 어떻게 알았고, 뇌가 중독에 되어가는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과학 잡지에 실리는 형식의 과학은 조금 딱딱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영원히 살아서 끊임없이 작품을 써주길 바랄 뿐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