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동서 미스터리 북스 26
뒤 모리에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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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소설가가 무언가 잘못해서 반성문을 쓰라고 한다면,
A4용지로 100장도 넘는 반성문을 쓸수 있을 것이다.
매우 화려하고 수려한 문장력이다.
치렁치렁한 스커트 주름처럼 섬세한 문체에 글도 매우 잘 쓰지만,
오랜만에 너무 화려한 문체를 봐서인지 적응하는데 꽤 걸렸다.

고아처럼 자라온 갓 소녀티를 벗은 여자와 20살차이가 넘는 무뚝뚝한 남자의 결혼.
그 뒤에 가리워진 전부인의 미스테리한 과거와 광기.

이 정도 얘기를 들었다면, 누구나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를 떠올리겠지만,
이 소설 레베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인에어의 오마쥬이다.
하지만 제인에어쪽에 손을 들어줄수 밖에 없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어쩐지 캐릭터자체의 매력과 음울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덜하기 때문일수도 있었고,
"제인에어"에서의 로체스터 씨가 전 부인을 집 어딘가에 숨겨놓았던 정도의
광기나 비밀스러운 슬픔이나 공포도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나이도, 이름도 나오지 않는 주인공 "나"는 중년부인 반홉퍼 부인의 개인비서이다.
말이 개인비서지, 거의 하녀에 가깝다.
갓 여학교를 졸업한 순진하고 어리석고 겁많은 주인공은 반홉퍼 부인의 여행에 따라갔다가
으리으리한 성 만더레이의 주인 맥심을 만나고, 사랑에 빠져 곧바로 결혼한다.

신혼여행후 만더레이로 돌아왔을 때, 주인공을 기다리고있는 것은
만더레이 곳곳에 아직도 넘쳐나고 있는 1년전에 죽은 맥심의 전부인 "레베카"의 환영뿐이다.
아름답고 지적인데다가 상냥하기 까지 했던 레베카.
누구나 이 볼품없는 여자와 레베카를 비교한다.
어째서 맥심이 이런 어이없는 미성숙아와 결혼을 했는지 의아해 하면서.

치욕스러운 가장무도회 다음날, 이미 1년전에 발견되어 묻혀졌던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된다.
완전히 썩어서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은채로.
그 일을 계기로 밝혀지는 만더레이와 레베카에 관한 진실은
어쩐지 좀 뻔하게 생각될 정도로 전형적이어서 그다지 독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정많고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가,
사실 알고 보면 악독하고 잔인한 이중인격자라는 것은 꽤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니까.
그래도 소설 막바지에는 꽤 흥미진진하고 스릴넘친다.

책표지에는 "낭만적 스릴러"라고 쓰여져 있지만,
사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라고 말하긴 뭣하고, 그냥 아주 잘 쓰여진 영미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주인공은 막바지에는 소녀가 아닌 당당한 여주인으로 변하지만,
거의 소설 전체에서 너무 수줍어하고 너무 겁많고 너무 소심해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읽으면서 답답해 할 정도로, 하인들에게도 비굴하고 남편에게도 비굴하고.
꼭 어디로 끌려가야할 것 처럼.
주인공이 이렇게 비굴해지면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는 건 나뿐만일까.

가진것 없지만 오만하고 당당한 제인에어와 괴로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변덕스러운 로체스터씨와
미친 로체스터 부인의 삼각트리오의 매력에 비해 캐릭터자체의 매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수려한 문체가 인상적이었고,
소설이 거의 600페이지가 되는데도 그다지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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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종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2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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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속편보다는 전편이 재밌지만,(사실 시리즈라 속편이라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전편인 "쇠못살인자"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는 디공 시리즈 2편 "쇠종살인자"
소설 초반부부터 강간,살인 사건의 이미지가 몰아닥치고,
전편인 "쇠못살인자"보다 조금더 엽기적이고, 조금더 잔인하고, 조금더 심도깊다.

푸양으로 전근한 디공과 디공의 수하들, 타오간, 마중, 치오타이, 홍수형리가
"쇠종살인자"에서는 3가지 사건을 풀어나간다.
반월로 강간 살인 사건을 필두로,
궁궐까지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사이비불교(결과적으로는 사이비지 뭐-)의 비리와,
뿌리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두 집안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며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아직은 그래도 순진한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주인공부터가 정의감에 넘치지 않으며 냉소적인 요즘의 추리소설의 주인공들과는 참 다르게,
이렇게도 정의감 넘치며 냉소와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기를 바라면서 보게되는 것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녹아있는 "나쁜 놈들은 벌을 받아야지!"라는 기본적인 정의감을
작가가 건드리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정의의 구현 따위 바라지도 않게된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도,
이렇게 소설에서라도나마 위안을 받아야하니까...

절간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수치심에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아기낳게 해주는 보살상"의 비밀이나,
쇠종속에서 살아있는 채 갖혀 해골이 될때까지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살인방법도
참 참혹하고 잔인하기 이를데 없지만,
죄인을 벌하는 방법 또한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 능지처참이라
소설의 막바지에서는 영화 "혈의 누"에서 보았던 능지처참 장면과 맞물려서 생각되면서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 좋고 사사로운 감정보다 정의를 중요시하는 주인공인 디공 역시 매력적인 주인공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기꾼 출신으로 사람들을 잘 속여가면서 수사를 진행해가는 "타오간"의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꼈다.
얼굴에 수염달린 큰 점이 있다는 설명만 뺐어도 미남으로 멋대로 생각하고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_-;
오오.....털달린 점이라니....!!!!!!

어쨌거나 전편인 "쇠못살인자"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전개도 빠르며 박진감 넘치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중국사람이 아닌 네덜란드 사람이라 전편에서는
어쩐지 중국문화가 곳곳에 뭍어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중국소설다운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전편에 익숙해지고 난후에 봐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정말 잘써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편에서는 확실히 동양적인 냄새가 많이 풍겨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네덜란드인이라는 로베르트 반 홀릭이
이 소설을 중국어로 썼을까 자기네 나라말로 썼을까 인데,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사자성어같은건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진다.
영어적인 표현을 우리나라에서 번역할때 사자성어로 바꾼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사자성어로 되어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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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9-2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쇠못 살인자보다 더 재밌다니...너무 기대되잖아요ㅋㅋㅋ
 
쇠못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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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독특한 점은 네덜란드 사람이 쓴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서양사람과 서양세계가 주인공인 소설이 나올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릴때, 나는 그걸 꿈꾼적이 있기 때문이었다.-_-;
어릴때 부터 영미 문학에 길들여진 나는, 우리나라 소설보다 영미 소설을 천배가량(오버..) 더 많이 읽었고,
소설들은 언제나 환상을 채워주었기에 아마도 아련한 동경이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 사람으로 태어나 동양의 문화와 역사에 푹 빠져 중국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만들어낸
로베르트 반 홀릭 역시, 막연한 동양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먼저 본 리뷰마다 "판관 포청천"의 이야기를 들먹였기 때문이었다.
포청천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나라에서 방영할 당시에 아빠가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조금 질리기도 해서,
막연히 이 소설은 비호감이었다.
그래서 전혀 기대를하고 보지 않아서인지, 상당히 재밌었던 소설이다.
막상 보니, 형태상으로는 판관 포청천과 비슷하나,
연관지어 생각난 것은 우리나라 영화 "혈의 누"였다.

쇠못 살인이 무엇인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의 정수리에 쇠못을 꾹 눌러박아 살해하는 방법인데,
놀랍게도 이 방법은 죽을때도, 죽고나서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살인 방법이었다.
하긴, 머리카락에 파뭍혀 있는 작은 쇠못을 누가 눈여겨 보겠는가.

한 처자가 실종되면서 사건이 시작되고,
금새 뒤이어 목없는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주인공 판관 디런지에와 그를 따르는 형리들이 이 사건을 해결하던 중,
그 지방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신임을 받고 있고, 형리들과 디런지에와도 우정을 나누고 있던
권법사 란 사범이 독살당한다.
이 알수 없는 세 사람의 사건을 뒤쫓던 형리도 하나 죽는다.
부인을 셋이나 거느린 냉철한 판관 디런지에와 정의감에 불타는 형리들,
솔직하고 성실한 곱추 한약방 주인등이 동원되어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소설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슬퍼진 것은,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이었던 쿠오부인의 죽음과
그녀의 마음속의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량한 여자, 죽이고 싶게도 악랄한 남편.
그 당시의 여인으로 태어나 남편에게 반항할수도 없었던 상황.
결국 그녀가 택한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과, 상처,
부족한 자신을 거두어준 곱추남자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한 사랑,
그녀를 믿고, 의지했음에도 정의를 따를수 밖에 없는 디런지에의 판관으로써의 책무.
여러가지가 참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모든 범죄는 결과로써 죄를 묻는다.
살의를 품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것으로 죄값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어 거기에 누구나 납득할 당연한 이유가 있다해도,
결국 죄는 죄로 남을 뿐 구원받지 못한다.
쿠오부인이 원하던 일을 실행하고 나서도 무척이나 괴로웠던 것처럼,
살아가면서 저지른 죄의 값은 마음의 괴로움으로 치룬다고 해도,
증거가 있는한은 언젠가는 정말 죄값을 받아야하는 것일지,
당연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참 안타까운 점이었다.
사실, 디런지에가 쿠오부인의 죄를 눈감아 주거나 슬쩍 넘어가주길 바랬는데,
결국은 그렇지 못한 셈이라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재밌었지만, 아쉬운 점은 소설 전체를 볼때 관련성이 있는 큰 두사건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디런지에는 결국 두가지 사건을 해결한 셈이 되는데,
한 타이틀에서 연관성 떨어지는 두가지 사건이 나오니 그 점이 약간 걸리긴 했다.
또, 서양사람이 쓴 중국소설이라,
중국문화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정보는 많으나 어쩐지 중국소설다운 매력은 좀 떨어지는 것도,
흠이라면 흠이다.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픽션소설이라는 점이다.
디런지에 역시 판관 포청천과 마찬가지로 실존했던 인물이고,
목없는 시체사건 역시 실제로 있었고,
유괴와 관련된 사건 역시 실제로 있었고,(이점은 스포일러니 슬쩍 넘어가겠다-)
남편의 머리에 못을 박아 살해하는 방법이 당시에는 꽤 있었다고 하니,
놀라운 점이다.
이런 역사속의 사건들을 한데 묶어 소설로 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2편 쇠종살인자도 기다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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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악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5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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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보니 이책이 도착해있어서 낮시간을 투자해 한큐에 다 읽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별로 였다.
어째서 에드가 엘런 포우의 이름을 패러디한 이름을 필명으로 내세웠는지는 책을 읽어보니 확실하게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에드가 엘런포우의 기괴함에는 따라가지 못하지 않나 싶다.
소재는 에드가 엘런 포우의 소설보다 더 엽기적이나,
에드가 엘런포우나 러브크래프트가 주는 음습함에서는 한참 밀린다.
소재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얼핏 에드가 엘런 포우의 "아서고든핌의 모험"이 연상되는 것은
아서고든핌처럼 전체적인 내용을 두고볼때 딱 반으로 나뉘어지는 시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괴한 모험담 얘기를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후반부 동굴 탐험은 러브크래프트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의 마지막 부분과 어쩐지 겹쳐서 생각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제 서른도 안되어 흰머리가 된 청년의 회고로 시작된다.
비교적 소심하고 내성적인 주인공은 25살 시절, 회사에 새로 들어온 여사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비록 가난한 연인이지만,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가며 미래를 약속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또다른 남자가 청혼해온다.
주인공보다 더 조건좋고, 잘생기고, 완벽한 남자가 나타나 여자의 부모가 홀딱 빠져버리게 된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남자는 이여자가 아니라, 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고등학교 시절, 자취하던 하숙집에서 만난 두 남자.
어느 순간 자기에게 연정을 품은 같은 하숙집의 대학생 모로토와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었던 주인공.
연인도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그저 짝사랑을 하고, 짝사랑을 묵과해주는 상태의 두 남자는
여자 하나를 놓고 결혼 경쟁을 벌여야하는 사이로 돌변해버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모로토는 그 여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녀에게 청혼한거라는 사실을.
그러다가 여자가 살해당한다.
전형적인 밀실 살인으로 단도로 찔러죽인 범인이 들어갈 틈도, 나갈틈도 없는 방에서,
주인공의 피앙세가 살해 당한 것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모로토를 의심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앞에 복수를 다짐한다.
학생시절 선배였던 현직 탐정이 이 사건을 수사하려고 나섰으나,
퍼즐을 완전히 맞출때쯤에 탐정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해수욕장 한가운데서
미스테리한 살해를 당한다.
탐정이 죽기전 주인공에게 몰래 보내준 증거물에는 샴쌍둥이로 보이는 한 소녀의 일기장이 있었고,
주인공을 사랑하는 모로토는 범인 쪽이 아니라, 역시 사건을 몰래 뒤쫓는 탐정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샴쌍둥이의 일기와 연인의 죽음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두사람은
복수를 위해 외딴 섬으로 다다르면서 좀더 디테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갖고 있는,
그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단지 생경하기때문에 갖고 있는 공포들을 소재로 삼았다.
동성애. 샴쌍둥이. 기형아. 도착적인 성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속의 그런 생경한 존재들을 보면서 전혀 두렵지 않았는데,
낮에 봐서 일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와닿지 않아서일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공포스럽지도, 기괴하지도 않았지만, 그러다고 재미없는 소설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일지, 아니면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글을 참 못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디테일한 설명에 관해서는 정말 떨어지고,
현장 묘사라던지 외모 묘사라던지, 심리 묘사 또한 왠지 대충대충의 기색이 보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캐릭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평범하고 내성적인데, 묘하게 남자들에게 인기 있어서
그걸 뿌리치기는 커녕 살금살금 이용해먹는 주인공이나,
(아마도 미소년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인기 있는 묘한 중성적인 캐릭터같으니까.)
이런 주인공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주인공을 부르는 멋진 지식인 타입의 의학도 모로토.
열악한 상황속에서 핀 한떨기 백합같은 샴쌍둥이중의 소녀 히데짱.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가 보면 볼수록 높아져서 더 빨리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로 시작해서 공포소설로 마무리 짓는 독특한 소설.
생각보다 기괴하지는 않지만, 읽어볼 만은 하다.
단편집 "음울한 짐승"은 좀더 기괴하다니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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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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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전에 라디오에서 "측간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말 그대로 측간(화장실)에 사는 귀신인데, 대부분 머리가 길고 여자인 경우가 많으며,
겁이 많아 놀래키면 사람을 해한다고 하는 민담속의 귀신인데,
그 얘기 들으니,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빨간 휴지, 파란휴지 귀신"이 전혀 근거 없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귀신이라는 걸 알고 신기했다.
사회자가 덧붙이는 말로, 아마도 "노크"라는 개념이 없었을 옛날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볼때,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재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잘 놀라는 귀신이라 놀라면 사람을 해한다고 하니-)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얘기가 생각났던 것은,
비교적 민담이나 전설속의 요괴에 대해서 정리가 잘 되어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정리가 너무 모자른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 참 뭔가를 모아놓기 좋아한다.
비교적 수더분한 스타일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런 정리는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무언가를 탄생시킬 좋은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전설속의 요괴의 이야기에 추리를 접목시킨 이 책 "우부메의 여름"처럼 말이다.


이 책은 내게 "망량의 상자"를 읽기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그 책을 사려고 했는데 이걸 먼저 읽는게 좋다고 해서-)
이책을 보고나니 망량의 상자는 더더욱 기대가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에는, 일어나서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별점을 준다면 5개 만점에 4개반을 주고싶은 책이다.
딱 한가지, 두가지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 있어서,
별 다섯개에서 반개를 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가사의를 과학과 추리를 이용해서 원인을 밝혀가는
독특한 추리소설 "우부메의 여름".
민담과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조립해서 이 정도의 얘기를 이끌어냈다는 건 정말 높이 사야한다.
오컬트와 추리가 적절히 버무려져서 다분히 신비롭고 괴이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음에
이 오컬트에 현실적인 원인과 결과를 부여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무려 20개월이나 임신한 상태에 있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빠져나갈수없는 밀실에서 증발해버렸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미스테리한 사건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세키구치.
그의 친구들, 음향사이자, 논리가인 교고쿠도와
잘생긴 외모에 일종의 사이코메트리를 할수 있는 엉뚱한 형사 에노키즈.
전형적인 형사스타일의 기바가 사건을 풀이해나간다.
20개월이나 임신한 여자의 역사깊은 저주의 내력과 덮어놓을수 밖에 없는 집안 사람들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나 미스테리해 보일수 밖에 없는 사건을
교고쿠도를 중심으로 낱낱히 파해쳐본다.

우부메는 일본 전설속의 요괴이다.
여자의 모습을 하고 아이를 안고 하반신은 피투성이가 된 요괴.
이와 비슷한 고획조는 중국의 요괴인데, 이 요괴는 아이를 납치해가는 요괴이다.
고획조는 아이를 납치하고,
우부메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건내준다.
이런 전설의 요괴들이 가진 특성을 이용해서 마지막 얘기를 꾸려나간다.
주인공 료코의 정신세계가 차츰 부숴져나가는 장면은 섬찟할 정도로 처연하다.
저주를 댓가로 번성해온 구온지가는 자기자신들에게, 그 자손들에게
저주를 되물려주고 있는 것은 자기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대에 와서는 가쉽거리밖에 되지 않는 집안 전통의 내력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자신들이고,
전통이 허물어짐에 따라 전통적인 저주를 이어가고 있던 가족들은 붕괘된다.
마치 그런 세상을 견딜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수 없어보이는 일들이 참 많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 내지는, "미스테리한 현상"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시야를 좀더 넓힌다면, 그런 설명할 수없는 일들에도 설명을 할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다.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좀더 치밀히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이해가 될수도 있는 얘기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현상들을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뿐, 이해해보려고 해보지 않았다.
상식과 이성에 틀어박혀서 인간은 이성에 따라서보다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점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 싶다.


매우 두꺼운 소설인데, 책을 좀만 더 크게 만들었더라면 페이지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을 뻔했다.
초반, 교고쿠도의 궤변이 거의 100페이지가까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만 잘 참고 넘기면 쉴틈없이 읽어갈수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신비롭고 독특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고쿠도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요괴시리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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