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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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 애나 마친.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제목을 가진 번역서들을 보면 꼭 원제를 확인한다. 원제는 Why We Love. 단순명료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모든 것’ 발라서 기대를 부풀리거나 뻥이 세다고 욕먹게 만드는 짓이 합당한가? 초반에는 그런 걱정을 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제목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할만 했다.

-사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 명확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모든 것이다.

저자는 내가 사랑에 관한 모든 걸 알려줄게! 하고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읽을 수록 아, 모든 것 까지는 아니어도 아주 넓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랑에 관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형태의 사랑에 관한 설명을 시도한다. 수를 셀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연구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읽다보면 심리학 하는 요즘 놈들, fMRI랑 PET빼면 이제 연구 못하냐?(예전엔 설문지랑 인터뷰가 주된 방법이었겠지만…과학기술 발달 덕분에 우리도 사회‘과학’다워졌다규!!) 싶게 해당 기술 활용하는 연구가 아주 많이 나온다. 뭐 객관적으로 뇌활성 부위 찍는 거 만큼 확실한 분석이 어디있겠냐… 그런데 뇌는 아니지만 인대파열 본다고 발목 MRI 30분 찍는 거도 아주 뭣같던데…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연구를 위해 웅웅 거리는 폐소공포증 도가니 속을 견딘 참가자들의 평안을 빕니다… ㅋㅋㅋㅋ

단순히 이성간, 혹은 동성간 성애적인 사랑 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간, 친구를 향한, 신, 유명인사, 카리스마적 정치인, 다자연애, 무성애, 반려동물(주파일까진 안 나옴…지면 한계상 반려견 연구에 한정), 사랑에 영향 주는 유전자와 호르몬과 약물, 사랑의 그늘진 면(학대, 통제, 어둠의 3요소? 마키아벨리즘, 싸이코패스, 나르시시즘, 근데 나 이거 세 개 암만 봐도 구별 잘 못하겠는데 뭔 국룰처럼 설문지 요소로 쓰더만…), 사랑이 생존과 생식에 기여하는 방식, 사랑에 관한 사회적 허용, 캬 진짜 내가 더 빼먹은 거도 있을 건데 하여간에 ‘모든 것’ 붙일 만큼 야 이런 거도 연구하냐 싶게 다양한 사례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이쯤되면 저자는… 사랑에 진심인 편이로군…하고 이 정도 정리했으면 중간에 좀 재미없어도 뭐라고 못 하겠다 싶은 느낌이었다. 일단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느낌이라 읽다보면 흥미가 생기는 꼭지가 없을 수가 없었다.

저자는 예전에 ’아버지의 생애‘라는 책을 저술해서 아버지가 된 사람들을 10년 간 조사 연구한 결과를 정리했다.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아..둘이 비슷한 건가?), 문화인류학 쪽에서 성차나 성별 간 유의미한 차이 언급하는 연구 보면 되게 불쾌해하고 또 그것에 관해 반박하는 연구나 저술도 많은 걸로 안다. 인종간 차이도 마찬가지고…그런 탓에 관련 전공 연구자들은 그런 결과 언급할 때마다 유의미한 차이- 뭐 이런 거 한 마디 쓰려고 앞뒤로 우리가 이런 차이를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쓰려는 거 아니고 니들 빡치라고 이러는 거도 아니고 하여간에 이러쿵저러쿵 그렇게 말이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ㅋㅋㅋ 아니 뭐 많이들 좋아하는 (그래서 오히려 이거 싫다고 말하는 게 개성 요소가 되기도 하는) 엠비티아이도 그렇고 우리는 다 다르고 그러다보니 또 비슷한 놈들끼리 경향성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 진정하고…싸우지 말고 ㅅㅅ해…나는 이말을 꽤 좋아하는데 보노보가 부럽기도 한데 무성애나 그레이섹슈얼도 있고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는 (그럼 스스로랑 해…) 사람도 있으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정도로 순화하기로 한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든, 사랑을 잃거나 관계를 망칠까 봐 불안한 사람이든,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휘둘리는 상황에 힘든 사람이든, 사랑이 잘 안 돼 빡치는 사람이든, 나는 사랑 필요 없는데 자꾸 사랑 타령인 몇몇 놈들(죄송합니다) 때문에 짜증나는 사람이든, 실체가 뭔지 설명해줄 수 있는 도구 하나 더 살펴보고 흠 일리있네, 하든 어이가 없네, 하든 관점과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는 아니고 가끔은 지루했지만 자주 흥미로운 책이었고 밑줄도 대빵 많이 쳐서 출판사가 너님 고소 할까 봐 두렵지만 아니 이 책이 이런 좋은 문장이 이렇게 많다고요…하고 일단 그어두고 혼나면 죄송합니다 하고 내릴 생각입니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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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친구나 부모님과 나누는 포옹부터 식량, 물, 치료 등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가장 깊고 본능적인 ‘욕구’인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의 의미가 전면에 드러났다. 의료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 희생을 감수했다. 인간의 협력, 인간의 사랑은 숭고하다. 나는 그것이 인류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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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기는 태어나 수년 동안 돌봐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 아이들도 이제 1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 계속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나는 마흔다섯 살인데도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걱정되고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주장하시곤 한다. 여기에다 인간의 능력으로 기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발달하고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가 성인으로 살아남아 잘 살기 위해서는 아이를 보살펴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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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화 능력은 상대의 거짓을 알아채고, 여러 사람이 대화할 때 말을 시작할 타이밍을 찾고, 자신의 행동이 동일한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는 데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언어 사용에도 필수요소다. 우리가 대화할 때 전하고 싶은 뜻을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보다는 서로 공감하는 농담, 은유, 표현 방식에 의존하므로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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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기분이 한껏 고조된 상태가 된다. 만족감을 얻으려는 강렬한 욕구가 다른 모든 관심을 사로잡는다. 신체적・정서적으로 고통스러운 금단 증상을 겪는다.” 관찰과 개인의 진술로만 도출한 결과였지만, 사랑을 할 때 인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약물’이 약물 중독자의 갈망을 채워주는 마약과 비슷하다는 리보비츠의 견해는 신경생물학계가 사랑의 신경화학적인 특징을 연구하기 시작한 촉진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를 통해 실제로 우리는 사랑에 중독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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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생물종 전체로 봤을 때 여성 대다수에게 자율권이 부여되어야만 짝짓기 행동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페미니즘이 닿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짝짓기 대상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기준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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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임이 밝혀진 충격적인 결과였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관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며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져 정서적・물리적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니 상대를 잘못 골랐을 때는 자신의 판단보다는 친구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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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행동학적 동시성은 이스라엘의 신경과학자 루스 펠드먼이 처음 만들어낸 용어다. 서로 친밀한 유대와 애착이 형성된 사람들은 행동에서 동시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 개념의 기본 토대다. 아마 대부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놀 때 오가는 행동이나 연인끼리 몸짓이나 목소리 높낮이, 언어적인 특징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동시성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학적 수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인끼리, 또는 부모와 자식이 상호작용할 때는 혈압과 체온, 심장 박동이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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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선택한 가족의 역할이 생물학적 가족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선택한 가족은 정서적・지적 지지와 조언을 얻는 존재인 반면, 생물학적 가족이 제공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과 교육에 필요한 도움이 가장 크고 정서적 지지는 이 두 가지와 한참 떨어진 세 번째로 나타났다. 성 정체성을 찾고 싶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는 선택한 가족이 특히 중요한 존재였다. 자신이 성전환자, 사회적 성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 또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반대하는 사람(젠더퀴어)이라고 밝힌 청소년은 생물학적 가족(59.1퍼센트)보다 선택한 가족(81퍼센트)에게 이러한 성적 취향에 관해 털어놓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성애자 청소년은 이 차이가 20퍼센트와 80퍼센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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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장의 이 모든 내용과 앞서 다른 장에서 살펴본 내용을 통해 여러분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얼마나 방대한지 깨달았기를 바란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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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고정된 요소가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가 무언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굉장히 부정확한 설명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전자는 환경과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유전자와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특정 유전자가 있으면 어떤 특징이나 행동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 즉 표현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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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정한 결과를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유전자는 극히 드물다. 복잡한 특성이나 행동일수록 영향을 주는 유전자도 많고, 그중 어느 한 가지가 결과를 좌우할 만큼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사랑과 유전적 요소의 관계도 이 경우에 해당하지만, 사랑의 게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바로 옥시토신 수용체(OXTR) 유전자다.
OXTR 유전자는 다양성이 굉장히 크다. 전문 용어로는 다형성이라고 한다. 유전자의 다형성이란 유전자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이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사랑에 신경화학적인 영향을 주거나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다른 유전자에 비해 OXTR 유전자의 영향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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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의 사소한 정보는 그렇게 시시콜콜 기억하면서 수학 실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뇌의 신피질 기능이 대부분 사회적 인식에 쏠려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생물의 신피질 크기와 그 생물의 사회적 집단 규모는 비례한다. 그렇다면 뇌의 기능과 에너지가 왜 이런 기능에 그토록 대거 할애될까? 1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적 네트워크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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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우리가 헤어진 것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사귀기로 했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다시 만나는 걸 숨긴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서였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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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 사회에서 열정적인 사랑은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사랑을 하면 개인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택하고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되는데 이는 집단주의 사회에 가장 유익한 방향이라고 여겨지는 것, 즉 계층이나 인종, 종교가 같은 사람끼리 결혼을 해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 사회에서는 그러한 시도를 터무니없는 통제라고 생각하며 사랑은 자유로운 것, 개인의 궁극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따라서 열정 없는 사랑은 장기적으로 행복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연애를 경험하지 않는 건 인생을 절반만 사는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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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전 세계 모든 대륙의 74개 사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지위가 높을수록, 즉 여성의 지위가 최소한 남성과 동등하고 핵가족이 일반적인 사회일수록 연인 간의 사랑이 결혼의 기본 요소로 여겨지며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가치 있는 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반면 여성의 지위가 낮고 가족의 범위에 먼 친족까지 포함되는 사회에서는 연인 간의 사랑이 적극적으로 억압되고 결혼의 기반으로 수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연애는 두 사람이 각기 고유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동등한 두 사람의 만남이 사랑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이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핵가족 사회에서는 부부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사회적 활동을 하는 친밀함이 가족의 중심이 되고 자녀를 부부의 힘만으로 키우려면 강한 사랑으로 형성된 두 사람의 유대가 필요하지만, 대가족이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그러한 친밀함의 가치나 유대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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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모든 연애가 당연하게 여겨지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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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성을 잃게 만드는 광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칙을 만든다. 진화의 관점에서는 그런 규칙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사회적 관계를 맺는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계층에 따라 짝짓기 대상과 권력의 범위, 자원 접근성, 자손의 성공이 좌우된다. 모두 정해진 자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에 관한 규칙을 만들면 사람들이 이 규칙을 이해하고 위협과 무력을 써서 규칙을 잘 지키도록 ‘독려’함으로써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구성원을 감시하는 일에 인지적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다.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성욕을 느끼고 아이를 낳고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체계적으로 나뉜 계층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뇌는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대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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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Q+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경우 최소한 가족으로부터, 더 넓게는 지역사회로부터 거부당할 위험이 있고 극단적인 경우 징역을 살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랑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애하면서 생기는 즐거운 일이나 속상한 일을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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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취향을 공개해야만 한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공개해야 할까? 환경의 변화는 이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은 매 순간마다 바뀔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애자는 자신의 사랑이 수용될 것인지 이렇게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고민하거나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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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에요. 우리가 잘 맞으니까,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향상시키니까 절 택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아요. 누군가와 유대를 형성하는, 정말 순수한 방식인 것 같고요. 어떤 규칙의 지배를 받거나 보호를 받는 유대감이 아닌,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긍정적인 관계예요.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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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일대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사랑에 관해 하는 이야기에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면서도 다자간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모든 파트너에게 똑같이 연애 감정을 느낀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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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연애에 집착이라고 할 만큼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무로맨틱aromantic’)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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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와 함께할 ‘단 한 사람’은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일부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나와 인생을 함께할 사람이 ‘여러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 존재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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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사랑하는 종교인의 뇌 활성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활성이 똑같이 나타날까? 신과의 관계가 친구, 연인, 가족과의 관계와 무게가 똑같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통해 얻는 진정한 가치인 건강과 삶의 만족도도 똑같이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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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교를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낀 점인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들보다 신과 연인에 대한 애착이 더 확고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 두 가지 애착 모두 불안감과 회피성이 더 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가 인생에서 맺는 다른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신과의 관계 역시 생의 초기에는 그 관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안정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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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무엇이든 다 말할 수 있고, 절대 거부당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가족, 친구, 연인과는 사이가 틀어질 수 있지만 신과의 관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위험이 없으며, 따라서 신의 사랑은 가장 안정적인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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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버의 말을 빌리자면, “방송에 나온 사람을 친근하게 여기고 유대감을 느끼는 경향은 비정상적이거나 병리학적 문제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익숙해진 사람의 얼굴, 목소리, 개성에 유대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인간의 자연스러운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다. 실제로 인간은 이러한 적응 행동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고 생식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유대감에서 얻는 안전함과 확신, 든든함,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기분은 실제 세상에 더욱 강인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우리는 좋아하는 유명인사를 친구나 연인을 선택할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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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유명인사와의 관계에서 애착이 형성되는 방식을 보면, 인간은 직접 닿을 수 없고 심지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와도 연결되려는 열망을 끊임없이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이와 같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사랑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삶에서 찾아내는 사랑의 가능성은 경이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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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번식 성공에 가장 큰 위협은 여태 투자한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닐 가능성이다. 그래서 성적 부정을 가장 큰 위협으로 느끼며, 그러한 상황에서 강력한 질투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여성의 성공적인 번식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이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잃는 것이고, 정서적 부정이 발생하면 연인이 제공하는 식량과 보호막을 완전히 잃거나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할 위험이 생기므로 가장 강력한 질투 반응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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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저와 아이들에게 채찍을 휘둘러요. 가구와 냉장고, 탁자를 다 뒤집어놓고요. 아들 넷과 저를 전부 침대에 눕게 하고 사이사이를 총으로 쏴요.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 사이에 있는 공간을 쏜다니까요. 그러면서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연습하는 거라고 말해요. 공포에 떨면서 사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 염색도 못하게 해요. 어디든 절대로 못 가게 하고요. 항상 ‘나한테 N자는 꺼내지도 마’라고 하죠. 싫다No고 하지 말란 소리예요.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은 이러한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이해, 소통, 지지, 격려, 헌신, 충실함,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파트너에게 애착과 사랑을 느끼며 그것이 파트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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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파트너를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떠날 경우 아이가 혼자 그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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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반 부그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2장에서 소개한 적합한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알고리즘과 다소 유사한 ‘리더십 지표’가 발달해서 누가 매력적인 리더 후보인지 신속히 가려낼 수 있다. 카리스마와 연관성이 있는 신체적 특징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키와 힘, 매력적인 얼굴(관심을 끌어 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유창한 언변과 몸동작이다. 이와 함께 크고 탄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기능적인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고, 이미 확립되어 있는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은 새로운 구성원도 환영한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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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막 시작한 시기에는 새로운 파트너의 결함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최근 덴마크의 심리학자 우페 슈요트가 실시한 연구에서 우리가 카리스마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오류나 모순을 보고 듣는 기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활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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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갈구하는 감정이 학대에 이용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열망과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히 끌어당기는 자의 이익에 이용될 수 있다. 실제로 북한 사람들은 최고지도자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자유의지로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며, 김정은과 그의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헤어스타일(국가가 허락한 종류 중 하나)을 자랑스레 고수한다. 5년 주기로 실시되는 선거에서는 투표용지에 딱 하나밖에 없는 김정은의 이름 옆에 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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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을 유발해서 같은 집단의 구성원을 편애하거나 다른 집단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옥시토신의 영향이 같은 집단의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경우(집단이 가족, 같은 축구팀 팬, 국가 전체 등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신뢰와 공감, 협력이 증가하고 옥시토신의 영향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 집중되는 경우에는 반대로 인종차별과 편협성, 공격성이 증대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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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 감소와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SSRI의 부작용에 속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덜 느끼고 연인의 감정도 덜 신경 쓰게 되므로 사랑의 감정이 약화되고 해로운 관계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관계를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고 그로 인한 극단적인 질투로 평생 관계를 망치는 사람도 SSRI로 그러한 강박을 약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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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을 열어젖히고 ‘사랑’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대놓고 광고하기 시작하면,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부도덕하다고 분류된 사랑을 없애버릴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동성애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국가가 72개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SSRI가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지나친 우려는 아닐 것이다. 전환 치료(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성애자로 바꾸기 위해 시도되는 치료법–옮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봐도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도 이러한 약은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자초하거나 균형이 기울어진 권력관계에 희생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MDMA는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채는 능력을 약화시키므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고 이 약물을 이용했다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결코 유익하다고 볼 수 없는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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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가 정해진 선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러한 약물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경계가 무너지거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 특히 ‘부도덕’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에게 사용하거나 연인에게 휘두르는 권력으로 활용되는 사태가 벌어져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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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사랑이 인간의 주요 감정(혐오, 공포, 행복 등이 포함된다)은 분명 아니라는 데 동의하며 향수, 질투 같은 부차적인 감정도 아니라고 본다. 사랑은 복합적이고 평생 동안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굶주림, 갈증, 피로와 더 비슷하다. 즉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찾게 하는 동기 또는 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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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술은 사랑을 표현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설명한다. 인간이 가진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섹시한 뇌를 연인이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필하는 수단으로 예술이 활용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진화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랑을 상자에서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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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한다면, 도파민은 활기를 일으키는 호르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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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경험할 때 보상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신경화학물질인 도파민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도파민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랑을 경험할 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경 활성과 도파민의 작용으로 의욕이 생길 때 활성화되는 뇌 회로가 서로 밀접하게 겹친다는 사실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욕구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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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나트는 중독의 특징은 특정한 대상이나 활동에 강한 의욕을 느끼고 그 욕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중독과 사랑이 밀접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사랑이 욕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랑이 욕망, 공포, 분노, 행복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정을 아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이 감정보다 범위가 훨씬 넓다고 보았다. 사랑의 수명도 감정으로 분류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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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화의 과정이며 변화의 동인, 즉 변화의 동기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사랑은 그 사람이 가진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내고(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랑이 개인의 어두운 이면을 끄집어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무시하고) 그가 가진 잠재력을 전부 발휘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나, 가장 행복한 나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내가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면 ‘내가 당신과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내게 이런 모습이 있음을 알게 해줘서 좋다’라는 기분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자기애가 생깁니다. —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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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대상을 찾을 때, 또는 사랑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의 근원 중 일부는 유전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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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 넘게 처음 아빠가 된 남성들을 연구했는데, 그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건 간에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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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빠가 나쁜 짓도 저질렀지만, 널 위해 모든 걸 바꾸려고 노력했단다. 너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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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이 겪은 깊은 슬픔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슈라트는 1960년부터 망치와 끌로 산 너머 병원까지 가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2년 만에 길이 110미터, 폭 9.1미터의 길이 완성되었다. 이제 마을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은 70킬로미터에서 1킬로미터로 단축되었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결단력이 알려지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그의 얼굴이 찍힌 우표까지 나왔다. 다슈라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이제는 누구도 그가 겪은 상실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2007년에 인도 정부는 그가 손으로 만든 길을 정비해서 제대로 된 도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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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는 예술이 성선택의 결과로 진화했고 목적은 유전자를 보여주는 것, 구체적으로는 우수한 인지능력과 높은 지능을 의미하는 창의력과 지능, 위트와 관련된 유전자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작에게 꼬리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뇌가 있다.
제프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데이트 상대를 찾는 글에서 많은 여성들이 유머감각을 언급하고, 예술가들이 엄청나게 섹시하다는 말을 듣거나 실제로 생식 활동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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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어쩌면 남은 일생이 영원히 바뀔 수도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을 시도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생을 바꿔놓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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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 명확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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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7-01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밑줄 진짜 많다.. 정말 다 올릴 만한 걸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회과학서일 때 반님이 더 쉽게 재밌게 책 소개해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반유행열반인 2023-07-01 22:28   좋아요 1 | URL
쉽고 재밌게 느껴지시는 건 유수님이 교양있는 한국어 사용자라서? ㅋㅋㅋㅋ휘뚜루마뚜루 좋아좋아 랄랄라 하는 글도 잘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유수 2023-07-01 22:31   좋아요 2 | URL
어렵게 느낄 때도 좀 있숴여.. 아 이해하고 싶다 이런 기분 ㅋㅋ
근데 예술이 성선택의 결과로 진화.. 새삼 충격이에요. 맞말이긴 한데 ㅋㅋ 번역도 아주 션션하시다. 예술가들이 실제로 생식활동에서 성공을 거둔다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1 22:35   좋아요 2 | URL
여자 또는 남자 또는 둘다 배로 꼬인다….예술하는 사람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어려서 과외하던 애기가 붙임머리 하고 나타나서 짧은 머리 때보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2023-07-0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