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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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표는 당신이 치유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자기 안에 회복의 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학교 폭력, 직장에서의 왕따, 그리고 아동학대 등등 우리 사회는 약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일에 매우 민감하다. 학창 시절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던 여주인공이 어른이 된 후 가해자들을 찾아내서 잔인한 복수를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걸 보면 더욱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폭력이나 학대, 즉 괴롭힘이 만연해있다는 반증일 텐데, 왜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않을까? 저자 제니퍼 프레이저는 이 책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를 통해서 괴롭힘이 발생할 때 우리의 뇌가 겪게 되는 부정적인 변화와 회복 가능성 등에 대해서 매우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녀가 "괴롭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들 몽고메리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농구 토너먼트를 마치고 돌아온 몽고메리는 입과 혀에 염증으로 생긴 궤양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한다. 알고 보니 아이들로부터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싶었던 코치들이 공개적으로 몽고메리에게 면박을 주고 욕설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 코치들의 학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몽고메리의 뇌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이 분비가 되었고 그로 인해 입과 혀에 온통 궤양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신체적인 학대가 몸에 남듯이, 정신적으로 받은 학대도 뇌에 고스란히 상처를 남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 제니퍼 프레이저는 정신적인 학대가 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로써 영화 "위플래시"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사실 이 영화를 봤을 때 지휘자 플래처가 엄격한 지도법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100% 이끌어내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영화 위플래시는 음악 하는 기쁨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공포와 고통에 관한 영화라고 고백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지휘자 플래처에게 학대를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한 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드럼 천재가 되는 주인공도 피해자로 시달리다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는 여자 친구와 소통할 수 없는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제니퍼 프레이저가 언급하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욕이나 성희롱처럼 신체에 가하지 않는 정신적 학대로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이고 뇌에 영향을 미쳐서 학습과 성공을 방해한다고 한다.

저자가 아들과 영화의 상황을 예로 들었듯이 괴롭힘과 학대는 우리 삶에 불행을 안겨주는 요소이다. 괴롭힘과 학대가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과학적으로 접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왜 피해자들이 우울증을 겪게 되거나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몰랐다. 즉, 일반인들은 괴롭힘 때문에 겪게 되는 정신적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어떻게 정신적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 - 의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등등 - 이 그동안 수집해온 여러 증거들, 즉 괴롭힘과 학대가 어떻게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와 어떻게 하면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힘과 학대가 남긴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괴롭힘과 학대가 뇌에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데, 뒷부분에 가면 뇌의 회복 가능성, 즉 신경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서 신경학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성인과 어린이들에 대한 사례가 등장한다. 예로써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던 아들 몽고메리가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신체활동을 선택하여 꾸준하게 함으로써 회복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말하자면 자신의 몸을 단단하고 강하고 유연하고 탄력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뇌도 단단하고 강하고 유연하고 탄력 있는 기관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괴롭힘을 도덕적인 문제로 보고 주로 가해자에게 벌을 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서 괴롭힘을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다치면 검사와 치료를 받듯이, 괴롭힘과 학대로 인해서 상처 입은 뇌도 검사받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괴롭힘은 이제 의학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신경과 학자들이 만든 뇌 치료 훈련으로 인해서 얼마든지 뇌가 입은 상처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롭힘이 만연한 세상이다. 모두들 조금씩 상처를 입었지만 모르고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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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걷기의 첫걸음 - 자연으로 돌아가라
박동창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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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맨발로 숲길을 걸을 때 비로소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자연과의 본원적 일체감, 그로부터 시작되는 경이로운 치유 효과를 나는 ‘맨발 필리아’라 규정한다.

(...) 이 단어는 숲이나 바닷가에서 맨발이 되었을 때의 그 자연스럽고 아늑한 느낌,

그 생생한 실존 인식의 기분을 모두 포함한다.

몇 주 전, 산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집 근처 작은 산을 올랐다. 헥헥거리며 지친 상태라 다른 분들을 관찰하지 못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앞서서 걸어가시는 아주머니 몇 분이 맨발로 걷고 계셨다. 처음에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튀어나온 돌과 여기저기 떨어진 잔가지도 많은 산길에 맨발이라니.... 괜찮으실까? 그러나 우려도 잠시, 밝게 웃는 모습에 오히려 맨발 걷기가 기분 상승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걷기 위해서 좋은 트랙 슈즈를 사는 세상에, 맨발로 걷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이 책에 만나게 되었다. 독자들의 열띤 요청으로 인해 절판이었던 이 책을 다시 출간할 만큼 완전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폴란드에서 은행장을 하던 무렵, 경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간이 많이 상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무작정 시작한 맨발 걷기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효과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 이렇게 책을 쓰면서까지 맨발걷기를 홍보하고자 하는 저자의 뜻을 알고 싶었다.


“ 오늘날 현대인의 문명병은 대지와의 격리에서 비롯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어머니 대지로부터의 격리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이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

현대인이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병이 대지와의 격리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가 설립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질병에 걸렸다는 말에서 큰 공감이 갔다. 저자가 예로 든 한 노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정말 맨발로 자연을 접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노인은 간암 말기 환자였고 한 달 정도 여생이 남았다는 말에 그날부터 맨발로 청계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그 노인은,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기운을 잃지 않았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지가 생명의 모체라고 하는 저자의 주장.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수목이 푸르른 이유가 대지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덕분이고 맨발로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그 에너지를 빨아들일 수 있다는 말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 신발을 벗고 맨발로 숲길을 걸을 때 비로소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자연과의 본원적 일체감, 그로부터 시작되는 경이로운 치유 효과를 나는 ‘맨발 필리아’로 규정한다 ”

저자는 인간이란 날 때부터 자연에 이끌리는 본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맨발로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그 행위를 '맨발 필리아'로 규정하는 저자. 그는 '맨발 필리아'를 통해서 숲속을 걷다 보면 발바닥에 큰 지압 효과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지압, 반사요법을 "리플렉솔로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땅 위의 흙과 그 표면에 돌출되어 있는 작은 조약돌이나 나뭇가지, 솔방울 등이 맨발바닥에 리플렉솔로지 효과를 줘서 혈액순환을 활성화시키고 모든 내장과 장기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든다고 한다. 공원이나 놀이터를 가면 자갈로 올록볼록한 길을 만든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이 "리플렉솔로지" 효과를 얻기 위함이리라. 고3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나 긴장감도 맨발걷기로 풀 수 있다는 내용을 보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성인병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까 여러 가지 건강법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몸에 좋다는 약도 먹어보고 꾸준하게 걷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몸이 늙어가는 것을 느낀다.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큰 효험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새롭고 굉장히 놀랍다. 사실 발바닥은 인간 몸의 축소판이라 지압만 잘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맨발로 땅 위를 걷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맨발걷기만으로도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고 당뇨를 예방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읽고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자연과 괴리된 채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일주일에 1번 정도만이라도 어머니 대지와 직접 맨발로 접촉하는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을 주는 책 [맨발걷기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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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멧 : 계절이 지나간 자리 - 2021 볼로냐 라가치 미들그레이드 코믹 부문 대상작 스토리잉크 2
이사벨라 치엘리 지음, 노에미 마르실리 그림, 이세진 옮김, 배정애 손글씨 / 웅진주니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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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과 소녀 이야기. 동화책 [메멧]은 스치듯 만났다 헤어지는 두 아이의 이야기이다. 색연필로 빠르게 그린 듯한 그림체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상황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동시에 아주 따뜻하다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대사가 별로 없고 그림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한 2~3번 읽고 나서야 대충의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잘 몰라도 어떠하리.. 그냥 그림만 봐도 주인공들의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여름의 캠핑장. 나뭇잎은 푸르르고 아이들은 첨벙첨벙 물속에서 뛰어논다. 이곳저곳에서 텐트나 카라반을 설치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인공 루시는 긴 금발을 가진 소녀이고 아마도 언니로 보이는 사람과 캠핑을 온 것 같다. 루시는 계곡에서 첨벙거리면서 노는 다른 여자애들이 함께 놀자고 제안하지만 무리에 끼지 않고 빈 플라스틱 병을 하나 구해서 마치 강아지를 대하듯 데리고 다닌다. 메멧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채.

한편, 로망은 캠핑장에서 만난 친구가 가지고 온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놀고 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보겠다며 마녀 역할을 할 소녀를 구하러 다니는 로망. 그러다가 로망은 루시를 만나게 되고 루시가 들고 있는 빈 병을 빼앗으려다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발을 벗기게 된다. 알고 보니 루시는 굉장히 짧은 머리칼의 소녀였고 ( 마치 몸에 병이 있거나 하는 사연이 있는 듯) 당황한 로망은 가발을 그대로 들고 도망가 버리는데...


로망은 뾰족한 아이이다. 죽은 고양이 사체를 함부로 하고 루시와 장난치다가 갑자기 팔을 꽉 물어버린다. 그런데 로망이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가 있었다. 가정에서 왠지 학대받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로망. 그 모습을 보니 로망이 가엾게 보였다. 한편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루시. 듬성듬성 난 머리칼을 가리는 가발과 아이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로망을 만나서 즐거워 보이는 루시. 모든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고 잠시나마 함께 잘 어울리는 두 아이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여기는 캠핑장. 오래 머무를 순 없다. 로망과 어울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루시는 다른 캠핑장으로 떠나게 된다. 로망에게 자신이 떠남을 알리고는 강아지 인형을 남겨놓고 떠나게 되는 루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던 로망은 루시가 떠난 이후 봇물 터진 듯 울음을 터트리고 죽은 고양이 사체를 좋은 자리에 묻어주게 되는데...

어린 시절, 그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좋은 동화책인 [메멧: 계절이 지나간 자리] 큰 걱정 없이 뛰어놀았고 계산 없이 사람들을 만나던 유년기의 추억 속으로 잠시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대사가 많지 않기에 루시나 로망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것 그대로 좋았던 것 같다. 어리지만 외로울 수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에게서 상처 입을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다. 그림이나 짧은 대사만으로도 쓸쓸함, 외로움, 사랑과 우정 등등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동화책이라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잠시 어린 시절 추억으로 빠지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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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요시다 에리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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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석처럼 이끌려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가족을 이루고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물론 최근 들어 1인 가구 수가 늘었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천생연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꾼다. 그렇기에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을 할 수 없는 부류인 주인공 사쿠코와 다카하시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누구에게도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여자,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자와 임시 가족이 되다!

사쿠코는 일반 사람들과 약간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 과거에 누군가와 사귀어도 봤지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친밀감을 쌓아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쿠코를 오해한 많은 남자들은 그녀에게 이성적으로 접근을 하고 그러다가 그녀가 그들에게 이성적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쿠코는 그런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나 싶어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연히 날개 빛 양배추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고 그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 연애와 성적 감정을 별개로 보고, 둘 중 어느 면에서도 남에게 끌리지 않는 경우는 에이 로맨틱이 자 에 이 섹슈얼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에이 로맨틱 에이 섹슈얼’, 줄여서 ‘에이로에이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의와 표기법, 당사자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

"날개 빛 양배추"의 블로그에 쓰인 글들은 마치 사쿠코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세상엔 남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블로그 주인. 그러던 어느 날 관리차 들른 슈퍼 마루마루 야마나카점에서 만났던 직원 다카하시가 그 블로그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사쿠코.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다카하시를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충동적으로 그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하는 사쿠코. 물론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은 완전히 배제한 거래! 사쿠코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다카하시는 처음엔 다소 물러서지만 결국 혼자 살기는 좀 외로웠던 걸까? 이내 사쿠코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사실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이 책도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사랑을 원치 않았던, 아니 원치 않는다고 머릿속으로 만 생각하던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생기는 좌충우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와우, 이 소설은 전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매우 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랑에 빠지지 않거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소 비정상으로 보는 일반 통념과는 다르게 사쿠코와 다카하시는 너무나 정상적이고 자신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까 저절로 설득이 되었다. 저마다 생각하는 삶의 방법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것을.

" 주변에서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저희조차도요. 사고방식이나 소중한 것도 점점 변해가는 법이니까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가면 되고, 만약 두 사람의 최선이 전혀 다른 방향이라 여러모로 의논했는데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억지로 가족으로 지낼 필요도 없겠죠."

읽을 땐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사쿠코나 다카하시처럼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왜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선 많이 없는 걸까?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해준 책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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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김미영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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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삶은 몇 도인가요?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질문을 보면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의 삶을 온도계로 재어본다면 과연 몇 도일까? 아마도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정도의 온도가 아닐까 싶다. 크게 즐거운 일도 없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도 않은 상태. 이 책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저자의 삶의 온도는 어떠했을까?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그녀는 총 4개의 장을 통해서 따뜻함, 뜨거움, 싸늘함 그리고 차가움의 온도를 띄는 삶의 기억을 전달한다. 누군가의 딸, 아내 그리고 엄마로 살았던 충실히 살았던 삶에 대한 기억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그녀의 책 안으로 들어가보자.

" 지금도 생각난다. 밤새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추운 겨울밤, 안방을 가득 메운 커다란 이불 위에서 한땀 한땀 시침질을 하던 엄마의 따뜻한 모습이 "

1장 : 따뜻했던 기억들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는 특히 이불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나의 경우 어릴 적에 주택에 살았는데, 아파트보다는 보온이 덜 되는 곳이었다. 온돌로 되어 있기에 방바닥은 뜨끈한 편이었지만 벽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항상 코끝이 서늘했다. 그런 밤이면 어머니가 꺼내놓은 무거운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었다. 저자 김미영씨도 빳빳하게 풀을 먹인 이불홑청과 봉황새, 푸른 소나무, 솔방울이 수놓아진 솜이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커다란 이불 안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키워나갔다는 말과 이부자리에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는 말에 큰 공감을 느꼈다.

“ 언뜻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아파서 거동조차 못하는 엄마와 너무도 닮았던 것이다.”

2장: 열정적이었던 기억들에서는 낯선 할머니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 아파서 거동조차 못 하는 엄마, 그런데 그렇게 아픔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바람에 아픈 엄마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던 저자.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딸의 처지가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그러다가 저자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폐지 줍는 할머니가 엄마와 대단히 많이 닮아 있는 걸 보게되고 기다렸다가 할머니에게 빵과 우유를 건네준다. 아픈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던 저자는 그런 식으로라도 위로를 받게 된다.

“ 난 내 아이의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을 미리 막지 못했던 고개 숙인 엄마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로 인해 게임에서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리긴 했지만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정은 무척 삭막하고 싸늘한 분위기였다.”

3장 싸늘했던 기억들 속에는 아이가 게임 중독에 걸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저자의 웃지 못할 상황들이 펼쳐진다. 밤새 게임을 하느라 소진된 체력으로 겨우겨우 학교에 등교하던 아이의 모습, 마치 어두운 늪 같던 판타스틱한 게임 화면에 빠져들어서 점점 난폭하게 변해가던 아이를 지켜만 봐야했던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위에 이런 가정들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에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미래를 위해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창 시절이 게임으로 인해서 엉망이 되어갈 때의 심정.. 겪어본 부모님들을 다 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 아이가 학원을 가지 않게 되면서 매달 사교육비를 아껴 큰 아이에게 더 큰 지원을 해줄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웃프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아이의 방황을 가슴 졸이면서 지켜보고 어서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 기억!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는 각각의 따뜻함과 뜨거움, 싸늘함과 차가움 등과 같은 온도가 느껴진다 "

기억이 온도로 다가온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가끔 머리 속을 스쳐가던 기억의 느낌이 각각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따스하게 쏟아지던 봄의 햇빛, 차갑게 몸에 튀던 물방울들, TV밖으로 흘러나오던 뜨거운 함성 등등 생생하게 느낌으로 기억되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다. 어머니의 솜이불이나 남편의 주말 레시피와 같은 따뜻한 기억들과 시월드와 어머니의 죽음처럼 추웠던 기억들까지 저자는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한꺼번에 얼어붙게 만들기도 하는 여러 추억들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읽어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고 이 책 덕분에 과거에 묻어놨던 여러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탈하면서도 따뜻한 내용이 많았던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을 모두가 읽을 만한 좋은 에세이로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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