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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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음악보다 글로 보면서 느끼는 상상 속의 음악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질 줄이야. 클래식은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상상 속에서 내 맘대로의 음악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사실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 콩쿨 음악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유튜브를 찾아서 해당음악을 들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내 머릿속의 상상 음악이 더 좋았다. 사람의 머릿속에 너무나 실제 처럼 대상을 묘사해서 콕콕 박아주는 온다리쿠의 힘은 대단하다. 첫번 째 읽었던 온다 리쿠의 소설은 [밤의 피크닉] 이란 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대신 하룻밤 꼬박 전교생이 함께 떠나는 야간보행제에 대한 얘기였는데, 밤새도록 걸으면서 아이들끼리 나누는 시시껄렁한 얘기 부터 맘 속에 숨어있던 비밀 얘기들 , 걸을수록 달라지는 풍경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선선한 가을밤에 친구들과 함께 실제로 걷고 있는것처럼 느끼며 단숨에 다 읽었던 적이 있다. 온다 리쿠는 확실히 생생한 묘사의 달인이다.


꿀벌과 천둥은 보통 사람들에겐 별로 친근하지 않은 클래식 피아노 콩쿨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다 70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책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날개 단 것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술술 읽힌다. 나는 이틀만에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 힘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때 우리가 엄청나게 열광했던 슈퍼스타K와 같은 감동과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는 피아노 콩쿨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해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서로 우정도 쌓으며, 그들 사이의 미묘한 실력 차이를 가늠하는 심사위원들에게 감탄하기도 하고, 누가 우승자가 될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슈스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감동과 두근거림의 드라마가 이 소설속에 다 담겨있다.


이 소설은 요시가에에서 벌어지는 콩쿨의 예선 1차부터 시작해서 본선 대회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열 여섯살의 피아노 천재이자 꿀벌왕자 가자마 진, 라틴계의 잘생기고도 실력까지 좋은 피아노계의 엄친아 마사루, 어릴적 천재 피아노 소녀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의욕을 잃고 피아노 업계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에이덴 아야, 직장인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뤄보기 위해 잠도 줄이고 돈도 투자해가며 1년여간 준비해서 대회에 출전한 아카시 등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의 얘기가 드라마 인듯, 현장 스케치 인듯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무척 분명하고 개성이 강해서 머릿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본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든다. 


피아노를 배운적도 없고, 심지어 집에 피아노도 없이 양봉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랑하듯 떠돌아 다니는 가자마 진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피아노 거장 유진 폰 호프만의 제자이다. 제자를 두는 것에 엄격해 콩쿨의 심사위원들 조차 호프만의 제자로 완벽히 인정받지 못했는데, 당당히 호프만 선생님의 추천장까지 받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 가자마 진은 심사위원들의 질투로 인해 초반에 분노와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뛰어난 그의 실력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다. 그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에 신비로운 기운을 선사하는 아이다.  마사루와 아야는 어릴적 소꿉친구로 만나서 같은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 친구인데 마사루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헤어졌다가 콩쿨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났다. 핑크빛이 감도는 이들의 사이가 소설에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 속 흔한 천재들 가운데 홀로 평범한 범재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카시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함으로써 느끼는 순수한 기쁨을 콩쿨을 하면서 점점 깨달아가는 그를 보면서, 우리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는 것도, 콩쿨에서 경쟁을 하는 와중에도 서로를 보며 더욱 자극받고 성장해 가는 모습도, 또한 부족함을 느끼며 좌절하는 모습들 마저도 다 좋았다. 


그들이 콩쿨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제목을 들어도 잘 모르는 곡들이지만, 그 곡들이 연주될 때 느껴지는 풍경들을 글로 너무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새삼 표지 한번 기가 막히게 잘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들판에서 꿈결같이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음악 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글로만 이루어진 소설에서도 사람들은 머릿속에 저마다의 음악을 가지고 있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으니까.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 꿀벌과 천둥 p.500>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음악이란 녀석을, 자신이 원할 때 붙잡아서 언제나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은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그 힘이 더 크다. 

음악의 대단함과 아름다움, 이야기의 감동을 동시에 전해준 작가가 일본 서점대상 과 나오키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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