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
장 필립 뚜생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무심한듯 조용히 흐르는 하루을 그려내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미니멀리즘 작가 `장 필립 투쌩`의 [사진기]


 그의 소설들 중 [욕조]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요즘은 이런 작픔을 찾기 어려워진 것이 무척 아쉽다.


 투생의 소설은 간결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통찰력이 매력이기조 하지만,무엇보다도 그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수룩하고 허점이 많이 보인다. 그의 인물들은 느릿느릿 (어떻게 보면 분통터질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면서도,맹수가 햇볕 아래에서 졸다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는 것처럼 중요한 순간엔 날카롭게 보여준다.[사진기]의 주인공은 발가락을 주무를 때조차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주무른다.

 

 무엇보다도 그의 주인공들은 유머와 냉소를 알고 있다. 유머와 냉소라는 것은 절망이나 좌벌,우울과 죽음이라는 감정의 극한까지 간 후에 그것을 극복하고 여유롭게 삶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왠지 투쌩의 인물들은 늘어나는 뱃살처럼 능청 밖에 남지않은, 버릴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는 남자인 것 같다. 이처럼 인물들에 대해 독자를 상상하게 하는 것은,간결한 단어 속에서도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투쌩의 소설 작법은 영화와 같다. 

 인물들의 감정을 발 드러내지 않고 독자가 영화장면을 보듯이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큰 사건과 이야기가 없이도 독자는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투쌩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투쌩은 레이먼드카버처럼 고요한 일상을 이야기하지만,소설을 덮고 나면 독자는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을 느끼게 된다.그것은 마치 어두운 연화관에서 빠져나와서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찌푸리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동안 느끼는 혼란 속의 감동과도 같다.


 투쌩은 `미니멀리즘`과 `누보로망`작가인데, 누보로망과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페이퍼에 따로 작성하겠다. 또한 투생과 작픔에 대해서 역시 페이퍼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적어두겠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억지도 쓰지 않으면서
마치 점진적으로 죽어가는 것차럼,아니 사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내 삶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 똑같은 물거품이 끊임 없이 바뀌는 것처럼.

나는 그제서야 그토록 원하던 사진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내 존재의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삶의 섬광을 포착했음을.

아름다운 것은 바로 흐름,바로 그거다.흐름,이 소란한 세계 밖으로 향하는 중얼거림. 사고를 멈추고 대명천지에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어떠할까? 말하자면,아니 그 파악할 수 없는 외곽선의 개방벅 혼돈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손가락 사이에 물,광선의 불타는 듯한 매력이 사라져버린 물방울 몇개만 얻으리라.

그 어느 것도,내존재나 내 비존재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삶 이전,그리고 내 눈 앞에 하늘만큼이나 가깝게 있는 삶 이후의 뮤한한 부동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현재 이 순간을....고정시켜 보려고 애썼다.
마치 살아 있는 나비 몸뚱이를 바늘 끝으오 고정시키듯,
살아 있는 나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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