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 일레븐 - 할인행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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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봉 이십 여일 만에 영화 「도둑들」이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우리 영화사에서 여섯 번째란다. 기록 행진 중인 이 영화를 놓치면 국민 된 도리(?)가 아닐 것 같아 뒤늦게 조조 티켓을 끊었다. 빠른 전개로 지루함을 걷어냈고, 시퀀스마다 시각적 효과를 보탰으며, 적재적소에 감칠맛 나는 대사가 있었다. 헐리웃 영화를 흉내 냈다 하더라도 내용상 진일보했으니 그리 큰 흠이 될 것도 없어 뵌다. 대중성을 겨냥한 상업 영화답게 관객들 마음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열 명의 도둑들은 제 그릇 만큼의 영향력으로 서로 얽히고설킨다. 이 진흙탕 싸움에 심리전은 필수요, 배신과 음모 또한 난무한다. 그 많은 도둑들 중 유난히 눈길 가는 캐릭터가 있었다. ‘씹던껌’. 닉네임처럼 그녀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 같은 퇴물 연기파 도둑이다. 국내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홍콩 배우 임달화와 짝을 이뤘는데, 중년의 로맨스와 허망한 죽음이 영화 전개와는 어울리지 않게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바람결을 가르는 외로운 미소, 고급 투피스에 이는 보푸라기 같은 생채기, 거친 대사로 숨기고픈 힘겨운 생의 환멸 등 반생을 넘긴 중년 여성이 품을 수 있는 온갖 비의를 씹던껌은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둑들의 행태와는 걸맞지 않은 그들의 로맨스가 죽음으로 치달을 때 황망하고 안타까운 건 잠시였다. 어쩜 그들의 죽음이 승화된 로맨스의 다른 길은 아니었을까 하고 감독의 의중을 넘겨짚게도 되는 것이었다.

 

 

  힘들고 외롭다고 눈으로 말하는 여자, 그리하여 남이 버린 꿈을 씹다 버린 껌 줍듯 산 여자, 결국 죽음으로 용도 폐기된 여자. 하지만 끝내 죽어서 사랑을 산 여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덜 꿰맞춘 직소퍼즐을 만난 것처럼 허하게 만드는 여자. 클림트 그림처럼 아련한 그 실루엣을 찾아 자꾸만 조각그림을 맞춰보게 되는 것이었다.

 

 

* 아직 도둑들, dvd 안 나온 관계로 비교되는 오션스일레븐, 으로 리뷰상품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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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 - 개정판
하인리히 E. 야콥 지음, 박은영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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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의 취향을 업무나 사람됨의 평가 잣대로 삼아선 곤란하다. 그것이 먹을거리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말은 이렇게 해도 타인의 먹거리 취향에 대한 저마다의 편견이 있긴 하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을 보면 맺고 끊는 게 불분명할 것 같고, 급하게 먹는 이들은 성격도 불같아 뵈고, 국물을 남기는 치들을 보면 지나치게 건강을 챙기는 사람 같아 보인다.

 

 

  내게도 그런 편견이 있긴 하다. 무조건 커피를 멀리하고 녹차나 매실 등 웰빙 음료만 찾는 사람들을 보면 건강 염려한(念慮漢)이 아닐까 하고, 음료수 하나 고르는데도 오랜 고심을 하는 걸 보면 까다로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건 타인의 취향일 뿐 시비 걸 마음은 추호도 없다. 커피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크게 마시지도 않고, 녹차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마시기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마실 거리는 다만 마실 거리일 뿐이다.

 

 

  아메리카노 커피 심부름 때문에 진보 정치계 한 쪽이 떠들썩하다. 회의 중 비서진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것도 못마땅한데, 매장에서 파는 아메리카노를 사오게 해 마신다는 게 문제란다. 뭐 이런 코미디가 있나 싶다. 생각하는 게 다른 계파들끼리 정파 싸움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노동자와 민중을 생각하는 당의 커피는 꼭 셀프 믹스커피여야만 하나? 노동자는 스타벅스 매장 같은 데서 아메리카노나 캐러멜마키야토를 마시면 안 되나?

 

 

  주입되고 세뇌된 뿌리는 편견이라는 잎사귀를 낳는다. 노동자와 민중의 먹거리 취향에도 계급이 있어야 하나? 굶어죽는 시대도 아닌데 자신들의 잣대로 타인의 취향을 재단하는 이 저급 코미디만도 못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진보든 보수든 커피는 커피일 뿐이다. 취향대로 마시면 된다. 이름 좀 구린 아메리카노면 어떻고 좀 비싼 매장 커피면 어떠리.

 

  사회는 진화하는데 사고가 퇴보하면 그 그룹은 갑갑한 소굴로만 남을 뿐이다.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 한 잔  제대로 생각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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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유치해요. 그쵸?ㅋ

다크아이즈 2012-08-22 06:33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아주 많이 ㅋ. 갸들 덕에 아메리카노 들입다 부었더니 못 자서 헤롱헤롱거립니다~
 
집 밥 365일 - 82cook.com 요리 톱스타 보라돌이맘의
박미경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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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가 대세인 시대를 사는 것 같다. 텔레비전을 켜면 예능과 드라마 못지않게 요리 천국이다.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빅마마 같은 전문가들이 나와 눈부신 요리 세계를 보여준 지도 오래 되었다. 즐기면서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부럽다. 요리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조리대 앞에 서는 게 두렵다. 자신이 없으니 밥상 차리는 일은 언제나 가슴 짓누르는 숙제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텅 빈 냉장고를 보며 한숨지을 때가 많다.

 

 

  그래도 외지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는 격주말이면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족한 모성을 보상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중복되지 않게 식단을 짜가며 요란을 떤다. 아침엔 초밥, 점심엔 냉면, 저녁엔 피자, 다음날 아침엔 고깃국, 점심은 스파게티, 저녁은 삼겹살. 내가 봐도 평소의 내가 아니다. 한 끼 준비하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돌아서 한 끼 차리고 나면 지쳐 드러누울 지경이다. 화장실을 자주 가긴 했지만 아들이 잘 먹어주니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운동을 갔다 온 부자가 속내 이야기를 한다. 집 밥이 그리웠는데, 아들이 먹은 건 집 밥이 아니라 요리였다나. 이것저것 신경 쓰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솔직하게 말 못했는데 아들이 바란 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소박한 밥상이란다. 식구끼리 먹는 밥은 돌밥도 찰밥으로 보이고, 푸성귀도 산삼 되어 넘어간다나. 구수한 된장찌개에 시원한 열무김치, 그 정도가 진정한 ‘집 밥’이란다.

 

 

  ‘한 밥에 오르고 한 밥에 내린다’는 어른들 말씀에 기대, 잘 먹여야 한다는 과장된 모성을 발휘한 게 도리어 소화 불량을 불렀던 것이다. 바깥 더운밥보다 내 집 식은 밥이 낫다는 단순한 원리를 왜 몰랐을까. 집 자체가 최고의 밥이고 엄마 자체가 최선의 반찬이라는 생각을 왜 깨치지 못했을까. 보상 심리가 차려낸 오지랖 밥상 앞에서 괜히 쑥스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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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 아웃케이스 없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카타기리 하이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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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도 수십 번 넘어진다. 말실수로 후회하고, 오해로 상처 받고, 앞서 짚어 난감하고, 이루지 못해 번민한다. 일상은 넘어짐의 연속이다. 넘어진다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다. 잘못이 아니다. 자주 넘어져도 좋으나 잘 넘어져야 한다. 사람의 별에서 구석자리 하나 세내 살면서 잘 넘어진다는 건 위안 받을 너른 가슴을 만나는 걸 말한다.

  유도나 레슬링 경기를 보면 넘어뜨리는 것 못지않게 넘어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운동 경기와는 달리, 심리적으로 넘어질 때는 잘 받아주는 주변이 있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라는 말도 넘어질 때 잘 받아주는 걸 의미한다.

  일본영화 `카모메식당`을 봤다. 외롭고 상처 입은 캐릭터들은 헬싱키에 차린 카모메식당에 와서 제 슬픔을 부려놓는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롭지요` 핀란드 숲 넓은 배경을 안고 사는 그들은 마냥 평화롭고 여유 있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식당 창문 앞을 서성이는 걸 보고 일본인 식당주인이 읊조리듯 하는 말이다.

  이국의 길모퉁이 작은 식당엔 외톨이 청년, 버림받은 여자, 아픔을 간직한 자, 외곬 중년남 등 이웃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넘어지기 쉬운 영혼들이 모여든다.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카모메식당은 정갈하고 상큼한 매력으로 손님들을 매혹한다. 그곳엔 마법 같은 루왁 커피와 주먹밥 그리고 시나몬롤빵이 있다. 하지만 절대강자는 역시 넘어지기 쉬운 영혼들을 보듬는 주인의 따뜻한 시선이다.

 

  잘 넘어지려면 잘 받아줘야 한다. 카모메식당이야말로 힐링의 원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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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넘어지려면 잘 받아줘야 한다.

멋진 말이네요. ^^ 낙법 기술을 배워야 할까봐요.
믿는 사람도 필요하구요. ㅎㅎ

다크아이즈 2012-08-22 06:37   좋아요 0 | URL
글샘님 맘 놓고 넘어지시와요. 광팬 알라디너들이 님 받아, 아니 받쳐주시러 뛰어오실 걸요. 저야 뭐 당근 일착이죠. 크~
 
문답으로 읽는 일본교과서 역사왜곡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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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광복절이다. 잔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커녕 그들의 태도는 무성의와 몰염치로 일관한다. 징용자와 위안부 문제 등 해결해야할 숱한 과제들은 모른 체하고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우리를 자극한다. 한쪽은 마음에서 우러난 사죄를 필요로 하고 그들은 유감을 표시함으로써 면죄부를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2차 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비교적 과거 청산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독일의 진심어린 사죄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아시아의 도쿄 전범 재판은 통치권 국가의 이해관계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사죄는커녕 관례상 쓰는 `유감`이란 말을 듣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펼친 박종우 선수 해프닝에 대해 대한축구협회가 `사죄` 이메일을 보냈다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죄가 아니라 `유감`이었다는 협회 측의 해명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넌센스다. 박종우 선수를 보호하고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은 관계자들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불필요한 제스처임에는 틀림없다. 우발적이고도 우연한 사건에 대해 올림픽위원회에 소명할 의무는 있을지언정 정치적 문제로 이슈화시켜 시비를 건 일본에게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유감`(regret)은 두루뭉술한 미안함 정도를 나타내는 외교 수사이고, `사죄`(apology)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쓰는 표현이다. 박종우의 경우 사죄는커녕 유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삼는다면 관중석에서 날아온 `독도는 우리땅` 종이를 들고 경기장을 뛴 우리 축구선수가 아니라 욱일승천기가 디자인된 유니폼을 입은 일본 체조선수여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그 문양보다 더 의도적인 정치행위가 어디 있는가.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시점에서 그들이 통상적인 유감이 아닌 진심어린 사죄를 해야 하는 건 독도가 우리 땅인 것만큼이나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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