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연인]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김영민
글과 남자 사이에서 ‘동무’ 선택한 보부아르
그들의 사귐은 ‘말’ 서로의 ‘입’을 서로의 ‘귀’를 지적 반려자로 원했다
한겨레

동무와 연인/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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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한겨레 어디에 가야 볼 수 있나요. 주소가 없어서.

kleinsusun 2007-02-25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2872.html
저 한겨레 정기구독하는데요, 바로 금욜 "책과 지성" 때문이예요. 읽을 거리가 정말 많답니다.^^

마늘빵 2007-02-2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18도씨 금욜에 구입해놓고 아직 안봤어요. ㅋㅋ 거기에 있겠군요.

kleinsusun 2007-02-2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이건....7월달에 실렸던 글이예요.ㅋㅋ

마늘빵 2007-02-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헙. -_- 그렇구나. ^^ 씨익.
 
 전출처 : 키노 >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 특별전' 개최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 특별전' 개최

2007.02.20 / 온라인 편집부

뉴저먼시네마의 기수이자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대표작 10편을 상영하는 '빔 벤더스 특별전'이 열린다. 빔 벤더스는 지난 1987년 <파리 텍사스>가 국내 개봉된 이래, 1993년 <베를린 천사의 시>, 2001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2006년 개봉한 <돈 컴 노킹>에 이르기까지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특별전에는 빔 벤더스의 초기작 <도시의 앨리스> <시간의 흐름 속으로> <미국인 친구>를 비롯, 1984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파리 텍사스>, 오즈 야스지로에 바치는 다큐멘터리 <도쿄-가>, 1987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물씬 풍기는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 그리고 최근작인 <랜드 오브 플렌티> <돈 컴 노킹> 등이 상영된다.

30년여 년 동안 선보여 온 빔 벤더스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드문 기회로, 오는 3월 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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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자부심을 기르다

올초 출간한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로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윤대녕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작가의 근황과 함께 새로 구상중인 작품 얘기도 살짝 엿들을 수 있다. 인터뷰 내용 중 "작가는 독자에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라는 말에 전폭적으로 동감한다(간혹 껌파는 작가들이 없지 않아서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독자보다는 반걸음쯤 앞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만한 줏대와 고집과 여유, 그런 걸 동시대 작가들에게서 더 많이 보고 싶다. 요컨대, 작가들이여 자부심을 기르라...  

북데일리(07. 02. 15) [인터뷰]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펴낸 작가 윤대녕

“작가가 독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요. 독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쓴 작품을 문학에 포함시키기는 힘들죠. 문학은 항상 뭔가를 견인해야 해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3년 만에 신작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를 발표한 작가 윤대녕(45). 그가 문학을 하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일산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그는 “문체나 구성 면에서 기본적으로 품격을 유지하는 작품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타인보다는 스스로를 향한 조언이자 격려다. 윤대녕은 데뷔작 <은어낚시통신>(문학동네. 1994)으로 우리 문단에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독자의 뇌리에 박힌 강렬한 첫 인상은 이내 그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나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오해가 너무 오래가는 것 같아요. 데뷔작이 나오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처음의 이미지가 아직도 새 소설에 적용되고 있어요. 실제로 중간에 발표한 책들은 이전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곤 안 읽은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독자가 많지 않은 건지도 모르죠. (웃음)”

독자의 소리를 무조건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문학계에 불어 닥친 일류열풍과 관련, 일본소설을 정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다. 작가로서의 신념도 독자와의 공감과 소통이 유지되는 선에서 지켜나가야 한단다. <제비를 기르다>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 작품. 현실감 있는 캐릭터, 구체적인 상황 묘사, 수식어를 배제한 문체로 전작들이 지녀온 모호함을 덜어냈다.

“제가 2003년에 제주도에 가서 2005년에 돌아왔는데, 내려가기 1년 전부터 딜레마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어요. 문학에 대한 요구가 치환되지 않았던 거죠. 기관지 때문에 몸도 안 좋았고요. 삶의 터전이 옮겨지니까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세밀하게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생기고,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됐어요.”

서울로 돌아온 후 변화는 더욱 구체화됐다. 소설에 있어 서사적 구조, 타인의 내면에 대한 묘사에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는 곧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윤대녕의 이번 소설집에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표현이 도처에 보인다”며 “세월의 나이테를 천천히 펼쳐 보이는 이러한 서사적 조망 속에서 짧은 시간의 단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운명의 유장함과 곡진함이 드러난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사의 진실을 좀더 긴 호흡으로 살피게 만든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윤대녕은 “그동안 써왔던 것들에 대한 회의나 부정은 아니”라며 “다만 삶을 살아가고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방법론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윤대녕은 자부심이 대단한 작가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꼿꼿함과 자존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심해 왔다. 문인은 가난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사생활이 불안정하다는 선입견은 그야말로 개탄할 노릇. 그는 얼마 전 보도된 신춘문예 당선자의 생활이 어렵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은 도리어 부작용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쓴 글을 독자가 좋아하지 않는 시대가 왔어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데뷔만 했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매년 신춘문예로 2.30명이 등단하는데 그 중에 살아남는다고 할까, 계속 작품을 쓰는 작가는 1.2명에 불과해요. 늘 그래왔죠.” 가난과 고통에 대한 각오 없이 무작정 뛰어든 작가에게 가하는 따끔한 충고인 셈이다. 1988년 단편 ‘원’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당장의 밥벌이를 위해 7년간 각종 직장을 전전한 그이기에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저는 글을 잃지 않으려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 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지금도 하루에 8시간은 자료조사, 독서 등 집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글을 쓰며 보낸다고. 2.3일 정도 일을 못하면 우울증이 온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열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아요. 문단이나 언론까지 제가 독자가 많고 책이 잘 팔리는 걸로 생각하죠.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지만 누추한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해요. 혼자 견뎌낼 몫이잖아요. 작가는 독자에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

전업 작가로 들어선 후에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윤대녕의 고정 독자 수는 1만 명 안팎. 작가는 그의 독자가 곧 문학 독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가 문예지 팔리는 숫자가 문학 독자 수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1만 부가 안 되거든요. 제 독자가 대략 1만 여명인데 주로 문학 공부하는 학생들, 문창과 학생들에 집중돼 있어요. 문학 독자가 바로 제 독자인 것 같아요.”

작가가 지녀야할 품위를 중시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권위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윤대녕은 발로 뛰는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일일이 답사한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는 바람을 쐬러 간 강화에서 우연히 작부집을 발견하고 떠올린 이야기. 구체적인 내용 구상을 위해 작품엔 잠깐 등장하는 태국 취재까지 감행했다. ‘마루 밑 이야기’에 나오는 대관령 휴게소 역시 직접 방문해서 현장을 살폈다. “여행 정보를 보고 쓰는 건 표시가 나요. 저 같은 경우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문장 자체가 안 나오더라고요. 소설의 구조나 생생한 표현을 위해서는 취재를 다녀오는 게 좋죠. 작가한테는 의무라고 생각해요.”

직접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 그래서 작가는 인터넷 자료도 신뢰하지 않는다. 표피적인 정보만 얻기에 글을 쓰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된단다. 작업실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만 사용 안하지 집필은 노트북으로 해요. 원고가 완성되면 프린트해서 퇴고를 하죠. 요즘도 등단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3.4번은 고쳐 써요. 그래서 단편 하나만 쓰더라도 굉장히 지쳐요. 편집자는 좋아하더라고요. 손 볼 데가 별로 없다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기껏해야 한 달에 1.2번 정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단다. “사소한 흐트러짐 때문에 생활 패턴이 바뀌거나 시스템에 에러가 나는 걸 경계합니다. 재미없게 사는 거죠. 매일 매일 운동, 독서, 집필만 반복하고 있어요.” 작가의 삶이 재미없을수록 독자는 신이 난다. ‘자발적 유배’ 속에 깊어진 상념을 선사받기 때문이다.

윤대녕은 차기작으로 “근력이 있을 때 한 번 타 넘어가고 싶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공력으로 가능한 작품인가를 엄밀히 계산하고 있다. “아마 독자에게 굉장히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신작을 내놓을 때 까지 만이라도 단조로운 삶이 계속됐으면, 그래서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으면, 이란 ‘불순한’ 바람을 품은 이가 기자 하나만은 아니지 싶다.(고아라 기자) 

07.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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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

출근 길에 이 말을 읽는 순간

잠이 확~ 깼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항상 이게 문제였어!

그래서......항상 연애는 어렵다.

 피아노,  외국어, 테니스, 서예....

어렸을 때부터 많은 걸 배워 왔지만

이렇게 해도해도 늘지 않는,

이렇게 학습효과가 젬병인 건 정말.....연애 밖에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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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연인] 정사(情死)로써 사랑의 열정을 구원

당대 최고 가수와 지식인 유부남은
열정적 일탈로 기존 체제를 먼저 공격했고
사회는 도덕을 들먹이며 신경증적으로 응전했다
이에 동반투신한 것은 비정치적 정치일 수밖에

한겨레
» 윤심덕
동무와 연인/⑭ 윤심덕과 김우진

플로베르였던가, ‘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롤랑 바르트)는 연애의 진실은 연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만고의 고민처럼 보이지만, 플로베르처럼 돌이켜 생각하면 바로 그 고민의 형식이야말로 연애의 유일한 가능성이다. 내가 연애를 ‘물매’의 효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체제와 더불어 굴러가는 대중은 혼인 제도로써 그 중층적 모순의 속살을 가린다. 그리고 관습 속에 순치되며, 종교나 이데올로기로써 그 제도를 정당화한다. 제주도 유채꽃의 신화는 그렇게 쉼없이 재생산된다. 이것은 아무런 냉소가 아니다. 만일 제도와 관습이 연애의 자기모순적 진실을 숨기지 못할 경우, 그리고 ‘제도라는 매듭’(알랭 바디우)이 풀린 채로 갑순이와 갑돌이가 정직하게 상대를 대면할 경우, 연애의 종말은 총알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우주 만상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사랑 속의 평형(equilibrium)은 곧 현상유지(status quo)에 다름 아니며 현상의 평화는 곧 권태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권태가 아닌 것’!) 니체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나태한 평화’인 셈인데, 말할 것도 없이 평화가 모든 부분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사(情死)는 묘한 위상을 갖는다. 영원한 평화를 향한 상상적 도약이면서도, 한편 그것은 권태로운 체제의 평화로부터 사랑의 열정을 구원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체제를 먼저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연인들의 열정적 일탈이다. 물론 체제는 관습과 이데올로기, 도덕과 종교를 들먹이면서 신경증적으로, 혹은 폭력적으로 응전한다. 윤심덕이 애인 김우진과 정사하기 15개월 전인 1925년 3월호 <신여성>에는 그녀의 애정 행각을 비난하는 ‘윤심덕 사건에 대하여’(박신애)라는 글이 실린다: “윤씨의 이번 행동은 타락한 행동이다. 예술가이면 예술가, 사업가이면 사업가, 가정부인이면 가정부인, 교육가이면 교육가, 직업부인이면 직업부인으로 똑똑히 사람이 좀 되어 갑시다. 윤씨야! 기왕 국외로 갔다는 소문이 있으니 거기서 태평연월이나 노래하면서 건강히 일생을 지내라. 누구나 그대 보기를 원치 않을 테니.” 여기에서도, ‘예술가답게… 그리고 가정부인답게’라는 체제수호의 동일성 윤리는 연애라는 물매와 그 변신 욕망과 절망적으로 대치한다. 그러므로 윤심덕이 1926년 8월 5일 새벽, 그녀의 애인을 부둥켜 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일은 결국 비정치적 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권태로운 체제의 평화와 그 평화의 폭력으로부터 사랑의 열정을 치명적으로 구원하는 일이다.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1999)에서도 1920~30년대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변동에 따른 ‘주체의 격심한 변동’을 말한다. 역시 그의 표현처럼, 이로 인한 신구 여성들 사이의 갈등은 세대 갈등에 앞질러 적대적 관계로 치닫는다. 통속적인 해석처럼 윤심덕의 비극은 봉건적 사회 구조를 뚫고 막 태동하던 신여성들의 좌절된 사회적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이는 ‘자살적 몸짓’이다.

최초의 여류성악가, 당대 최다의 음반판매량을 보유한 최초의 대중 가수, 방송국 사회자, 그리고 패션모델이었던 윤심덕은 매력적인 외모에 맵시있는 스타일의 선구적인 신여성이었다.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쾌활하다 못해 당돌하고 일견 무례해 보였다는 그녀의 성격이다. 이것은 힘겹게 미래를 선구하려는 사회적 약자의 징후적 태도로서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약자가 꼭 무례한 것도 아니고 무례한 자가 반드시 약자도 아니지만, 총명한 약자의 무례함 속에는 종종 중요한 사회적 징후가 담긴다. 가령, ‘자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말까지 빠른 여자(샤틀레 부인)를 애인으로 두는 일’에 볼테르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극히 생산적이기도 했지만, 김우진은 ‘자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당돌했던 여자(윤심덕)’와 더불어 현해탄에 몸을 던져 서른 살 젊은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1926년 8월 5일의 새벽에 관부연락선의 선미를 박차고 현해탄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게 한 그 절망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물론 그것이 (‘구’남성 이문열씨의 ‘시대와의 불화’와는 완전히 다른 뜻에서) ‘신’여성 윤심덕이 겪어야 했던 ‘시대와의 불화’와 그로 인한 절망의 몫이라는 데에는 아마도 이견이 크지 않을 테다.

» 김영민/전주한일대 교수·철학
하지만 그 불화와 절망이 온전히 그의 유부남 애인이었던 김우진의 것이기도 했을까? 연정의 일심동체라는 그 완벽한 거짓말을 잠시 믿어두더라도, 이 두 연인들을 대마도 앞바다에 투신하게 만든 어느 먼 신새벽의 절망은 대체 어느 정도의 공감과 합의에 의해 조형되었을까? 두 사람을 치명적 결정으로 내몰아간 그 절망의 내용은 서로간에 평등한 것이었을까? 가령, 윤심덕이 ‘김우진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당돌했던 여자’라고 한다면, 바로 그 편차만큼 그 죽음에 이른 절망의 내용 역시 둘 사이에서 어긋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내와 자식을 가진 유부남과의 정사라면 그 결행 속에 개입하는 수없이 복합적인 감정의 난반사와 태도의 빗금(偏倚)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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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 하다 보면 늘어요.맘 편하게 먹고-뭐 꼭 사랑해봐야겠다-이런 맘을 좀 내려놓고 접근하면--언제나 연애하는 맘이쥐.^^
저도 오늘 한겨레 봤는데...몇 권의 책이 눈에 띄더군요.윤대녕의 새소설집<제비를 기르다>새로 번역한 장자,..그리고 <오늘의 세계적 가치>

글샘 2007-01-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요... 학습 효과, 반복 학습으로 실현되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연애는 '잠재적 양태'가 '현실적 양태'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봄이 여름이 되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오늘부터 여름! 이런 거 없잖아요. 봄 속에 여름이 있었고, 그렇게 봄과 여름은 몸을 섞어 자연스러운거죠. 주역에 보면 태양과 소양이 있는데, 봄이 태양일까요? 여름이 태양일까요?
봄이 태양이에요, 여름이 소양이고. 뜨거운 열기를 '잠재적 가능태'로 안에 품고 있는 사람이 훨씬 뜨거운 사람이지요. '현실적 실현태'로 이미 드러난 열기는 주체하기 힘든 법 아닐까요?(아침부터 무슨 삽질하는 소린지...) 즐건 하루 보내세요^^

2007-01-26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01-2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팀전 2007-01-2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퇴근하기전에 글샘님의 글을 보니까... 정답이 하나는 보입니다.
저런 이야기하면 연애하기 힘들다..^^

로드무비 2007-01-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이 서로를 사랑한다면 재미없지요.
아시면서......^^

2007-01-29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9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향해 "조까라마이싱"을 외치지만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남자라....

이 남자의 정체는 뭘까?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살기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인데.....(아닌가? 적어도 내게는...ㅋ)

 

어쩌면...이 남자, 박민규는 "범생이"일지도 몰라!

그래서 매일.... 일탈을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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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 사이](3)박민규-우주에서 ‘지구의 일상’을 보다

입력: 2007년 01월 19일 15:23:55
박민규에게 소설가란 이를테면 ‘딴따라’에 가깝다. 진지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좋아하는 포르노스타와 프로레슬러의 이름 열 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순살까지만 소설을 쓰다가 그 다음부터는 전직 소설가 기타리스트로 살고 싶어 하는 소설가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향해 “조까라마이싱”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그는 포르노스타처럼 대범하지도 프로레슬러처럼 폭력적이지도 않다. 그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온순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는 성실하다. “술, 마시지 않는다. 담배, 피우지 않는다. 인간, 가까이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잘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무규칙 이종 소설가’가 된 것일까. 어쩌자고.

그는 “멸망한 인류의 문명을 발견한 한 마리의 침팬지가 된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침팬지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침팬지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박민규가 애호하는 영화 ‘혹성탈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류와 지구의 멸망 이후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때 인간은 더 이상 사유의, 행위의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유독 인간 아닌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목록을 열거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냉장고(‘카스테라’), 대왕오징어(‘대왕오징어의 습격’), 개복치(‘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너구리(‘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기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핑퐁(‘핑퐁’). 심지어 화성인, 금성인도 등장한다. 박민규는 이렇게 무생물계, 동물계, 탁구계, 그리고 우주계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인간계를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방법론을 우리는 통칭 우주론적 전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지구는 단지 희미한 빛을 내는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인다. 우주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지구는 그저 하찮은, 없어져도 그만인, 선도 아니고 면도 아닌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핑퐁’의 결말처럼 이 지구가 언인스톨되거나 소멸된다 한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주인이 보기에 말이다. 이러한 우주론적 시각은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 지구인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약화시킨다. 악다구니 같은 일상을 뛰어넘는 무한광대한, 그래서 순결한 우주적인 것을 일상적, 속물적 삶과 견줌으로써 지금, 현실은 순간적이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박민규의 인간혐오증(그는 ‘핑퐁’에서 “인간은 싫다. 차라리 양이라면 나는 즐거이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은 크게 보면 세계전복의 망상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작게 보면 비참하고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자기위안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반전은 지구내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민규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하찮게 다루어지거나 반대로 하찮은 것들은 오타쿠적 탐구를 통해 우주에 맞먹는 의미를 부여 받는다. 흔한 사물인 냉장고는 오사리잡탕의 세계를 쓸어 담는 거대한 그릇으로 팽창하거나 반대로 그렇게 뒤섞인 세계는 카스테라로 압축되기도 한다.(‘카스테라’) 냉장고와 카스테라라니. 초현실주의자들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에 비견될 만한 이 기이한 조우를 통해 우리가 자못 거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는 작은 중고 냉장고의 세계 속에서 카스테라로 포맷된다.

그러니 낡아빠지고 물빠진 스웨터를 입었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냉장고와 카스테라만 있으면 될지니. 아니면 탁구대와 라켓, 공만 있으면 될지도. 그것도 아니면 쿨 앤 더 갱의 셀러브레이션을 들으면 될까. 그러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될까. 어쨌든 박민규는 고시원과 아르바이트와 왕따와 꼴찌들에게 행복이란 ‘놀랍게도 따뜻한’ 카스테라 맛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민규는 카스테라를 좋아한다.

〈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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