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타 - 2단계 문지아이들 6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라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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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린드그렌 여사는 정말이지 경이로운 분이다. 이 분의 동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데, 하나도 비슷한 애들이 없다. 내가 처음 만난 린드그렌 동화의 주인공은 말괄량이 삐삐인데, 이 엉뚱하고도 씩씩한 소녀는 전혀 예쁘게 생기지 않은데다가 힘은 천하장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를 알게된 사람은 절대 얘를 미워할 수가 없다. 미워하기는 커녕 그 묘한 매력에 중독되어 버리고 만다. 다른 주인공들- 라스무스, 로냐, 미오, 에밀 등등- 도 마찬가지. 각자 성격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개성있고, 매력 넘치며, 내 옆에 있다면 정말 사랑스러울 것 같은 아이들이다.

오늘 또 한명의 매력적인 소녀를 만났다. 이름은 마디타. 일곱살이며 다섯살 동생 리사벳과 이해심 많은 부모님과 행복한 유년을 보낸다. 이 소녀가 주변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얘기는 얼마나 예쁜지! 투정과 거짓말조차도 귀여운 아이들! 사소한 놀이도 엄청난 모험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들!

학교에 갓 입학한 마디타. 학교생활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더니 슬슬 사고를 치기 시작한다. 신발도 잃어버리고, 옷에 잉크도 쏟고......그런데 그건 다 리하르트 때문이다. 그 녀석이 마디타의 신발을 하수구에 쳐넣고, 잉크도 쏟고, 그뿐인가 마디타의 책에 낙서도 하고 지우개를 먹어버리고, 도대체 그 리하르트란 녀석은 어떻게 된 녀석일까? 궁금했던 엄마는 마침 길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이제 리하르트는 큰일났다. 과연......정말 리하르트는 큰일난 걸까?^^

마디타와 리사벳은 요셉놀이를 하기로 하였다. 요셉이 된 리사벳은 우물에 들어간다. 마디타는 요셉의 형이 되어 리사벳을 노예상인에게 팔아치워야 한다. '작고 예쁜 노예 팝니다' 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마디타는 리사벳을 잊어버리고 실컷 놀았다. 문득 생각 나서 가본 우물가에는 '이 노예를 내가 5외레에 샀소이다. 노예장사꾼 무스타파 알 아크마르'라고 써있고 5외레가 놓여져 있다. 아아, 어떡하면 좋아! 난 동생을 노예장사꾼에게 팔아먹은 나쁜 애야!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이런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얼마나 알콩달콩하고 귀여운지 책을 깨물어 먹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린드그렌 여사님의 위대한 점은 이런 에피소드들의 세부를 이루는 아이들의 심리를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들이 어떤 때 심술을 부리는지, 그러다가 어떻게 금방 풀어져서 사랑스런 천사가 되는지 이 할머니는 어쩜 그렇게 잘 알고 계신 걸까? 아이들이 무슨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는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걸까?

분명히 린드그렌 할머니는 이 아이들을 천사처럼 사랑스럽게, 좋은 면만 그리지는 않는다. 마디타와 리사벳은 심술도 부리고, 싸우고, 말썽 피우고, 거짓말 하고, 사고를 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내면을 그려주는 린드그렌 할머니의 손길은 너무도 따스하고 인자해서, 그 손길을 따라가는 우리는 '아이들은 말썽 피우고 사고치는 존재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고뭉치들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저 애들도 사랑스러워, 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이 책에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주인공보다 더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옆집 오빠 '아베'이다.

마디타와 리사벳은 노래를 불렀다.......그런데 정말로 창문 밑에 서서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비쩍 마른 사내아이였다......사내아이는 금사슬나무 덤불 뒤에 몸을 숨긴 채, 전에도 밤이면 종종 그랬듯이 두 아이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베....아베는 노래 듣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베가 거기에 서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 있으면 아베는 수선화를 밟지 않게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그곳을 떠날 것이다.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신 아베, 노예 장사꾼 무스타파 알 아크마르는 착한 소년이었다.

귀여운 두 소녀와 놀아주고, 때로는 소녀들을 놀려먹은 소년 아베. 무능한 부모님을 먹여 살리며 '사람은 살아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법'이라고 농담처럼 중얼거리며 두 아이들을 따스한 눈빛으로 지켜보아준 소년 아베 때문에 이 동화는 한층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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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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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져 있는 이 녀석 얼굴표정이 만만치 않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나 말고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한 교만하고 차가운 초록 눈동자에 마치 죄수복 같은 얼룩무늬. 그 죄수복 느낌의 얼룩무늬는 이 고양이를 주눅들어 보이게 하기는 커녕 무지하게 반항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 심상찮다, 심상찮어!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 백만번이나 죽어봤다지 않은가. 그러니 두려울 게 무에랴. 새삼스레 중요한 것, 애착이 가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이 고양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 뿐이며 사랑하는 것도 자기 자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이 세상 모든 일이 심드렁하며, 자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모든 이가 다 마음에 들지 않고(물론 그들도 이 고양이를 제대로 사랑했던 건 아니었다), 새삼스러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삶을 자신에게 선사한다는 게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할 일이던가? 그래서 그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고양이로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뭔가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그를 자각시켜 준 한 존재가 있었으니 새하얗고 예쁜 한마리 암코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그래"라는 무심한 한 마디로 네가 백만번을 죽었든 살았든 그 삶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얼룩고양이에게 가르쳐 주었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말이다. 그걸 깨닫고 행복한 한 생을 보낸 얼룩 고양이는 이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다. 다 이룬 것이다.

아, 어찌 30쪽 밖에 안 되는 그림책이 이렇게 심오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 또한 이 얼룩고양이처럼 자기자신만을 움켜쥐고 살고 있으나 그걸 내려놓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어서 오히려 고개 빳빳이 들고 "사랑, 그까짓 거. 친구, 그까짓 거. 가족, 그까짓 거" 이러면서 내 안에 나를 가두고 있으니 나도 앞으로 백만번은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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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7-18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드리자마자 사라지셔서 저으기 서운했습니다. 저도 이 책 읽고 싶었는데 이번엔 땡스투로 답하고, 자주 뵈어요.^^

검둥개 2005-07-19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복귀도 화려한 서평으로 하시는군요 ^^ 책 너무 탐이 나는걸요. 추천 한 방~~!

그로밋 2005-07-19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제목만 보고 지나치면서 뭔 내용인가 궁금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저는 몇만번을 다시 태어나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네요. 멋진 리뷰에 꾹~ 누르고 갑니다.

깍두기 2005-07-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전에는 영어닉넴이셨죠? 한글로 바꾸셨네요? 좋아요, 좋아. 전 한영키 누르기 싫거든요^^앞으로 자주 놀러갈게요
검정개님. 화려하긴요, 엉성하지요^^ 책은 좋은 거 확실하고요^^
그로밋님, 님은 성불하시지 않을까 생각되어요^^
모두들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예진 2005-07-2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그림책이군요!
재미있겠어요..^^ 깍두기님 리뷰 역시 멋지네요. 제목두요 ^^

울보 2005-07-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이주의 마이리뷰에 뽑히신것이요,,
저도 이책에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아영엄마 2005-07-2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돌아온 깍두기님, 리뷰 당선되셨군요! 추카추카~~ (저 책 보고 눈물 찔끔했었는데... )

세실 2005-07-2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돌아오시자 마자 경사가 있군요.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좋은책을 왜 몰랐을까요~~~ 낼 도서관에서 가서 읽어봐야겠습니다~

날개 2005-07-2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리뷰당선 축하드려요!^^*

깍두기 2005-07-2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양, 반가워요^^ 방학이니 자주 보겠네^^
울보님, 아영엄마님, 세실님, 날개님, 주인장도 없는데 먼저 아시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ooninara 2005-07-2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축하..나도 이책 읽었는데 왜 이런 리뷰가 안나오는 것이야??
 
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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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정리한 줄거리를 적어보자면

어느 마을에 푸셀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푸셀은 잔소리를 하는 엄마 아빠가 싫었다. 그런데 푸셀은 어느날 잔소리 없는 날을 정했다. 그 다음날 푸셀은 씻지도, 양치질, 세수도 안하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 2교시가 끝나자 푸셀은 학교를 땡땡이 쳐 버렸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엄마는 그걸 알고서도 잔소리 한마디도 안했다.

그리고 파티를 열자고 했다. 엄마는 놀라 물었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누가 올건데?" 푸셀은 "한 여덟명 쯤이오" 엄마는 알았다고 햇다. 그리고 이따가 술취한 사람을 데려왔다. 술취한 사람은 바닥에 눕자마자 골아떨어졌다. 할 수 없이 엄마와 푸셀끼리만 했다. 아빠가 돌아오자 술에서 깨어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다.

느낌은 하나도 없이 줄거리만으로 독서록을 메꾸는 바람에 난 딸아이의 소감이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별달리 물어보진 않았는데 어느날 내 앞에 이런 걸 내미는 것이었다. 



자기가 이걸 내밀면 나는 하룻동안 잔소리를 하면 안된다나 뭐라나......그러니까 얘는 푸셀이 무진장 부러웠던 것이다. 저 특별권을 보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이 맹랑한 것이 교묘하게도 설거지 특별권, 어깨 주물러주기 특별권과 같이 내밀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받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별다른 것은 없었다. 학교도 가고 숙제도 하고, 세수도 양치질도 다했다. 술취한 사람을 초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때가 여러번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저절로 "소현아! 그럼 안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럼 소현이는 날 째려보며 "엄마 ㅡ 잔소리 없는 날 ㅡ"이러고......

나는 아마 저 책에 나오는 푸셀의 엄마 아빠처럼은 절대 못할 것이다. 애가 텐트 가지고 공원에 가서 잔다고 하는 걸 그냥 보내고 그 뒤를 따라와서 몰래 지키고 있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애 입장에서 생각해보게는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들에게 이 책을 사주고 엄마는 안 읽으면 안된다. 길지도 않은 책이니 엄마도 읽어봐야 이 책을 읽고 푸셀에게 공감하는 아들딸들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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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6-0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꼭 필요한 책이네요~
요즘 잔소리를 달고 삽니다. 별 효과없다는걸 알면서도 습관성이예요~

날개 2005-06-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흐흑~ 이 책을 찜하고 싶었건만....ㅠ.ㅠ

마냐 2005-06-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똑똑한 소현이...ㅋㅋ

sooninara 2005-06-0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잔소리하고 싶어서 못살듯..ㅠ.ㅠ
저도 읽었는데..우리 아이들에겐 안 읽힐까봐요..ㅋㅋ

조선인 2005-06-04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맹랑공주 소현이에요. 소현이 만만세!!!! 팬클럽들 뭐합니까? 추천 날려야죠?

깍두기 2005-06-0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과 추천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2 - 양탄자 상인 압둘라 하울의 움직이는 성 2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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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이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다. 영화를 봤는데 도무지 해석이 안되는 부분이 많아 원작을 참고하고 싶었고 더불어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영상세대가 아닌지라 책과 영화를 둘 다 보고나면 주로 책 쪽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인데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러하다.

그러나 1편은 영화의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려지면서 독서를 방해(?)하는 바람에 마음껏 즐겨지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생각만큼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극적인 줄거리로 감탄하게 하는 내용은 아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개성만점의 주인공들이,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행동과 멋지지 않은 발언들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다.

하울만 해도 디즈니식의 용감하고 근사한 정의의 사나이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수에 찬 분위기 있는 남자도 아닌 것이, 외모지상주의 왕자병 말기에다가 될 수 있으면 어려운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예쁜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여주인공 소피도 예쁘지도 않으며 한성깔 하는데다가 맏이 컴플렉스까지 있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할머니로 있어야 한다. 이런 둘의 로맨스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으나 우리가 로맨스에서 바라는 것이 어디 로맨틱 뿐이던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 꾀까다로운 바람둥이 청년과 겉모습이 할머니인 소녀와의 치고 빠지는 투닥거림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도 그런 종류이다.  

그런 매력은 2편에 이르러서 극대화되는데, 2편은 1편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양탄자 상인 압둘라와 공주 밤의꽃. 압둘라를 볼짝시면, 작은 가게를 차려놓고 매일 자기가 사실은 왕자라는 공상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매력적일 게 없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공주를 구하는 방법은 죽음을 무릅쓴 용기와 뛰어난 무술실력이 아니라 '말빨'이다. 그가 사는 진지브라는 도시는 굉장히 예의와 체면을 차린 말투를 사용하는데 거기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온 압둘라의 말솜씨는 너무도 화려하여, 나중에는 그의 언변을 감상하는 즐거움에 책장을 넘길 정도였다.

"아으, 정령 중에서도 자수정 같은 정령이시여, 팬지꽃보다 더 고운 빛깔의 정령이시여....."(호리병에서 나온 정령에게 한 말)

"아으, 길가의 보석이시여, 여인숙의 한떨기 꽃이시여...."(여인숙의 여주인에게 한 말)

"아으, 참으로 눈부신 양탄자야, 홍옥 같고 귀감람석 같은 양탄자야, 이 미천하고 얼빠진 촌놈이 네 고귀한 얼굴에 크림을 쏟고 말았으니 내 깊이 사죄하지 않을 수 없고...."(마법의 양탄자에게 한 말)

한마디로 말해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별다른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다. 영화는 여기에 뭔가 의미부여를 하려 했으나 나는 이대로가 좋다. 새롭고 신선한 인물들과 그들이 하는 결코 전형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리고 그들은 전혀 착한 척, 멋있는 척 하지 않으나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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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2-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좋아요.. 결론도 무지 맘에 들고요.. 추천하고 가요~~!!

깍두기 2005-02-2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날개님. 너무 오랜만에 리뷰를 써서 중간에 글이 많이 막히더군요. 할 이야기는 저것보다 많았는데 나중엔 머리 쥐어짜기 싫어서 얼른 끝내 버렸죠^^

sooninara 2005-03-2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으..지금 막 하울2권을 본 수니나라가 파란 지중해위에 떠있는 페리시아 고양이같은 깍두기님에게 존경을 바치옵니다. 어찌 이리 꽃향기와 웃음이 피어나는 리뷰를 쓰실수 있는지요. 미천한 소녀 물러가옵니다.

깍두기 2005-03-3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 이거 뭐야^^;;; 이제 봤잖아. 웃겨 미치겠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구판절판


그 여자는 사물에 대한 자기 자신의 견해가 있어. 내 견해와는 퍽 다른 거지만.....나는 그 여자의 어떤 면을 네가 봤으면 했던 거야ㅡ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를. 용기라는 게 총을 손에 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것은 시작하기 전에 진 것을 알면서도 하여간 시작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걸 말하는 거야. 이기는 일이 별로 없지만 때론 이길 때도 있는 거야.
(쪽수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적어 놓은 걸 보고 적는거라.....)-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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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1-0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읽은 책이다. 그때는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었다. 이 책에 나오는, 위의 저 말을 하는 아버지는 내가 되고 싶은 부모상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편견없는 마음에 대해 몸으로 보여주고, 말은 적게 하고, 아이들은 자유방임한다. 저런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했건만, 지금 보면 나는 완전 거꾸로가 아닌가. 쯧.

sooninara 2004-11-11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좋아하는데..저 아버지처럼은 흉내도 못내고 살아갑니다..흑흑

울보 2005-01-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느 스무살에 읽었는데 지금은 어느 책꽃이에 꽃혀 있는지 가물가물..다시 읽어보아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