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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읽기 - 전체주의의 탐험가, 삶의 정치학을 말하다 ㅣ 산책자 에쎄 시리즈 8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 / 산책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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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인간에게 선(善,good)보다는 악(惡,evil)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항상 쫒아다니게 마련이다. 특히 선에 반대되는 이분법적인 개념의 악은 고래로부터 너무나 강렬히 각인되어 있는 관계로 굳이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있어 일종의 시금석같은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절대선과 대비되는 절대악이라는 개념이 아닌 막연히 악에 대한 개념정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딘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현실적인 문제이다. 현실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디까지가 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한 어느 정도면 사회의 지탄을 회피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행위를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차원적인 사유를 뒤로 하더라도 우리는 꾸준히 그러한 완충지대를 적절히 만들고 운영하면서 절대선의 향한 극히 도덕적인 성찰은 아니더라도 절대악은 아니라는 적당한 위안감을 스스로 창출시키면서 악에 대한 모호한 경계선을 확대 재생산해왔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세계사를 상고해 보더라도 과연 악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 만큼의 모호한 이중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니크한 개념으로 잘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사유는 바로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어느쪽을 선택하고 어느쪽을 확대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악의 프리즘은 하늘과 땅차이만큼이나 변동성을 가질수 있다는 개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대변되는 전체주의라는 정치적 산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치사회적인 구조적인 문제이면의 철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멀리 갈필요성 없이 우리 사회의 현 주소만을 살펴보더라도 이 개념은 정의는 어느정도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 사례속에 숨겨진 혹은 들어나기를 억제받거나 전혀 도적적인 죄책감을 교묘하게 빗나가게 하는 악의 평범성을 통해서 정치적,철학적,사회적 현상을 새롭게 보는 프리즘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로 전체주의의 이해를 우리사회 구조와 더불어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철학적 담론에 대한 다소 어려운 밑그림형태의 형이상학적인 이해 보다는 악의 평범성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에 도움이 된다. 세계사에 나타났고 그리고 현재도 진행중인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서 전체주의가 어떻게 조직과 개인들에게 악의 평범성을 부지불식간에 강요하고 서서히 각인시키는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것 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저작이라고 해야 겠다. 절대악 내지는 한 사회의 통념상 정의되는 선에 반대되는 개념의 악이라는 정형화되고 도식적인 구조적인 형태의 인지보다 평범성을 가장하여 절대악의 한축을 교묘하게 벗어난 상대적인 개념의 악에 대해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의미부여가 중요함을 인식하게 한다. 세계 그리고 지금도 한국사회에 만연된 이러한 악의 평범성이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아렌트 읽기>는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