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구입한 책


















이즈음 읽는 책은 푸쉬킨의 <대위의 딸> ,<페미니즘의 도전>, <브로크백 마운틴>이 되겠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제서야 읽은게 아쉽다.
대학 때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런 책을 대학1학년때 많이 읽어야 하는데.
모름직이 책이란 감수성이 예민할 때 읽어야 던지는 파문이 남다른 법.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니지 사실 강력하게 읽게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약간은 이 책과 대척점 있는 책도 읽어보고 싶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 읽지 못하겠다. 잘 감이 오지 않는다고 해야한다.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 모음집이라고 해야하는데, 어떤 작품은 강한 울림이 있으나 어떤 작품은 심드렁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은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공감하려나.

<대위의 딸>은 푸쉬킨의 소설인데 이거 참 재미나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점심 시간에 읽었는데 벌써 꽤 읽었다. 내일이면 다 읽지 않을까 싶은데 아껴서 읽어야지.

로디아 노트패트는 no12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다. OTL  
필기감은 만연필류에 가장 적합하고 볼펜이나 사프를 다소 극악이다.
만연필류에게는 잉크를 흡수하는 느낌도 탁월하고 좋을 듯 하다. 물론 본인은 단순 펜을 쓰고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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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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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학부제의 덕택으로 난 비교적 다양한 학문을 전공으로 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학과가 달랐으니 같이 만나면 서로 학과 이야기에 타과가 남일 같지 않은 그런 일상이었다. 사실 학부제의 패단이라면 패단이 학과의 서열화인데, 학부 내에서도 다양한 과가 많았지만 유독 심리학과는 인기가 많았다. 모든 이들이 걱정하는 취직의 문제 탓인지 아니면 순수한 심리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 때문인지는 누가 알겠는가만은. 그리고보면 심리학처럼 대중화되어 있지만 그 학문 자체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과도 드물지 싶다. 
 
 <살인의 해석>은 심리학을 바탕에 깐 추리소설이다. 시대 배경은 1900년대 초반으로 실제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했던 사건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새로운 학문이었던 심리학과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분석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와 그의 추종자들 그들을 받아들이는 신대륙 미국을 보여주고 있다. 심리학에서도 꿈을 통한 잠재의식의 해석을 추구하고, 그 중에서도 성(姓)적인 요소를 통한 분석에 많은 시도를 하였던 그의 분석은 분명 동시대 미국에서 용납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한 분위기를 소설 내내 많이 느낄 수 있다. 

 
 때는 프로이트가 그의 제자 융과 미국에 온 1900년대 초반, 프로이트는 유럽에서는 인정받는 심리학자이지만 미국에서는 의혹에 가득찬 눈길을 받는 노학자이다. 그의 아래에는 그의 제자이자 그를 넘어서려 하는 융이 함께 한다. 그들이 미국에 도착할 즈음하여 뉴욕에서는 명문가 아가씨가 살해 당하고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습격당한 아가씨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아가씨를 치료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의사로서의 갈등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압박, 프로이트를 대해야 한다는 영광스러운 마음과 부담감으로 치료하는 의사는 종종 고민에 빠진다. 또한 다른 한 축으로 스승을 넘어서고자 했던 융의 욕망과 그런 융의 욕망을 지켜보는 프로이트의 모습을 묘사한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소설인지라 결국에는 누가 여자들을 위협하는지를 풀어내고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치 않고 전개한다. 하루만에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다 읽어버렸듯이 이 책은 참 흡입력은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해석>이 멋지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에게는 다소 용두사미라고 느껴질만큼 결말로 달려갈 수록 조금 설득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리소설은 둘중에 하나를 확실히 해야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간파당할 듯 하면, 범인 이야기가 아닌 순수하게 글을 읽는 즐거움을 주는 글을 써야 하고  - 난 이 분야에 레이먼드 챈들러를 뽑겠다 - 이 점이 안된다면 범인을 찾아가는 순수한 쾌감과 트릭을 파해지는 일에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용의자 X의 헌신>을 꼽겠다 -  그런데 <살인의 해석>은 읽는 내내 이도저도 아닌 듯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가 종반으로 달려갈 수록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넣어 기존에 알고 있는 심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부분은 분명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를태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해석 말이다) 특히 폭행의 당사자인 소녀에 얽힌 진짜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채로 끝나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중반까지 가속이 붙으면서 읽었던 이야기가 조금은 맥이 빠지는 느낌이랄까나.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심리학을 한번 더 고민하게 하고, 그 동안 몰랐던 심리학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점은 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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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2 - 정의론 & 제도 히스토리아 대논쟁 2
박홍순 글.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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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난 <히스토리아 대논쟁 2- 정의론&제도>가 정말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정말 이 책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느 날 이 책이 소리소문없이 논술용 교제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라갈까봐 진정 걱정스럽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많지 않았다. '이거 정말 멋진데' '어, 점점 책장이 줄어드네, 좀 천천히 읽어야겠다' '이거 나중에 논술교재로 나오는거 아닌가몰라' 


<히스토리아 대논쟁>은 정의론과 제도에 대한 걸출한 학자들의 논쟁을 옮겨 놓았다. 정의에 대한 롤스와 로직의 논쟁, 제도에 대한 겔렌과 아도르노의 논쟁. 투박하게 정리하면 정의론에 대한 롤스와 로직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롤스의 사회와 소유의 개념이 자연 상태에 인간의 노동을 투입한 경우 그는 온전한 노동력을 투입한 자것이라는 소유론을 표방하고 있고, 로직의 경우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소유의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의 차이에서 시작한 둘의 차이는 로직의 정의는 자신의 노동이 투하된 정당한 소유에 대한 정의인 반면에, 롤스의 정의는 불합리하게 시작하는 사회에서 좀 더 그 간극을 출이는 기회의 평등으로 발전하는 분배적 정의를 정의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느냐, 즉 천부적인 재능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노직의 주장과 그 재능의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전재 하에서만 소유가 인정될 수 있다는 롤스의 입장 차이로 들러나게 된다. 결과적으러 가장 직면한 현실에서 사회약자를 우대하는 차등의 원칙의 역차별이 될 수도 있음에도 정의로운가에 대한 둘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 논쟁은 지극히 시의성이 있는 질문으로 특정 부문에서 존재하는 할당제와 역차별 논쟁을 부르는 제도들이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한 논쟁은 읽는 이를 오래 고민하게 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논쟁은 제도에 대한 논쟁으로 겔렌과 아도르노의 논쟁이다. 제도가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제도는 과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제도가 인간의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도구인지, 아니면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사회 구성월을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인지에 대한 논쟁이 첨예하다. 특히 이들의 논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간극이 앞의 논쟁과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결혼제도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방편인지, 아니면 남성들의 여성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문화의 산물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교육제도가 사회화를 담당해서 사회를 원활하게 유지하게 하는 제도인지 아니면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논리를 주입하기 위한 제도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정의론에 비해 다소 당장 느껴지는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인간이란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 무게감은 결코 적지 않다.


이 책은 특히 장점은 둘 사이의 논쟁점은 끄집어 내서 대화로 정리해주고 있어서 읽기가 편하다는 점이다. 요컨데, 압축적으로 둘 사이에 논쟁점이 되는 사항을 정리해서 대화로 엮고, 거기에 참고가 될만한 사항을 토론의 사회자가 던져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가 쉽고 꽤 재미있다. 또한 각 논쟁의 끝 부분에서는 각 학자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저작물을 일부 발췌해 놓아서 실제 작품을 읽어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요컨데 이런 책의 포인트는 흥미를 끌 수 있느냐이다. 즉, 이 책을 읽고 흥미를 느껴 실제 <정의론>을 찾아서 읽어보고 정의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제도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충분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실제 정의와 제도에 대한 논쟁을 얼마나 요점을 잡아서 옮겨 놓았는지는 난 모르겠다. 애초에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읽어볼 수 있는 기회도 고민할 기회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히스토리아 대논쟁>을 읽으면서 알고 싶어지고, 궁금해지고,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 정도면 이 책은 충분한게 아닐까? 아참, 한가지만 추가하면, 이 책을 제발 논술용 요약교제로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논술이 대한민국 초중고교생의 생각하는 습관을 죽이고 있다는게 내 평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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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살포시 작명센스를 탓해준 다음...(" )( ") 
오늘 들이기로 한 책은 푸쉬킨의< 대위의 딸>
그야말로 finally~라고 밖에는  
함께 넣은 녀석은 로디아 오리지날 패드 No.12
아 어서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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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에도 구입한 책 2
    from 삶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2009-02-10 16:16 
    이즈음 읽는 책은 푸쉬킨의 <대위의 딸> ,<페미니즘의 도전>, <브로크백 마운틴>이 되겠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제서야 읽은게 아쉽다. 대학 때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런 책을 대학1학년때 많이 읽어야 하는데. 모름직이 책이란 감수성이 예민할 때 읽어야 던지는 파문이 남다른
 
 
 
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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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표 에세이에는 특별함이 있다.  많은 소설가들이 에세이집을 내곤 하지만, 난 여태까지 하루키만큼 에세이를 맛갈나게 쓰는, 요컨데 읽고 있는 것 만으로도 하루키라고 느낄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확실히 하루키표 에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와 에세이라는 장르는 비슷하면서도 무던히도 다른 장르여서 둘다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이야기 꾼이라고 할만하다.
얼마전에 출간 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왕 이렇게 된건 '그 동안 못 읽은 하루키표 에세이를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든 책 <우천염천(雨天炎天)>


<우천염천>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여행과정 중간에 등장한다)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한 기록이다. 여행 코스로 그리 구미가 댕기는 코스라고는 할 수 없지만 <먼 북소리>로 이미 그리스는 만나보았으니 터키까지 이 기회에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결과적으로 이게 여행기인가 싶을 정도로 아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는 수도원 기행기라는 이름이 가장 적당할 듯 하고, 2부 터키는 오늘날 대학생이 즐기는 이스탄불 근처의 여행이 아닌 그야말로 하루키 표현대로 터프한 리얼월드 그 자체이다. 사실 전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여행이지만 - 일반적인 여행이라는게 있을까 싶지만 - 그의 여행 이야기는 매력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번쯤은 수도원을 돌아다녀보고 싶고, 정말 힘들겠지만 터키도 하루키처럼 여행을 해보고 싶다.


1988년 즈음의 이야기이니 - 터키 여행기 중간에는 서울 올림픽 중계방송 이야기가 등장한다 - 제법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젊은 시절의 하루키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그리스 여행은 '여행'의 정의를 무엇으로 내리느냐에 다라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거의 등반과 강행군의 중간쯤 된다. 고된 여정을 통해 그리스 정교의 진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남다른지도 모른다.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이들이기에 이쪽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재미난 결론이랄까? 그리고보면 터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가면서 터키를 도는 하루키의 이야기 속에서 터키 사람들의 그 사람들일 뿐이다. 하루키의 시선에 남에게 공감하고 호기심을 쉽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꽤 반할 하루키의 모습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사실 난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하루키가 제안하는 그리스와 터키 여행은 내게는 노동에 가깝다. 하지만 아주 가끔식은, 요즘처럼 어디라도 좋으니 떠나보고 싶고 어쩌면 몸이 고된 편이 지금보다 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때라면, 나도 떠나보고 싶다. <먼 북소리>에 등장하는 하루키 여행기가 더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천염천>속 그야말로 비오는 그리스와 태양이 작렬하는 터키도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꽤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여행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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