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웃님의 요청으로…19년 전 애기 때 서평 숙제 낸 걸 발굴해서 올립니다…ㅋㅋㅋ스물한살 애기야 너 문장 왜 이따위야?ㅋㅋㅋ

-20041104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

근대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우에노 치즈코, 조한혜정의 『경계에서 말한다』를 읽고

처음 수업시간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제목이 상당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경계‘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의 두 학자가 주고받은 글이니 두 나라의 차이를 긋는 선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짐작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다른 많은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우선 두 저자는 근대를 벗어나 탈근대로 이행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데, 현재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선상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속에서 근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국민이냐 시민이냐를 고민할 때 그 중간에 서 있는 개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문제와 노년의 삶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의 사람들, 두 언어를 가져야만 하는 바이링궐의 모국어와 영어 혹은 자문화연구와 파견연구, 그리고 통역, 유학을 다녀오는 사람들 등. 우에노 치즈코와 조한혜정은 편지글을 통해 여성의 강점이라 할 만한 친근한 언어로 날카롭고 깊이 있게 다방면의 주제에 관한 논의들을 하고 있었다. 형식 때문인지 저자들이 박식하고 글을 잘 쓴 덕인지 몰라도 무거운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편지는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 식민지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는 전쟁의 지배 하에서, 미국과 영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적의 무기, 적의 언어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 ‘바이링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이링궐은 단순히 복종이 아니며, 언어를 거꾸로 사용함으로써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한 현실을 읽어내고 만들어 가는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위를 점하는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오히려 비교우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치즈코의 이 말은 영어 중독증에 걸린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한국말은 제대로 못하더라도 기를 쓰고 영어를 익히려는 사람들, 조기유학붐... 영어에 능숙한 사람을 우대하고 유학생 출신 외국학위를 받은 사람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영어가 지배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우리 것의 강점을 살리며 영어를 익히기보다는 지배적인 흐름에 편승하려고만 해왔던 듯 하다. 조한혜정이 자신의 유학 경험과 일본의 지배를 받던 부모 조부모 세대를 교차하며 가족사를 이야기 한 것은 아직 학문 분야 등 많은 부분에서 식민지를 탈피하지 못한 우리의 상황을 보이려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학술발표회에서 인류학을 자국의 문제해결을 위한 학문으로 여기며 다른 민족을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나라를 연구해야함을 주장한 것도 인상 깊었다.

두 번째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 치즈코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와 남성에 대해 모두 실망을 맛 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의 좌익운동세력에서 파생되었으며 서구에서 유학한 이들을 통해 수입한 것이 아닌 자생적인 움직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조한혜정이 말한 ‘원주민(현지인) 인류학자‘에 대해 상호모순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하면서 서구의 ‘지식의 식민지화‘ 전략을 꼬집는다. 오리엔탈리즘에 반발하여 ‘국학‘을 말하고 역오리엔탈리즘을 내세우는, 그러면서 서구가 일본에게 했듯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같은 일을 행한 일본의 모순됨을 지적하기도 한다. 식민지배/피지배의 경험과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뒤얽혀 있는 피해와 가해 관계를 이야기한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피해자의 자매인 여성이지만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본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됨을 느꼈다. 여성의 성피해가 현실에서 국가적인 문제로 여겨질 때만 부각될 수 있는 것도 개인이 택하지 않은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했다. 식민지배를 받은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일본인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반일감정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던 국가의 테두리가 희미해지고 국가의 위상이 약해지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서 흐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나는 이것도 개인이 국가를 벗어나는 탈근대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식민지배를 한 나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악, 만화, 영화들을 높은 수준에서 생산해내는 나라로 더 와 닿는다. 조한혜정은 치즈코의 편지에 답하듯 한국의 학생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어 냈고, 오늘날의 학생들의 모습은 운동하던 세대와는 많이 변했다. 운동하던 386세대가 이런 변화를 거부하고 신세대를 비난하는 것을 조한혜정은 그들에게 상대주의적 사고와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글로벌화를 이야기하며 그녀는 일본과 한국의 다른 관점을 글로벌화의 ‘시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제대로 글로벌화‘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임을 지적한다.

세 번째 편지는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조한혜정이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소개하는데, 80년대부터 사회주의와 공존해 온, 서구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던 한국 여성운동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두 갈래로 갈라진 흐름에서 조한혜정은 그 중 한 갈래인‘또하나의 문화‘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고 보수 언론에게 그들의 급진성을 ‘들키지 않고‘ 단체를 유지해 왔다. 이런 여성운동들도 결국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졌음을 지적한다. 여성운동과 국가와의 관계를 파악했더라면 좀 더 다르게 운동했을지, 일본은 어떤지를 궁금해하면서. 또한 추신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의 혁명적인 국적포기선언, 군대 성희롱으로 자살한 청년에 대한 국방부의 성명 등을 들어 ‘국가‘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치즈코는 한일비교로 페미니즘 분석을 한 혜정의 편지를 보며 국경을 벗어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셔널리즘의 영향하에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병과 같은, 극복해야 할 내셔널리즘, 국가보다 소중한 개인을 깨닫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적 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국경포기선언을 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네 번째 편지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가, 다중심성의 세계 만들기‘는 우에노 치즈코가 조한혜정의 저서 ‘한국사회와 젠더‘에 대해 감상,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혜정이 말한 시차 개념이나 현재를 다른 사회의 과거에 대응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회가 글로벌한 동시대성 속에 놓여있음을 강조한다. 여성 현실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주부화‘ 현상을 들고 남성이 부여한 틀을 깨는 작업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여성의 빠른 변화 속도와 그로 인한 여성과 남성의 역사적 시차, 부자연스러운 관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원조교제 논의, 비혼화와 저출산화, 이런 현상에 대해 여성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세력에게 대항할 준비를 그녀는 하고 있다. 원조교제나 성매매 문제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혼하지 않는 여성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 낙태를 하는 여성은 그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짐지워진 것들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령화와 미래의 세원 부족 등을 들어 사회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혹은 도덕적인 잣대를 들어 낙태를 반대하는 모습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웃기기도 하고 우선하는 것이 개인이냐 혹은 국가냐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혜정은 치즈코가 영문판 책에서 일본의 경우임을 명시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을 칭찬하며 ˝모든 것이 국지적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하는 시대임을 지적하고, 백인의 역사가 특수하고 국지적임을 드러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동시대성에 대해 치즈코가 비판한 시차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며, ‘비동시성의 동시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임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기존의 주류와 중심을 벗어나되 새로운 중심을 찾는 것이 아닌 다중심의 세계화, 지역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치즈코가 이야기한 주부화를 한국의 상황에서 설명하고, 한국의 비혼화, 소자화-해체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인 한국 영화들에 대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런 현상을 페미니즘이 아닌 소비 자본주의의 대중매체와 문화사업이 만들어냈음을 착잡해하면서)소개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시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도‘ 다섯 번째 편지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출산저하와 고령화를 충격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는 모습을 비판하고, 그런 현상들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제국주의에 대항해 지속가능한 작은 나라를 꿈꾸기도 한다. 여기서 그녀는 고령화와 개호에 대해 고민한다. 집안 어른이 늙으면 당연히 자손들이 돌보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그리고 그 부담이 거의 여성들에게 가는 한국의 상황을 볼 때 개호라는 개념은 상당히 낯설지만 매력적인 것이었다. 가족단위의 보살핌이 정이 있고 아름답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고 언제까지 무조건적인 희생을 특정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적인 개입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다른 것보다도 이러한 제도의 보장과 시행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늘 느낀 것이지만 탈근대의 움직임은 노년준비, 여성문제, 식민지, 비영어권 등처럼 약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주류 이외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혜정은 치즈코가 노년에 관심을 가지듯 자신이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아이를 낳기로 한 선택에 대한 의무라고 말한다. ‘또하나의 문화‘모임과 대안 어린이 캠프 이야기, 규제와 감시를 참지 못하고 학교를 나온 아이들, 거대하고 비능률적인 학교로부터의 아이들 해방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책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일본의 학교를 둘러 본 경험, 다매랜 모임, 교육문제와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자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한 것 등.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불안과 그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음을,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그리 낙관적일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여섯 번째 편지 ‘탈근대를 향한 모험으로 뛰어들기‘에서 조한혜정은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는 경험을 통해 한국의 간호 관행에서 바뀔 점과 유지할 점을 이야기하고, 이처럼 빠른 변화를 겪는 한국사회는 근대화와 탈근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할 때가 있음을 말한다. 교육개혁도 비슷한 맥락으로, 평준화 정책 및 사교육 억제 정책을 고수하는 평등주의자들과 사립고등학교 신설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맞서고 있으며, 학교는 이전보다는 평안한 무기력한 쉼터쯤으로 전락했다고 이야기한다. 대신 학원과 조기유학이 성행하고 그 결과 과외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대학 수업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한혜정은 해체된 학교를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 되살리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면서,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학교 중심 사회‘의 작은 학교 개념을 제시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하자센터의 작은 학교 모델을 소개한다. 그녀는 근대가 해체되면서 사람들 또는 학생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으므로, 교육은 근대를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교육이 학교 내외의 불안과 위협을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많은 경험들을 학교로는 충족할 수 없기에 그녀는 작은 마을 단위의 생활, 교육 공동체를 꿈꾼다. 국가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작은 공동체라는 것은 다소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보살핌의 유대로 묶인 공동육아를 하고 노후를 서로 보살펴주고 온 동네가 교육의 장이 되는 작은 마을은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주의 속에 만연하는 개인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우에노 치즈코는 긍정적이지 않은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택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이가 없어도 노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조한혜정의 ‘학교중심‘과 양육의 사회와는 좀 다른, 보살핌의 사회를 꿈꾸고 그래서 개호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가 아직은 끈끈하게 쥐고 있는 혈연조차 초월하고 혈연이 아니어도 좋고,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당연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녀는 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가질만한 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저자가 각각 개호와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성운동을 하는 것을 보며, 연구하게 되는 학문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가장 열심히 잘 다루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한혜정이 이야기하는 ‘원주민 인류학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앞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 대학을 들어온 직후에는 명확히 잡혀있지 않았는데 점차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하면서,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 전공에 따라 내가 공부하는 사회과학과 교육학에 관한 것, 여성, 약한 사람이라는 경계 안에서 생각하고 혹은 경계 밖에서 안 쪽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찾게 되는 듯하다.

저자들이 다양한 중심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며 세상을 바꾸어나가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간과하고 배제하는 부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학문을 하며 자라온 그들로서는 생존권 투쟁을 하는 노동자 여성의 입장이나 성매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어렵지 않을지(그런 시도도 있어보이지는 않고), 그리고 탈근대화 시도에서 정작 ‘적당히 약하지만 목소리를 낼 여력을 가진사람들‘은 많은 중심중의 하나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런 목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약하고 여유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변해줄 사람을 갖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든 사회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많은 분야에서 근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논의들을 접하게 된다. 주류라는 것이 존재하고 국가 중심, 백인과 남성중심이었던 세상에서 다양한 계층과 인종과 지역의 사람들이 소외 받지 않고 인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 지역에서 노력하는 저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그래서 존경한다. 이 책을 통해 탈근대주의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었고, 나는 어떤 식으로 학문을 하고 해체되는 근대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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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6-30 11: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ㅋ오랜만에 읽고 깜짝 놀램…야 니들 먹물은 노동자랑 성매매 종사자 이런 사람은 대변 안(못) 하잖아? 이러고 깠는데 우에노 치즈코님은 그 후 av배우 하던 여성과 대담집을 내고….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아니…이 책 너무 좋은데? ㅋㅋㅋ품절이니 여러분 제 서평이라도 읽으시고 마음에 차면 중고구매라도… 20년 전 담론인데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부분이 많은 건… 내가 이런 공부 했다는 거 다 까먹고 나만 개빻은 놈으로 바뀌고 세상은 그대로라는 반증…괜히 읽어서 슬퍼짐…

유수 2023-06-30 1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고 싶다고 한 저를 칭찬합니다. 빻기 전(?) 반님도 좋아하빈다. 요즘 쓰시는 서평의 솔직함과 다른 솔직함이 있어서 좋아요. 이거 읽으니까 자꾸 옛날 책을 굳이 뒤지는 제 속내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저는 안도감을 얻고 싶습니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며 살아도 되는지. 20년전의 편지들이랑 반님의 서평이 저의 오늘 하루를 건졌다..ㅋㅋㅋ 읽기 전인데 책 참 좋구나요!!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2:55   좋아요 3 | URL
미숙한 스물하나 애기 반이가 읽은 거니까 성숙한 유수님이 읽으면 아마 더 좋을 거에요 ㅎㅎㅎ 오늘 하루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까 뭐 좋은 거 더 많이 건지고 평안히 보내시길 ㅎㅎㅎㅎㅎ

은오 2023-06-30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으니까 스무살 스물한살때 과제로 제출한 제 독후감이 부끄러워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30 14:08   좋아요 0 | URL
아니 은오님 왜 제 부끄러움을 보고 부끄러워하세요 ㅋㅋㅋㅋㅋㅋ지금의 나는 저때보다 더 부끄럽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