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고성 할머니 댁 마당에 나와 노는데 제비 떼가 날아다녔다. 

신기에 가까운 날개짓으로 빠르고 낮게 처마 끝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새들이라면 긴 서까래와 대들보가 만나서 만드는 공간에

실수로라도 들어간다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파다닥거릴 듯 한데 

제비는 늘어진 줄넘기 모양(양쪽이 벌어진 U자라고 해야 할까?)으로  

눈으로 쫓기도 힘들만큼 빠르게 쪽마루 천장과 마당을 들고 나면서 부지런히 지푸라기를 물어날랐다. 

오래된 집이라 얼키고 설킨 전깃줄 위에 두 마리가 앉아 지지배배 지저귀는 모습을 보니 

선명한 흑백이 대비되는 작고 날렵한 몸매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강남갔다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제비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듯 하다. 

미니도 제비가 우리 집에 집을 짓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언젠가 작은 언니네가  

베란다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그냥 두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 엄마가 여쭈어보니

할머니는 어제 이미 짓고 있는 제비집을 한 번 걷어내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비는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다시 집을 짓는 모양이다.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하고 너덜이로 돌아왔다. 

 

산 속이라 할 만한 너덜이와는 달리  

고성 구만은 화산분화구가 만든 들판이라 날아다니는 새들이 많이 달랐다. 

제비도 참새도 떼지어 날아올라 눈길을 끌었는데 너덜이에는 제비도 참새도 없다. 

이름이 궁금한 온갖 종류의 산새가 있을 뿐. 

그나마 꿩, 까마귀, 까치는 이름이 분명하고 눈에 가장 많이 띄는 새들이고 

뻐꾸기와 소쩍새는 울음소리를 들려주어 존재를 알 수 있지만  

방 앞에 선 나뭇가지에 가장 흔히 날아드는 몸집이 자그만  

아마도 박새와 어쩌면 종달새, 또 어쩌면 동고비 그들은 울음소리도 이름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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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지요.^^
우리집엔 97년에 제비집 지어 새끼를 두 배 내더니 그동안 안 오다가
작년에 10년만에 다시 와서 살고 있어요. 아침마다 부지런한 제비소리에 잠깬답니다.^^

2009-06-20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6-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도에 와서 살면 제비도 보고 산도 보면서 자연속에 파묻혀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는 곳이 아파트, 그것도 12층이다 보니 도시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땅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연로하시니 멀리 다니러오시기 힘드셔서 

미니는 일주일동안 유치원도 가지 않고 고성 할머니 댁에 가서 실컷 놀았다. 

3교대 근무하시는 큰아빠,큰엄마가 하루 걸러 이틀씩 다녀가시지만 

농사일이 바쁜 철이라 할머니 심심하시다고 아이들이 재롱을 떨고 사랑을 받고 왔다. 

 

아빠는 보름 단식 끝에 채소와 과일로 복식을 하시던 중이라  

혼자 지내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을테지만 

아마도 일주일이 한계였던 모양인지 아이들을 데리러 오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동장에 들러가자는 아빠에게 

엄마는 집에 돌아가는 기념으로 케잌 하나 사가지고 가는 건 어떠냐고 운을 떼었다. 

예상했던대로 " (버럭)뭐 그 별로 좋지도 않은 것을 ..."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니는 아빠에게 비밀인 이야기를 엄마에게 귀속말로 하고 싶다고 안절부절했지만 

길게 누워 잠든 태민이와 엄마 팔에 안긴 재민이 때문에 모녀 사이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장에 도착하자 또 엄마가 예상했던대로 아빠는 은근슬쩍 케잌 사라고 돈을 주셨다. 

미니는 첫 눈에 반한 딸기 시럽으로 장식된 제일 큰 케잌을 안고 돌아왔다. 

아빠가 짐들을 옮기는 사이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모녀는 비밀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 처음에 아빠가 케잌 사지 말라고 하셨잖아.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내 말도 한 번 들어주면 뭐 어때서!  아빠는 그럼 무슨 사랑으로 결혼을 한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케잌을 사 주셨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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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미니의 속에는 어른들 말씀처럼 '영감'이 들어앉았군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사이라서 안타까웠는데~ 벌써 친구가 되어주는 딸이네요.ㅋㅋ

2009-06-20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6-2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고 사랑스런 미니...
 

그리스 군이 거짓으로 물러난 자리에 남겨진 목마를  

트로이 성 안으로 옮겨 갈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을 때  

예언자 라오콘은 속임수를 쓰는 것일 수 있으니 옮기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리스 군을 편들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큰 바닷뱀을 보내서 라오콘과 그 아들들을 죽여버렸다. 

그리하여 트로이는 불타고  

그리스 연합군의 장군인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왕국 이타케를 향하여 금의환향 길에 오른다. 

하지만 도중에 들린 섬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이 살고 있어서  

오디세우스는 뾰족한 기둥으로 거인의 눈을 찔러 멀게 하고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한다. 

그런데 그 거인은 바로 포세이돈의 아들이어서 승리하도록 도와줬는데도 배은망덕하다며  

바다를 거칠게 하여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방해하는 바람에 기나긴 모험과 방랑이 시작된다. 

 

얼마동안 멀리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들추어보다가 

  

 

 

 

 (바로 요것 되시겠다.^^)

이건 포세이돈이 잘못한 일이란다. 

오디세우스는 그 거인이 포세이돈의 아들인지 알지도 못했고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니 목숨을 구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 은혜는 다음에 다른 일로 갚을 수도 있는 것이라나?  

이번에는 엄마도 같은 생각이어서 미니가 분하고 답답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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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랑주 2009-06-2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엄마도 같은 생각이어서 미니가 분하고 답답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민이는 좋겠어요 이모,, 모든 문학작품에 정말 특히 영미문학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모티브들이 참 많더라고요 ~

저는 요즘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줄 모른다고... 요즘 하나하나 알아가요
ㅋㅋㅋㅋ

12 2011-11-2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121212
 

시어머니가 늘 너무 작은 쪽박에 쌀을 내어주는 바람에 며느리는 날마다 굶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몰래 밥을 지어먹다가 들키는 바람에 쫓겨나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 

두견새는 그래서 " 쪽박 바꿔 줘!"라고 운단다. 

 

<개똥이네 놀이터>에 소개된 두견새 이야기를 읽고 이건 시어머니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미니가 말했다. 

엄마는 일부러 맞장구를 쳐주지 않고 두 사람 다 잘못이 있다고 했다. 

그 쌀이 모두 시어머니 것도 아닌데 "매일 매일" 밥을 먹지 못했으니  

너무 배가 고파서 며느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미니가 항변했다. 

그러면 쪽박이 작아서 밥이 모자라니 큰 쪽박에 쌀을 내어달라고 먼저 말씀드려보거나 

큰 쪽박을 써서 쌀이 금방 떨어지면 안 되니까  

식구들이 자기 밥을 조금씩 덜어내어 한 그릇을 만들어주든가  

몰래 밥을 지어 먹기 전에 해결방법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으니 

그래도 며느리는 "매일 매일" 굶었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요즘 여러가지 일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일이 많다. 

엄마가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서 거듭 따지고 든다. 

주관이라는 씨앗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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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랑주 2009-06-2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매일매일 굶은 것이
먹을 것 좋아하는 미니에게 크게 와닿은 것 같아요ㅋㅋ

그건 저에게도 크게 와닿아요..ㅋㅋ
 

엄마는 고추를 먹지 않는다. 

시댁에서 워낙 고추부침개를 즐기는 터라 자주 부치다보니 

요즘엔 가끔 한 조각씩 먹어보기는 하지만 

풋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서 와삭~! 뭐 이런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고추를 씹으면 매끈한 한 쪽 면이 이 사이에서 미끄덩거릴 것 같다. 

매운 맛도 맛이지만, 상상인지 언젠가의 경험인지 잘 모르는 그런 느낌이 너무 싫다.  

 

텃밭에 심은 고추가 이제 제법 열리어 막 따온 풋고추를 저녁상에 올렸다. 

미니가 하나 먹어보겠다고 집어들더니 쌈장 흔적만 묻혀 깨알만큼 베어물었다. 

" 너무 조금 먹어서 무슨 맛인지 맛이 안 나네!"  

애들은 아직 고추 맛을 모른다는 아빠 말씀을 들으며

보란듯이 야금야금 먹다가 길쭉한 고추를 절반 쯤 먹었다.

피망이랑 맛이 비슷한데 좀 더 맵기는 하지만 계속 먹고 싶다나!  

어느 것이 더 맛있느냐고 물으니 고추가 더 맛있다고...(으~, 놀라워라!)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고 밥상에 돌아가 앉으니 절반 남은 고추를 아빠가 대신 먹어버린 뒤였다.  

" 새로운 고추에 도전할래! " 

망설임 없이 출사표를 던지고 긴 긴 고추 하나를 완전히 먹어치웠다. 

 

오늘은 미니가 풋고추를 처음 먹은 날이다. 

만 5년 9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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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