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암각화의 제의성
이하우 지음 / 학연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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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기록의 동물이다. 욕망하고 기원하는 것을 마음에만 새기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맘과 맘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인류사를 통틀어 그토록 많은 신을 위한 제단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간절한 약자로서 신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신에게 보낼 그 소망의 말들을 새기는 게 선사시대 사람들의 최대 고충 중 하나였다. 문자 없던 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흔적 남기기가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영원에 호소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렇게 암각화를 우리 곁에 남겼다.

 

 

  볕 좋은 날이었다. 지인들의 안내로 포항 칠포리 곤륜산 기슭 암각화를 보러 갔다. 바위에 새긴 마음의 소리를 대하는 첫 느낌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고래, 거북, 사람 등 실체가 확실한 그림만 상상하다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만 한 그림을 만나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나마 이 바위그림이 청동기시대 이후 까마득한 시간 여행 중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의자 같아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니 방패나 실패 또는 칼자루 모양 같았다. 무슨 그림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기야 조상들이 내던져준 추상의 의미 앞에서 구상적 실체를 의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림의 숨은 의미 찾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지모신일 거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의 말씀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 옛날부터 사람은 생각하고, 기록하기를 욕망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좋고 산 밝은 그 터전에, 하염없이 소원하고 기원하는 실체적 진실로서 우리 조상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것이다.

 

 

 

**칠포리 바위 그림을 처음 발견한 이하우 선생이 쓴 책이 <한국 암각화의 제의성>이다.

**예정에 없던 번개팅이라 사진은 찍지 못했다. 자료 팸플릿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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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워칭 - 보디 랭귀지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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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썰미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오해 받기 쉽고, 그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다. 우선 주부로서 보자면,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겨자 소스나 케첩이 든 칸을 찾아내지 못하고, 캔맥주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헤매고 금세 다른 식구들은 잘도 알아낸다. 딱 보면 아는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단다.

 

 

  사람 보는 눈썰미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한, 몇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봤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주 본 동네 병원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도 그랬다. 독서클럽 한 회원이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더 당황했다. 내 눈썰미 없음이 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잘 기억해주는 것도 인간관계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다른 쪽은 눈치조차 못 챈다면 그보다 민망하고 미안할 데가 있을까.

 

 

  이러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다음에 저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강박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면서, 왜 기억하면 좋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 지우고 싶은 것은 지우고 떠올리고 싶은 것만 남기는 마법의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 완벽하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질질 흘리고, 풀썩 주저앉고, 쩔쩔 매봐야 진정 산다는 것의 숭고함을 알게 된다. 완벽한 일상만 꾸린다면 세상이 제 위주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명민한 눈치 때문에 피곤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설픈 눈썰미가 가져다주는 자책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위안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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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가연 컬처클래식 6
황라현 지음, 김기덕 / 가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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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감독이 화제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쾌거 못지않게, 수상식 때 입은 옷과 신었던 신발까지 관심을 받는다. 대충 틀어 올린 은빛 머리칼과 소박한 듯 허름한 갈색톤 개량한복은 무척 잘 어울렸다. 사진 기자들이 찍어 올린 낡고 구겨진 신발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김기덕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참석용으로 급히 산 그 한복은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데다, 구겨 신은 운동화 역시 스페인 산 유명브랜드로 삼십 만원이 넘는단다. 일견 남루해 뵈는 그의 패션 감각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 패션이야말로 김기덕을 더욱 김기덕답게 표현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제는 다가오고 옷은 적당히 입어야겠고, 아무데나 들른 곳이 고가의 옷집이었을 뿐이라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다. 신발까지 갖춰 신는 게 귀찮아, 이미 내 몸이 된 것 같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갔을 지도 모른다. 마침 자전적 영화 ‘아리랑’ 포스터에도 갈라진 뒤꿈치와 함께 나온 신발이니 이슈가 될 수도 있겠거니 생각은 했을 것이다.

 

 

  ‘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솔직하게 적어놓는 열성적인 노동자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 이 말을 김기덕 감독에게도 빗대볼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일관되게 자신에게 귀 기울였으며, 그 마음 한 쪽을 솔직하게 스크린에다 담은 열성적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예술은 누가 뭐래도 사기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희망 또는 진실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 노정에 편하게 구겨진 신발 한 켤레쯤 있어야 되는 건 당연하다. 감독도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깨끗하고 반듯한 구두를 신고 시상대에 오를 사람은 많다. 김기덕은 뒤축 접힌 낡은 운동화를 신을 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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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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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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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2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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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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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과 무슨 얘기 끝에 닭개장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 얼큰하고 시원한 국을 먹어 본 지  삼십 년도 넘은 것 같다. 그 시절을 추억하려 ‘닭개장’이라고 자판을 치려는데 자꾸 빨간 줄이 쳐진다. 표기법이 잘못 되었나? 내친 김에 옳은 표기법을 찾아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분명 ‘닭계장’이 아니라 ‘닭개장’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육개장, 닭개장에서 ‘개장’은 개장국에서 온 말이다. 개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국이 개장국인데,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으면 육개장,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개장국이 흔했다. 여름한철 집집마다 키운 누렁이는 그 국의 원재료가 되어 사라졌다. 개장국을 못 먹는 어린 영혼을 대신해 엄마는 닭 모가지를 비틀고 털을 뽑아 닭개장을 끓여주었다. 그 시절 흔히 있던 일이었다. 연한 닭살에 우거지와 고사리가 어우러져 매콤하고 걸쭉한 맛을 내는 그 국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키우던 생명체를 죽여 음식으로 만든 행위는 같았건만, 어린 혀는 개장국은 거부해도 닭개장은 허락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나는 소위 보신탕은 입에도 못 댄다.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나온 뒤로는 그 국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게 닭개장은 그렇게 시골생활과 어울리는 음식으로만 남아 있었다. 추억의 그 맛을 느끼고 싶어 내친 김에 지인들이랑 유명하다는 닭개장 집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메뉴엔 닭개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잔품이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아 다른 메뉴로 바꿨단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한 ‘온밥’ 앞에서 닭개장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닭개장 맛 자체가 아니었다. 실은 푹 곤 우거지와 고깃살이 어우러져 맞춤한 국물 맛을 내던 그 때의 추억을 먹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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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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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관련 재판 과정이 점입가경이다. 그 책의 절도 혐의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자신의 억울함만 풀면 피고는 책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단다. 앞선 민사 재판에서 책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원고 역시 책만 돌려받으면 기증하겠다고 서약서를 쓴 바 있다. 책은 피고가 꼭꼭 숨겨 두고 내놓지 않고 있다. 실물 없는 상황에서 나온 양측의 주장과 재판부의 판결이라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제가 된 상주본 말고도 한 부가 더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안동에서 발견된 것인데, 전형필 선생의 노력으로 현재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을 만큼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개인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온 선생에게 귀하지 않은 유물이 있었을까만 6·25전쟁 피난 때도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어 갈 만큼 아꼈다. 전문가들 역시 해례본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국보 중의 국보로 여기고 있다.

 

 

  크게 보아 훈민정음은 해례본과 언해본이 있다. 1446년 간행된 해례본은 쉽게 말해 한자로 된 풀이서인데,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의미, 사용법 등이 소개되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우리가 학교 때 열심히 외웠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의 훈민정음 서문은 월인석보에 수록된 한글 해설서인데 세조 때 간행된 언해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주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 책이 하루 빨리 공개되고, 더 이상 훼손됨이 없이 문화유산으로서 제 가치를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상고심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피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시민으로서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김슬옹 교수님의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사봤으면 좋겠다.

  김슬옹님은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데 온갖 열정을 다하시는 학자이다.

  1980년대부터 치열한 행보를 하던 학자의 성과가 날로 눈부시다.

  존경스럽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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