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바쁜일과를 대충 정리할때인 오후 5시경이면 어김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애국가와 동시에 확성기에서 사정없이 울려퍼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더불어 진행되었던 "국기 하강식"을 겪은 세대로서 '국가'라는 개념은 머리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현상으로 국가를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고 절로 바른자세를 취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야구장에서 국민의례가 있을때도 역시 그 자연스운 분위기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시민들은 그저 태극기를 바로보면서 정적에 휩쌓이게 된다. 그나마 국기하강식이나 교련수업 세대가 아닌 요즘 세대들에겐 의식이라기 보다는 참여하고 즐긴다는 유희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아직까지도 '국가'라는 개념 정의에 정확한 답변을 내려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인식되었던 세대들에겐 국가라는 개념은 상당한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더불어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각인되어있다. 사실 '국가'라는 개념이 저변에 확대되어 지금처럼 인식되었던 시기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민족이라는 강력한 메타포의 출현과 동시에 민족 = 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성립되면서 국가주의에 대한 연구와 이해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인 형틀이 핏줄에 호소하는 민족주의 발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것이 국가라고 해도 그렇게 빗나간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이며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다양한 각도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저자는 '국가'에 대한 접근을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라는 세가지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국가주의 국가론자을 전형적인 이념형 보수, 자유주의 국가론자은 시장형 보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자들은 진보의 국가론이라는 어느 정도 도식화된 틀에 맞추어 이를 주창했던 이론가들의 주장과 지금 현대 특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왕설래의 과정에 비추어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다. 특히 사회혁명과 사회개량이라는 개념을 유토피아적 공학과 점진적 공학이라는 단어로 치환하여 국가와 국가를 형성하는 구성원에 대한 이념적인 개량을 저울질 해볼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저자의 국가론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적인 편차가 존재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국가'라는 개념을 학문적인 잣대로 세가지의 범주로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란 그다지 녹녹치 않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안건에 대해서 추구하게 되는 국가론은 한가지만이 아니라 세가지 범주의 혼합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저서를 통해서 '국가'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이념적 성향 그리고 향후 발전해 나가가야 하는 국가론에 대한 세설적인 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프리즘은 다양한 무지개빛을 띠게 마련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국가론으로 변질되기 싶다는 것을 우리는 히틀러의 예를 통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익히 배운바 있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국가론이 과연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그 만큼 현대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구분없는 경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회색분자라고 폄하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오히려 위험하고 왜곡된 국가론을 주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국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사고력을 키우면서 자신의 국가관은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