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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인디언 아라파호 족은 이달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거의 한 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말도 있듯이, 우린 여전히 책을 통해 사라지지 않는 세계를 만난다. 다른 체로키 족에겐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11월에 마음의 산책을 권한다. 책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쉿, 당신에게만 권하는 나의 목록이다. 


1. 커피의 역사


사람은 참 신기하다. 커피를 마신 입에서 와 노래가 나온다.

그래서 커피는 한 편의 문학이다.

쉐호데트 수도원의 염소들이 먹은 붉은 장밋빛 카파나무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계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혹은 개인을 인식하게 됐을까. 커피와 계몽이 같은 뜻으로 쓰인 이유다.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은 단순히 커피의 역사를 쓴 것이 아니다커피 한 잔, 그 속에 인류의 문명이 있고, 역사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커피의 역사. 따라서 커피의 역사를 마시는 것은 DNA를 통해 상속한 인류의 정신사와 만나는 것이다.

맞다. 커피는 식물의 프로메테우스다. 이성(계몽)과 감성(낭만) 모두를 품고, 끝끝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중력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류의 소망 불씨를 태운다.

야콥은 이 놀라운 불씨의 역사를 향기롭게 부채질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책과 커피를 곁에 둔다는 건 삶의 축복이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한꺼번에 충족할 수 있다. 책에서 커피향이 난다고, 놀라지 마시라.

야콥이 볶은 커피의 역사가 내는 향일 테니.



2. 셰어하우스

공유는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집은 돈, 시간, 꿈 등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 조절하는,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 집 마련의 신화'가 지금 한국의 모든 병폐를 기하급수적으로 폭발시킨 장본인인 것은 아닐까. 

셰어하우스는 그런 집에서 '공유'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함을 알려주는 또 다른 사회 변화의 시발이 될 것이다. 

공간과 사람, 주거와 삶에 대한 성찰은 더 늦기 전에 자유를 시작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니까. 

부디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나누고 공유하라!




3. 만화 이슬람 

믿고 보는 김태권이다. 나믿김믿. 

더구나 우리에게 이슬람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채 전달된 텍스트다. '한 손에 칼, 한 손엔 코란'으로 대변되는 이슬람의 상징적인 말부터가 잘못 됐으니까.   

제대로 이슬람을 이해하고 안다면, 우리의 세계는 분명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김태권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했을 것이다. 







4.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또 집 이야기냐고? 응. 그렇다. 

집이 그만큼 중요하다. 집에 대한 사유나 고민이 적은 것은 그만큼 아파트라는 무게에 짓눌린 것도 하나의 이유이리라. 

당신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회사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먹는 것과 있는 곳이다. 

뭣보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다. [집을, 순례하다]로 만났던, 일본의 주택전문 건축가. 그가 산기슭 비탈진 곳에 14평 오두막을 짓는 과정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어찌 언급하지 않겠는가. 작은 집, 스몰하우스, 그속에 담긴 넓고 큰 삶. 리틀 빅, 스몰 빅의 이야기다. 

건강한 주거와 삶, 그 원점에 대한 이야기라니, 놓치면 후회한다! 



5. 부수적 피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로 우리의 '불평등 불감증'에 죽비를 때린 지그문트 바우만의 또 다른 불평등 시리즈다. 

'부수적 피해'라는 미국 군사 용어는 얼마나 잔인하고 용렬한 단어인가. 불가피한 민간인 피해라니. 

부수적이라는 말 속에 우리는 불평등의 속살을 본다. 

그 노골적인 불평등 획책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죽비에 우리의 기존 관념은 자꾸 '디스'를 당해야 한다. 

불평등에 무감해지도록 강요당한 자들의 협잡에 우리는 행복도, 삶도 다 뺏길 지경이니까. 

누구의 삶도 '부수적'이지 않다! 당신이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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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다." 아무렴, 20년 전 하늘이 리버 피닉스라는 청춘을 훌쩍 우리로부터 떼어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욕심쟁이 하늘!


20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날 이후, 

내게 詩월의 마지막 날은 늘 리버 피닉스의 차지였다. 

세상에는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이 있다. 

굳이 이유를 캐물어도 싱긋 웃어주고 말면 그뿐인 것이 있다.


쉬파, 누구는 스물 셋에서 영원한 청춘으로 남는다. 

억울하다. 역시, 억수로 잘 생기고 볼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영원한 청춘을 그리면서 말이다.


내게 詩월 마지막날의 커피는 그래서, 리버 피닉스다.

리버 피닉스를 그리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커피다.


언제고 詩월의 마지막 날, 당신만을 준비해 놓은 커피 레시피가 있다.

그 커피를 당신에게 건네며 나지막이 말할 것이다. Stand by me!


그래, 꽃 같은 청춘이다. 시들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피고 마는 꽃.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만에, 아프리카 청춘이도다~ 


안녕, 리버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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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매터의 사진에 늘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한 순간에 농축된 감정선 때문이다. 

그 결이 어찌나 섬세하고 농익었는지,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전부를 던져야 사랑을 얻는다!

조던 매터의 사진이 말하고 있는 바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랑에 대한 어떤 진실. 


안 생겨요?

아무렴, 공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http://www.procope.org/648


내가 품은 사랑에 대한 아이러니는,

인류를 사랑하긴 어렵지 않으나, 한 사람을 사랑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

그래, 그러니까, 사랑이지! 


편협한 내가 사랑하는 몇 되지 않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

사랑하는 이들에게(정재형). 


이 선율, 사랑하는 당신들이 떠오를 때마다 듣는다. 

사랑하는 당신들, 이 선율을 귀에 담을 때마다 떠올린다. 


이 선율과 함께 내가 내린 커피를 사랑하는 당신들과 함께 마신다면, 

내 삶은 그것으로 충분하고 충만하다. 고마워, 내 사랑들...


언젠가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당신에게, 

이 곡을 피아노 연주해주고 싶다. 밤9시, 외로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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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풀리지 않을 오해를 안고 무덤에 있는 여자가 있다.

그 오해는 어떻게든 끝끝내 지속될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오늘 커피수업 하면서, 커피 내리면서, 커피 마시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그 오해, 그녀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이다.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그 말, 앙투아네트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거의 모든 것이다.

허나,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 말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를 단두대로 몰아낸 자코뱅당이 자신들의 공포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다.  http://swingboy.net/532


10월 16일은 그녀가 붉은 피를 쏟으며 사라진 날(1793년)이자, 

세계 식량의 날이다. 


재밌는 우연이다. 또 흥미로운 우연이 덧붙여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의 류이치로 교수에 의하면,

앙투아네트는 카페(살롱)문화와 커피 보급에 힘을 쏟았다.  

 

 

이유가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서라기보다(물론 진짜로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18세기 프랑스 귀족층의 커피문화를 이끈 뒤바리 부인(바리 백작 부인) 때문이었다. 앙투아네트, 문화적 소양을 높이 평가받은 뒤바리 부인을 따라잡고 싶었다. 


그러나 카페와 커피 보급에 힘을 쏟은 앙투아네트의 행동은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날아왔다. 그 카페에 함께한 계몽 사상가의 연설에 카페 시민, 카페 대중은 절대왕정에 맞서는 시민의식을 키웠다. 


아뿔싸, 그녀의 신분과 지위를 위태롭게 할 자양분을 그녀 스스로 북돋은 것이다! 어쩌랴. 그것이 역사의 운명인 것을. 그녀가 물을 준 커피와 카페는 시민계급 형성에 윤활유가 됐고, 마침내 시민계급이 추동한 혁명은 그녀의 목을 날렸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내리고 수업했던 커피는 역사의 쓴물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의 커피. 

갑자기 추워진 가을 날씨는 그녀를 기억하라는 신호였을까. 

식량과 식품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라는 계시였을까.  


여전한, 그리하여 영원히 봉인될 악플에 시달릴 무덤 속 앙투아네트의 눈물은, 또한 여전하며 영원히 구조적 불평등에 시달릴 식량 분배의 문제는 커피를 통해 흘러내린다.  


다시 반복하고 상기해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한 악성 댓글이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문제가 아닌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부패가 곪고 곪아서 터졌다. 1%의 문제였다. 


식량의 문제는 곧 생존이며, 이것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서 저항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1%만 배부른, 99%가 굶주리는 신자유주의·금융자본의 탐욕의 도가니가 인민들의 봉기를 돋는다. 혁명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던 커피는 초거대권력이 된 자본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아니, 없을 것이다. 자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세습화될 것이니까.  


나는 오늘 '마리 앙투아네트'의 검은 눈물을 뽑고 마셨다. 

내일(10월 17일)은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더 춥단다. 

식품정의를 생각한다. 좋은 커피, 함께 마시고 싶다. 

바로, 당신과 함께. 가을밤에. http://www.wisdo.me/3796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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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월 9일. 

Che를 내리는 시간. 

혁명 품은 쿠바 커피. 

46주기를 맞은 나의 리추얼.


詩月은 그렇게 혁명이 스러진 계절이다.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그만 쉬이 놓치고 마는 계절처럼 혁명도 마찬가지.



그래서 Che는 詩다. 가능성만 영원히 봉인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詩.

내가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남자 체 게바라의 46주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커피를 내리면서 詩를 떠올리는 일. 혁명이 미국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체의 죽음은 이듬해 68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나의 커피에는 그런 시적 상상이 함께 담긴다.  


벤세레모스(venceremos). 

10월 9일 내가 내리는 쿠바 커피의 이름이다. 당연히 내가 붙인 이름이고. 



체 게바라, 편지 말미에 늘 이렇게 썼다. 

조국이 아니라면 죽음을 (Patria o muerte)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Venceremos)

- 사령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Comendero Ernesto Che Guevara)


벤세레모스, 이 스페인어의 뜻은 이렇다. 우리 승리하리라. 

글쎄, 체는 승리를 확신했을까. 확신 여부는 물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체가 미국의 패악질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니 아마도 그 승리,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체는 그럼에도 그렇게 뱉으며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패배를 향한 숭고. 

나는 그 비관적 절망의 정의를 담아 벤세레모스 내려드린다. 혁명의 피 같은 커피를.


벤세레모스는 여러 차례 언급도 했지만,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 세계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잡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1970년 인민연합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사용됐다. 아옌데는 그러나 1973년 미국의 꼭두각시 피노체트에 의한 쿠데타로 9월 11일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벤세레모스 커피에 역시 혁명의 피가 묻은 이유다. 


詩月엔, 커피와 혁명과 詩가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당신이 있었다. 가능성만 영원히 봉인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당신이라는 시 詩. 그해 시월에 당신이 왔고, 커피가 왔고, 시가 왔고, 혁명이 갔다. 

나의 영원한 벤세레모스. 밤9시, 당신만을 위해 내린다. 



커피 방앗간


그녀가 빻아 내리는 커피 속에는

굵은 무쇠 바늘 지나간 길이 있다

한 땀씩 건넌 자국 위에는

시린 봄을 건너는 탱자나무 검푸른 가시

칼날 세우는 소리와

봄 사과나무 창으로 드는 바람 소리

사랑을 잃은 여자들의 눈물방울이 맺혀있다

 

매운 시간을 건네는 소리들 소복 스민 커피 호로록

호로록 마시다 보면

겨울 소포 같은 두툼한 누비 바다에

가만히 능선을 넘어가는 발자국 소리와

늦은 자국눈 내리는 소리 비쳐든다


겨우내 살브랑살브랑 낮은 햇살 드나든

이 오지그릇 속에도 봄이 와

곱게 4월의 문을 열어놓는 집

빗살무늬 볕살 비껴 내리는

햇살 좋은 그 집


- 김만수 詩集, <바닷가 부족들>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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