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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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본인은 독서일기를 개인 파일이나 노트에 다양한 시선으로 논문형식으로 적는다.
하지만 게으른 내가 그걸 온라인에 또 올리는 일은 드물 것 같다.
주로 이곳 온라인 서재에는 100자 이내의 짧은 감상만 적는다.
하지만, 가끔은 이번 하루키 편처럼 원래 적어둔 독서일기를 그대로 올려볼 것이다.

  아래 부분은 작픔에 대한 다양한 인물들의 평을 위주로 본 [노르웨이의 숲 ㅡ 상실의 시대] 이다.
  [노르웨이의 숲] 독서 후기는 총 10장으로 나눠 썼으며, 며칠에 걸쳐 한장씩 옮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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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의 숲] 은 1~3장 까지는 단편 [개똥벌레 ㅡ 반딧불이] 의 내용이다. 그 다음 부분은 장편소설로 쓰면서 첨가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장편으로서, <군조> 신인 문학상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삼진기획에서 이병익씨가 번역한 최초의 번역본이 나왔는데, 문학사상사에서 1989년에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후 널리 알려졌다. 제먹을 바꾼 이유는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독자에게 더 공감을 일으킬 것이라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노르웨이의 숲] 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겉표지가 상권은 붉은색, 하권은 녹색으로 되어 있다. 작품 겉표지의 라벨에는 하루키가 직접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이 소설은 여태까지 제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종류의 소설입니다. 또한 어떻게든지 한번 쓰고 싶었던 종류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연애 소설입니다. 매우 구식 명칭이라 생각하지만 그 외에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격렬하고 고요하며 슬픈 100퍼센트 연애 소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 숲] 은 남자와 여자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다룬것, 그에 따라 녀성의 비중이 매우 커진 점이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요코조 가즈히로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무라카미의 80년대 테마는 확실히 '큰 이야기'를 경험한 후로부터의 귀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60년대 후반의 카은터 컬쳐, 베트남 반전 운동과 학생운동 등의 반체제 운동이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났던 것으로부터의 좌절, 축제가 끝나고 난 후의 공허함이라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겠으나 그 잃어버린 것, 상실의 이야기가 무라카미에게는 본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의 숲] 에서도 나오코라는 애인이 자살한 뒤에 남겨진 '나'의 슬픔, 서정은 아주 훌륭히 써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살한 애인 나오코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하는 독자 측의 의문이 남습니다. 나는 '마음의 병을 앓는 나오코'는 분명 어떤 관념으로 속박되어진 과거의 우리들 모습의 상징이라고 해석합니다. 그에 대치되는 형태릉 보이는 '미도리'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미도리는 현실적이고 생과 사, 정과 동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특기인 좌우대칭적인 구조 속에서 새로운 생을 상징하고 있는 샘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표지는 요코오 가즈키가 말한 것처럼 나오코와 미도리를 통해 생과 사나 정과 동과 같은 대칭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초록색은 나오코에 대한 '조용하고 부드러운 맑은 애정'이고, 빨간색은 '서서 걸어다니고, 호흡하고, 고동치는' 애정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은교씨는 [숲] 이라는 자연을 예로 들어 숲의 한 나무가 흔들리는 것이 다른 나무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이 인간 또한 하나의 존재로서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며, 그 죽음 또한 다른 존재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다케다 세이지는 <연애소설의 공간> 에서 [노르웨이의 숲] 은 하루키 자신의 연애소설이라 언급하고 있지만, 오히려 연애라는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자폐적인 텍스트라고 주장한다.

 센고쿠 히데요는 <다림질하는 청년, 노르웨이 숲 속에서> 에서 작품 후기에 주목하여 후기가 있기 때문애 작품이 자기언급적인 이중소설화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주인공 와타나베가 세탁물을 다림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말하는 것으로 주름을 잘 잡아 정황을 청결하게 하는 작가의 수법과 겹친다고 주장한다.

 엔도 신지의 <노르웨이 숲 론> 에서 언어의 불완전성을 전재로 쓰인 작품이라고 주장함과 함께 등장인물의 언어와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하쓰미, 심지어는 와타나베와 만나자마자 하릇밤을 보내는 여자까지 모두 와타나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기요양'을 시도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자기요양'을 이루고자 하는 시도에서 실패한 대표적 인물이며, 미도리와 레이코는 성공한 케이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 여상은 결국 '자기요양'을 시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가토 고이치는 <이상의 숲을 걷다, 무라카미 히루키편> 에서 이 작품의 원형인 단편소설 [반딧불이] 와는 달리 어째서 방대한 분량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이 의문의 해답으로는 와타나베가 [반딧불이] 에서는 화자였지만, [노르웨이의 슾] 에서는 청자의 입장임에 주목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앙금을 쏟아내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가토 노리히로는 <옐로 페이퍼 무라카미 하루키> 에서 이 작품이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원인이 내적 세계로부터의 회복을 그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ㅡ다음 인물의 심리별로 읽어본 내용은 "작품으오 본 작가"코너에 있다 ㅡ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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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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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소설의 통령 박상륭이 [칠조어론] 이후 십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박상륭 교도의 열렬한 신자였던 나는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행복했지만
그의 작품이 더 많이 대중들에게 알여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또한 작가들의 작가인 박상륭의 별세는
한국문단에서 큰 별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다] 역시
작가의 일관된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며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니체'와 그의 '차라투스트라'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니체에 대한 도전장이나 다름아닌 이 작품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처럼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늙은 성자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박상륭이 읽은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박상륭의 차라투스트라를 만날 수가 있다. 

 박상륭은 생존작가로서는 전례 없었던 예술의전당의 '박상륭 문학제'를 1999년 진행했다.
(평론가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교도(敎徒)'라고까지 불리우는 일군의 독자들의 영향 때문이기도하다.

 박상륭은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서점 노스셔 북스(North shore Books)를 경영하기도 했으며 
영구 귀국하였다. 

(캐나다 뉴학 시절 그 서점을 방문했던 것이 내겐 영광이었다.
박상륭은 현지 신문에 오로지 글로만 (영어) 이루어진 기나긴 신문광고를 직접 내서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박상륭 소설은 인류의 '원형'을 찾아가는 기나긴 도정이면서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것을
소설작업의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일상 어법을 깨뜨리는 
난해하고 유장한 문체와 철학적 사유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박상륭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다른 어떤 '원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늙은네는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초췌한 모습이 슬픈 듯, 깊은 한숨을 불어냈다. 차라투스트라는 미소만 짓고, 말은 만들려 하지 안했는데, 운명을 초극했기는커녕, 허긴 그 원죄의 무게 탓이었을 것이지, 것인데, 늙은네보다 더 늙어 보였다. 못 입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으니, 가시쟁이나 바위 사이로 다니며, 생활生活을 거둬들이기에 애쓴 흔적으로 남은, 무수한 생채기 자국이나, 움푹 들어간 눈과 볼 등은, 그가 전에 어떤 얼굴을 해달고 있었던지, 그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으려니와, 그러는 동안, 뼈에 발린 피부가, 추위와 더위, 찬 비와 꺼끄러운 바람 따위에 시달리느라 거칠어지고 두터워져, 어린 코끼리나 멧돼지의 가죽처럼 변했는데다, 깎지 못한 머리칼과 수염에 덮여, 사람이기보다는 성성이를, 그것도 병든 성성이를 방불케 했다. 그가 예찬해 마지안했던, 그 대지에 밀착해, 하루하루의, 몸의 삶을 꾸리기는, 동물과 인간을 초극하려는 자에게도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꺼져들고 있는, 삶의 한 재무더기였으나,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쪽은, 비교하면, 타오르는 불은 아니라도, 이글거리는 잉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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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사 김영하가 자신의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 대신 
자신이 쓴 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이지만
가끔 청춘을 생각하며 파일을 찾아 읽어보곤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왔다 멀어져가는 청춘을 떠올리며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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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
- H의 결혼에 부쳐

스무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촌에 작은 낚시집이나 하나 열어서 살아가는 꿈.
또는 땡중이나 수도승이 되어 산사의 목어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꿈.
백두대간 봉우리 하나쯤 잡아서 산장지기를 하며 늙어가는 꿈.
그때는 그게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가끔 세상은 나를 성가시게 하고
인연이 없는 여자들은 매몰찬 상처만 남기고 떠나가지.
스무살 무렵에는 유난히 그런 일이 많은 법이지.

가끔, 자살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네.
마음 주지 않는 여자나 허망하게 무너진 추운 나라 때문에
음습한 거리를 청바지에 손을 꽂은 채 헤매기도 했을 것이네.
그런 때면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여 새들조차 날아다니지 않지.

스무살 무렵에는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았네.
무인도에 함께 가자던 초등 학교 동창생들이 그립고
공주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짝궁이 그립기도 하지.
심지어 무던히도 두들겨패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이 그립기도 하지.

그때는 전화벨이 울려도 반갑기만 했지.
수화기를 들 때마다 새로운 날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네.
이별을 고하는 전화,
새로운 만남을 예고하는 전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전화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들었지.

토악질로 범벅된 입영전야.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그런 노래를 부르며 밤새 거리를 헤매며 누군에겐지 모를 발길질을 해대며
눈물을 뿌려댔어도 그땐 외롭지 않았네.
대가리박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화장실에서 삼켜버리는 소보루 빵맛도 기가 막혔지.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이 때로는 정겹기도 했을 것이네.

스무살 무렵, 세상은 언제나 낯설었지.
사람들은 바삐 떠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지.
맑스 떠난 자리에 푸코가 들어앉고
조용필은 21세기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데도 사라졌네.

군복을 벗고 찾아온 교정에는
막바지 진달래만큼이나 싱싱한 젊음들이 배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네.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때쯤 깨닫게 되지.
남몰래 도서관에서 시험지 채우는 연습을 하는 동안
세월은 시험지 채우기보다는 쉽게 흘러가지.

스무살 무렵. 어떤 여자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지.
인간이 얼마나 바보스러워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그런 여자.
그런 여자는 포기할만하면 다가와 은전처럼 말을 흩뿌리고 지나가네.
그래서 상처는 더 오래도록 곪아가지.
그런 세월이 계속되면 마음 속에는 두려움마저 생기네.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누이가 되고 간호교사가 되지.

그런 여자를 만난 가을이면 음악은 소금이 되고 마음은 염전이 되지.
염전의 물을 퍼내느라 하루종일 수차를 돌리는 세월.
그 세월이 오래면 짜디짠 소금처럼 음악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 음악들은 하나둘 상처 위로 내려앉아 감각을 퇴행시키지.
산울림과 조용필, 들국화가 귓전을 떠나지 않게 되고
어느새 음악에서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그런 여자를 만난 겨울이면 서가에는 책이 쌓일 것이네.
지리산 토끼봉을 넘어 변산반도로 뛰는 사랑,
사랑하는 여자가 조총련이어서 간첩이 되는 사랑,
독일인의 사랑,
구월산 재인말에 천기로 스며들던 묘옥의 사랑,
그런 사랑들로 마음을 다스리네. 그러나 참 추운 겨울이었네.
그런 겨울이면 친구들은 군대로, 외국으로 하나둘씩 떠나가네.

그러다 봄이 되면 모임들을 기웃거리기도 했네.
함께 세미나를 하고 거리로 달려나가거나
어두운 뒷골목 소주집에서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네.
여기 오네 젊은 넋들 들판을 가로질러....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 선배 들은 그럴 때 참으로 아름다웠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소주를 따라주던 그런 선배를 죄스럽게 훔쳐보면서
쓴 소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동안에도 세월은 차곡차곡 흘러갔네.
그 선배들도 하나둘 교정을 떠나고 말지.
도서관에 처박혀서 9급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거나
양복입은 남자와 거리를 거닐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지.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쓰린 속을 만지며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이젠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럴 때 둘러본 책장의 책들 위에는 뽀얀 먼지가 앉아있고
지난 1년간 단 하나의 음반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마음을 아리던 여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으며
지난 며칠간 단 한 통의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지.
이십대가 간 거지.

비록 아직은 나이에 ㄴ 자가 들어가지 않는다해도
실질적인 이십대는 서해 낙조처럼 부질없이 스러져갔다는 걸
자신만은 잘 알게 되는 거지.
무심코 뒤져본 지갑 속에선 옛 친구들의 명함이 비져나오고
그들의 이름은 거개가 한자로 적혀있곤 하지.

우편함에는 듣도 보도 못한 발신인의 카드들이 들어있기 시작하지.
왜 청첩장에는 부모 이름이 적히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없이 백색 아트지로 된 그 종이들을 서랍 속에 밀어넣게 되지.

문화적 삼십대는 그렇게 시작하네.
사람이 그립지만 막상 만나면 아무도 그립지 않네.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게 되는 것도 그 무렵이네.
밤마다 열쇠로 따고 들어오는 자취방은 보일러를 켜도 스산하기만 하지.
시리즈 비디오를 빌려보게 되고 반쯤은 다 못보고 반납하게 되고
가끔 극장가를 배회하기도 하지.

그럴 때 한 여자를 만나게 되지. 이제 바보짓은 하지 않아도 좋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허투로 관통시키지 않기에
이제 다소는 무덤덤하고 심드렁하게 사랑을 고백해보게 되지.
그런 방식이야말로 서로의 상처를 줄이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인간이 만든 최악의 제도라던 결혼이 차악으로 보이게 되는 것도 그 쯤이고
서로를 간헐적으로 외롭게 만드는 더벅머리 친구보다
지속적으로 외롭게 만드는 반려가 더 나아보이는 때도 그 무렵일 것이네.

스무살 무렵에는 여자의 매력이 마음을 데우지만
이제는 여자의 아픔이 용기를 북돋게 되지.
스무살의 전장에 묻고 왔다고 믿었던 부장품들이 옷장 속에서 기어나오지.
열정, 질투, 희망 따위.
말없고 단정하던 그녀가 자신에게만 응석을 부리기 시작하지.
월급을 탄 그녀가 중저가 브랜드의 티셔츠를 사다주면
그게 쑥스러워 일부러 옷자락을 바지 밖으로 빼어내서 입고 다니지.

하늘의 빛깔은 여전히 어둡고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지.
소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하네. 코미디 영화가 좋아 지네.

그래도 가끔 스무살 무렵을 생각하네.
밤새 술 마시던 골목을 지날 때면, 그때 읽던 책을 책장에서 치울 때면,
가끔 담배를 피워대네. 그땐 그래도 자유로웠다, 고 생각하지.
오, 그때의 그 자유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얼마나 성가셨는지,
얼마나 사람을 환장케했던 지를 생각하면서
이제 더 이상 그 자유를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네.

어느날 자리에서 일어나 면도를 하게 되지.
면도날을 새것으로 갈아끼우고 그녀가 사다준 면도거품을 정성껏 바르고
뜨거운 물을 세면대에 받아서 말이네.
그리고는 머리를 깎고 몸에 잘 맞지 않는 이상한 옷을 입고 황급히 달려가네.
꼭 황급히 달려가야만 하네. 그게 어울리네.
그렇게 달려가면 거기 신부가 역시 이상한 옷을 입고 피곤한 표정으로 기다리네.

그때 잠시 멈추어서서 뒤를 돌아다본다네.
무진기행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를 것이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그러나 머리를 세차게 내젓고 걸어가 신부의 손을 잡네.

서른살 무렵에 다시 은둔을 꿈꾸지.
그 은둔은 스무살 무렵의 은둔과 다른 새로운 은둔일 것이네.
새로운 은둔의 동반자와 함께 걸어나가네.
드보르작의 한여름밤의 꿈이 울려퍼지네.

마흔 무렵이 되면 다시 이런 글을 쓸 것이네.
서른 무렵에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로 시작하는 글 말일세.
당신이 부럽네. 축하하네. 이제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게.
다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싸우고 토악질하고 부둥켜 안고 울기를 바라네.
그래야 마흔이 되어도 이런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네. 안 그런가?

스무 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자살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네.

수화기를 들 때마다 새로운 날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네.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이 정겹기도 했을 것이네.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쓰린 속을 만지며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이젠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사람이 그립지만 막상 만나면 아무도 그립지 않네.

세월은 사람을 허투로 관통시키지 않기에
이제는 다소 무덤덤하고 심드렁하게 사랑을 고백해보게 되지.
그런 방식이야말로 서로의 상처를 줄이는 방법임을 알고 있음으로.

마흔 무렵이 되면 다시 이런 글을 쓸 것이네.
서른 무렵에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로 시작하는 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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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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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이야기]는 1부:현현하는 이데아
2부 : 전이하는 메타포
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인 주인공은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 받고 당시의 체험을 서술한다.
하루키의 초창기 소설 이후로는 잘 볼수 없었던 1인칭 소설이다.


(솔직히 단편을 제외한 초,중반기의 1인칭 소설에서는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같은 사람이라고해도 될 정도로정형화되어 있었었다.

ㅡ 세상에거리를 두고 지내며,운동을 하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분위기에(미국적 분위기가 좀 더 픙겼다),음식도 스피게티나 샌드위치를 먹었고,늘 신비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래서 하루키가 한동안 1인칭 소설을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작품 속 `기사단장`은 오페라 <돈조바니>의 등장인물이다.

아내와 헤어진 후 주인공은 저명한 화가가 소유한 집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려한다. 그러다 (집의 주인은 요양시설에들어갔다) 그 집 천장위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발견하고,그 후로 주인공은 여러가지 불사사의한 일을 경험한다.

그리고,묵고 있는 집 이웃의 의뢰로 이웃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거대한 저택에 혼자 사는 이웃은 하루키가 [위대한 캐츠비]를 의식하고 설정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에도 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의 [하루사메 이야기]에 수록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이번 [기사단장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고전을 인용하고 이용한다.
(그의 표현재로라면 오마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기사단장 이야기`라는 그림의 작품 속 인물들에 이끌려 상상의 세계 같은 곳을 방황한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인 [세계의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Q84]같은 작품에서 많이 본 구성이다.
소설은 몇년이 흐른 뒤, 주인공이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끝난다. 
이번 소설은 그동안 그가많이 차용했던 열린 결말이 아니다.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뮤지컬 <존 도바니>와 [위댜한 캐츠비]를 읽고 알아두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창기의 하루키 단편들과 [노르웨이의 숲],[해변의 카프카] 등을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설이든 산문이든 이이야기가 저 이야기 같고
반복되는 구성과 인물들 그리고 이야기가 식상했었다.

[1Q84]는 선인제 10억을 받아 유명세를 펼쳤지만,개인적으로는 실망감이 더컸었다. 
그 후의 [언더그라운드]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단장 이야기]는 별 기대 없이 (1Q84 이후로 기대감은 없었지만,어떤 관성이나 습관으로) 읽었는데, 하루키가 오마주라고 표현한 이러저러한 시도가 익숙한 구조와 이야기를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루키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나름대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했다는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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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장 필립 뚜생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무심한듯 조용히 흐르는 하루을 그려내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미니멀리즘 작가 `장 필립 투쌩`의 [사진기]


 그의 소설들 중 [욕조]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요즘은 이런 작픔을 찾기 어려워진 것이 무척 아쉽다.


 투생의 소설은 간결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통찰력이 매력이기조 하지만,무엇보다도 그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수룩하고 허점이 많이 보인다. 그의 인물들은 느릿느릿 (어떻게 보면 분통터질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면서도,맹수가 햇볕 아래에서 졸다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는 것처럼 중요한 순간엔 날카롭게 보여준다.[사진기]의 주인공은 발가락을 주무를 때조차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주무른다.

 

 무엇보다도 그의 주인공들은 유머와 냉소를 알고 있다. 유머와 냉소라는 것은 절망이나 좌벌,우울과 죽음이라는 감정의 극한까지 간 후에 그것을 극복하고 여유롭게 삶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왠지 투쌩의 인물들은 늘어나는 뱃살처럼 능청 밖에 남지않은, 버릴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는 남자인 것 같다. 이처럼 인물들에 대해 독자를 상상하게 하는 것은,간결한 단어 속에서도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투쌩의 소설 작법은 영화와 같다. 

 인물들의 감정을 발 드러내지 않고 독자가 영화장면을 보듯이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큰 사건과 이야기가 없이도 독자는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투쌩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투쌩은 레이먼드카버처럼 고요한 일상을 이야기하지만,소설을 덮고 나면 독자는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을 느끼게 된다.그것은 마치 어두운 연화관에서 빠져나와서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찌푸리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동안 느끼는 혼란 속의 감동과도 같다.


 투쌩은 `미니멀리즘`과 `누보로망`작가인데, 누보로망과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페이퍼에 따로 작성하겠다. 또한 투생과 작픔에 대해서 역시 페이퍼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적어두겠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억지도 쓰지 않으면서
마치 점진적으로 죽어가는 것차럼,아니 사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내 삶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 똑같은 물거품이 끊임 없이 바뀌는 것처럼.

나는 그제서야 그토록 원하던 사진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내 존재의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삶의 섬광을 포착했음을.

아름다운 것은 바로 흐름,바로 그거다.흐름,이 소란한 세계 밖으로 향하는 중얼거림. 사고를 멈추고 대명천지에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어떠할까? 말하자면,아니 그 파악할 수 없는 외곽선의 개방벅 혼돈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손가락 사이에 물,광선의 불타는 듯한 매력이 사라져버린 물방울 몇개만 얻으리라.

그 어느 것도,내존재나 내 비존재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삶 이전,그리고 내 눈 앞에 하늘만큼이나 가깝게 있는 삶 이후의 뮤한한 부동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현재 이 순간을....고정시켜 보려고 애썼다.
마치 살아 있는 나비 몸뚱이를 바늘 끝으오 고정시키듯,
살아 있는 나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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