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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떡붕어 아저씨는 하루 종일 강을 끼고 살았다. 떡밥을 쓰지도, 그물을 놓지도 않았기 때문에 수확은 형편없었다. 손에 넣은 몇 안 되는 물고기들은 모두 상처를 입은 채로 다시 강물 속으로 보내졌다. 다음날엔 비가 왔다. 떡붕어 아저씨는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닐 우비를 입고 강가로 나왔다. 물속으론 들어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자리를 옮겨가며 낚싯대를 지켰다. 떡붕어는커녕 입질 한 번 제대로 하는 녀석도 없었다. 다음날도 비가 왔다. 그래도 떡붕어 아저씨는 강가를 지켰다. 미꾸라지와 싱싱한 산 지렁이를 미끼로 준비했다. 운이 좋아 메기가 물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신이 났다. 하지만 정작 잡고 보니 아직 살날이 제법 많이 남은 녀석이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대로 풀어주었다. 다음날엔 날이 갰다. 이틀간 계속해서 내린 비로 강물이 눈에 뜨일 정도로 불어났다. 떡붕어 아저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맛보는 뜨거운 태양이 낚시의 맛을 돋웠다. 덩달아 떡붕어 아저씨의 온 몸이 휘청거릴 만큼 힘이 좋고 커다란 가물치가 걸려들었다. 아저씨는 가물치를 품안 가득 안고 강가로 나왔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구덩이 오막살이를 찾아갔다.
땅 속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길게만 느껴졌다. 구덩이도 그 사이에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마당에 이르러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덩이가 더 깊어졌는지 어째 하늘이 더 푸르러보였다. 떡붕어 아저씨는 구덩이 오막살이의 가장 외진 곳으로 들어갔다. 소영이의 방이 보였다. 부엌문은 열려 있었고 소영이의 할머니는 문지방 앞에 발을 모은 채로, 대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생생한 석고상처럼 앉아 있었다. 소영이는 그 석고상의 다리 위에 머리를 얹은 채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비스듬히 세워진 소영이의 등 위에는 할머니의 손이 얹혀 있었다.
“아저씨!”
거의 절규하듯 외치면서도 소영이는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아저씨, 할머니가 차가워. 등을 쓸어주지도 않아. 나, 울 거야!”
그러고는 할머니의 배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연탄집 아줌마가 나타났다.
“소영아, 밥 먹어야지!”
소영이가 얼굴을 들었다.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연탄집 아줌마는 당황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몸에 선뜻 손을 대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떡붕어 아저씨의 품에서 커다란 가물치가 툭 떨어졌다. 살이 시커먼 흙바닥에 닿자 가물치 역시 당황하여 온 몸을 비틀어댔다.
어차피 오늘내일 하던 사람이었지만 있던 사람이 없어지는 일은 충격이었다. 구덩이 오막살이는 숙연한 가운데 분주해졌다. 배추집 아들이 냉큼 달려가 다슬기 할매를 불러왔다. 할매의 손에는 딸랑이 장난감 같은 물건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그 동안 구덩이 오막살이 사람들은 소영이 할머니를 방바닥에 곱게 눕혔다. 전깃불도 켰다.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졌다. 할머니의 얼굴이 이렇게 환해 보인 적이 없었다. 소영이는 팅팅 부운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다슬기 할매는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딸랑이를 울리며 할머니의 몸을 향해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구덩이 오막살이 사람들은 현관 문 앞에 줄 지어 서서 고개를 숙였다. 마침내 다슬기 할매가 밖으로 나오자 다들 차례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영이 할머니에게 한 번씩 절을 올렸다. 그 일이 끝나자 연탄집 아저씨와 사과집 아저씨가 할머니의 몸뚱어리를 거적때기로 둘둘 감았다. 그들이 거적때기를 어깨에 들쳐 메고 나오자 구덩이 오막살이는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숨과 온기가 사라진 소영이 할머니는 구덩이 한 가운데의 뜰에 묻혔다. 쌀집 아줌마는 귀한 쌀알을 뿌렸고, 배추집 아줌마는 푸르고 싱싱한 배춧잎 하나를 얹었다. 연탄집 아줌마는 아직 태우지 않은 새카만 연탄을 곱게 부숴 그 가루를 뿌렸다. 조장집 아줌마는 아저씨가 뇌물로 받아온 막걸리 한 사발을 뿌렸다. 사과집 아줌마 역시 제일 먹음직스러운 빨간 사과를 한 입 베어 소영이 할머니의 무덤 위에 놓았다. 소영이는 평소와는 다른 왠지 모를 숙연한 분위기에 놀라 잠깐 울음을 그쳤다가 이내 곧 엉엉 울었다. 사람이 차가워지고 손을 움직이지 못하면 땅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바보, 울긴 왜 울어? 작년에 우리 할아버지도 여기 묻었잖아. 그래서 지난 가을에 감이 그렇게 맛있던 거야. 너희 할머니 때문에 올 가을에도 감이 맛있을 거야. 뚱딴지도 더 잘 자랄 테고.”
배추집 아들이 소영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오빠 바보야. 감이 맛있으면 뭐해! 뚱딴지 꽃이 예쁘면 뭐해! 우리 할머니 죽었단 말이야!”
소영이는 악을 쓰며 말했다.
“여기 땅 속에 있는 거라니까. 네가 감을 맛있게 먹으면 할머니도 좋아할 거야.”
“오빠는 똥쟁이, 똥자루야!”
소영이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 동안 구덩이 오막살이 사람들은 떡붕어 아저씨가 잡아온 가물치를 다듬었다. 얼큰한 가물치 매운탕 앞에서 다들 또 한 번 숙연해졌다. 밥상은 구덩이 오막살이에서 방이 제일 큰 조장집 안방에 차려졌다. 오늘 큰일을 치룬 다슬기 할매가 상석에 앉았다. 가물치의 머리와 살이 연한 가슴팍 부분은 할매 차지가 됐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국에 밥을 말아먹을 때 소영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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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구덩이 오막살이 사람들은 소영이에게 밥을 주었다. 자기 아이들이 못 입는 옷도 갖다 주었다. 하지만 소영이의 방세를 내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드디어 주인이 등장했다.
구덩이 오막살이의 주인은 참 착하고 건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기저기 건물이 참 많았고 그의 일은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공장지대 옆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도 그의 것이었다. 구덩이 오막살이는 그의 건물 중 가장 저렴한 곳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자기 건물을 돌며 무슨 문제가 있나, 없나를 점검했다. 기물을 파손한 자는 문고리 하나라도 배상을 해야 했다. 야심한 시각에 건물 주위에서 노상방뇨, 고성방가 하는 사람은 한 시간씩 이어지는 그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이 설교가 너무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재범은 절대 없었다. 이렇게 그는 자기 건물의 안팎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방세에 관한 한, 그는 날짜를 어기는 일이 절대 없었다. 늘 정해진 날짜에 장부를 들고 세입자 앞에 나타났다. 세입자들도 그의 성실성과 꼼꼼함을 높이 사, 그가 나타날 시각에 하얀 돈 봉투를 준비해두었다.
주인은 시간표를 꼼꼼히 따져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간에 구덩이 오막살이에 나타났다. 최근 구덩이 오막살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어서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자살도, 사고사도 아니었지만 사람이 죽어나간 방은 그 자체로 골치였다. 방 구석구석에 밴 산송장 냄새는 방향제를 아무리 뿌려도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구덩이 오막살이, 그 중에서도 지하 단칸방에 떨어지는 인생들이란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과 습기와 곰팡이는 그들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슬픈 실존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세를 놓으려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도, 장판도 깔고 도배도 새로 해야 했다. 드디어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왔다.
방세는 소영이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몇 달이나 밀려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독촉을 하지 않았다. 대신 보증금에서 월세를 꼬박꼬박 깎아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죽기 직전 이미 그 보증금도 바닥났다. 그런데도 주인은 무려 칠일을 그냥 참아주었다. 할머니가 죽은 뒤엔 애도 차원에서 무려 사일을 더 참아주었다. 이 정도면 죽은 자도 부활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더 이상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주인은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소영이에게 이 원칙을 열심히 설명했다.
“알겠지, 방세를 내지 않고 계속 남의 방에 사는 걸 패륜이라고 하거든. 자, 네가 여기 계속 있으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 하지만 네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냔 말이야?”
“맞아. 다슬기 할매가 그랬어. 나는 시집도 못 보내고 식모살이도 못 보내고 학교도 못 보낸대.”
“그래, 그래, 하지만 고아원에는 보낼 수 있거든.”
“그게 뭐야?”
“엄마 아빠 없는 애들이 가는 곳이란다.”
“엄마 아빠는 원래 없었어.”
“휴우, 엄마 아빠가 원래 없었을 수는 없거든.(여기서 주인은 한숨을 내쉬고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이런 것까지 너한테 설명해줄 시간이 없어서 유감이지만, 어쨌거나 너는 지금 고아원에 가야 해.”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너처럼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애들이 가는 곳이야.”
“나는 돌봐줄 어른 있어! 할머니 있잖아!”
“너희 할머니는 죽었잖아?”
“우리 할머니 죽었어. 그래서 저기 있잖아!”
소영이는 구덩이를 가리키며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자 기어코 다슬기 할매가 나섰다.
“문디 가시나, 이년이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노! 이봐, 자네 말인데,”
다슬기 할매는 옆에 서 있던 떡붕어 아저씨에게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여태 장개도 못 갔제? 자 데려가서 좀 키우다가 색시 삼아. 자가 머리가 좀 모자라긴 해도 상이 좋다. 자 눈썹 안에 새카만 점 보이제? 저게 지금은 조그만 해도 커질 거야.”
“저 점이 뭐예요? 돈 자루라도 갖다 줘요?”
떡붕어 아저씨 대신 주인이 관심을 보였다.
“머시라, 돈 자루? 아니, 이 영감이 오뉴월에 씨불알 터지는 소리 하고 있네!”
“아이참, 할머니 아이들 앞에서 무슨 그런 쌍스러운 말을 하고 그러세요! 그리고 이 할머니 정신 줄을 놨나, 내가 왜 영감이에요? 아직 육십도 안 됐는데.”
주인은 버럭 화를 냈고 다슬기 할매는 대거리를 했다. 둘 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구덩이 오막살이가 들썩거렸다.
“그뿐이 아니다. 사주에 경금이 있어, 경금이. 잘만 키우면 크게 될 기다.”
“경금? 금이니 그건 돈이라는 거 아니요? 시치미 떼지 말고 좀 말해 봐요!”
또 다시 주인이 까불어댔고 다슬기 할매는 또 역정을 냈다. 그 사이에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 손을 잡고 구덩이 쪽으로 걸어갔다.
“너 아저씨 집에 갈래?”
떡붕어 아저씨가 물었다. 소영이는 왠지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할머니 여기 있어. 나 아무 데도 못 가.”
“여기 있어도 할머니는 다시 못 보는 거야.”
“거짓말이야. 할머니 구덩이 밑에 있어. 좀 있다가 구덩이 밑에서 나올 거야. 할머니 일어나면 봐야 해. 할머니 안 일어나면 내가 구덩이 팔 거야.”
“네가 여기 있어도 구덩이는 사라질 수 있어.”
“에이, 또 거짓말이야. 구덩이가 어떻게 사라져?”
떡붕어 아저씨는 여기서 말문이 막혔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강가로 돌아갔다. 밤에도 그는 낚싯대를 걸어놓고 그 옆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