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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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 애나 마친.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제목을 가진 번역서들을 보면 꼭 원제를 확인한다. 원제는 Why We Love. 단순명료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모든 것’ 발라서 기대를 부풀리거나 뻥이 세다고 욕먹게 만드는 짓이 합당한가? 초반에는 그런 걱정을 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제목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할만 했다.

-사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 명확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모든 것이다.

저자는 내가 사랑에 관한 모든 걸 알려줄게! 하고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읽을 수록 아, 모든 것 까지는 아니어도 아주 넓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랑에 관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형태의 사랑에 관한 설명을 시도한다. 수를 셀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연구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읽다보면 심리학 하는 요즘 놈들, fMRI랑 PET빼면 이제 연구 못하냐?(예전엔 설문지랑 인터뷰가 주된 방법이었겠지만…과학기술 발달 덕분에 우리도 사회‘과학’다워졌다규!!) 싶게 해당 기술 활용하는 연구가 아주 많이 나온다. 뭐 객관적으로 뇌활성 부위 찍는 거 만큼 확실한 분석이 어디있겠냐… 그런데 뇌는 아니지만 인대파열 본다고 발목 MRI 30분 찍는 거도 아주 뭣같던데…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연구를 위해 웅웅 거리는 폐소공포증 도가니 속을 견딘 참가자들의 평안을 빕니다… ㅋㅋㅋㅋ

단순히 이성간, 혹은 동성간 성애적인 사랑 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간, 친구를 향한, 신, 유명인사, 카리스마적 정치인, 다자연애, 무성애, 반려동물(주파일까진 안 나옴…지면 한계상 반려견 연구에 한정), 사랑에 영향 주는 유전자와 호르몬과 약물, 사랑의 그늘진 면(학대, 통제, 어둠의 3요소? 마키아벨리즘, 싸이코패스, 나르시시즘, 근데 나 이거 세 개 암만 봐도 구별 잘 못하겠는데 뭔 국룰처럼 설문지 요소로 쓰더만…), 사랑이 생존과 생식에 기여하는 방식, 사랑에 관한 사회적 허용, 캬 진짜 내가 더 빼먹은 거도 있을 건데 하여간에 ‘모든 것’ 붙일 만큼 야 이런 거도 연구하냐 싶게 다양한 사례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이쯤되면 저자는… 사랑에 진심인 편이로군…하고 이 정도 정리했으면 중간에 좀 재미없어도 뭐라고 못 하겠다 싶은 느낌이었다. 일단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느낌이라 읽다보면 흥미가 생기는 꼭지가 없을 수가 없었다.

저자는 예전에 ’아버지의 생애‘라는 책을 저술해서 아버지가 된 사람들을 10년 간 조사 연구한 결과를 정리했다.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아..둘이 비슷한 건가?), 문화인류학 쪽에서 성차나 성별 간 유의미한 차이 언급하는 연구 보면 되게 불쾌해하고 또 그것에 관해 반박하는 연구나 저술도 많은 걸로 안다. 인종간 차이도 마찬가지고…그런 탓에 관련 전공 연구자들은 그런 결과 언급할 때마다 유의미한 차이- 뭐 이런 거 한 마디 쓰려고 앞뒤로 우리가 이런 차이를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쓰려는 거 아니고 니들 빡치라고 이러는 거도 아니고 하여간에 이러쿵저러쿵 그렇게 말이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ㅋㅋㅋ 아니 뭐 많이들 좋아하는 (그래서 오히려 이거 싫다고 말하는 게 개성 요소가 되기도 하는) 엠비티아이도 그렇고 우리는 다 다르고 그러다보니 또 비슷한 놈들끼리 경향성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 진정하고…싸우지 말고 ㅅㅅ해…나는 이말을 꽤 좋아하는데 보노보가 부럽기도 한데 무성애나 그레이섹슈얼도 있고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는 (그럼 스스로랑 해…) 사람도 있으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정도로 순화하기로 한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든, 사랑을 잃거나 관계를 망칠까 봐 불안한 사람이든,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휘둘리는 상황에 힘든 사람이든, 사랑이 잘 안 돼 빡치는 사람이든, 나는 사랑 필요 없는데 자꾸 사랑 타령인 몇몇 놈들(죄송합니다) 때문에 짜증나는 사람이든, 실체가 뭔지 설명해줄 수 있는 도구 하나 더 살펴보고 흠 일리있네, 하든 어이가 없네, 하든 관점과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는 아니고 가끔은 지루했지만 자주 흥미로운 책이었고 밑줄도 대빵 많이 쳐서 출판사가 너님 고소 할까 봐 두렵지만 아니 이 책이 이런 좋은 문장이 이렇게 많다고요…하고 일단 그어두고 혼나면 죄송합니다 하고 내릴 생각입니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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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친구나 부모님과 나누는 포옹부터 식량, 물, 치료 등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가장 깊고 본능적인 ‘욕구’인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의 의미가 전면에 드러났다. 의료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 희생을 감수했다. 인간의 협력, 인간의 사랑은 숭고하다. 나는 그것이 인류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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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기는 태어나 수년 동안 돌봐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 아이들도 이제 1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 계속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나는 마흔다섯 살인데도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걱정되고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주장하시곤 한다. 여기에다 인간의 능력으로 기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발달하고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가 성인으로 살아남아 잘 살기 위해서는 아이를 보살펴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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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화 능력은 상대의 거짓을 알아채고, 여러 사람이 대화할 때 말을 시작할 타이밍을 찾고, 자신의 행동이 동일한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는 데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언어 사용에도 필수요소다. 우리가 대화할 때 전하고 싶은 뜻을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보다는 서로 공감하는 농담, 은유, 표현 방식에 의존하므로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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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기분이 한껏 고조된 상태가 된다. 만족감을 얻으려는 강렬한 욕구가 다른 모든 관심을 사로잡는다. 신체적・정서적으로 고통스러운 금단 증상을 겪는다.” 관찰과 개인의 진술로만 도출한 결과였지만, 사랑을 할 때 인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약물’이 약물 중독자의 갈망을 채워주는 마약과 비슷하다는 리보비츠의 견해는 신경생물학계가 사랑의 신경화학적인 특징을 연구하기 시작한 촉진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를 통해 실제로 우리는 사랑에 중독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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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생물종 전체로 봤을 때 여성 대다수에게 자율권이 부여되어야만 짝짓기 행동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페미니즘이 닿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짝짓기 대상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기준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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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임이 밝혀진 충격적인 결과였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관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며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져 정서적・물리적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니 상대를 잘못 골랐을 때는 자신의 판단보다는 친구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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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행동학적 동시성은 이스라엘의 신경과학자 루스 펠드먼이 처음 만들어낸 용어다. 서로 친밀한 유대와 애착이 형성된 사람들은 행동에서 동시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 개념의 기본 토대다. 아마 대부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놀 때 오가는 행동이나 연인끼리 몸짓이나 목소리 높낮이, 언어적인 특징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동시성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학적 수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인끼리, 또는 부모와 자식이 상호작용할 때는 혈압과 체온, 심장 박동이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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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선택한 가족의 역할이 생물학적 가족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선택한 가족은 정서적・지적 지지와 조언을 얻는 존재인 반면, 생물학적 가족이 제공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과 교육에 필요한 도움이 가장 크고 정서적 지지는 이 두 가지와 한참 떨어진 세 번째로 나타났다. 성 정체성을 찾고 싶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는 선택한 가족이 특히 중요한 존재였다. 자신이 성전환자, 사회적 성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 또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반대하는 사람(젠더퀴어)이라고 밝힌 청소년은 생물학적 가족(59.1퍼센트)보다 선택한 가족(81퍼센트)에게 이러한 성적 취향에 관해 털어놓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성애자 청소년은 이 차이가 20퍼센트와 80퍼센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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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장의 이 모든 내용과 앞서 다른 장에서 살펴본 내용을 통해 여러분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얼마나 방대한지 깨달았기를 바란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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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고정된 요소가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가 무언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굉장히 부정확한 설명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전자는 환경과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유전자와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특정 유전자가 있으면 어떤 특징이나 행동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 즉 표현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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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정한 결과를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유전자는 극히 드물다. 복잡한 특성이나 행동일수록 영향을 주는 유전자도 많고, 그중 어느 한 가지가 결과를 좌우할 만큼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사랑과 유전적 요소의 관계도 이 경우에 해당하지만, 사랑의 게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바로 옥시토신 수용체(OXTR) 유전자다.
OXTR 유전자는 다양성이 굉장히 크다. 전문 용어로는 다형성이라고 한다. 유전자의 다형성이란 유전자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이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사랑에 신경화학적인 영향을 주거나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다른 유전자에 비해 OXTR 유전자의 영향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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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의 사소한 정보는 그렇게 시시콜콜 기억하면서 수학 실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뇌의 신피질 기능이 대부분 사회적 인식에 쏠려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생물의 신피질 크기와 그 생물의 사회적 집단 규모는 비례한다. 그렇다면 뇌의 기능과 에너지가 왜 이런 기능에 그토록 대거 할애될까? 1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적 네트워크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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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우리가 헤어진 것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사귀기로 했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다시 만나는 걸 숨긴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서였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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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 사회에서 열정적인 사랑은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사랑을 하면 개인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택하고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되는데 이는 집단주의 사회에 가장 유익한 방향이라고 여겨지는 것, 즉 계층이나 인종, 종교가 같은 사람끼리 결혼을 해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 사회에서는 그러한 시도를 터무니없는 통제라고 생각하며 사랑은 자유로운 것, 개인의 궁극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따라서 열정 없는 사랑은 장기적으로 행복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연애를 경험하지 않는 건 인생을 절반만 사는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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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전 세계 모든 대륙의 74개 사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지위가 높을수록, 즉 여성의 지위가 최소한 남성과 동등하고 핵가족이 일반적인 사회일수록 연인 간의 사랑이 결혼의 기본 요소로 여겨지며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가치 있는 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반면 여성의 지위가 낮고 가족의 범위에 먼 친족까지 포함되는 사회에서는 연인 간의 사랑이 적극적으로 억압되고 결혼의 기반으로 수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연애는 두 사람이 각기 고유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동등한 두 사람의 만남이 사랑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이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핵가족 사회에서는 부부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사회적 활동을 하는 친밀함이 가족의 중심이 되고 자녀를 부부의 힘만으로 키우려면 강한 사랑으로 형성된 두 사람의 유대가 필요하지만, 대가족이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그러한 친밀함의 가치나 유대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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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모든 연애가 당연하게 여겨지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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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성을 잃게 만드는 광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칙을 만든다. 진화의 관점에서는 그런 규칙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사회적 관계를 맺는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계층에 따라 짝짓기 대상과 권력의 범위, 자원 접근성, 자손의 성공이 좌우된다. 모두 정해진 자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에 관한 규칙을 만들면 사람들이 이 규칙을 이해하고 위협과 무력을 써서 규칙을 잘 지키도록 ‘독려’함으로써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구성원을 감시하는 일에 인지적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다.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성욕을 느끼고 아이를 낳고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체계적으로 나뉜 계층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뇌는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대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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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Q+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경우 최소한 가족으로부터, 더 넓게는 지역사회로부터 거부당할 위험이 있고 극단적인 경우 징역을 살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랑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애하면서 생기는 즐거운 일이나 속상한 일을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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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취향을 공개해야만 한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공개해야 할까? 환경의 변화는 이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은 매 순간마다 바뀔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애자는 자신의 사랑이 수용될 것인지 이렇게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고민하거나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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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에요. 우리가 잘 맞으니까,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향상시키니까 절 택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아요. 누군가와 유대를 형성하는, 정말 순수한 방식인 것 같고요. 어떤 규칙의 지배를 받거나 보호를 받는 유대감이 아닌,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긍정적인 관계예요.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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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일대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사랑에 관해 하는 이야기에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면서도 다자간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모든 파트너에게 똑같이 연애 감정을 느낀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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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연애에 집착이라고 할 만큼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무로맨틱aromantic’)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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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와 함께할 ‘단 한 사람’은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일부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나와 인생을 함께할 사람이 ‘여러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 존재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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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사랑하는 종교인의 뇌 활성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활성이 똑같이 나타날까? 신과의 관계가 친구, 연인, 가족과의 관계와 무게가 똑같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통해 얻는 진정한 가치인 건강과 삶의 만족도도 똑같이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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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교를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낀 점인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들보다 신과 연인에 대한 애착이 더 확고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 두 가지 애착 모두 불안감과 회피성이 더 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가 인생에서 맺는 다른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신과의 관계 역시 생의 초기에는 그 관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안정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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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무엇이든 다 말할 수 있고, 절대 거부당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가족, 친구, 연인과는 사이가 틀어질 수 있지만 신과의 관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위험이 없으며, 따라서 신의 사랑은 가장 안정적인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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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버의 말을 빌리자면, “방송에 나온 사람을 친근하게 여기고 유대감을 느끼는 경향은 비정상적이거나 병리학적 문제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익숙해진 사람의 얼굴, 목소리, 개성에 유대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인간의 자연스러운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다. 실제로 인간은 이러한 적응 행동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고 생식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유대감에서 얻는 안전함과 확신, 든든함,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기분은 실제 세상에 더욱 강인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우리는 좋아하는 유명인사를 친구나 연인을 선택할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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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유명인사와의 관계에서 애착이 형성되는 방식을 보면, 인간은 직접 닿을 수 없고 심지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와도 연결되려는 열망을 끊임없이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이와 같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사랑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삶에서 찾아내는 사랑의 가능성은 경이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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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번식 성공에 가장 큰 위협은 여태 투자한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닐 가능성이다. 그래서 성적 부정을 가장 큰 위협으로 느끼며, 그러한 상황에서 강력한 질투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여성의 성공적인 번식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이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잃는 것이고, 정서적 부정이 발생하면 연인이 제공하는 식량과 보호막을 완전히 잃거나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할 위험이 생기므로 가장 강력한 질투 반응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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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저와 아이들에게 채찍을 휘둘러요. 가구와 냉장고, 탁자를 다 뒤집어놓고요. 아들 넷과 저를 전부 침대에 눕게 하고 사이사이를 총으로 쏴요.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 사이에 있는 공간을 쏜다니까요. 그러면서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연습하는 거라고 말해요. 공포에 떨면서 사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 염색도 못하게 해요. 어디든 절대로 못 가게 하고요. 항상 ‘나한테 N자는 꺼내지도 마’라고 하죠. 싫다No고 하지 말란 소리예요.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은 이러한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이해, 소통, 지지, 격려, 헌신, 충실함,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파트너에게 애착과 사랑을 느끼며 그것이 파트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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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파트너를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떠날 경우 아이가 혼자 그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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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반 부그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2장에서 소개한 적합한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알고리즘과 다소 유사한 ‘리더십 지표’가 발달해서 누가 매력적인 리더 후보인지 신속히 가려낼 수 있다. 카리스마와 연관성이 있는 신체적 특징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키와 힘, 매력적인 얼굴(관심을 끌어 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유창한 언변과 몸동작이다. 이와 함께 크고 탄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기능적인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고, 이미 확립되어 있는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은 새로운 구성원도 환영한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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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막 시작한 시기에는 새로운 파트너의 결함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최근 덴마크의 심리학자 우페 슈요트가 실시한 연구에서 우리가 카리스마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오류나 모순을 보고 듣는 기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활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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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갈구하는 감정이 학대에 이용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열망과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히 끌어당기는 자의 이익에 이용될 수 있다. 실제로 북한 사람들은 최고지도자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자유의지로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며, 김정은과 그의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헤어스타일(국가가 허락한 종류 중 하나)을 자랑스레 고수한다. 5년 주기로 실시되는 선거에서는 투표용지에 딱 하나밖에 없는 김정은의 이름 옆에 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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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을 유발해서 같은 집단의 구성원을 편애하거나 다른 집단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옥시토신의 영향이 같은 집단의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경우(집단이 가족, 같은 축구팀 팬, 국가 전체 등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신뢰와 공감, 협력이 증가하고 옥시토신의 영향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 집중되는 경우에는 반대로 인종차별과 편협성, 공격성이 증대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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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 감소와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SSRI의 부작용에 속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덜 느끼고 연인의 감정도 덜 신경 쓰게 되므로 사랑의 감정이 약화되고 해로운 관계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관계를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고 그로 인한 극단적인 질투로 평생 관계를 망치는 사람도 SSRI로 그러한 강박을 약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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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을 열어젖히고 ‘사랑’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대놓고 광고하기 시작하면,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부도덕하다고 분류된 사랑을 없애버릴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동성애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국가가 72개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SSRI가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지나친 우려는 아닐 것이다. 전환 치료(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성애자로 바꾸기 위해 시도되는 치료법–옮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봐도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도 이러한 약은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자초하거나 균형이 기울어진 권력관계에 희생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MDMA는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채는 능력을 약화시키므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고 이 약물을 이용했다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결코 유익하다고 볼 수 없는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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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가 정해진 선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러한 약물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경계가 무너지거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 특히 ‘부도덕’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에게 사용하거나 연인에게 휘두르는 권력으로 활용되는 사태가 벌어져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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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사랑이 인간의 주요 감정(혐오, 공포, 행복 등이 포함된다)은 분명 아니라는 데 동의하며 향수, 질투 같은 부차적인 감정도 아니라고 본다. 사랑은 복합적이고 평생 동안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굶주림, 갈증, 피로와 더 비슷하다. 즉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찾게 하는 동기 또는 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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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술은 사랑을 표현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설명한다. 인간이 가진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섹시한 뇌를 연인이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필하는 수단으로 예술이 활용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진화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랑을 상자에서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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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한다면, 도파민은 활기를 일으키는 호르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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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경험할 때 보상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신경화학물질인 도파민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도파민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랑을 경험할 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경 활성과 도파민의 작용으로 의욕이 생길 때 활성화되는 뇌 회로가 서로 밀접하게 겹친다는 사실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욕구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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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나트는 중독의 특징은 특정한 대상이나 활동에 강한 의욕을 느끼고 그 욕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중독과 사랑이 밀접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사랑이 욕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랑이 욕망, 공포, 분노, 행복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정을 아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이 감정보다 범위가 훨씬 넓다고 보았다. 사랑의 수명도 감정으로 분류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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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화의 과정이며 변화의 동인, 즉 변화의 동기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사랑은 그 사람이 가진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내고(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랑이 개인의 어두운 이면을 끄집어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무시하고) 그가 가진 잠재력을 전부 발휘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나, 가장 행복한 나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내가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면 ‘내가 당신과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내게 이런 모습이 있음을 알게 해줘서 좋다’라는 기분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자기애가 생깁니다. —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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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대상을 찾을 때, 또는 사랑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의 근원 중 일부는 유전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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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 넘게 처음 아빠가 된 남성들을 연구했는데, 그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건 간에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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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빠가 나쁜 짓도 저질렀지만, 널 위해 모든 걸 바꾸려고 노력했단다. 너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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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이 겪은 깊은 슬픔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슈라트는 1960년부터 망치와 끌로 산 너머 병원까지 가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2년 만에 길이 110미터, 폭 9.1미터의 길이 완성되었다. 이제 마을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은 70킬로미터에서 1킬로미터로 단축되었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결단력이 알려지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그의 얼굴이 찍힌 우표까지 나왔다. 다슈라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이제는 누구도 그가 겪은 상실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2007년에 인도 정부는 그가 손으로 만든 길을 정비해서 제대로 된 도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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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는 예술이 성선택의 결과로 진화했고 목적은 유전자를 보여주는 것, 구체적으로는 우수한 인지능력과 높은 지능을 의미하는 창의력과 지능, 위트와 관련된 유전자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작에게 꼬리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뇌가 있다.
제프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데이트 상대를 찾는 글에서 많은 여성들이 유머감각을 언급하고, 예술가들이 엄청나게 섹시하다는 말을 듣거나 실제로 생식 활동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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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어쩌면 남은 일생이 영원히 바뀔 수도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을 시도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생을 바꿔놓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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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 명확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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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7-01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밑줄 진짜 많다.. 정말 다 올릴 만한 걸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회과학서일 때 반님이 더 쉽게 재밌게 책 소개해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반유행열반인 2023-07-01 22:28   좋아요 1 | URL
쉽고 재밌게 느껴지시는 건 유수님이 교양있는 한국어 사용자라서? ㅋㅋㅋㅋ휘뚜루마뚜루 좋아좋아 랄랄라 하는 글도 잘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유수 2023-07-01 22:31   좋아요 2 | URL
어렵게 느낄 때도 좀 있숴여.. 아 이해하고 싶다 이런 기분 ㅋㅋ
근데 예술이 성선택의 결과로 진화.. 새삼 충격이에요. 맞말이긴 한데 ㅋㅋ 번역도 아주 션션하시다. 예술가들이 실제로 생식활동에서 성공을 거둔다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1 22:35   좋아요 2 | URL
여자 또는 남자 또는 둘다 배로 꼬인다….예술하는 사람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어려서 과외하던 애기가 붙임머리 하고 나타나서 짧은 머리 때보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2023-07-0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예쁘다고?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온그림책 8
황인찬 지음, 이명애 그림 / 봄볕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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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황인찬, 이명애.



 6월의 마지막 포트래치…ㅋㅋㅋ탑까지는 아니고…부도?(네이버국어사전 7번째 단어의 2번째 명사 뜻…ㅋㅋㅋ) 몸 성했으면 씩씩하게 걸어갔다 왔을 거리의 신림점에다 우주점 택배로 주문한 세 권. 이 중 2/3는 다 골백작님 때문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두산동아에서 나온, 한자 표기 안 하고 친절하게 한글 번역(?)해 준 원형의 전설은…아주아주 저렴하긴 했지만 세월의 흔적이 겁나 느껴져 버림…에비 지지 하면서 알코올 티슈로 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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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주문 내역을 확인하니 야 왜 그러고 사냐…왜 그렇게 사냐…조금만 사자 싶었다. 스티커북도 있고 커피도 있고 그렇긴 해도 하여간에 50종의 상품을 집에 들였다고 한다… 내 계정으로도 사고 쿠폰 없다고 자녀 계정으로도 사고 막 그랬다… 지난 달에는 아파가지고 병원비로 몽창 쓰더니 연옥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덧없이 소비의 지옥으로 다시 빠지고 있다…책만 산 거 아니고 무지개망고랑 멜론도 엄청엄청 많이 사 먹고 키보드 등등 이거저거 하여간에 많이 사고 풀소유 돼지가 되었다…


 그래도 독서량은 구매량에 비례한다는 지론대로…만화책과 그림책과 시집 등등으로 권수 부풀리기가 적용되긴 했지만 6월에는 오랜만에 낙낙하게 17권을 보았다. 출근 안 하고, 공부도 면제하고, 그냥 읽고 노는 이 시간이 인생에 제일 좋은 때일지도 몰라…라고 하지만 앞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때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늘 그랬다!!!


 마지막 주문에 포함된 황인찬 그림책을 보았다. 그림이랑 글이랑 왜 이렇게 귀여워가지고…

 누가 나더러 예쁘다고 하면, 나는 저 귀여운 아이만큼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뭔 개소리야!! 미쳤구만 미쳤어!!!! 그러고는 대부분 그 말들을 믿지 않았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예쁘다고(진심이든 아니든 친밀하든 의례적이든) 말해주면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나 돌아보면, 대개 엄청 수줍어하면서도 아이 참..이러고 그런데 또 엄청 좋아라 하는 게 느껴졌었다. 아니 수줍어하면서 아이 좋아라 하는 반응…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ㅋㅋㅋㅋ 다들 믿었구나… 안 믿더라도 일단 좋긴 했구나…


 나는 날더러 안 예쁘다 하지만, 예쁘다고 해주는 사람들도 없지 않으니까, 헛살진 않았다.ㅎㅎㅎ 예쁘다,는 사랑한다,에 앞서는지 뒤따르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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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6-30 2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열님은 어떻게 페이퍼를 하루에 두세개씩도 올리리는 건가요? 사실 하루에 하나도 신기하고 대단합니다. 심지어 거의 다 장문에 고퀄임. ㅋㅋㅋㅋㅋ
저한테 어제 경고(?)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50종의 상품 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이랑 우주점이랑 회원직배송 아주 다양하게 ㅋㅋㅋㅋ
예쁘다는 말 믿어도 되지 않나요?! 말하는 사람은 사실 상대가 예쁠 때 예쁘다고 하잖아요. 빈말로 예쁘다고들 하나? 뭐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 예쁨이 막 절대적인 예쁨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보기에 상대의 어떤 면이 예쁠 때 예쁘다고 하는 거니까! 믿어요! ㅋㅋㅋㅋㅋ 전 믿습니다. 아 예쁘게 보이는구나 하고

반유행열반인 2023-06-30 21:14   좋아요 3 | URL
믿어요 믿습니다=난 예뻐 예쁨 믿습니다 ㅋㅋㅋ 예쁜 은오님 안녕하세요
제가 삶의 전반적인 시간을 불신으로 점철하고 살아서 어쩔 수 없던 거도 있는데 나이가 드니까 이제 잃을 게(?)없어서 상대가
뭐라해도 뭐 가져갈게 있다고 하고 가드를 내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저 원래 하루에 페이퍼랑 리뷰 여러 개 올라오는 거 안 좋아했는데 ㅋㅋㅋ성취지향적인 인간이 갑자기 목표를 잃고 뭘 할게 없다 보니 알라딘 죽돌이(원래 진짜 죽돌이들 몇 있었는데 다 떠나고 빈집 지킴이로 ㅋㅋ)짓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었네요…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당분간은 죽돌이 할 거 같습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3-06-30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7권 ~! 왠지 의미심장한 권수 같습니다 ㅋㅋ 열반인님 앞으로 건강도 회복하고 더 좋은 날이 올거라 확신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6-30 21:4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ㅎㅎ17 무슨 의미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세븐틴? 열일곱살? 나는 고1이다? ㅋㅋㅋㅋ

Yeagene 2023-07-01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열반인님 17권!맞아요 출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는 지금 이 순간이 열반인님 인생의 황금기(?)....(부럽습니다...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7-01 13:06   좋아요 1 | URL
저 그런데 출근하던 시절에도 이맘때는 뭐에 홀린듯 저거 비슷하게 읽었더라구요 ㅋㅋ저에겐 여름이 독서의 계절 ㅎㅎㅎ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51285&CustNo=1940574

정확히는 독서기록 아니고 구매기록ㅋㅋㅋㅋ독서기록과 구매기록은 괴리가 매우매우 크다…

알라딘 올해 24주년 이벤트 기획하면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왜냐하면 24주년 강조할수록 자꾸 경쟁업체 예스24를 도와주는 꼴이 될 우려가 크니까…ㅋㅋㅋ

영수증 뽑아주는 게 아날로그 갬성 돋고 자본주의도 돋고 그런데 디자인은 그럭저럭 귀엽고 매년 하는 건데도 그냥저냥 재미있었다.

퀴즈 잘 맞췄다고 만점의 전당에 올려줌

심심해서 어쩌다가 블라인드에서 알라딘커뮤니케이션 일하는 사람들 평점(?)같은 거 봤는데 평균3점 정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니면 다닐만 하고, 상사나 동료만 잘 만나면 워라벨 그럭저럭 맞고, 일하는 거 비해 돈 잘주는 편이고, 수평적 문화에 가깝고, 그런데 자기계발 안 되고, 회사 비전은 없고 ㅋㅋㅋ그런 거 보고 재미있었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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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6-30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발 권수로든 금액으로든 모두들 저를 이겨주세요 ㅋㅋㅋㅋㅋ

북깨비 2023-06-30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매기록과 독서기록간의 괴리.. 🤣 너~~무 와닿습니다. 저는 심각해요. 😭 가끔 안 읽고 다시 팔기도 해서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현타가 오곤 합니다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4:49   좋아요 1 | URL
북깨비님!! 구매하신 액수 보고 잠시 와 나보다 더 산 사람 있어!!하고 기뻐하다가 착각인 걸 알고 좌절했습니다…저는 막 몇 백원 몇 천원짜리 중고를 박박 긁어 모으다보니 이제부터 그만 사고 한 십년 읽어도 책이 남아돌 것 같습니다…그래도 책 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ㅋㅋㅋ

북깨비 2023-06-30 14:58   좋아요 2 | URL
괜찮아요. 다락방님이 올킬하셔서 이제 안심해도 괜찮아요. 🤣🤣🤣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5:09   좋아요 2 | URL
천상계는 절대 못 이기죠 ㅋㅋㅋㅋㅋ알라딘에서 책탑 쌓고 서로 잘한다 더 사라 하는 거 뭔가 포틀래치가 생각났습니다…ㅋㅋㅋㅋㅋ다들 하얗게 불태움…

하이드 2023-06-30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알라딘에 오래 있었을 뿐인거 아닌가 싶습니다. (먼산) 저도 저보다 많은 사람들 내심 찾고 있는데, 찾았어요. 손지상 작가님.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8:1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하이드님 ㅎㅎㅎ제가 독후감 올리기 시작한 게 2018년이라 얼마 안 됐다고 뉴비라고 우겨보려다 헤아려보니 벌써 6년 차 고인물이(어느새) 되어버렸네요…(먼산) 네이버블로그 태그로 검색하니 죄 몇백만원대이다가 알라딘서재 와 보니 역시 스케일이 다 차 한 대씩은 태우고 꼬라박고…내 이럴 줄 알았다… 하이드님도 작가님급의 천상계이시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6-30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진짜 여기 기본 천단위 차 한대값 저도 같은 생각 했어요 ㅋㅋㅋㅋㅋ 유열님도 거의 2천 태우셨네요 아아 ㅋㅋㅋ
알라딘 이런 이벤트 좀 귀여운 듯.... 그리고 고객센터가 친절하고 처리가 빠른게 장점 이부분은 교보 예사랑 확실히 비교됨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30 21:17   좋아요 2 | URL
아 제가 조금 이따가 며칠 후에 제 소원 성취되면 고객센터 관련 포스팅 하나 할 건데 ㅋㅋㅋ구매랑 관련 없구 돈 안 되는(북플 문의 같은 ㅋㅋ) 건 여유적적 일요일에 올린 거 목요일에 답변 해주시더라구요. (오타도 귀엽게 합니다 대신 하빈다 이런 답변으로ㅋㅋㅋ) 유도리 있는 알라딘입니다…교보는 뭐 깎아주는 거도 별로 없고 오프라인 매장 가면 휘둥그레지게 비싸고 그런데도 매출 1위 아닌가요 ㅋㅋㅋㅋㅋ

은오 2023-06-30 22:37   좋아요 2 | URL
아니 돈되는 것만 빨리 답변하는 알라딘 유도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이퍼 기대됩니다 기다릴게요!! 😆

새파랑 2023-06-30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 5위 ‘시리얼‘이 눈에들어옵니다 ㅋ 진짜 작가 이름이 시리얼인가요? ㅋ

구매 상위 0.1퍼센트의 열반인님, 내년에는 수능 상위 0.1퍼센트를 목표로 하시죠 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1 07:32   좋아요 1 | URL
저게 ㅋㅋㅋ마법천자문이라는 어린이 만화 작가인데 고정된 실체(?)인물은 아니고 팀처럼 사람 바꾸거나 프리랜서들 고용해서 그리는 거 같더라구요(그러니까 유령작가…그림체 맨날 바뀜)
최애에 꼽힌게 구매 다수인 어린이책들 관련인데 애들 책이 권수가 많아서 그렇게 됐습니다ㅎㅎ
올해 중반부터 놀아보니까 아니 공부 안 하는게 이렇게 좋은 거였군, 하고 재미들여버려서 걱정입니다 ㅎㅎㅎ신나게 놀다 질리면 한 번 만 더 도전해보겠숩니다 ㅎㅎㅎ감사합니다 새파랑님

Yeagene 2023-07-01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열반인님...전 총 결제금액이 3백만원인가 그렇던데 열반인님에 비하면 완죤 베이비네요 ㅎㅎ 책도 많이 사시고 음반도 많이 사시고 최애작가는 이빈이고 ㅎㅎㅎ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7-01 13:06   좋아요 1 | URL
이빈의 비밀이 애기 어릴 때 안녕 자두야 전 권 사줘서요 ㅋㅋㅋㅋㅋㅋ

아사나 2023-07-20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검색하다가 들어왔습니다
다행이 제가 조금 더 많이 구매했습니다
만화책이지만요.. ㅎㅎ
소설도 좋아합니다. 자주 들릴게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0 14:59   좋아요 0 | URL
참 잘했어요 :) 만화책으로 더 사시는 것도 대단...반갑습니다 아사나님 ㅎㅎㅎ
 
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웃님의 요청으로…19년 전 애기 때 서평 숙제 낸 걸 발굴해서 올립니다…ㅋㅋㅋ스물한살 애기야 너 문장 왜 이따위야?ㅋㅋㅋ

-20041104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

근대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우에노 치즈코, 조한혜정의 『경계에서 말한다』를 읽고

처음 수업시간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제목이 상당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경계‘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의 두 학자가 주고받은 글이니 두 나라의 차이를 긋는 선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짐작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다른 많은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우선 두 저자는 근대를 벗어나 탈근대로 이행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데, 현재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선상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속에서 근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국민이냐 시민이냐를 고민할 때 그 중간에 서 있는 개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문제와 노년의 삶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의 사람들, 두 언어를 가져야만 하는 바이링궐의 모국어와 영어 혹은 자문화연구와 파견연구, 그리고 통역, 유학을 다녀오는 사람들 등. 우에노 치즈코와 조한혜정은 편지글을 통해 여성의 강점이라 할 만한 친근한 언어로 날카롭고 깊이 있게 다방면의 주제에 관한 논의들을 하고 있었다. 형식 때문인지 저자들이 박식하고 글을 잘 쓴 덕인지 몰라도 무거운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편지는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 식민지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는 전쟁의 지배 하에서, 미국과 영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적의 무기, 적의 언어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 ‘바이링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이링궐은 단순히 복종이 아니며, 언어를 거꾸로 사용함으로써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한 현실을 읽어내고 만들어 가는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위를 점하는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오히려 비교우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치즈코의 이 말은 영어 중독증에 걸린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한국말은 제대로 못하더라도 기를 쓰고 영어를 익히려는 사람들, 조기유학붐... 영어에 능숙한 사람을 우대하고 유학생 출신 외국학위를 받은 사람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영어가 지배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우리 것의 강점을 살리며 영어를 익히기보다는 지배적인 흐름에 편승하려고만 해왔던 듯 하다. 조한혜정이 자신의 유학 경험과 일본의 지배를 받던 부모 조부모 세대를 교차하며 가족사를 이야기 한 것은 아직 학문 분야 등 많은 부분에서 식민지를 탈피하지 못한 우리의 상황을 보이려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학술발표회에서 인류학을 자국의 문제해결을 위한 학문으로 여기며 다른 민족을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나라를 연구해야함을 주장한 것도 인상 깊었다.

두 번째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 치즈코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와 남성에 대해 모두 실망을 맛 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의 좌익운동세력에서 파생되었으며 서구에서 유학한 이들을 통해 수입한 것이 아닌 자생적인 움직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조한혜정이 말한 ‘원주민(현지인) 인류학자‘에 대해 상호모순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하면서 서구의 ‘지식의 식민지화‘ 전략을 꼬집는다. 오리엔탈리즘에 반발하여 ‘국학‘을 말하고 역오리엔탈리즘을 내세우는, 그러면서 서구가 일본에게 했듯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같은 일을 행한 일본의 모순됨을 지적하기도 한다. 식민지배/피지배의 경험과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뒤얽혀 있는 피해와 가해 관계를 이야기한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피해자의 자매인 여성이지만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본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됨을 느꼈다. 여성의 성피해가 현실에서 국가적인 문제로 여겨질 때만 부각될 수 있는 것도 개인이 택하지 않은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했다. 식민지배를 받은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일본인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반일감정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던 국가의 테두리가 희미해지고 국가의 위상이 약해지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서 흐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나는 이것도 개인이 국가를 벗어나는 탈근대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식민지배를 한 나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악, 만화, 영화들을 높은 수준에서 생산해내는 나라로 더 와 닿는다. 조한혜정은 치즈코의 편지에 답하듯 한국의 학생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어 냈고, 오늘날의 학생들의 모습은 운동하던 세대와는 많이 변했다. 운동하던 386세대가 이런 변화를 거부하고 신세대를 비난하는 것을 조한혜정은 그들에게 상대주의적 사고와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글로벌화를 이야기하며 그녀는 일본과 한국의 다른 관점을 글로벌화의 ‘시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제대로 글로벌화‘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임을 지적한다.

세 번째 편지는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조한혜정이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소개하는데, 80년대부터 사회주의와 공존해 온, 서구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던 한국 여성운동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두 갈래로 갈라진 흐름에서 조한혜정은 그 중 한 갈래인‘또하나의 문화‘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고 보수 언론에게 그들의 급진성을 ‘들키지 않고‘ 단체를 유지해 왔다. 이런 여성운동들도 결국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졌음을 지적한다. 여성운동과 국가와의 관계를 파악했더라면 좀 더 다르게 운동했을지, 일본은 어떤지를 궁금해하면서. 또한 추신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의 혁명적인 국적포기선언, 군대 성희롱으로 자살한 청년에 대한 국방부의 성명 등을 들어 ‘국가‘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치즈코는 한일비교로 페미니즘 분석을 한 혜정의 편지를 보며 국경을 벗어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셔널리즘의 영향하에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병과 같은, 극복해야 할 내셔널리즘, 국가보다 소중한 개인을 깨닫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적 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국경포기선언을 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네 번째 편지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가, 다중심성의 세계 만들기‘는 우에노 치즈코가 조한혜정의 저서 ‘한국사회와 젠더‘에 대해 감상,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혜정이 말한 시차 개념이나 현재를 다른 사회의 과거에 대응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회가 글로벌한 동시대성 속에 놓여있음을 강조한다. 여성 현실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주부화‘ 현상을 들고 남성이 부여한 틀을 깨는 작업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여성의 빠른 변화 속도와 그로 인한 여성과 남성의 역사적 시차, 부자연스러운 관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원조교제 논의, 비혼화와 저출산화, 이런 현상에 대해 여성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세력에게 대항할 준비를 그녀는 하고 있다. 원조교제나 성매매 문제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혼하지 않는 여성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 낙태를 하는 여성은 그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짐지워진 것들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령화와 미래의 세원 부족 등을 들어 사회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혹은 도덕적인 잣대를 들어 낙태를 반대하는 모습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웃기기도 하고 우선하는 것이 개인이냐 혹은 국가냐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혜정은 치즈코가 영문판 책에서 일본의 경우임을 명시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을 칭찬하며 ˝모든 것이 국지적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하는 시대임을 지적하고, 백인의 역사가 특수하고 국지적임을 드러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동시대성에 대해 치즈코가 비판한 시차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며, ‘비동시성의 동시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임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기존의 주류와 중심을 벗어나되 새로운 중심을 찾는 것이 아닌 다중심의 세계화, 지역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치즈코가 이야기한 주부화를 한국의 상황에서 설명하고, 한국의 비혼화, 소자화-해체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인 한국 영화들에 대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런 현상을 페미니즘이 아닌 소비 자본주의의 대중매체와 문화사업이 만들어냈음을 착잡해하면서)소개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시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도‘ 다섯 번째 편지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출산저하와 고령화를 충격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는 모습을 비판하고, 그런 현상들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제국주의에 대항해 지속가능한 작은 나라를 꿈꾸기도 한다. 여기서 그녀는 고령화와 개호에 대해 고민한다. 집안 어른이 늙으면 당연히 자손들이 돌보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그리고 그 부담이 거의 여성들에게 가는 한국의 상황을 볼 때 개호라는 개념은 상당히 낯설지만 매력적인 것이었다. 가족단위의 보살핌이 정이 있고 아름답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고 언제까지 무조건적인 희생을 특정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적인 개입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다른 것보다도 이러한 제도의 보장과 시행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늘 느낀 것이지만 탈근대의 움직임은 노년준비, 여성문제, 식민지, 비영어권 등처럼 약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주류 이외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혜정은 치즈코가 노년에 관심을 가지듯 자신이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아이를 낳기로 한 선택에 대한 의무라고 말한다. ‘또하나의 문화‘모임과 대안 어린이 캠프 이야기, 규제와 감시를 참지 못하고 학교를 나온 아이들, 거대하고 비능률적인 학교로부터의 아이들 해방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책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일본의 학교를 둘러 본 경험, 다매랜 모임, 교육문제와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자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한 것 등.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불안과 그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음을,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그리 낙관적일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여섯 번째 편지 ‘탈근대를 향한 모험으로 뛰어들기‘에서 조한혜정은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는 경험을 통해 한국의 간호 관행에서 바뀔 점과 유지할 점을 이야기하고, 이처럼 빠른 변화를 겪는 한국사회는 근대화와 탈근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할 때가 있음을 말한다. 교육개혁도 비슷한 맥락으로, 평준화 정책 및 사교육 억제 정책을 고수하는 평등주의자들과 사립고등학교 신설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맞서고 있으며, 학교는 이전보다는 평안한 무기력한 쉼터쯤으로 전락했다고 이야기한다. 대신 학원과 조기유학이 성행하고 그 결과 과외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대학 수업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한혜정은 해체된 학교를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 되살리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면서,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학교 중심 사회‘의 작은 학교 개념을 제시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하자센터의 작은 학교 모델을 소개한다. 그녀는 근대가 해체되면서 사람들 또는 학생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으므로, 교육은 근대를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교육이 학교 내외의 불안과 위협을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많은 경험들을 학교로는 충족할 수 없기에 그녀는 작은 마을 단위의 생활, 교육 공동체를 꿈꾼다. 국가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작은 공동체라는 것은 다소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보살핌의 유대로 묶인 공동육아를 하고 노후를 서로 보살펴주고 온 동네가 교육의 장이 되는 작은 마을은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주의 속에 만연하는 개인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우에노 치즈코는 긍정적이지 않은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택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이가 없어도 노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조한혜정의 ‘학교중심‘과 양육의 사회와는 좀 다른, 보살핌의 사회를 꿈꾸고 그래서 개호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가 아직은 끈끈하게 쥐고 있는 혈연조차 초월하고 혈연이 아니어도 좋고,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당연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녀는 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가질만한 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저자가 각각 개호와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성운동을 하는 것을 보며, 연구하게 되는 학문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가장 열심히 잘 다루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한혜정이 이야기하는 ‘원주민 인류학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앞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 대학을 들어온 직후에는 명확히 잡혀있지 않았는데 점차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하면서,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 전공에 따라 내가 공부하는 사회과학과 교육학에 관한 것, 여성, 약한 사람이라는 경계 안에서 생각하고 혹은 경계 밖에서 안 쪽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찾게 되는 듯하다.

저자들이 다양한 중심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며 세상을 바꾸어나가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간과하고 배제하는 부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학문을 하며 자라온 그들로서는 생존권 투쟁을 하는 노동자 여성의 입장이나 성매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어렵지 않을지(그런 시도도 있어보이지는 않고), 그리고 탈근대화 시도에서 정작 ‘적당히 약하지만 목소리를 낼 여력을 가진사람들‘은 많은 중심중의 하나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런 목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약하고 여유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변해줄 사람을 갖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든 사회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많은 분야에서 근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논의들을 접하게 된다. 주류라는 것이 존재하고 국가 중심, 백인과 남성중심이었던 세상에서 다양한 계층과 인종과 지역의 사람들이 소외 받지 않고 인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 지역에서 노력하는 저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그래서 존경한다. 이 책을 통해 탈근대주의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었고, 나는 어떤 식으로 학문을 하고 해체되는 근대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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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6-30 11: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ㅋ오랜만에 읽고 깜짝 놀램…야 니들 먹물은 노동자랑 성매매 종사자 이런 사람은 대변 안(못) 하잖아? 이러고 깠는데 우에노 치즈코님은 그 후 av배우 하던 여성과 대담집을 내고….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아니…이 책 너무 좋은데? ㅋㅋㅋ품절이니 여러분 제 서평이라도 읽으시고 마음에 차면 중고구매라도… 20년 전 담론인데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부분이 많은 건… 내가 이런 공부 했다는 거 다 까먹고 나만 개빻은 놈으로 바뀌고 세상은 그대로라는 반증…괜히 읽어서 슬퍼짐…

유수 2023-06-30 1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고 싶다고 한 저를 칭찬합니다. 빻기 전(?) 반님도 좋아하빈다. 요즘 쓰시는 서평의 솔직함과 다른 솔직함이 있어서 좋아요. 이거 읽으니까 자꾸 옛날 책을 굳이 뒤지는 제 속내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저는 안도감을 얻고 싶습니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며 살아도 되는지. 20년전의 편지들이랑 반님의 서평이 저의 오늘 하루를 건졌다..ㅋㅋㅋ 읽기 전인데 책 참 좋구나요!!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2:55   좋아요 3 | URL
미숙한 스물하나 애기 반이가 읽은 거니까 성숙한 유수님이 읽으면 아마 더 좋을 거에요 ㅎㅎㅎ 오늘 하루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까 뭐 좋은 거 더 많이 건지고 평안히 보내시길 ㅎㅎㅎㅎㅎ

은오 2023-06-30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으니까 스무살 스물한살때 과제로 제출한 제 독후감이 부끄러워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4:08   좋아요 0 | URL
아니 은오님 왜 제 부끄러움을 보고 부끄러워하세요 ㅋㅋㅋㅋㅋㅋ지금의 나는 저때보다 더 부끄럽다고 한다…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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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8 다이앤 애커먼.

 

Charles Dodge - Earth's Magnetic Field

https://youtu.be/j5MHsnc67yw


-미국의 작곡가 찰스 다지도 이 태국 승려들과 비슷한 작업을 한다. 그는 1970년 6월에서 9월까지, 1961년의 자기 데이터를 특수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와 신시사이저에 입력하여 <지구의 자기장을 연주하는 태양>을 녹음했다. 이 연주의 부제는 ‘컴퓨터에 의한 전자 사운드의 깨달음’이고, 앨범 재킷에는 녹음에 기여한 ‘과학계 동료’ 3명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332)


 이 책에서 청각에 관한 부분이 가장 잘 안 읽어졌는데, 내가 음악에 관해 둔감해진 탓도 있겠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흥미로울 부분도 있겠다. 그런데 그나마 기억 남고 재미있는 부분이 청각 파트에서 많이 나왔다. 찰스 다지의 지구 자기장 음악은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보았다. 저자는 십대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고 하는데, 다른 악기 놔두고 굳이 바이올린인 이유 대는 게 조금 웃겼다. 다른 악기 막 다 까버림…ㅋㅋㅋ


-나는 몇 번 뿡뿡거리다 마는 튜바 연주자들을 동정했다. 튜바 연주자 중에는 남학생도 있었지만, 체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터라, 자리에서 일어서면 번쩍거리는 무거운  금관악기 뒤로 반쯤 가려져버렸다. 나는 신경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타악기 주자들을 케틀드럼 속에 잡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깔짝거리는 새 같은 오보에도 내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항상 코를 흘리는 여자 애들이 연주하는 플루트는 꼭 작은 불꽃을 불어서 끄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클라리넷은 너무 쥐새끼 같은 소리를 냈다. 첼로, 비올라, 베이스처럼 보조 악기로 생각되는 것들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음악은 선율이었고, 영혼을 다해 노래하는 바이올린이었다.(302-303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단체로 때리러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ㅋㅋㅋㅋㅋㅋ)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앞머리 읽다가 포기했었다. 그러고나서 ‘감각의 박물학’을 읽는데, 두 책에서 동물의 감각을 다루는 부분이 은근 겹치는 게 있었다. 그래도 거의 30년 전에 나온 뒤에 읽은 책이 과학에 대해 다루긴 해도 조금 더 문돌이 특화(?)된 느낌으로 잘 읽혔다. 개정판은 어쩐가 몰라도 번역본이 2004년 초판에다 2011년 10쇄로 나온 내 책은 왠일인지 저자 소개와 역자 소개가 모조리 생략되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조금 읽다 말고 아니 저자 뭐하는 사람임…하고 알라딘 저자 소개를 찾아 보았다. 오, 보니까 이 책 말고도 번역된 책들 많아서 전자도서관에 있는 책들 위시리스트에 적어놓고… (’휴먼 에이지‘, ’주키퍼스 와이프‘ 이런 것들) 박물학자, 라고 해서 그럼 박물학은 또 뭘까…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박물관학(다른 전공임)은 있는데 박물학은 없고…자연사, 라는 말이 비슷한 말이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박물학예사로 뽑는 전공은 주로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도 뭐 그런거 다 다룬다. 생물학은 동물학, 식물학, 이렇게 분류도 되는 것 같고… 박물관이랑 크게 관계 없어보이지만 또 책 내용 자체는 진짜 박물관 마냥 잡다하게 이거저거 잔뜩 모아놓고 정리해놓은 느낌이었다. 약간 중구난방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인터뷰한 것, 자기 경험, 학계 연구, 실험 사례, 마구 왔다갔다 하는데 그런데 왠일인지 그렇게 뒤죽박죽인 느낌은 아니고 또 그냥저냥 읽혀서 신기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감각하란 의도셨을까요 ㅋㅋㅋㅋ 


 나는 티끌과 오류를 잘 골라내는 눈을 가졌고, 바깥과 이웃집의 소음에 민감하고, 냄새도 잘 맡고 싫어하는 냄새도 많다. 예민한 감각이 삶을 풍요하게 만들기 보다는 주로 지나친 자극으로 힘이 드는 편이다. 그래서 코로나19 걸렸을 때 후각이 사라지자 오히려 편한데? 냄새 쯤은 내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위층 안마의자? 제습기? 새벽의 청소기? 그런 것들이 내는 저주파 진동소음은 정말 견딜 수가 없어서 반쯤 미칠 뻔 했는데 이제는 견딜 수 있는 약을 발견했다. 

알약 아님…이거 다 귀마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보다도 효과가 좋은 3M에서 나온 굿나잇 이어 플러그! 이어플러그는 원래 쓰긴 했는데 내 귓구멍이 심하게 작은 편이라 (특히 왼쪽 구멍이 짝귀…그래서 플러그가 안 들어가고 바깥에 삐죽 솟음 ㅋㅋ) 그전 것들로는 완전 밀폐가 안 됐었는데, 보라색 벌크로 병 안에 약처럼 100알 들어있는 이 귀마개는 진짜…나의 구원자… 텔레비전 소리든 층간소음이든 이걸로 틀어막으면 인성 마저 좋아지는 느낌이다. 다 견딜 수 있어…


 감각이라는 게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는 이걸 뭐 어찌 전달할까, 싶은데 저자는 온갖 감각을 자신의 경험과 다른 저술과 남들 이야기 최대한 모아가지고 글로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전에 읽은 책들이 이 책을 언급한 경우도 많았고, 이미 감각(시각 미각 후각 촉각)이나 뇌과학에 대한 책들을 제법 본 후라서 아주 새롭구나, 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쉬운 말들로 잔뜩 이런저런 정보나 묘사를 전해줘서 읽을 만 했다. 아, fMRI나 PET 이용되면서 뇌과학 많이 발달했다던데 이미 1990년대 이전에 많이들 썼구나 싶고 ㅋㅋㅋㅋ(아니 이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쎼 해서 책 처음부터 훑어봐도 fMRI고 PET고 하나도 안 나와서 황당했는데 왠지 같이 읽고 있던 사랑과 과학에 대한 책에 나온 연구들이랑 깊이 혼동했지 싶습니다…오류 죄송)


 감각적 표현이나 묘사가 많은데,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밑줄을 많이 긋지 못했다. 


-그러나 구름이 낮게 드리운 날 숲 속에 있으면, 밤은 검은 쇠망치처럼 내려앉고 눈으로 반사되는 광선이 하나도 없으므로 우리는 전혀 보지 못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종교에 관한 수필에서 “모든 색채는 어둠 속에서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367)


 독서 생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관계 대부분이 시각에 의존한다. 운이 닿아 오프라인까지 인연이 이어지면 글자보다 구체적인 이미지, 몸짓, 상대가 내는 목소리 등으로 느낌의 여지가 확장될 수는 있겠다. 알라딘에서는 딱 세 명의 이웃들을 실제로 잠깐이나마 만나봤는데, 그 중 2/3는 아직 내 전화번호부에 있지만 더는 교류가 없다. 뭐 그렇게 되는 것이지… 왜 다들 왔다가 사라지는 걸까? 부재를 너무 커다랗게 느끼지 않으려면 조금만 알고 조금만 느끼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희고 검고 각지고 둥글린 글자들만으로 닿는 것도 오히려 오래오래 이어지는 방법일수 있겠다. 맛볼 것 느낄 것 볼 것 들을 것 많은 세상에서 작은 손길에도 쭈그러지는 미모사 같은 나야…


(그리고 유수님…나보고 이거 읽으래 놓고 어디갔어…이 책 가져가요 가져 가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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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6-29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유수 2023-06-29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필깎이 이뻐요. 저 되게 비슷한 미색 쓰는데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29 09:44   좋아요 2 | URL
저거 알라딘 굿즈로 오래전에 받았어요 ㅋㅋ검정 거는 큰놈 주고 또 받음 ㅋㅋㅋ 소환 주문 통했어!!! 저 책 읽다가 이런 짓도 했단 말입니다…
http://naver.me/52hIWJXz
(피싱앱 안 깔림 ㅋㅋㅋ그냥 이미지 공유임)

유수 2023-06-29 09:48   좋아요 1 | URL
육아현생이랑 밸런스 깨졌어요. 책 거의 구경도 못해서 스스로한테 짜증나구요. 쓰는 건 못해도 읽는 건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안되어요. 그래도 눈팅은 꼭 하쥬. 넘 좋다 소환주문.. 나도 못 읽으면서 반님 읽으라는 객기를 내가 부렸구나ㅋㅋㅋ 청각을 그렇게 느끼셨다니 나는 어땠지? 싶고.. 저도 오늘 구판 열어볼테다!!

유수 2023-06-29 09:50   좋아요 1 | URL
이미지 뭐예요 흑흑.. 감동 먹음 끄억끄억. 나는 화성에도 있었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29 09:52   좋아요 1 | URL
아니 내거 줄라는데 사셨어요?!?(새 책 나오니 구판 중고 많이 풀리더라구요 ㅋㅋㅋ) 저거 책 드리면서 나중에 보고 갬동 하라고 표시한 건데 그냥 오픈 하길 잘했구만요 ㅋㅋㅋ이건 그냥 내책으로 한다…(맘대로 커플템 ㅋㅋ)
저는 애기 3-4살 때 그냥 겨울왕국-치킨리틀-이상한나라의앨리스-기타 아무거나 마구잡이 다 틀어주고 혼자 방에 처박혀서 아님 티비 옆에서 책보거나 인터넷 하는 짓을 자주 했는데… (다행히 애는 안 망가지고 아직은 잘 자람…) 권할 육아법은 못 되네요 ㅋㅋㅋㅋ

유수 2023-06-29 09:56   좋아요 1 | URL
안샀어요. 전자책이라 커플템이 안되니까 그냥 받을게요?!! ㅋㅋㅋㅋㅋ 괴롭지 않은 육아법이 장땡인거 같아요. 저도 겨울왕국-모아나-앨리스 틀면서 키웠는데 둘째는 잘 안통해서 어렵네요 ㅋㅋㅋㅋㅋ 중장비 줄세우고… 그걸 나시키고..🫥🫥얘한테 통할 육아법(?!)을 여직 찾고 있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29 09:5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저희도 작은놈은 막 남시키고…그러는데 그걸 할머니한테 외주…(불효새끼 원조) 주고 저는 아주 가끔씩만 들어주고 밀당합니다. 세 번중 한 번만 들어줌 그러면 황송해 함 ㅋㅋㅋㅋ거기 땅끝 마을이나 아랍에미리트 그런데 아니죠? 지하철 플러스 마을버스 한 번 조합 정도면 언제 한 번 배달 가겠습니다 ㅋㅋㅋㅋ아님 중간 어느 정도에서 ㅋㅋㅋㅋ부담스러우시면 택배(착불. 단호)로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29 10:02   좋아요 1 | URL
유수님 기상이는 누구야? 같이 있었네? (집착)

유수 2023-06-29 10:06   좋아요 1 | URL
착불. 단호 ㅋㅋㅋ 괄호안에 두 단어 왜케 절묘한지 ㅋㅋ 저는 부담없는데! 서울 가면 연락드려도 될까요?근데 기약이 없어요.. ㅋㅋㅋㅋㅋ책 바로바로 정리하셔야 하고 그런 거면 단호 옵션 선택해야하나요!??

반유행열반인 2023-06-29 10:10   좋아요 1 | URL
서울 오실 때를 애태우며 그리며…그동안 제가 고이 애껴둘게요(중고책 주면서 생색냄 ㅋㅋ아 이전 책주인이 딱 한페이지 세로로 접어 자국 내 놨어요 B플러스 중고됨 ㅋㅋ뭔 생활의 지혜 같은 실용지침 있는 쪽이었던 걸로…)
귀찮이서 겉커버 벗기고 읽다가 다시 씌우려고 보니까 저자 역자 소개가 겉껍데기에만 있더라구요? 나 겉껍데기 잘 버리는데 조심성 없는 출판사네 작가정신 ㅋㅋㅋㅋ

유수 2023-06-29 11:02   좋아요 1 | URL
선물(중고여도 저한테는 선물!) 받으면서 까다로운 새끼는 아닙니다 저. 물론 주시면서 신경써 주시는 마음 너무 이해함🧡🧡그럼 그 책장 한칸에 유수랑 기상이랑.. 당분간 좀 재워주세요 ㅋㅋ

Yeagene 2023-06-29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3M이어 플러그 끼고 살다가 귀에 곰팡이 질환 생겨서;;;; 대체품으로 폭신한 이어폰 써요 ㅎㅎ 저희 언니도 저 이어플러그 쓰는데 왜 저만 문제가 생긴건지 모르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6-29 14:24   좋아요 1 | URL
으악 귀가 고생하셨군요 ㅠㅠ샤워하고 귀 덜 마른 상태로 인이어 이어폰이나 귀마개 하면 염증 생긴다는 주의는 들었습니다만 ㅠㅠ저는 전신이 건조해서 귓구멍도 대체로 건조한 편인데 주의하면서 써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