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체코 작가와 체코 소설은 처음이다.

무거운 느낌의 제목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엄숙해질수 밖에 없었다.

1945년, 독일에 점령당한 체코인의 일상을 보여 준다.

전쟁 영웅도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을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전쟁이야기는 왠지 어둡고 차가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무겁지 않고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암울한 전쟁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현실에서 살아가지만

낙천적이고 유쾌하기만 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럴 것이다.

배경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들이 지나는 작은 간이역이다.

스스로 그은 손목의 상처때문에 3개월의 병가를 끝내고 간이역으로 돌아온

스물두 살 흐르마, 전신기사 즈데니치카의 엉덩이에 온통 도장을 찍어 놓은

배차계장 후비치카, 업무는 뒷전이면서 철도청 감독관 되는 것이 목표인 

비둘기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역장이 주인공이다.

흐르마는 후비치카를 도와  탄약을 가득 실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시킨다.

기침할 때마다 피를 쏟으며, 신음하고 있는 독일 병사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렇게 그들은 죽어간다.

전쟁을 소재로 했기때문에 아프고 안타깝지만,

주인공들의 말투나 느낌은 소박하면서도 시원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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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2005년 10월 초, 친구와 둘이서 1박 3일 일정으로 전남 순천, 보성을 여행한 적이 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 세시반에 순천역에 도착했고, 목적지는 보성 녹차밭이었다.

캄캄한 시간에 우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쓰고 무려 두시간 넘게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버스정류장에 앉아 쉬곤 했는데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여행 중, 점심으로 냉면 한 그릇과 율포해수욕장 모래밭에 앉아 맥주 한 캔 사먹은 것 빼고는

배고플 때마다 배낭에 들어있던 초콜릿과 비스킷과 물을 조금씩 아껴 먹었다.

나 또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서면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 뿌듯해한다.

 

처음에 주인공인 듯한 앞표지의 사람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표지를 보고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절대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는 타고난 방향감각을 가진 중년의 작가

폴 페레뮐터는 이혼하던 날,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벗이던 개마저 죽자 무료한 생활을 한다. 

밤이면 수면제를 삼키고 소파에 누워 마치 마가린 같은 잠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얼마 동안 어디로 떠날지 정한 것 없이 그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행은 결국 아버지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것이 된다.

그는 십삼 일 동안 더러운 숲을 헤맨다.

나침반이 없기에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수밖에 없다.

낚싯대가 없기에 물고기를 모닥불에 구워 먹을 수도 없다.

렌즈콩과 말린 대구, 바나나, 시리얼바, 초콜릿바와 생수가 바닥날 때까지 걷는다.

상처를 입고, 배고픔을 절감(切感)하고,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그동안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프랑스 작가 장폴 뒤부아와 그의 소설을 처음 접했지만,

글솜씨에 감탄하는 바이며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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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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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리 리뷰어로 선정되어 미리 원고를 읽고 올리는 글입니다."

플라네타 상을 수상한 로사 레가스에게서 "이 상금으로 '시간'을 살 수 있겠군요."라는

수상 소감을 듣고 이 소설의 소재를 생각해냈다는 작가. 시간을 사고 판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축약 소설을 썼다.

가령 시간은 'T', 돈은 '$', 각 장(章)은 'C'로 나타냈다.

목차에 페이지 수가 적혀 있지 않은 것과 각 장의 제목은 목차에만 썼다는 게 눈에 띄었다. 

색다른 형식과 흥미로운 내용 덕분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주인공 TC의 대차대조표며 적두개미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주식회사를 이끌어가는 과정이 경영서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소변 검사를 위한 용기에 넣어 판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니.

하지만 친구 DVD의 도움으로 이 흥미로운 상품은 N(뉴스)에서 소개되고,

도시 전역에서 5분짜리 플라스크를 찾는 주문이 쇄도한다. 맙소사.

내가 만약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사게 됐다면 어떨까?

과연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며 나만의 자유를 만끽할까?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나만의 문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계는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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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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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핑거스미스. 소매치기란 뜻이다.

인터넷으로 책의 소개를 먼저 읽었을 때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며 레즈비언 역사소설이며 추리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모든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내게는 단지 한 권의 스릴러물일 뿐이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 한 권만 붙잡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6등분 하여

6일 동안 읽자고 다짐했건만, 읽으면 읽을수록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조바심이 났다.

결국 늦은 새벽까지 읽다가 잠들곤 했다.

이 책은 1, 2,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수전 트린더이며 수전 스미스이며 실은 이 둘도 아닌 그녀가 '나'가 되어,

2부는 모드 릴리(그녀 역시 모드 릴리가 아니었다)의 시점에서,

3부는 다시 수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1부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가슴이 뛰었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끔찍한 음모와 배신, 사랑, 복수가 얽히고설켜 

읽는 내내 숨막히게 한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일을 너무도 세세하게 묘사하여

지루한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과

이러한 소재로 이처럼 긴장할 만큼 멋진 소설을 써낸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내가 가진 책 중에 소장가치가 가장 높은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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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하루
한스 크루파 지음, 서경홍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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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똑같은 따분한 일상.

매달 받은 월급 외에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자신이 선택한 유일한 직업에 마침표를 찍고 오랜만에 다시 자유를 느낀다.

앞부분의 이야기가 최근에 내가 느낀 바와 다르지 않았기에 책 속으로 더욱 빠져들었다.

주인공 마누엘은 3년 동안 거리의 악사로 겨우 먹고사는 정도.

통기타를 연주하고 흘러간 팝송을 부르며 그는 행복하다.

길에서 연주하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 온 프라우케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그들은 2주 동안 함께 살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인생관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끼는 중,

프라우케의 옛 애인이 등장하고 마누엘은 집을 나온다.  

마누엘은 프라우케의 아래층에 사는 얀과 린다와 친구가 된다.

얀에게서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형제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고,

린다와 대화하면서는 온기와 친근함을 발견한다.

식물원 '나비의 집'에서 마누엘은 맑고 파란 눈의 조에를 만난다.

두 번 꾼 같은 꿈에서 나비 가면을 쓴 여인이 조에였던 것이다.

그는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좇아 특별한 일 없이

현실에 안주(安住)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답답함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움을 바라는 사람에게도...

생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한다면 하루는 곧 영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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