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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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보니 김애란 님의 책을 많이 찾아 읽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김애란 님의 팬이 되어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김애란 님다운 느낌이 묻어났다. 하지만 비교적 초창기 작품, 그리고 단편집이다 보니 이야기의 스토리성이나 각 작품의 특색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스토리 라인이 굵직하고 끊김없이 연결되는 장편소설과 달리 단편소설이 오히려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일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제목인 '침이 고인다'는 상황에 대해선 선명하게 기억에 남으니,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선가 분명 읽었던 이야기 같기도 한데 명확히 기억이 안 나 다시 천천히 읽었다. 장편보다 읽기는 더 어렵긴 하지만, 작가님이 구현하신 소설 속 세계가 인상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이 작품 특유의 느낌과 분위기가 잘 잊히진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작품인 '플라이데이터리코더'는 가장 창의적이지만 이런 작품일수록 비현실적인 면이 있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엔 꽤 좋았던 것 같다. 분명 김애란 님이어서 그려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피로‘나 ‘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긴장되는 옷을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평판을 의식하며, 사랑하고, 아첨하고, 농담하고, 험담하고,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도 한번 돼보고 싶었다.

도 다음엔 레가 오는 것처럼 여름이 끝난 후 반드시 가을이 올 것 같았지만, 계절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우리의 청춘은 너무 환해서 창백해져 있었다.

원래 그렇다‘는 는 말 같은 거, 왠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 좋은 순간은 뭔가 같이 먹을 때‘라는 걸 깨달았다. 밥상 앞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보통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그 상이 그냥 상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밥상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 여자는 알게되었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 사라진 말과 사라진 기억, 끝끝내 알 수 없거나 애초에 가져본 적 없는 장면, 그러면서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같이 느껴지는 풍경과 함께, 무언가 실종된 것들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먹고 자란 것은 아니었을까.

다리 아래서 고요하게 빛나던 강.….. 서울의 큰 강.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뜨거운 차를 마셨을 때와 같이 정갈한 고독이 가슴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과 함께, 내가 떠나온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것들이 그렇듯, 그것은 늘 금방 지나갔다.

"마음만큼 형편없는 게 또 있을까."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준 적도 없고, 나를 업어준 적도 없고, 내가 아플 때 만져준 적도 없고, 내가 늦었을 때 찾으러 나온 적도 없고, 필요할 때 내 옆에 항상 없었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내 책가방을 싸주지도 않을 거고, 내 충치를 뽑아주지도 않을 거고, 내가 맞고 돌아와도 쫓아가주지 않을 거고, 나와 소풍도 가지 않을 테고, 내 입학식 때도 오지 않을 거고, 나랑 같이 자지도 않을 테고, 내가 상을 타도 머리를 만져주지 않을 테고, 언제고 내가 부를 때마다 대답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 같은 거, 너무 좋아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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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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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끝까지 나(독자)를 속였다. 소설 속 화자인 시바타 씨도 나를 속였고, 더불어 자기 자신까지 속인 것 같다. 어쩜 이럴수가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중간까지는 꽤 흥미로워서 하루만에 다 읽을 것만 같았는데, 중간 이후부터는 내내 혼란스러워졌다. 남을 속이려면 나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는 그 말대로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임신을 했다는 거짓말에서부터 시작해 수건이나 목도리로 배가 부르게 하고, 산모수첩 앱과 임신부 에어로빅 등의 운동과 식이요법까지 이용을 하고, 실제로 임신부처럼 느끼고 생활했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초음파에서도 아이의 윤곽이 보이고 태동과 입덧, 통증까지 이어졌으니 이건 가히 거짓말이 아니라 상상임신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출산(?) 이후에도 아이의 (이름과 성별은 출산전에 이미 준비) 사진을 준비하고 둘째 계획까지 세우며 끝까지 주변 사람뿐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와 자신까지도 아이의 엄마인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어떤 의미에선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책 뒷편에 나온 소개글이다. ''여자'의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임신을 선택한 여자.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지옥이었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선택한 뒤 이 소개글을 보자마자 '여자의 지옥'에 대한 글에 기대를 엄청 했었는데, 책 내용이 가짜 임신의 과정에 많이 치중해있어서 이 소개글의 의미가 뭔지 바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내용을 되새겨보니 그 '지옥'이라는 게 우리가 (적어도 여자라면) 너무 뻔하게 알고 있고 어쩌면 필히 겪어야만 하는 그런 내용들이라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일하는 젊은 여성, 처녀'가 사회와 직장 내에서 갖는 차별적 위치의 지옥, 그리고 '일하면서 육아와 살림을 동시에 맡아야 하는 워킹맘'으로서의 끝없는 노동과 희생의 지옥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미처 '지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말았던 그런 '지옥'.
 책을 읽으며 놀랐던 건, 우선 자신이 비밀스레 유지하는 '거짓의 세계'에 대한 시바타의 당당함이었다. 소설이긴 하지만 너무 있을 법하게 그려져서 실제로 그렇게 하면 가짜 임신을 할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뻔뻔함과 치밀함, 강철 같이 굳건한 정신력 없이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또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한 여자에게도 이것저것 묻지 않고 축하와 배려를 해주는 일본의 문화도 무척 놀라웠다. 물론 뒤에서 개인적으로 수근대거나 궁금해할 순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사회에서 가십거리가 될 것 같고, 엄격하고 보수적인 회사에 근무한다면 윗선에 불려가서 어떤 제재를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너무 요즘 세상을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여튼 두 나라 사이의 문화 차이가 조금 느껴진 부분이었다.
 그래도 어느 사회에서나 여자가 강요받는 일이라던가 역할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어서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이었는데도 전혀 거부감없이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차 심부름은 그래도 예전보단 조금씩 없어져가는 듯 한데, 일본에는 아직까지도 저런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나 싶기도 하고 소소한 궁금증들이 생기기도 했다.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를 담보로 해서 상대방을 잊지 않게 할 환경을 만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 외롭다..... 미안, 호소노 씨가 힘들어하는 거랑 완전히 딴 얘기가 돼 버렸네. 그런데 있잖아, 난 항상 외로워.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태어날 때부터 외로운 존재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아. 결국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데."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고 싶어 하는 거야? 진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단정 짓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면 이상하다는 등 의외라는 둥 뭐가 그리 말이 많냐고. 난 말이야. 너무 외롭고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가끔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것 같은 때도 있어."

"남편이 한 거라곤 배설밖에 없잖아. 사정 말고 뭘 더했냐는 말이지. 내 배가 제멋대로 불러 오고, 심지어 토하기도 하고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임신이며 출산의 과정을 겪는 동안 가끔씩 그저 격려나 한번 하면서 옆에서 보고만 있었잖아. 뭐, 애 낳을 때 옆에서울긴 하더라. 하지만 자기가 배설한 결과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데 아주 잠깐 감격했던 거뿐이야. 뭐, 애는 여자인 내가 낳는다고 치더라도, 지금은? 애가 태어났잖아. 내가 모유를 먹일 때 빼곤 나랑 조건이 똑같은 거 아냐? 근데 글쎄 그분께서 아빠 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달라고 하시는 거야 ! 열 달 전부터 본인은 이미 아빠였는데! ‘뭘 또 그렇게 멍하니 보냐? 견학 왔어? 대신 난 밖에서 일하잖아.‘ 하길래 ‘나도 직업이 있잖아.‘ 하고 받아쳤어."

"물론 남편 월급이 더 많아. 그래서 내가 육아 휴직을 낸 거고. 지금 당장 그러라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육아 휴직 내고 내가 일하는 상황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겠어? 자기가 기저귀 한번 갈아 준 일로 내가 왜 그렇게까지 고마워해야 되는 거야? 잠시라도 내가 애 보느라 힘들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거야? 아니면 생각은 해 봤는데 어쨌든 애 엄마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뭐야? 하, 이런 내 속을 남편이란 사람이 알기나 할까? 코앞에서 쿨쿨 잘 자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정치인이나 브라질의 어느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보다 멀게 느껴진다니까."

아무도 이런 게 내 일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일들을 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이봐!" 하고 나를 불렀다.
"이봐, 전자레인지."
나는 전자레인지가 아닌데.

이렇게 이름 없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를 내가는 일‘이었다. 믹스커피라 뜨거운 물만 부어서 타면 됐다. 다들 자기가 마실 커피는 자기 머그 컵에 타서 잘도 마시면서, 이상하게 손님만 오면 그게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못마땅하다는 듯이 내 쪽을 봤고, 내가 모르는 척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면 "이봐, 커피." 하고 불렀다. 나는 커피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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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우울 - 오늘도 나는 상처받은 어린 나를 위로한다
정유라 지음 / 크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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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이 아마 나보다 어릴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잘 커줬다고 다독임과 격려의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나도 내 우울에 빠지고 진흙같은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내 몫의 역할도 못다하는 부끄러운 어른이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전하고 싶었다. '내 상황이 이렇게나 처참히 나쁜데 나보다 더 불행할 수 있을까?' 해도 항상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 또한 불행과 우울로 따지자면 어디 나가서 뒤쳐지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래도 가정내에서 폭력은 없었다. 아버지가 상을 뒤엎은 적은 있어도, 어렸을 때 조금씩 사랑의 매를 맞은 적이 있어도 말이다.
  작가의 말대로 유년시절의 상처는 오래 지속되어 내 삶 전반에 걸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말그대로 그 때의 상처는 한 순간에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딱 한 순간만 삐끗해서 생긴 상처가 있다해도 그 상처의 기억은 아주 오래 지속되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유년시절의 상처가 어느 한 순간에만 생길 리도 없다. 어렸을 땐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부모의 그늘과 가정 환경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환경, 부모의 그릇된 양육방식은 불행한 아이를 길러내고 불행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딸은 어느 정도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같은 여자로써, 인생에서 비슷한 역할을 도맡게 된다는 점에서, 엄마를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식으로써,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 틀을 깰 수 있는 건 딸이 아니라 엄마 그 자신인데, 아무래도 우리시대의 어머니들은 아직 어려운 시대를 겪고, 여자라서 교육도 덜 받고, 이른 결혼생활과 시가생활로 많은 부담을 받은 분들이라서 그조차도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며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던 일들과 나와 너무 비슷하다 느낀 점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애인을 통해 사랑도 받으며 스스로 점차 나아지려 하는 모습에 대단하단 생각과 응원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원만한 교우관계도 맺질 못했고, 사회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는 직업을 가지지도 못했다. 나는 또 이 우울한 삶을 어찌 감당해내야 할까 마음이 착잡해지는 면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고, 유년시절의 상처 이야기를 함으로써 작가님이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폐가 터질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산소가 부족한 느낌, 누워만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지만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는 이 무기력함. 나는 이렇게 키운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자란 나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지난주 금요일 자살을 시도했던 나는 멀쩡히 살아남아 산이 보이는 분위기 좋은 4층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다. 삶이 원래 이렇게 모순적인가? 아니면 내가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엄마의 감정은 곧 나의 감정이었고, 엄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도 행복하기 않았다. 나는 엄마의 우울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로또 당첨자가 산다. 엄마라는 로또를 맞은 아빠 그리고 불로 소득세처럼 따라온 우리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도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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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 김 부장 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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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실제 있을까 싶게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극도로 자기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의 시선, 평판에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라니. 얘기로만 들어도 엄청 불행할 것 같다. 다소 꾸며진 상황임을 감안한다 해도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라는 게 놀라웠다. 2권은 정대리, 권사원 편으로 이어지고, 3권은 송과장 이야기로 꾸며진다는데 흥미로울 것 같다. 글이 짧고 정확히 전달할 내용만 전달하는 용도로 쓰여서 읽기도 엄청 쉬운 편이다.  


돈 돈 돈.
결국 돈인가. 돈이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나.
직업을 잃은 것뿐인데 직업을 잃으니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내가 없어진 기분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굶고, 일하는 자는 굶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사기까지 당했다.
굶지 않고 있는 게 신기할 뿐이다.
감사해야 하나.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인데 애초에 그 후회를 할 필요가 없어. 아무도 답을 모르거든.

일은 적성이 아니라 적응이라고 했던가.
인생 참 모르는 거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운명?
운명도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미 내가 던진 야구공에는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다음에 던질 공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현재에 실패한 것이지 미래에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의 인생이다.

그렇다. 건물주든, 공인중개사든, 세차장 주인이든, 카센터 사장이든 세상에 쉬운 건 없다.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힘들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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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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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는 역시였다. 정유정 님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의 능력이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정유정 님이 집필하실 땐 아예 '그 사람'이 된다고, '싸이코패스'로 집필기간 내내 살아왔다고 말씀하시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만 같았다. 이 작품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화자의 입을 빌어 작품이 쓰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초반에는 왠지 예전처럼 잘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정확히 딱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초반부터 암시되었던 무시무시한 악의 모습이 점차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작을 읽을 때도 그러했나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이번엔 유독 전율이, 공포에 의한 전율이 강하게 느껴졌다. 차이가 뭘까 라고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증오의 '대상'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또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들이지만 결국 불행의 가능성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누구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오싹했다.        
 공교롭게도 작품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엄여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엔 끔찍한 이야기로만 엄여인 이야기를 들었고 바로 기억속에서 제거해버렸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그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나면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 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어 진절머리를 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비슷했고 말이다. 끔찍한 만행을 벌이면서도 결국 '나'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끝장면에서는 결국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인간에겐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도 함께 있다는 작가님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계속 울린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 대신 원치 않은 진실을 가르쳤다. 내일은 바라는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 간절히 원한다 하여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는 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중 어떤 유의 ‘앎‘은 ‘감당‘과 동의어였다.

다만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때가 있다. 농담도, 비난도, 배려도, 위로도,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 때.

그러게. 여기서 뭘 하고 있을까. 어쩌다 삶이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을 그리 잘못 살았기에.
컴컴한 허공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발 디딜 곳 하나 없고 앞이 보이지도 않는 곳으로 무작정 들어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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