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6명이서 갈비탕을 먹었다.
고기집에서 갈비탕을 먹으니 마치 상차림이 결혼식장 같았다.
결혼식하고 있을 때 우르르 몰려가서 갈비탕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입을 닦은 후 사진 촬영에 동참하는 그런 결혼식장 음식.

난 한국의 결혼식이 정말 싫다.
무슨 결혼식에 대절 버스가 몇 대나 올라오고,
얼굴도 한 번 본적 없는 부모님의 아는 분들, 사돈의 팔촌들까지 다 와가지고 우글우글...
왜 하필 결혼식을 일요일 3시에 하냐고 투덜투덜 거리며 가서
가증스런 웃음으로 눈도장을 찍고 시간과 관계 없이 밥을 먹고 나오는 그런....

대구의 어떤 예식장은 꼭 무슨 결혼 백화점 같았다.
거대한 건물에 한 층에 웨딩홀이 6개는 되는 것 같았다.
어디서 하는지 몰라서 두리번 거렸는데
각 6개의 신부대기실에서
비슷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6명의 신부가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비슷한 대사로 친구들을 맞이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니
현기증이 났다. 징그러웠다.

나는 정말 이런 결혼식을 하기 싫다.
마음 같아서는 양가 부모님이랑 가까운 친척, 몇명의 친구만 초대해서
조용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데,
이게 뭐....내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겠지...
그 동안 부모님이 거의 주말마다, 그것도 성수기에는 몇탕씩,
분주하게 남의 집 결혼식에 참석하며 낸
천문학적 부조금을 생각 하면,
가족들만 모여 조용한 결혼식을 한다는 건
불효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건 다 타협하더라도 나는 페백이 너무 싫다.
폐백을 꼭 해야 한다면 조건이 있다.
폐백을 받는 신랑,신부의 친척 수를 같은 비율로 정할 것.

결혼식에 가면 폐백실에 남자네 친척들은 다 모여 드글드글하고,
여자네 친척들은 다 집에 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네는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한테까지 다 절을 하고,
여자네는 부모님한테만 하던지 아니면 부모님 마저 페백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결혼할 때 폐백을 아예 하지 않던지,
아니면 동일한 비율로 절을 하겠다는 의지를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 하며 친구들이 대답했다.

" 넌 왜 그렇게 생각이 없냐? 너 절 값이 얼만지 알아?
한시간 정도 고생하면 신혼여행 비용 뽑는다구....
절값을 포기할 생각을 하다니...거 참..."

까잇 거....없어도 된다.
또, 발상을 전환하면 남자네 친척 + 여자네 친척,
이렇게 2배수에 절을 하면 절값이 2배가 된다.

언젠가 선본 남자한테 폐백에 관련한 나의 의지를 말한 적이 있다.
선본 날은 아니고 두번째 만났을 때였다.

그 남자는 나의 말을 열심히, 적극적으로 경청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 혹시....남자한테 뭐 피해당한 적 있어요?
그러는거 안 어울려요. 이쁘게 생겨가지고...."

난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쁘다는 말을 듣고 웃어야 하는 건지,
이런 시대의 비극에 슬퍼해야 하는지....

그 남자는 페미니스트는 드세고 "못생긴" 여자들이며,
남자한테 피해를 당한 여자들이 "한풀이"로 한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이쁜 여자가 그런 말을 하면 어울리지 않으며,
이쁜 여자는 이쁘다는 이유로 오히려 "후광효과"를 누리며
남들 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산다는 거다.
즉...그러므로 나는 그런 과격한 의견이나 불평을 하면 안되다는 거였다.

이거 참...말이 되는 건지...
어쩌랴....그냥 웃고 말았다.

어쨌든....나는 폐백이 싫다.
과격한 여자, 또는 또라이로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폐백이 싫다.

이 글을 읽고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근데...결혼할 남자는 있는 거예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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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5-08-2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하루저녁의 왕자 공주 놀이 - 꼭 다 큰 어른들이 하루 입고 평생 쳐다보지도 않을 옷, 평생 사진 보고 쑥쓰러워 할 옷 입고 가증스레 웃는 거 이 말 이상으로 잘 설명하는 말 없을듯요 - 매너가 생각하는 결혼식은 한 일이년 같이 살다가 점심시간 중간에 회사에서 빠져나와 동사무소나 시청 가서 혼인신고 한 뒤, 이백원짜리 자판기 다방커피 뽑아마시며 싱긋 묻는 거라죠. "밥 먹으러 갈래?"

근데 정작 문제는-_- 이 이야기를 한 번 진지함을 담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날벼락이 떨어졌어요.

"이새꺄~ 그간 남의 잔치 쳐들인 돈이 얼만데!! 본전 뽑아야지!!"
쿨럭;;;;;;;;;;

후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거, 멋진 일이긴 하지만 저 문제 가끔 생각 닿으면 골이 아파온다죠. 그나저나 그 폐백. 두어 번 들어가 봤는데 군대에서 자대배치받고 신병 환영회(를 가장한 갈굼판)이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덥디다. 다 돌아가면서 '나 누구다'자기소개하고 친척 모임때 가서 누군지 어리버리대면 '폐백때 봤는데 버럭~'하고... '신규 가족 멤버 신고식'이라 생각한다면... 흐흐. 이런데까지 군대 이야기 꺼내는 매너가 이상한 거겠죠. 좌우간.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헌책방 순례라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세요. 크흑~ 그리워라. 신촌의 헌책방들... ㅜㅡ

덧붙여_제 결혼관, 결혼식에 대한 관념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아리땁고 명민한 아가씨에게 대쉬했다가 완곡히 거절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히죽. =)

kleinsusun 2005-08-2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매너,지금 울산에 있남?
신촌 헌책방 간지 오래됐네.... 몇달 정신 없이 살았더니.
매너처럼 cool한 남자들이 더더더 많았으면 좋겠당.
멋져...일이년 같이 살다가 점심시간에 혼인신고하고 "밥 먹으러 갈래?"
근데 매너야....여자들한테 이런 얘기했다가 차이겠다...ㅋㅋ 사람을 잘 가려서 해.호홋.

2005-08-26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8-2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남친도 제가 이런 주제로 열을 올릴 때면, 너 무슨 피해의식 있냐? 꼭 이러더라구요 진지한 토론 자체가 안 되요

코마개 2005-08-2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요...결혼은 정말 친구랑 부모 모셔다가 술이나 한잔 빨면서 하면 딱 좋겠지만 그건 부모가 저세상 가고 없지 않는한 관철되지도 않아요. 글고 폐백은 일단 그 폐백 음식값이 넘 아깝죠. 먹지도 못하는 음식이 뭐 그리 비싼지. 그리고 요즘은 대부분 남자 여자쪽 다 하죠. 그런데 폐백, 결혼식 당일 문제 이런건 결혼 얘기 나오면 정말 생각지도 않아요. 왜냐면 다른 것들이 염장을 충분히 지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니 맘대로 하세요' 자세가 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문화 속에 나타난 성적 불평등 보다도 "우리 결혼 해야하는 이유가 뭐지? 내 인생의 큰 흐름에 결혼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죠. 근데 대부분 이런 물음보다는 "집은 얼마짜리, 예물은 ..."이런 쓸데 없는 일로 싸우고 머리 깨지죠. 정작 중요한걸 두고. 수선님은 현명하게 판단해 보세요.
그나저나...이놈의 호적법이 바뀌어야 혼인 신고를 할텐데, 아직도 3년이나 남았네요.

kleinsusun 2005-08-2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드디어 제 맘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네요.
제 친구들은 어떻게 자기 부모님한테는 폐백도 안했거나 못한 애들이 절값에만 관심이 많은지.... 제가 폐백 얘기를 하면 손익 개념이 없는 인간으로 몬다니깐요.
그나저나....지나간 일이쟎아요. 앞으로 부모님께 더더더 많이 효도하세용.

나나님, 맞아맞아. 툭하면 주제와 관계 없이 "피해의식" 얘기가 나온다니깐요.
이러면 대화가 안되요. 아....열려라, 참깨.^^

강쥐님, 네....제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호적법 바뀌려면 3년 남았어요?
까잇거 뭐...3년 후에 하죠 뭐.ㅋㅋ

파란여우 2005-08-2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거는 안 어울려요. 이쁘게 생겨 가지고...
그런고로 님은 이쁘시니 폐백을 해야겠슴돠!!! 우히히^^

클리오 2005-08-2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식에 대한 제 생각과 비슷하시군요. 너무 황당하더군요, 똑같이 왔는데 '신랑쪽 친척들은 폐백실로...'어쩌구 하는거요. 근데 또, 나와는 달리 부모님은 너무나 당연스럽게 그걸 생각하시니... 더구나 막상 결혼식이 닥치면 부모님의 로망이 구현되는 장소이고, 나로서는 식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좀 대충 문제없이 때우는 것만이 최고의 목적이 되고... (결혼식의 주인공은 사실 절대 신랑신부가 아니라죠... --;) 결국 저는 동시입장과 친정부모까지 폐백을 하는걸로 그냥 타협을 봤어요... 요즘은 친정 부모님도 폐백을 하는 분위기가 많더라구요.. ^^

BRINY 2005-08-2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3년 남았나요?

kleinsusun 2005-08-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그럼 폐백을 할깝쇼? ㅋㅋ...근데....결혼 여부가 아직...호홋

클리오님, 아하....그 생각은 못해봤네요.부모님은 그런 상황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거...아빠들은 딸의 팔짱을 끼고 입장을 하고 싶은 환상이 있나요? 저도 결혼을 한다면 동시입장을 하고 시퍼요.

Briny님, 3년...그럼 몇년이죠?2008? 헉...

2005-08-26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8-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내가 하는거지만 결혼식은 부모가 하는거랍니다. 내 뜻대로 되는거 하나도 없어요. 준비부터 열받는거 생각하면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날이 한 두번이 아니죠.
저는 다행히도 시집이 엄청 보수적인데 의외로 폐백은 양가 모두 받아야 한다고 시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시더라구요(이것도 웃기죠. 어떻게 할까의 결정권이 모두 시집에 있으니...) 그래서 친척많은 양가의 절값이 너무 빵빵해서 신혼여행가서 기분 만땅... ^^

글샘 2005-08-27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백은 신랑집 식구들만 있는 것이 당연하죠.
원래 구식 혼례는 신부집 마당에서 하는 것이었고(아니라면 신부네 동네) 신랑이 장가오는 것이 혼례식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결혼식장에는 신부네 하객만 입장하고 신랑네 부모 가족 정도만 입장을 시켜야 하는 것이 좋겠지요(?), 구식 혼례의 원칙대로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3일 자고 나서 신랑 집으로 평생 귀신이 될 시집이란 걸 가서, 신랑집 주변에 드글거리고 사는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 드리는 것이 <폐백>이란 절차였고, 그 때 신부 어머니께서 싸보내시는 음식인 <이바지>가 친정의 수준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으니 좋은 음식이었던 것이 당연하겠죠.
요즘은 곧 이혼할 부부들이 싸구려로 결혼하고, 돈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폐백값 잔뜩 챙겨서 해외로 여행들 가는 거 보면...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구식 혼례가 아닌 이상, 원칙을 따질 필요는 없을 거구요. 폐백을 한다면 양가 부모님들과 가족들의 상견례(사돈을 평생 한 번 만나는 자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절차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좋겠지요. 아니, 저도 정말 저 머리가 꼭지까지 돌아버릴 복잡한 결혼식이란 절차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leinsusun 2005-08-2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결혼은 내가 하는거지만 결혼식은 부모가 하는거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그렇게 부모님들이 퇴직하기 전에 결혼해라, 은퇴하기 전에 결혼해라...하시는 건가요. 이래서...결혼은 어렸을 때 하는게 좋다고 하는건가봐요. 아무런...환상이 없어요. 어쩌죠? ㅋㅋ

kleinsusun 2005-08-2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아....원래 폐백이 그런 절차였군요.
그럼 요즘 결혼식은 서양 결혼식과 전통 결혼식에서 "이벤트"성 차례들만 뽑아서 하는거네요. 한국의 정신 없는 결혼식....언젠간 달라지겠죠? 그럼 그 때 까지 기다릴까요? ㅋㅋ

로드무비 2005-09-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렇게 간략하게 해치웠답니다.
결혼, 하면 해치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인 일일까요?^^

mccoin 2006-11-22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이 다 가고 있는 마당에 작년글이지만 새삼 결혼에 대해 아니 결혼과 식에 대해 생각해보니 열받네요
강쥐님 말씀처럼 폐백 이외에도 충분히 열받게 할 만한것이 산재하고 아 열받다 죽지 않은게 다행- 바람돌이 말씀처럼 폐백에 친정도 들어오라고 시댁쪽에서 '허락'을 내려주시는 거고 수선님처럼 저도 폐백을 아주 하지 않기로 결혼전엔 맘먹고 살았었지만 이런 이야길 했을때 수선님과 같은 말들을 들었었지요 '떡값이 얼만데..'또한 정말 이상하다거나 까칠하다는 시선.. 다이아몬드도 개인적으로는 그 역사에 기인하여 끼기 싫었지만 작으나마 반강요에 의해 구입하게 되었으나 -내 같지도 않은 신념무너지는 소리 (마음아팠슴다ㅠ)-작으니 그건 다이아도 아니라는-소리를 몇번이나 들어야 했고 진주나 뭐 한복에 다는 뭐더라 갑자기 생각안나네 그 비싼 농문에 걸어놓을 것 같은 장식 있잖습니까-그게 그리 비싼지도 몰랐습니다- 딱하니 사다놓고 너를 위하여 샀다고 보여주는데 사랑받아 기뻐요 라고 눈물 흘려야 할지 그런거 관심없다고 몇번이나 좋게(!!) 돌려서 혹은 직설적으로 말했었는데 네말은 완전 관심없다는 식인건지 그런 돈나가는 물건들로 잡히기 싫은 내 심정-어찌보면 내가 불쌍하다 ㅜㅜ-이나 그 밖의 여러가지가 등등등등등 있지만 말이 넘 길어질것 같아 그리고 작년 글에 댓글이 살짝 민망해지는 시점 ㅋㅋ 하지만 그냥 지나가기 힘들었다는 거 -결혼한지 4개월;- 수선님이 이 댓글 언제 보게 될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