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마지막 편지 - 한국어 특별판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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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구석에서 숨죽이고 책을 읽으며 슬픔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도서관에서 빌려 온 김정현 장편소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읽고서였다. 이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슬픈 내용이라면 괜히 선택하기가 꺼려진다. 키토 아야의 '1리터의 눈물'과 키토 시오카의 '생명의 허들'도 그래서 읽지 않았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기록이고 그녀 어머니의 수기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1리터의 눈물 '마지막' 편지라는 부제를 보고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고서야 아야가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난 기껏해야 몇 년 전의 일일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하늘과 구름이 함께 보이는 분홍빛 표지는 재미있는 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눈물자욱이 보인다. 교복 입은 소녀의 뒷모습에서 얼굴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 글의 형식이다. 아야가 쓴 편지들을 읽으며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편지나 쪽지를 주고 받던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야의 사사로운 감정들이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한국 학생들이 아야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가슴 뭉클했다. 아야의 어릴 적 사진과 손수 쓴 글씨와 실제 편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크지 않지만 바로 앞의 행복을 소중히 여긴 아야의 다정다감한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따뜻하고 편안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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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수 소설집 세트 - 전2권 - 내 여자 친구의 귀여운 연애 + 내 안의 황무지
윤영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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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짤막한 내용보다 긴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 편이다. 그래서 소설집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어쩌면 금새 끝나버리는 이야기에 허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지도 모를 일이다. 

'내 여자 친구의 귀여운 연애'라니. 눈에 띈 소설집 제목이 책에 관심을 갖게 한 가장 큰 이유다. 귀여운 연애, 산뜻하고 가슴 설레인다. 연애는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귀여운 연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리만족을 핑계로 책을 선택한 건 아닐까. 두 권으로 분리된 각 권의 표지가 심상치 않다. 밝고 화려한 정원에 서있는 남자는 어떤 표정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여자 친구의 귀여운 연애를 엿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두워서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정원에 여자는 무엇을 들고 서있는 걸까?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 같았다.

앙증맞은 제목의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참고「내 안의 황무지」를 먼저 들었다. 이름만 보고 남자일 거라 생각했던 저자는 여자였다. 어느 소설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기대 이상의 소설집이었다. 상대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소설책 읽는 여자('내 안의 황무지'), 환청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식이 엄마('적도 부근'), 잠꼬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정은자('만장') 등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예감이라는 것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만장', 인터넷 카페 정기 모임이라는 친근한 소재의 '이우천하지선사', 얽히고설킨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꼭 추리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이 나는 '개나리가 활짝 핀 봄날 버스를 타다'.

첫 권이 약간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었다면 둘째 권은 좀더 밝아지고 경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 여자 친구의 귀여운 연애'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었지만 실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각 소설의 주인공이 된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 등장인물들의 곁을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으로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할인 매장 치킨 코너의 양미가 안쓰러웠고,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마음으로 광고맨 강희명을 응원했다. 몇 편의 소설끼리는 공통점을 보이기도 했고, 나는 마침내 윤영수 작가의 소설을 알게 되었다. 열 편의 짧은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너무 자신있게 말한 걸까. 하지만 <이해하게 되었다>가 아니라 <알게 되었다>니까. 저자의 문체를 알았고 다른 듯 비슷한 소설집 두 권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또다른 소설을 만나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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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권오단 지음 / 포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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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반도>, <가즈오의 나라>, <하늘이여 땅이여>, <황태자비 납치사건> 등을 읽으며 역사소설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노가원의 <태양인 이제마>,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 조두진의 <도모유키>, 김별아의 <미실>과 <논개>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다. 학창 시절 국사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내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제는 역사소설이라면 무조건 구미가 당긴다. 게다가 역사추리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디지털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에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했던 걸까. 책을 덮었을 땐 뭔가 허전함이 남았다. 사실 작가는 '난(亂)'이라는 제목에 맞게 충실한 내용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왕자들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에 대해 질문하는 임금의 모습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덟 살인 광해군의 되바라진 모습에 미미한 소름이 돋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난에 대비하는 율곡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단옷날 열린 씨름판에서의 이야기는 꽤 길게 늘여뜨렸지만 직접 구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괴력의 사나이 백손과 열일곱의 어린 소년장사 바우의 눈부신 활약도 볼 만하다.   

'이탕개의 난'을 배경으로 했고 이권 다툼이며 북방의 야인, 당파의 분쟁 등 어려운 말들은 그저 눈으로 훑고 지나갔다. 역사에 대해서라면 부끄러울 정도로 모르지만 내게 역사소설은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소설일 뿐이다. 어렵게 이해하려 들고 이런저런 배경들을 따졌다면 한 편의 긴장감 있는 소설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정신 없는 시국이나 신분에 따른 차별과 같이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문제점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제목과 표지와 내용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어지러울 '난(亂)'보다 좀더 상세한 제목이었다면,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뒷이야기가 좀더 진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목과 내용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만큼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는 내 소심한 표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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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 1
질 스몰린스키 지음, 이다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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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학교 들어가 친구들은 스물여섯이지만, 언젠가부터 한살이라도 어리게 말하는 걸 으레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물다섯도 거의 끝나간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급한 마음에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한때 쌓아놓고 읽었던 자기계발서를 생각했다. 몇 세까지 꼭 해야 한다는 제목의 이야기는 읽고 나면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짓수가 많기만 한데 또다시 찾게 되는 것이 왠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는 소설이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고 술술 잘도 읽히는 소설 말이다.

서점에서 책장(冊張)을 넘겼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 '다음에 할 일. 낯선 사람에게 키스하기.'였다. 바로 덮어버렸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올 듯한 예감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고 시원한 그래서 유쾌한 내용을 기대했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추리소설은 탐독하는 동안 꼭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책에 빠져들어서인지 아니면 전개되는 과정이 빈틈없어서인지 그 상황의 영상이 그려졌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이 든 건 처음이다.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라니 책을 읽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다.  

마리사와 처음 이야기한 날 그녀가 죽었다. 죽은 곳에 함께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그녀의 가방에서 발견한 리스트에 적힌 항목을 하나씩 수행하기 시작한다. 서른넷의 주인공 준 파커가 스무 가지 중 열여덟 가지를 수행하는 동안의 이야기다. 항목을 살펴보면 내가 지금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정도, 약간의 용기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아홉 가지 정도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리스트를 내가 수행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긴장된다. 마리사의 스물다섯 살 생일 전까지 완벽하게 해낸 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과연 어떤 항목을 넣을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 해야 할'이라는 수식어보다 마리사와 같이 구체적인 기한을 정하는 것이 수행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언젠가 내 리스트를 정리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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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상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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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원쉬엔의 작품이라면 학교 다닐 적에 <빨간 기와>, <까만 기와>를 읽었을 뿐이다. 작가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썼다는데 꼭 우리네 옛 시절 이야기를 읽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이제 차오원쉬엔이라면 친근한 중국 작가로 여겨진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느낌이 좋다. 겉표지의 가느다란 하양 선이 빗줄기를 표현한 것일까. 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먹구름, 홍수, 우산 등 비와 관련된 것은 어느 것 하나 좋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런 내가 '비'라는 제목의 두 권짜리 소설을 읽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비가 내린다. 잠시 멈춘 듯하여 공기라도 한 모금 마실라치면 또다시 비를 뿌린다. 하지만 내용이 지루하지 않고 비에 젖어 눅눅하다는 느낌은 없다. 한 장(章)을 읽으면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기대된다. 

유마지(油麻地)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유마지로 흘러들어와서 결국 유마지를 위해 살다가 죽어서도 유마지를 잊지 못하는 두원조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예순이 넘어서까지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책장(冊張)을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 영상이 흘렀다. 비록 날씨는 맑지 않지만 포근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과 질투가 뒤섞인 끊임없이 얽히고설킨 이야기.

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다른 소설보다 등장인물에 대해 더 쉽게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가 그들의 성격이나 모습이 잘 묘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배경이나 상황 설명은 자세하게, 인물 묘사는 세밀하게 되어 있다. 2권을 펼치면 유마지에 농사를 지으러 젊은이들이 오고 그 중 애융이라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전환점이라 볼 수 있겠다. 인상깊었던 건 장님 범 씨의 노래부르는 장면이다. 노래 가사가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듯하다.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야기에 빈틈이 없다. 앞뒤 내용의 연결고리가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역시 다른 외국소설과 다르게 친근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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