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씌워 두었던 먼지 수북한 비닐을 걷어내고 골조도 조금 손을 봐서 새 비닐을 씌웠다. 비닐을 씌워 두어야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사료와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비바람에 사료도 덜 눅눅해지고. 고양이들이 사료를 바닥에 흘리기도 하고 바람에 흙먼지며 낙엽이며 담배꽁초 등속이 날아와 바닥이 지저분해지므로 못해도 일 년에 두 번은 대청소를 해야 한다. 벽돌이며 구조며 다 들어내고 큰 빗자루로 바닥 전체를 다 쓸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이 조금 거슬려도 못 본 척 눈 감아줄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고양이 식당은 마땅한 자리를 찾기도 어렵지만 항상 주변이 청결하도록 꾸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식당이 지저분하면 식당 때문에 고양이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하기 쉽다.




고양이 식당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좋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엄폐물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벽돌이나 방치된 화분 들이다. 하얀 새 그릇도 안 되고, 보들보들한 털이불도 안 된다. 특히  패브릭은 위생적으로도 불결해 보여서 고양이 식당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자재다. 누군가 우연히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살림으로 근근히 목숨만 부지할 정도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래도 모진 마음, 미운 마음, 못된 마음, 배아픈 마음이 덜 들 테니까. 이번에는 바람 먼지가 덜 들어가게 입구를 벽 쪽으로 조금 틀어서 냈다. 




사료, 물, 그리고 가끔 주어지고 대부분은 비어 있는 특식 그릇. 내일 저 그릇에는 삶은 닭고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날은 따뜻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어서 고양이들은 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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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5-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형 구조의 매력을 발견합니다. 한눈에 왜 아늑하고 세련되어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보이나 했더니 아치형 틀, 아케이드 구조였어요.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고려하고 계산해야하는군요.

Joule 2022-05-09 13:15   좋아요 0 | URL
요즘 건축물의 구조에 심취해 계신 모양이에요^^ 저에게는 안 보이는 걸 보시는 것 같아요. 하긴, 그 맛에 책 읽고 공부하죠.
고양이 식당은 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고양이들의 탈주 퇴로도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고양이가 밥을 먹으면서 조금 눈을 들면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고양이 뒤쪽은 열린 공간이되 그 끝에 담장이 있으면 좋아요. 담장은 고양이들의 고속도로 같은 곳이니까.

hnine 2022-05-15 15:20   좋아요 0 | URL
저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joule님 포스팅 내용과 별 관련없는 엉뚱한 댓글을 제가 달았었네요. 이렇게 즉흥적일때도 있다니 ^^
고양이는 개와 참 다른 것 같아요. 저희 아파트 뒤 축대 담장을 타고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제 방 제 책상에서 아주 잘 보인답니다. 고속도로 같은 곳이라는 말씀이 얼른 이해가 되요.

Joule 2022-05-15 15:18   좋아요 0 | URL
좋은데요. 즉흥적인 댓글이었다니.

책상을 아주 명당 자리에 두셨네요. 담장을 따라 걷는 고양이가 보이는 책상이라니. 와!
 

날이 좋은데 책은 읽지 않는다. 책을 집어들었다가도 한두 페이지 읽다 말고 금세 해찰한다. 차라리 가라앉으면 좋을 것을 둥둥 부유하는 마음. 어쩌면 '날이 좋은데'가 아니고 '날이 좋아서'인지도. 간질간질 공기가 따뜻해서. 내일은 다른 책을 챙겨가봐야겠다. 필독서여도 재미없으면 완독하지 않기, 잘 만큼 잤으면 일어나기,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버리기.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해방클럽 부장님의 해방일지.


화사하게 피었던 철쭉들이 햇빛에 바래고 찬 비에 너덜너덜해져 벌써 행색이 초라하다. 아무래도 이른 감이 있다. 일주일쯤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몰락해가는 철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쭙잖은 위무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 같아 조심하는 편이다. 염창희(이민기)가 그랬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는 말 중에 해서 후회 안 하는 말이 없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망설이는 거라고. 근데 굳이 말을 해가지고 안 좋은 끝을 보고 만다고. 


퇴근길 식자재마트에 들러 당근과 사과와 치토스 한 봉을 샀다. 당근은 100g에 200원도 안 했고 사과는 9,800원에 8개. 당근 주스를 해먹으려고 산 건데 사과가 맛있어서 오랜만에 사과 한 알을 다 먹었다. 치토스도 먹고. 아몬드도 먹고. 뭐 먹은 게 많네...



구 씨의 멀리뛰기를 보고 난 후, 아버지가 따서 길에 둔 호박 두 개를 집어들고 집으로 가면서 염창희의 혼자 신난 발걸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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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는데 고양이 식당 앞에 이쁜이가 앉아 있다. 밥그릇이 비어 있는 모양이다. 출근 시간이 빠듯해서 얼른 사료와 물을 챙겨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마스크를 미처 못 챙겼지만 괜찮다, 차에 여분이 있으니. 차에 가방을 던져 놓고 뒷자리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습식 파우치와 종이접시를 꺼낸다. 이쁜이 주려고 지난 번 마트 갔을 때 이쁜이가 좋아하는 걸로 미리 사두었다. 사람들 시선이 얼른 미치지 않을 만한 곳에 종이접시를 놓고 파우치 두 개를 쏟는다(이쁜이 배가 볼록한 게 또 아기를 가진 모양이다). 고양이 식당 빈 밥그릇에 사료를 채우고 물도 신선하게 갈아준다. 보통은 기다렸다가 종이접시를 회수하는데 오늘은 바빠서 접시는 나중에 치워야겠다. 


이쁜이는 라지의 자식은 아닌데 라지의 혈통이다. 마치 라지가 낳은 것처럼 삼월이와 자매처럼 닮았다. 눈이 땡그랗고 체구가 작고 호기심이 많고 납작코다(납작코는 라지의 혈통 특이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에게 사랑을 느끼는 대각선은 납작코다). 삼월이가 잘생기고 귀여운 편이라면 이쁜이는 귀엽고 귀엽다. 이쁜이의 구역은 내가 사는 다가구 주택 뒤쪽 작은 야산에 퍼져 있는 시골집들 어디이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나면 제 사는 동네로 신이 나서 부리나케 뛰어간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배부르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은지 뛰어가는 그 뒷모습만 보고 있어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항상 이쁜이를 걱정하는데, 그 조그맣고 눈 땡그랗고 납작코인 귀여운 삼색 고양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씩씩하고 야무져서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까지 훌쩍 떨어졌던 지난 겨울도 명랑하게 잘 살아냈다. 가슴 조마조마한 강추위가 지나가고 아무 탈 없이 평소처럼 밥을 먹으러 온 이쁜이를 다시 봤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오늘은 운이 좋았다. 이쁜이를 거의 이 주만에 본 것 같다. 내가 이쁜이를 좋아하는 게 맞는 것이, 나는 이쁜이가 어떤 부탁을 해오든 기꺼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고 자주 느낀다. 심지어 부탁을 해오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이쁜이가 사람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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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5-0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이가 Joule님을 만나서 운이 좋았던 것 같은데 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따뜻하신 Joule님 ^^

Joule 2022-05-02 16:10   좋아요 0 | URL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ㅋ
 

오늘 비가 내린다고 해서 연차를 냈다. 덕분에 출근시간이 지나서 일어났고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며 당장 구입하지는 않을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아몬드 몇 줌, 커피 한 잔, 삶은 달걀 두 개를 먹었다. 꽤 큰 비를 기대했으나 시시하고 되레 기분이 상할 정도의 강우량이다. 마음이 그냥 좀 차가워지는 정도의 강우량. 이런 날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해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수월한 부탁이라 해도 간단하게 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식탁 위에 작은 얼룩을 슥 닦아내듯이.   


벽에 못을 박아 큰 거울을 벽에 거는 계획이 있긴 했으나 나는 지금껏 살면서 벽에 못을 한 번도 박아본 적이 없기에 얼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차하면 주말로 미룰 것이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그리고 더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가.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피곤하고 지쳐 있을 내가. 흥!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고 보면 무책임하면 재미있는 것 같다. 마음이 가벼워서 짐승처럼 거침이 없다. 


고양이는 잔다. 고양이는 비가 오는 날이면 거의 하루종일 잔다. 아기는 잘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던데 고양이도 그렇다. 말 못하는 애들 특인 듯. 자는 모습이 귀여워 고양이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면 곧 갸르릉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럼 얼른 손을 치워야 한다. 잘 자고 일어났으니 이제 맛있는 걸 좀 먹자고 틀림없이 보챌 테니까. (보호자가 있는 경우) 고양이의 삶은 인간의 삶보다 훨씬 수월하다. 고양이는 귀여움으로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하긴 귀엽자고 태어난 동물이니까 그 정도쯤이야. 



저녁에는 미역국을 끓였다. 마늘, 국간장, 들기름으로 끓인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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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미역국 사진에 눈을 빼앗깁니다@_@; 맑게 잘 끓이셨네요. 요리도 잘 하시는 Joule님^^ 들깨 안 넣은 미역국 좋아욧!
저도 모처럼 비 온다고 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제가 사는 곳엔 거의 안 왔어요. 대실망ㅠㅠ 바람은 굉장히 불었고요.

Joule 2022-04-14 16:58   좋아요 0 | URL
저도요! 들깨 안 넣은 미역국 좋아해요 저도^^ 물을 조금씩 여러 번 나눠서 부으면 좀더 맛있게 끓여지는 것 같아요. 단순한 재료로도. 주말에는 소고기 넣은 미역국 끓여 먹으려고 마케컬리에서 소고기 양지 주문했어요. 아티제 롤케이크랑 ㅋ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먹을까, 집에 가서 달걀 프라이 2개를 해서 김치랑 밥을 먹을까 고민 중이다. 드라이브-쓰루 매장이면 고민 없이 햄버거를 먹을 텐데. 집에 가면 삼월이가 또 북어를 달라고 조르겠지. 이렇게 갈팡질팡 고민하다 엉뚱한 것을 먹기도 한다. 얘랑 사귈까, 쟤랑 사귈까 고민하다 결국 다른 놈이랑 사귀는 것처럼. 고민을 한다는 건 둘 다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움이 남고 불만족스러울 거라는 뜻. 제길할, 도대체 뭘 먹어야 하는 거야!


엄마 집에 방 하나를 치워야 하는데, 그러자면 쓰레기가 꽤 나올 것 같아서 관할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OO 주유소 인근에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배출하는 곳이 어디예요?"

"마을회관 앞에 버리시면 수거해 갑니다."

(잠시 후)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로드뷰로 보니까 마을회관 앞에 쓰레기 배출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표지판 같은 것도 없고요. 그냥 깨끗한 길이던데..."

"아... 아무것도 없어요? ... 그냥 거기다 버리면 수거해 갑니다."

"거기다 쓰레기봉투 갖다 놓으면 욕 먹을 것 같은데... 그냥 깨끗한 길이거든요."

"아... 종량제 봉투에 잘 분리하셔서 버리시면 돼요."

"재활용이면 분리를 하는데, 종량제봉투예요. 그냥 다 버리는."

"네, 그러니까 분리를 하셔야죠. 플라스틱 같은 거 넣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분리를 하셔야 해요"

"네? 종량제봉투를 분리하라고요? 음... 종량제봉투는 매립하는 거잖아요. 누가 종량제봉투를 분리하죠? 그리고 오염이 되어 있거나 스티커가 붙어 있는 플라스틱은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게 맞는데요. 깨끗한 플라스틱만 재활용하는 거잖아요. 종량제봉투에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 일체를 버리는 거고요."

"그래도 종량제봉투를 분리하셔야..."

"...... 네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가 나는 고단하고 버겁다. 이런 걸 과연 대화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종료하겠습니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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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제가 답답하네요ㅜㅜ 쳇바퀴도는 대화ㅠㅠ; 종량제봉투를 분리하라니. 무슨 얘긴가-_-

점심은 뭐로 결정하셨을까요? 궁금^^;

Joule 2022-04-12 15:46   좋아요 0 | URL
결국 제3의 메뉴 설렁탕을 골랐는데요. 집에 가야 할 사정이 두어 가지 생겨서 실제로 먹은 것은 달걀프라이 2개와 김치와 콩밥요 ㅋ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대답에 따라 유동적으로 본인의 멘트가 달라져야 하는데, 요즘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대답과 상관없이 본인의 멘트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더라고요. 그냥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화에서도요.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 게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어요 ㅠㅠ)

엊그젠가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전화번호를 불러주는데 말이 너무 빠르다고 해서 다섯 번을 다시 불러줬어요. 복잡한 휴대폰 번호도 아니고, 300-7758 그런 번호였는데 300 불러주면 3 쓰고 뭐라고요? 하고 물어보고 그냥 딱 까무라치겠더라고요.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요. 갸우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