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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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소설의 통령 박상륭이 [칠조어론] 이후 십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박상륭 교도의 열렬한 신자였던 나는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행복했지만
그의 작품이 더 많이 대중들에게 알여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또한 작가들의 작가인 박상륭의 별세는
한국문단에서 큰 별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다] 역시
작가의 일관된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며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니체'와 그의 '차라투스트라'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니체에 대한 도전장이나 다름아닌 이 작품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처럼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늙은 성자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박상륭이 읽은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박상륭의 차라투스트라를 만날 수가 있다. 

 박상륭은 생존작가로서는 전례 없었던 예술의전당의 '박상륭 문학제'를 1999년 진행했다.
(평론가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교도(敎徒)'라고까지 불리우는 일군의 독자들의 영향 때문이기도하다.

 박상륭은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서점 노스셔 북스(North shore Books)를 경영하기도 했으며 
영구 귀국하였다. 

(캐나다 뉴학 시절 그 서점을 방문했던 것이 내겐 영광이었다.
박상륭은 현지 신문에 오로지 글로만 (영어) 이루어진 기나긴 신문광고를 직접 내서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박상륭 소설은 인류의 '원형'을 찾아가는 기나긴 도정이면서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것을
소설작업의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일상 어법을 깨뜨리는 
난해하고 유장한 문체와 철학적 사유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박상륭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다른 어떤 '원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늙은네는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초췌한 모습이 슬픈 듯, 깊은 한숨을 불어냈다. 차라투스트라는 미소만 짓고, 말은 만들려 하지 안했는데, 운명을 초극했기는커녕, 허긴 그 원죄의 무게 탓이었을 것이지, 것인데, 늙은네보다 더 늙어 보였다. 못 입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으니, 가시쟁이나 바위 사이로 다니며, 생활生活을 거둬들이기에 애쓴 흔적으로 남은, 무수한 생채기 자국이나, 움푹 들어간 눈과 볼 등은, 그가 전에 어떤 얼굴을 해달고 있었던지, 그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으려니와, 그러는 동안, 뼈에 발린 피부가, 추위와 더위, 찬 비와 꺼끄러운 바람 따위에 시달리느라 거칠어지고 두터워져, 어린 코끼리나 멧돼지의 가죽처럼 변했는데다, 깎지 못한 머리칼과 수염에 덮여, 사람이기보다는 성성이를, 그것도 병든 성성이를 방불케 했다. 그가 예찬해 마지안했던, 그 대지에 밀착해, 하루하루의, 몸의 삶을 꾸리기는, 동물과 인간을 초극하려는 자에게도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꺼져들고 있는, 삶의 한 재무더기였으나,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쪽은, 비교하면, 타오르는 불은 아니라도, 이글거리는 잉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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