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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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난 책덕후!! 책에 관한, 그리고 책을 쓴 작가와 이야기에 관한 숨은 이야기는 완전 내 취향저격, 너무 흥미롭고 재미난 책이었다. 혼자 놀라기도 하고, 킬킬 거리며 읽다보니 어느새 하루만에 책을 독파해버렸다. 어릴적 누구나 읽었던, 누구나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사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은 많이 없다는 고전 동화책에 얽힌 작가의 인생과 동화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사연들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껏 평면적으로 알고 있던 동화 이야기들이 3D 입체로 일어서는 것만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해당 동화 원작을 읽으면 정말 색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책 사길 좋아하는 책덕후인 나는 또 고전동화를 미친듯이 사들이겠지, 아니, 이미 사들이기 시작했다ㅋㅋ;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던 얘기들에 흥미를 더해주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니, 동화나 책을, 아니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방식이라 다른 동화들의 이야기도 엮어서 2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동화는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 <보물섬>, <빨간 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시리즈>, <닐스의 모험> 까지 총 10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혹은 들어봤을 동화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숨은 이야기들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동화들은 대부분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00년대 초 중반 사이에 출판된 책들이 많은데 이 책들의 초판본 가격은 중형 자동차 한대값에 달할 정도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다고 한다. 저자는 꼭 초판본이 아니더라도 초판의 판본을 유지하고 있거나, 적정한 가격대의 고서를 찾아서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비싼 고서를 수집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작가 곽한영은, 각  챕터마다 소유하고 있는 원본고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빛이 바래고, 낡아도 그 시간의 향기가 오히려 더 아름다운 책들이었다. 


동화를 쓴 작가들의 실제 인생 얘기를 풀어놓은 부분에서는 놀란 부분이 많았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버지를 둔 탓에 돈을 벌기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아씨들은 실제 그녀의 가족을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인데, 실제 그녀의 4자매가 작은 아씨들의 모델이고, 올컷은 자매들 중 둘째 였다. 소설 속에서 올컷을 모델로 한 둘째인 '조'는 작가가 꿈인, 씩씩하고 집안에서 사랑받는 소녀로 나오지만, 사실 올컷은 아빠로 부터, 자매들로 부터 온갖 구박을 받는 구박덩어리였다고 한다. 그런 현실을 소설에서는 사랑받는 소녀로 표현한 부분이 마음아픈 부분이다. 소설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후에도 죽기 직전까지 가족들의 뒷바라지만 하다 세상을 떠난 올컷의 생애를 보면 작은아씨들을 읽을 때 그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동화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들을 보면 실제로 많은 동화들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그 자리에서 마음대로 지어내다가 실제 동화 속 이야기가 된 사례가 많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보물섬, 곰돌이 푸 등이 그 사례인데 그 중 곰돌이 푸에 대한 이야기가 좀 흥미롭고도 슬펐다. 우리가 잘 아는 꿀을 좋아하고, 바지를 안입는 곰 '푸'의 이야기는 작가의 아들이 좋아하는 '에드워드씨'라는 곰인형과 그 친구 인형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던 푸 시리즈의 저자 앨런 알렉산더 밀른은 심심해하는 아들을 위해 만든 동시를 우연히 편집장의 권유로 잡지에 실었다가 갑자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아동관련 도서로 유명세를 타고 싶지 않았던 밀른은 대충 마무리해서 시리즈를 무마하고 싶었음에도 자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더욱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된 경우다. 최고의 카투니스트 셰퍼드와 밀른이 함께 만들어낸 푸 시리즈의 삽화 그림과 이야기는 지금 봐도 절로 웃음이 나올만큼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만화에서 나오는 푸의 친구 로빈의 모델인 밀른의 실제 아들 로빈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동화로 만들어진  것 때문에 전 생애에 걸쳐 만화 속 로빈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놀림받으며 힘겹게 살아간다. 그는 동화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용당했다며 억울해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인 밀른과 그의 아내는 아들에게 제대로 애정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어머니는 낭비벽이 심해 재산을 다 탕진하고 엄청난 저작권까지 다른 곳에 넘겨버린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싶다는 로빈의 말도 거절하고는 결국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로 인해 로빈이 받았을 상처는 어땠을까. 만화 속 로빈은 푸와 헤어지며 마음속에서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고 아름답게 시리즈를 끝맺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실제 로빈 자신은 평생에 걸쳐 부모의 사랑을 못받아 외로움에 떨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위니-더-푸'를 끔찍히 저주하며 살았다는 얘기가 너무 씁쓸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성공과 별개로 작가의 인간성이 별로였던 사례도 있었다. 톰소여의 모험 과 허클베리 핀을 쓴 작가 마크 트웨인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안데르센은 죽을때까지 자신의 욕심과 허영을 쫓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고 때를 잘만난 마크트웨인은 처음엔 싸구려 저질 소설 취급을 받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아직도 존경받는 작가의 위치에 있고, 안데르센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평생을 거짓과 가식, 컴플렉스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고, 그의 그런 심리가 그가 쓴 동화 '미운 오리 새끼'나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작품에도 조금씩 드러나 보인다는 작가의 분석은 무척 흥미로웠다. 


동심과 환상의 세계로만 생각했던 동화에 그 시대의 경제적 현실과 작가의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가 만들어진 날것의 과정까지 합쳐지니 실제보다 훨씬 더 재미난 이야기가 되었다. 마치 한편의 재미난 소설처럼 극적이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책이었다.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동화를 이번에는 어른이 되고나서  인생의 쓴맛 단맛과 동화의 주변 이야기까지 다 아는 상태에서 읽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되서 동화를 보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럼 '피터와 푸와 앨리스의 여행'을 한번 읽고 동화를 읽길 권유한다. 고전동화를 쓴 작가들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겹쳐져 동화가 여러겹의 소설처럼 입체감 있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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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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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음악보다 글로 보면서 느끼는 상상 속의 음악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질 줄이야. 클래식은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상상 속에서 내 맘대로의 음악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사실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 콩쿨 음악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유튜브를 찾아서 해당음악을 들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내 머릿속의 상상 음악이 더 좋았다. 사람의 머릿속에 너무나 실제 처럼 대상을 묘사해서 콕콕 박아주는 온다리쿠의 힘은 대단하다. 첫번 째 읽었던 온다 리쿠의 소설은 [밤의 피크닉] 이란 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대신 하룻밤 꼬박 전교생이 함께 떠나는 야간보행제에 대한 얘기였는데, 밤새도록 걸으면서 아이들끼리 나누는 시시껄렁한 얘기 부터 맘 속에 숨어있던 비밀 얘기들 , 걸을수록 달라지는 풍경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선선한 가을밤에 친구들과 함께 실제로 걷고 있는것처럼 느끼며 단숨에 다 읽었던 적이 있다. 온다 리쿠는 확실히 생생한 묘사의 달인이다.


꿀벌과 천둥은 보통 사람들에겐 별로 친근하지 않은 클래식 피아노 콩쿨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다 70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책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날개 단 것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술술 읽힌다. 나는 이틀만에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 힘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때 우리가 엄청나게 열광했던 슈퍼스타K와 같은 감동과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는 피아노 콩쿨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해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서로 우정도 쌓으며, 그들 사이의 미묘한 실력 차이를 가늠하는 심사위원들에게 감탄하기도 하고, 누가 우승자가 될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슈스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감동과 두근거림의 드라마가 이 소설속에 다 담겨있다.


이 소설은 요시가에에서 벌어지는 콩쿨의 예선 1차부터 시작해서 본선 대회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열 여섯살의 피아노 천재이자 꿀벌왕자 가자마 진, 라틴계의 잘생기고도 실력까지 좋은 피아노계의 엄친아 마사루, 어릴적 천재 피아노 소녀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의욕을 잃고 피아노 업계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에이덴 아야, 직장인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뤄보기 위해 잠도 줄이고 돈도 투자해가며 1년여간 준비해서 대회에 출전한 아카시 등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의 얘기가 드라마 인듯, 현장 스케치 인듯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무척 분명하고 개성이 강해서 머릿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본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든다. 


피아노를 배운적도 없고, 심지어 집에 피아노도 없이 양봉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랑하듯 떠돌아 다니는 가자마 진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피아노 거장 유진 폰 호프만의 제자이다. 제자를 두는 것에 엄격해 콩쿨의 심사위원들 조차 호프만의 제자로 완벽히 인정받지 못했는데, 당당히 호프만 선생님의 추천장까지 받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 가자마 진은 심사위원들의 질투로 인해 초반에 분노와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뛰어난 그의 실력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다. 그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에 신비로운 기운을 선사하는 아이다.  마사루와 아야는 어릴적 소꿉친구로 만나서 같은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 친구인데 마사루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헤어졌다가 콩쿨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났다. 핑크빛이 감도는 이들의 사이가 소설에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 속 흔한 천재들 가운데 홀로 평범한 범재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카시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함으로써 느끼는 순수한 기쁨을 콩쿨을 하면서 점점 깨달아가는 그를 보면서, 우리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는 것도, 콩쿨에서 경쟁을 하는 와중에도 서로를 보며 더욱 자극받고 성장해 가는 모습도, 또한 부족함을 느끼며 좌절하는 모습들 마저도 다 좋았다. 


그들이 콩쿨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제목을 들어도 잘 모르는 곡들이지만, 그 곡들이 연주될 때 느껴지는 풍경들을 글로 너무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새삼 표지 한번 기가 막히게 잘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들판에서 꿈결같이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음악 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글로만 이루어진 소설에서도 사람들은 머릿속에 저마다의 음악을 가지고 있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으니까.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 꿀벌과 천둥 p.500>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음악이란 녀석을, 자신이 원할 때 붙잡아서 언제나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은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그 힘이 더 크다. 

음악의 대단함과 아름다움, 이야기의 감동을 동시에 전해준 작가가 일본 서점대상 과 나오키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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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파이어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최민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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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욕설이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대화들이 오가는 소설을 읽었다. 이런 "강아지"," X같은" 단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아주 와일드한 이 소설은 미국 뉴욕주 북부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소녀들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응해서 만든 비밀조직 '폭스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다. 소녀들의 조직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못된다. 왠만한 남자아이들보다 깡다구 있는 여자아이들의 무서운 모임이니까.  요즘 말로하면 걸크러쉬를 뿜뿜하는 아이들이라고나 할까.  그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서로에게 사랑과 충성을 맹세하는 아이들이다. 자기들만의 의식을 통해 어깨에 타오르는 불 모양의 문신을 하고, 상처에서 난 피를 서로 비비며 피를 함께 나눈 자매라고 선언한다. 


소설은 폭스파이어의 멤버 중 하나였던 매디가 연대기 작가로서 조직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아 정리한 문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담이자 한명의 관찰자로서 이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져 활동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불타올랐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불꽃이 사그라들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렉스, 매디, 리타, 골디, 라나로 이루어진 이 조직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렉스이다. 범상치 않은 몸놀림과 용기, 리더십을 갖추고 소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이다. 폭스파이어가 만들어지고 처음 그녀들이 한 일은 조직의 일원인 리타에게 수업시간마다 성희롱을 하고, 은근슬쩍 가슴을 만지기도 하는 변태 수학선생님에게 복수를 하는 일이다. 선생님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도록 선생님의 차에다 커다랗게 낙서를 해놓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빨간 글씨로 자신은 수업시간에 학생을 성희롱하는 수학선생이라는 글씨가 써진 자동차를 몰고 시내를 돌아다녔던 선생님은 결국 동네와 학교에서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는 결국 선생님을 그만두고 먼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다. 폭스파이어의 첫번째 승리인 셈이다. 


이 일에 용기를 얻은 아이들은 매디의 삼촌이 매디를 성희롱하려는 현장을 덮쳐 곤죽이 되도록 다함께 패주기도 한다. 그 삼촌은 소녀들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소녀들을 피해다닌다. 원래는 비밀조직으로 시작되었던 이 조직은 점점 사람들 사이에 어떤 존재로 점점 인식되기 시작한다. 어른들에게는 두려움의 존재임과 동시에 또래 아이들에게는 우러러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여자를 우습게 보는 남자들을 향한 적대심을 표현하는 비폭력적인 행동에 그쳤던 그녀들의 행동은 점점 과격해지고, 대담해진다. 렉스는 폭력과 절도 사건에 휘말려 레드뱅크라는 끔찍한 감옥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서로가 함께 모여 살며 자기들만의 공간을 이루는 꿈을 꾸게되고 실제로 낡은 집을 빌려 아이들은 함께 모여살게 되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금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돈이 필요해진 그녀들은 남자들이 어린 소녀들만 보면 추근덕 된다는 것을 이용해 남자들을 꼬드겨내어 돈을 벌기도 하고, 좀 더 큰 돈을 손에 쥐기 위해 점점 더 과격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런 과격한 계획들 속에서 아무리 무서운 조직이라도 아직 소녀에 불과한 아이들의 헛점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영화로도 이미 2번이나 제작되어 나온  적이 있는 스토리이다. 이 소설의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5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엄청나게 많은 소설을 써낸 훌륭한 작가라고 한다. 이 소설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를 보며 적잖은 기대를 하면서 소설을 읽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우선 번역이다. 


작가의 문체를 번역이 온전하게 나타내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겠지만 소녀들의 와일드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와일드해서 보는 내내 좀 불쾌하기도 했다. 소설적인 장치로 꼭 필요하지 않은 곳까지 곳곳에 쌍욕이 들어가 있어서 꼭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었다. 소녀들의 조직 이야기인데 번역가가 남자분이라서 그런지 너무 심하게 와일드하게 표현하신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번역 문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한참 읽다가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나 싶어 다시 돌아가 읽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좀 정리가 안되고 산만한 느낌의 글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건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정말 단지 그 순간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폭스파이어의 문신처럼, 그녀들의 구호처럼, 

폭스파이어, 타올라라, 타올라라.

다 타버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얀 재밖에 남아있지 않다. 매디는 이 연대기를 정리하면서 스스로 이 모든 과거를 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떨리는지 숨기려 노력하며 말했다. 

"그럼 너는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도 안 믿겠네?"

렉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우리에게 영혼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게 우리 존재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일 이유는 없잖아?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동안만 존재해도 정말 충분한거야. 그렇지 않아? 설사 불꽃이 꺼지는 때가 온다고 해도."


그녀들은 정말 화르르 타오르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사라진 그녀들을 보며 허탈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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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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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물 움짤을 보다가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냉장고를 열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꺼내려고 시도하는데 간식이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 있자 바로 옆에 있는 식탁의자를 끌고 와서 유유히 간식을 꺼내먹는 장면이었다. 이런 사연도 봤다. 집에 정수기를 설치했더니 그 집의 반려묘가 정수기에서 물이 나오는 방법을 알아채고 낮이고 밤이고 정수기 스위치를 눌러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물을 낼름거리는 바람에 정수기 반납을 신청한다는 유머글이었다.  이런 똑똑한 동물들의 사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니, 집에서 반려동물을 오랫동안 키워본 사람은 이 정도 일은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난 나의 반려묘 다림이를 보면 이 녀석이 구강 구조만 받쳐준다면 나에게 곧 말을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이 어디에 들어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선 너무나 적극적으로 명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안 들어줄 수 가 없다. 이런 일을 늘 겪으며 사는 나에게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렇다. 난 그들의 생각이 알고싶다. 말을 못한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와 의사소통 방법이 다를 뿐이고,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여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다른 동물들의 인지능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은 참으로 오만하다.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이 말이 어쩌면 이 책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질문일 것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놀랐던 점은 동물 연구 초반시절, 과학자들은 동물의 인지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생각과 인지가 가능한 것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오로지 기계처럼 훈련된 법칙대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동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비교연구를 진행했다. 그런 과정에서 동물들이 학대아닌 학대를 당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또한 인간이 충분히 똑똑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아니겠는가.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차이는 늘 '인간의 통제' 대 '자연적 행동'의 차이였다. 행동주의자들은 동물을 실험자가 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약한 환경에 둠으로써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만약 동물이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잘못된 행동'으로 분류했다. (...) 반면에 동물행동학자들은 자발적 행동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 동물 행동학은 어떤 종의 모든 구성원들에게서 자연적으로 발달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가지 핵심 문제는 어떤 행동이 무슨 목적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p.. 65~67>


이 책의 저자는 위의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장점을 합친 '진화인지'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데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고 진화하는 관점에서 발전하는 인지능력을 연구해보자는 것이다. 동물의 진화에 관해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는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조금은 어려운 얘기로 시작하지만 (책의 첫 부분은 좀 어려워서 사실 좀 지루할 수 있다;) 그 부분을 넘어가면 재미있는 동물들의 일화가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우리와 진화적으로 가장 비슷한 유인원, 즉 원숭이에 대한 일화는 사실 별로 놀라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꾀가 많은 사람처럼 능청스러운 원숭이 이야기는 신기했다. 사육사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여기저기 숨겨놓고서 원숭이들을 풀어줬는데, 한 원숭이는 바로 옆 수풀 속에 있는 바나나를 보고도 마치 못본 척 유유히 그 옆을 지나간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낮잠 시간이 되어 다른 원숭이가 다 잠들자 조용히 일어나서 그 바나나를 찾아내서 혼자 맛있게 먹는다. 동료들이 다 깨어 있을때 바나나를 발견했다면 분명 동료들에게 빼앗길 것을 계산하고 나중으로 미뤄둔 것이다. 처음에 바나나를 발견하고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못본척 지나가는 빠른 계산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능청스러운 원숭이에게 혀를 내두를 일이다. 


그나마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하게 진화한 영장류니까 그렇다 치고 더 놀라운 것은 조류에 대한 이야기였다.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보고 '새대가리'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까마귀한테는 절대 그런말을 하면 안될 것 같다.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을 한명 한명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특정 가면을 쓰고 까마귀에게 안좋은 기억을 심어준 후  나중에 그 가면을 쓰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해당 까마귀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를 괴롭힌 그 사람의 가면얼굴을 알아보고 자신의 동료들까지 몰고와서 깍깍거리며 괴롭혔다고 한다. 사람도 사람끼리 못알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심지어 까마귀가 사람의 그 비슷비슷한 얼굴을 다 구별하고 알아보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앵무새에 대한 얘기였다. 아프리카회색앵무새 인 앨릭스에 관한 얘기이다. 앨릭스는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냥 사람 말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내용을 인식하고 계산하여 대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똑똑해 보이는 새를 보는데, 이 새는 말을 걸면 사물의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대답을 한다. 이 새 앞에는 물체들이 가득 담긴 트레이가 있는데, 물체들은 털실로 만든것도 있고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것도 있으며, 각자 일곱 가지 무지개 색 중 하나를 띠고 있다. 

이 새에게 부리와 혀로 모든 물체를 만지게 한 뒤 물체들을 모두 트레이에 도로 담고 나서 모서리가 두 개인 파란색 물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고 묻는다. "털실"이라고 정답을 말할 때, 새는 색과 모양과 재질에 관한 지식을 이 특정 물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억과 결합한다. 혹은 하나는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 두개를 보여주면서 "둘의 차이가 뭐지?"라고 물으면, 새는 "색"이라고 대답한다. "어느색이 더 큰가?"라고 물으면, 새는 "초록색"이라고 대답한다

<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p. 168>


이 정도 쯤 되면 이건 인간의 언어와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 새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외워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나름대로 결합해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주인이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옆에서 나직이 "진정해" 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의인화된 말하는 동물, 캐릭터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동물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어쩌면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어 속으로 인간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이 지구에서 어떻게 인간만이 진화를 거듭해 언어를 가지고 문명을 만들어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쩌면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냈다는  말조차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이 책은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오만한 관점을 와장창 깨준다. 

누구한테 욕할 때 "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지 말자. 

그 짐승이 인간보다 똑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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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범인은 누구인가. 아니, 진짜 범인이 있기는 한 것인가. 도시와 동떨어진 시골 마을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문은 계속 양산되고, 한번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사람들의 믿음 속에서 진실을 변질시키기도 한다. 숨 막히도록 무더운 여름날 이런 소설을 읽으니 혓바닥이 서걱서걱 말라가고 숨을 쉴 때마다 모랫바람이 코로 들어올 것 같다. 사막처럼 황폐한 느낌의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 소설은 중반부까지는 가뭄처럼 목이 마르고 숨이 차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처럼 비밀들을 콸콸콸 쏟아내는 소설이다. 마을 사람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진실을 저울질 하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망치로 후려맞는 듯한, 얼얼하지만 통쾌한 한방이 있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호주의 작은 마을 키와라의 작은 농장에서 일가족 모두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다. 아내 캐런과 아들 빌리는 집 안에서 총을 맞은채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남편 루크는 집에서 좀 떨어진 작은 주차장에서 자살 한듯 총으로 머리를 쏴 얼굴 전체가 거의 날아간채로 발견된다. 남편인 루크가 모든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친구인 루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멜버른에서 경찰로 일하는 에런 포크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포크를 알아본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만은 않다. 어린시절 루크와 포크와 함께 어울리던 여자아이들이 둘 더 있었는데 그중 한명인 엘리가 물에 빠져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나서이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온 '포크'라는 이름과 그녀가 죽은 날짜가 적힌 메모는 포크가 그녀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의심과 괴롭힘에 못이겨 포크와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도망자처럼 집을 빠르게 처분하고 마을을 떠나 멜버른으로 향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었다.


엘리가 죽은 후 경찰이 포크와 주변 친구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할 때, 그 시간 강의 상류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던 포크가 혹시 의심을 받을까봐 루크는 자신과 함께 농장에서 토끼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루크가 절대 혼자 토끼사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포크는 루크에게 고마우면서도 혹시 루크가 엘리를 죽인 범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막연히 한다. 서로가 자신이 본 것과 알고 있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친구와 가족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일어난 엘리의 죽음과 현재에 일어난 루크 일가족의 죽음은 그래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루크가 그때 엘리를 죽인 것이 맞다면 이번 사건도 정말 루크가 온 가족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루크의 아버지는 경찰인 포크에게 루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하고, 포크는 처음의 계획을 수정하여 마을에 일주일 정도 더 머물며 그 지역 경찰인 라코와 함께 비공식적으로 마을의 비밀을 수사하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루크가 정말 온 가족을 살해했을까? 과거 엘리의 죽음도 연관이 있는걸까? 혹시 다른 사람이 루크의 가족을 살해하고 루크에게 뒤집어 씌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모든 의문이 따라다니며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마을에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죽은 엘리의 아버지와 그의 삼촌, 그들은 루크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으르렁대던 사이였다. 루크가 죽기 직전 만났던 아랫마을의 제이미, 처음에 그가 포크에게 말했던 알리바이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며 의심에 불을 지핀 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것처럼 포크도 사람들을 의심하고, 독자도 '도대체 누가 범인이야'라는 생각으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의심하며 읽게된다. 


이 책의 띠지를 보면 "모든 페이지에 비밀이 담겨있다. " 라고 되어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과거에 있었던  진실들이 돋음체로 쓰여져 현재의 이야기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가뭄으로 퍽퍽해진 현재와 푸른 숲이 있고 강물이 흐르던 과거의 이야기를 동시에 읽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비밀이 뭔지 눈치채기 어렵다. 작가가 무수히 던져놓은 밑밥들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다 소설의 말미에 그동안 던져놓은 밑밥을 정말 탁월하게 모두 거둬들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중반부까지 약간은 답답하고 지루한 마음으로 읽다가 후반부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스쳐가듯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겨가며 결론을 다 읽고 나자 이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설 전체에 비밀이 담겨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읽었을 때는 단지 여러개의 파편에 지나지 않던 것들이 진실을 알고 나자 그것들이 어떻게 변형되어 의심을 일으키고, 비밀로 숨겨졌으며, 진짜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인지 명확해졌다. 이 책은 제인 하퍼라는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첫소설을 내자마자 수많은 문학상들을 수상한 기록들이 띠지에 나와있다. 비로소 상을 받은 사실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책속 여기저기에 아무렇지 않게 뿌려진 수많은 사실들로 인해 등장인물들간에 가질 수 있는 오해와 의심들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모든 오해와 의심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실은 무엇인지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모래먼지가 잔뜩 낀 더러운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다가 갑자기 깨끗하게 잘 닦여진 창문으로 명확한 세상을 보게 된 기분이 든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의 곳곳에 숨겨진 비밀들을 가지고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게임을 해보길 바란다. 그 퍼즐들이 딱 맞어 떨어지는 최후의 순간, 매우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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