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굿 닥터>인데, <배드 닥터>가 됐다. ㅠ.ㅠ

왜? 심장 터져 죽을 뻔 했으니까! 


차윤서(문채원)의 가을밤 고백, 심장이 그만 퍼펑~ 하고 터져 버렸다. 


시온(주원)이는 좋겠다. 그건 '기적'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세상에 그만한 기적은 없다. 


아, 둑흔둑흔 빠담빠담 <굿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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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詩月.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詩적인 책 읽기다. 

쉽게 흔들리고 짧기만 한 이 계절, 그냥 흘려보내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삶을 詩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이런 책을 읽으면 된다! 


 엄기호다. 망가진 학교에 대한 한탄 한 자락 더 보태려는 게 아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학교 현장을 두려워해야 하는 교사의 존재라니, 우리는 왜 이런 지경에까지 도달했을까. 

우선 그들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절망과 망함,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거짓 희망이나 미화가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선생이 된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 그러면서 절망의 끝을 확인하는 것. 엄기호는 교사들이 '타자'를 만나라고 권하는데, 그것, 참 문학적이다. 시적이다. 시인 프르날두 페소아는 말하지 않았던가.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다."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계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만나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답은 없다. 스스로 내야하는 문제지만, 다른 누군가의 통찰과 지성이 필요하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우르바시 바이드, 피터 퀑, 위노나 라듀크, 벨 훅스, 바버라 에런라이크, 매닝 매러블, 마이클 앨버트.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는,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여기의 혁명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이 세계는 절망의 구덩이지만, 절망에서도 삶은 지속돼야 한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詩적 정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건축이 그 최강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이자 자본의 최첨단이 건축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의 긴장과 자본과 예술 사이의 대립이 건축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오브제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현대 건축의 3대 거장 가운데 라이트와 로에 두 사람을 다룬 책이라니 어찌 동하지 않을쏜가.  

잘 된 건축은 詩라고 감히 말하겠다. 현대 건축의 두 거장을 읽는 일은 한 편의 詩를 만나는 일이다. 詩월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 또 혁명이다. 

어쩔 수 없다. 詩월은 그렇다. 으스러진 혁명의 아이콘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10월 9일의 체 게바라. 올해 46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왜 등장하게 됐는지를 사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 혁명과 1948년의 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등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혁명 이후의 삶과 세계가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혁명의 쟁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 이후다. 프랑스 혁명과 볼셰비키 혁명은 그것을 잘 대변해준다. 그러니 쓰러진 혁명 체 게바라를 그리는 일은 詩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끊임없이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완벽한 사람, 체 게바라를 위해 쿠바 커피를 내리고 싶다. 체 게바라는 그 자체로 詩였다. 



'그린'이라는 말에 섬뜩해할 필요는 없겠다. 그놈의 녹색성장 때문이다. 자연과 지구를 초토화하는 일에 '녹색'이라는 레떼르를 붙였던 전 정권의 개념 없음이 불러온 재앙 때문이다. 

그린 어바니즘, 생소한 타이틀인데, 도시와 환경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기 위한 개념이란다. 그것은 삶, 그것도 지속가능한 삶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도시의 역할과 책임을 다룬다. 도시와 시민은 서로 삼투압한다. 장소, 공동체, 생활양식 등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사유이자 실천이다. 궁금하다. 그린 어바니즘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서의 삶을 詩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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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흔들림에 종지부를 찍고 짧게나마 정착하게 해 줄,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 비가 오신단다. 

비를 기다리던 소년과 여인의 마음이 스크린을 뚫고 고스란히 전달됐던,
올해 가장 감성 돋게 만든 어느 여름날의 감성우화, <언어의 정원>. 

구두를 만드는 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미각 장애로 맥주와 초콜릿 맛만 느끼던 여인의 감각을 깨워주던, 레인.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리고 가을이 오면.
당신도 꼭 인사를 해 줘. 안녕, 나의 가을~  
이 비가 가을을 호출하면 널 만나러 갈게. 비처럼 가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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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협동조합토크콘서트는 시청이 아닌 불광역에 위치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진행됩니다.

 

 

[협동조합콘서트]9회 우리는 협동을 먹고 자란다! : 먹을거리 협동조합(9/26)

(참가신청 : 위즈돔 http://www.wisdo.me/3158)

 

인류는 오래전부터 함께 먹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른바 ‘커뮤니티’를 이뤄 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말만큼 사람살이에 흔한 말이 있을까요. 요즘 흔히 말하는 ‘소셜다이닝’은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on, 향연)’을 어원으로 합니다. 오늘날, 강연회로 여겨지는 심포지엄(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지칭한 거죠.

 

그러나 산업화 시대와 20세기를 통과하며 생활 형태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는 먹을거리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에서 변화를 겪었고, 먹을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상실했습니다. 함께 가꾸고 생산하는 재미, 함께 밥을 먹는 재미 등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하는 재미를 알고 있습니다. 먹을거리를 기반으로 두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협동조합들도 꾸려지고 있습니다. 먹을거리의 맛뿐만 아니라 삶의 맛까지 생각하는 이들을 통해 느낌의 협동체를 만나보는 건 어떠세요?

 

- 카페오공 (협동조합형 카페)
- 씨앗들협동조합 (도시농업)
- 삶과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 (먹을거리 의제)

 

 

조정훈 카페오공 대표

카페오공은 42명의 출자자들로 만든 협동조합 형태 카페입니다. 카페오공의 조합원 조건은 백만원의 출자금과 함께 돌보미 활동이 있습니다.

 

씨앗들협동조합씨앗들협동조합 로고

씨앗들협동조합은 대학교 안 버려진 땅에서 텃밭을 가꾸고자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2010년부터 대학텃밭 보급, 레알텃밭학교 개최와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3년동안 꾸준히 도시농업을 실천해오던 씨앗들은 이제 협동조합이 되었습니다.

황교익 끼니 이사장

삶과먹을거리협동조합 끼니는 "우리는 지금 제대로 먹고 있으며 먹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를 묻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먹거리를 고민한 사람들이 모여 그간 얻은 성과를 공유하고 다듬어 많은 이들과 함께하면서 기존의 한국음식문화에 '균열'을 내려는 이들이 모인 협동조합입니다. 끼니는 그래서 누구나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정의롭게 먹기를 희망합니다. 

 

 

9월 26일(목), 협동을 먹고 자라는 먹을거리를 다루는 협동조합들이 가을의 풍성함을 예고합니다. ‘협동조합콘서트 : 협동조합 도시 서울을 그리다’의 아홉 번째 시간. 협동조합 간 협동을 꾀하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고요. 이날 저녁,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 오셔서 먹을거리 협동조합이 조리하는 협동조합콘서트를 만나보세요. 단 한 끼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 사정상 협동조합 등 일부 변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가신청 : 위즈돔 http://www.wisdo.me/3158)  현장 접수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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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 낙관주의. 
세상이 더 나아지고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면서도, 
숙명처럼 자신의 길과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에게 있는 것. 
홍세화 선생님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그런 인장 같은 것. 

오늘 박찬일 셰프님에게 들은, 
가장 격하게 공감했던 비관적 낙관주의. 

아마도 세상을 비관하되, 
역사의 사필귀정을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

그러니까, 
이 풍진 세상,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한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
누군가는 행복한 사람을 이리 말한다. 아마 극히 소수일 법한 행복한 사람.

-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 보수적이지 않다
-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한다
- 개인-집단간 우월관계를 거부하며
권위적이지 않고, 행복의 효과를 믿는다
- 물질 소비보다 경험 소비를 추구하며 상처의 치유 수단으로 돈이 아닌 관계의 힘을 믿고 활용한다


그런 당신을 친구로 뒀었기에 내가 행복할 수 있었나 봐. 

지금 당신이 없어도, 내가 살 수 있는 이유인가 봐. 

고마워,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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