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범인은 누구인가. 아니, 진짜 범인이 있기는 한 것인가. 도시와 동떨어진 시골 마을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문은 계속 양산되고, 한번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사람들의 믿음 속에서 진실을 변질시키기도 한다. 숨 막히도록 무더운 여름날 이런 소설을 읽으니 혓바닥이 서걱서걱 말라가고 숨을 쉴 때마다 모랫바람이 코로 들어올 것 같다. 사막처럼 황폐한 느낌의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 소설은 중반부까지는 가뭄처럼 목이 마르고 숨이 차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처럼 비밀들을 콸콸콸 쏟아내는 소설이다. 마을 사람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진실을 저울질 하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망치로 후려맞는 듯한, 얼얼하지만 통쾌한 한방이 있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호주의 작은 마을 키와라의 작은 농장에서 일가족 모두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다. 아내 캐런과 아들 빌리는 집 안에서 총을 맞은채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남편 루크는 집에서 좀 떨어진 작은 주차장에서 자살 한듯 총으로 머리를 쏴 얼굴 전체가 거의 날아간채로 발견된다. 남편인 루크가 모든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친구인 루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멜버른에서 경찰로 일하는 에런 포크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포크를 알아본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만은 않다. 어린시절 루크와 포크와 함께 어울리던 여자아이들이 둘 더 있었는데 그중 한명인 엘리가 물에 빠져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나서이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온 '포크'라는 이름과 그녀가 죽은 날짜가 적힌 메모는 포크가 그녀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의심과 괴롭힘에 못이겨 포크와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도망자처럼 집을 빠르게 처분하고 마을을 떠나 멜버른으로 향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었다.


엘리가 죽은 후 경찰이 포크와 주변 친구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할 때, 그 시간 강의 상류에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던 포크가 혹시 의심을 받을까봐 루크는 자신과 함께 농장에서 토끼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루크가 절대 혼자 토끼사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포크는 루크에게 고마우면서도 혹시 루크가 엘리를 죽인 범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막연히 한다. 서로가 자신이 본 것과 알고 있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친구와 가족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일어난 엘리의 죽음과 현재에 일어난 루크 일가족의 죽음은 그래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루크가 그때 엘리를 죽인 것이 맞다면 이번 사건도 정말 루크가 온 가족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루크의 아버지는 경찰인 포크에게 루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하고, 포크는 처음의 계획을 수정하여 마을에 일주일 정도 더 머물며 그 지역 경찰인 라코와 함께 비공식적으로 마을의 비밀을 수사하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루크가 정말 온 가족을 살해했을까? 과거 엘리의 죽음도 연관이 있는걸까? 혹시 다른 사람이 루크의 가족을 살해하고 루크에게 뒤집어 씌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모든 의문이 따라다니며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마을에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죽은 엘리의 아버지와 그의 삼촌, 그들은 루크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으르렁대던 사이였다. 루크가 죽기 직전 만났던 아랫마을의 제이미, 처음에 그가 포크에게 말했던 알리바이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며 의심에 불을 지핀 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것처럼 포크도 사람들을 의심하고, 독자도 '도대체 누가 범인이야'라는 생각으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의심하며 읽게된다. 


이 책의 띠지를 보면 "모든 페이지에 비밀이 담겨있다. " 라고 되어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과거에 있었던  진실들이 돋음체로 쓰여져 현재의 이야기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가뭄으로 퍽퍽해진 현재와 푸른 숲이 있고 강물이 흐르던 과거의 이야기를 동시에 읽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비밀이 뭔지 눈치채기 어렵다. 작가가 무수히 던져놓은 밑밥들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다 소설의 말미에 그동안 던져놓은 밑밥을 정말 탁월하게 모두 거둬들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중반부까지 약간은 답답하고 지루한 마음으로 읽다가 후반부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스쳐가듯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겨가며 결론을 다 읽고 나자 이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설 전체에 비밀이 담겨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읽었을 때는 단지 여러개의 파편에 지나지 않던 것들이 진실을 알고 나자 그것들이 어떻게 변형되어 의심을 일으키고, 비밀로 숨겨졌으며, 진짜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인지 명확해졌다. 이 책은 제인 하퍼라는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첫소설을 내자마자 수많은 문학상들을 수상한 기록들이 띠지에 나와있다. 비로소 상을 받은 사실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책속 여기저기에 아무렇지 않게 뿌려진 수많은 사실들로 인해 등장인물들간에 가질 수 있는 오해와 의심들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모든 오해와 의심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실은 무엇인지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모래먼지가 잔뜩 낀 더러운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다가 갑자기 깨끗하게 잘 닦여진 창문으로 명확한 세상을 보게 된 기분이 든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의 곳곳에 숨겨진 비밀들을 가지고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게임을 해보길 바란다. 그 퍼즐들이 딱 맞어 떨어지는 최후의 순간, 매우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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