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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후 네시>(아멜리 노통 지음/김남주 옮김/열린 책들)를 읽다.

<오후 네시>, <적의 화장법> 두 소설에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경악에 빠진다는 것...
자신이 이해해 왔던 자신의 모습은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
자신의 억압된 또는 숨겨져 왔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파멸로 치닫는다.

이 소설을 매사에 딱딱 부러지는 사람이 읽는다면,
누구의 어떤 부탁에도 미안해하지 않고 "No"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읽는다면,
아주 아주 분명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읽는다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 가지고 고민을 하지? 도대체 이게 고민할 거리가 된단 말이야? 거 참 프랑스 소설이란게 프랑스 영화 처럼 늘어지고 말도 안되네." 할지도 모른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냐고?

한평생 라틴어 교사를 하다 정년퇴직을 한 에밀과 동갑내기 부인 쥘리에트는 평생 소원이었던 시골마을에 정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평생 꿈꾸어왔던 둘만의 한가한 생활 속에서 완벽한 행복함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날 앞집 남자가 불쑥 찾아온다.
그 남자는 이사한 이웃에게 인사를 하러 온게 아니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매일매일 오후 4시가 되면 노크를 한다.
불쑥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두시간 동안 그들의 거실에 앉아 있다가 간다.

찾아 온 사람이 말도 꺼내지 않고,
애써 묻는 질문에도 "예","아니오"라는 단답형 질문만 한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이 불청객 때문에 에밀과 쥘리에트의 행복은 깨진다. 오후 네시가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매일 찾아오는 이 불청객에게 에밀과 쥘리에트는 "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짜증이 나는 사람도 있겠지....
" 한번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을 하던지,
다신 오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을 하던지,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해? 거참..."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에밀은 평생 "예의"를 지키며 살아온 소시민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분 나쁜 얘기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는
너무도 조용하고 질서있는 삶을 살아왔다.

에밀은 주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이러한 소시민적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에밀은
정작 자신의 행복을 해치면서도
매일 매일 찾아오는 이웃에게 "오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다.

착하디 착한 에밀과 쥘리에트.
그들은 불청객을 피해 오후 네시가 되기 전 산책을 간다.
불청객의 방문을 피했음에 기뻐하면서 들어온 선량한 부부.
하지만 긴 산책 덕분에 쥘리에트는 감기에 걸린다.
( 이 부분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그런데 난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그렇게 괴롭고 싫으면서도
"이웃하고 잘 지내야 한다"는 어렸을 때 부터 교육받은 규율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소시민들의 모습.
산소가 부족해 죽을 것 같은데도 "예의"라는 굴레 속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그러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도 앞집 사람에게 말을 못하고 끙끙 거리고 있었을꺼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안올까? 온갖 궁리를 하면서...

착한 사람들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온갖 핑계를 궁리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기어 들어가는 모기 목소리로 "No"라고 말한다.

"싫다"라는 한마디면 단방에 끝나는 수많은 상황들에서...

<오후 네시>로 좀 더 확실해 진다.
곧 아멜리의 전작주의자가 될 나의 모습이...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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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의 화장법>(아멜리 노통 지음/성귀수 옮김/문학세계사)를 읽다.

명상 초심자에게 있어서 제일 괴로운 순간은,
졸리는 것도 아니고 허리가 아픈 것도 아니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영상"을 보는 거다.

도대체 내 모습이라고 고개 끄덕일 수 없는,
나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거다.

그럴 때 명상에서 깨어나고 만다.
그 순간을 견뎌야 하는데 그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만다.

나 아니라고 부정했던 어색한 내 모습을 보는 것,
유령 처럼 나타난 꽁꽁 숨어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은 "두려움"이다.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
명상의 순간에서 깨어날 때의 "두려움"을 느꼈다.

끝까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논리"로 무장한,
그러다가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주인공 앙귀스트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난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 아멜리에게 반해 버렸다.

아멜리는 밤마다 찾아오는 자살의 유혹에 대한 "대결(confrontement)" 수단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치.열.한걸까?

아멜리의 글쓰기에는 "느슨함"이 없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치고, 박고, 빠지고 다시 치고....
날렵하고 영리하다.
긴장 속에서도 유머를 놓지 않는다.
웃을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아무래도 나는 아멜리의 전작주의자가 될 것 같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멜리.
하지만 <적과의 화장법>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피하고 싶은 내 모습을 봐야 하는 낯설음과 두려움.
이 소설을 읽는 기쁨과 함께 부록으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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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벨기에 출신 아멜리 노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이다.읽으면서 때때로 통쾌하고,때때로 부끄럽고, 책을 덮을 때 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멜리 노통이 그 수직적이고 위계질서가 군대 보다 더 철저한 일본 대기업에서 도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작가에게 모든 체험은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일본 회사에서 화장실 청소를 한 그 굴욕과 수치심은 이런 훌륭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일본 대기업에 비하면 한국 대기업은 대단히 유연한 편이다.
(한국 대기업이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말이 아니라, 일본에 비해
그나마 낫다는 말이다.)

일본에 출장을 가서 일본 회사의 회의실에 들어가면, 그 무거운 공기에 일단 주눅이 든다.아직도 여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은 경우가 많다. 손님에게 음료수를 갖다 주는 여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그럴 때 나는 곤란함을 느낀다.

아멜리 노통은 외교관인 아버지와 덕분에 일본,중국,보르네오,라오스 등 아시아에서 자라났다.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을 고향 같이 느낀 아멜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대기업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의 체험으로 이 소설 <두려움과 떨림>이 세상에 나왔다.

아멜리는 통렬하게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일본 여자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 아멜리의 동정심과 연민은 조소와 빈정거림과 뒤섞여 있다.)

아니, 일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야-그래야 한다-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살하지 않기 때문이다.코흘리개 유년 시절부터 그녀의 꿈과 이상을 가로막는 음모가 시작된다.그녀의 뇌 속에 석고 반죽이 부어진다.<스물다섯 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거야>,<웃으면 너는 품위를 잃게 돼>,<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면 저속한 거야>.<몸에 털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하면 천박한 거야>,<남자애가 사람들 앞에서 뺨에 뽀뽀를 하면 너는 창녀야>,<음식을 먹는 게 즐겁다면 넌 돼지야>,<잠자는 게 좋으면 넌 굼벵이야>.만약 이런 원칙 때문에 사람이 주눅들지 않는다면,그것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p73)

일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야 한다.
왜? 자살하니 않으니까.

이 페이지를 읽으면서 아멜리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일본 여자에게만 찬사를 보내면 안된다고....
수많은 아시아 여자들이 더 심한 음모 속에서 자라난다고...

아멜리는 정말 예리하다.아멜리는 일본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제약"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최고 성능의 카메라 처럼 모두 포착해 냈다.

 

내가 결코 너의 의무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거야,왜냐하면,넌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이런 의무로 부터 자유로운 때가 없을 테니까.예를 들어,방광의 압박을 덜어 줘야 하는 보잘것없는 필요 때문에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조차 네 시냇물에서 졸졸졸 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의무가 있어.그러니 넌 쉴새없이 물을 내려야 할 거야.(p75)

화장실에서 쉴새 없이 물을 내리는 것 만큼 일본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조신함의 제약"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일본여자애들하고 어울려 다닌 적이 있었다.
(난 일본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참 많았다. 영어,독일어를 잘하고 유럽애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나를 부러워 했다. 내가 멋있어 보인다나? 일본 애들이랑 마녀의 도시 Salem에 여행도 갔었다.마녀사냥을 당한 불쌍한 여자들의 혼이 떠도는 곳...)

그 여자애들하고 쇼핑을 하다가 백화점 화장실에 다함께 간 적이 있었다. 바로 옆 화장실에 들어간 일본애가 쉴새 없이 물을 내렸다.
자기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나는 그 때 혼란스러웠다.
일본애들이 오버를 하며 아까운 물을 낭비하는 걸까,
아니명 한국 애들이 교양 없고 무식한걸까?

공항이나 글래스 타워 같은 빌딩 화장실에 가면
"에티켓 벨"이 있는 데가 있다.
에티켓 벨을 누르면, 뭐 새소리, 시냇물 소리 이런게 난다.
그런데 있어도 이거 누르는 사람 거의 없고,
누르면 전원이 연결 안되었는지 밧데리가 없는지
기능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 수많은 빌딩에 가보았지만,
"에티켓 벨"은 보지 못했다.
그러면 아직도 일본 여자들은 쉴새 없이 물을 내리는 모양이다.

아멜리는 물을 쉴새 없이 내리는 일본 여자들의 행동을 하나의 단적인 예로 들어, 그들에게 가해진 제약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제 하려고 하는 얘기를 네가 이해했으면 해서 그런 예를 드는 거야.네 존재에서 그만큼 은밀하고 별것 아닌 부분까지 지시에 따르게 된다면, 네 삶의 핵심적인 순간들에 가해질 제약은 당연히 얼마나 클지 한번 상상해 봐.
배가 고프다고?먹는 둥 마는 둥 해.길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네 몸매를 쳐다보는 - 그들은 그러지 않을거야-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집이 있는게 수치스러우니까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p75)

그렇다. 하나 하나, 그 모든 은밀한 순간에서 까지 제약을 무의식중에 따르다 보면, 삶의 핵심적인 순간에서 자유의지로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아멜리는 일본에서 이런 모순을 읽었다.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소설 제목만 보면,언뜻 연애소설 같다.
이 소설의 제목 <두려움과 떨림>은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에서 빌려온거다.

이 소설을 프랑스나 벨기에 사람들이 읽으면 참 통렬하면서 시원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도 비슷한 일본의 상황을 읽어내는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얄밉도록 예리한 아밀리 노통.
대단한 작가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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