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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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억과 시간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 가능할까?

기억의 불완전함은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저장되어 나를 보호하며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까지 된다.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을 두고 각자가 기억하는 것이 다른 이유일 것이다.

이 소설은 반전 그리고 책장을 덮자마자 다시 읽게 된다고 유명하다.

소설의 내용만을 보자면 흔할 수 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보여서 독특하게 기억된다.

줄거리 자체보다 각자의 기억을 돌아보게 하는 힘에 강한 무게가 실렸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 11쪽.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106쪽. 에이드리언의 말.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 106쪽~107쪽.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141쪽.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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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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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연극은 인생을 모방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스물한 살의 나는 문학을 모방하는 인생을 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문학적인 사랑, 문학적인 삶이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삶을 원했던 게 틀림없다. 물론 그런 생각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때는 봄날이었고 피는 신선했으며 무슨 일인가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초조감으로 가슴은 터져나갈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연애라는 새로운 모험 속으로 뛰어들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73쪽.​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

문영심 작가는 방송작가였다가 현재는 강원도에서 조용하게 지내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네이버에도 블로그가 있는데 글만 읽는 이웃이다. 작가인지도 모르고 이웃이었다가 나중에 알게 된 경우.

그저 남편 소로우와 자연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역시 범상치 않은 분들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마음에 문학을 품었던 적이 있거나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작가 지망생뿐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가진 이라면 좋아할 책.

게다가 나의 20살은 어떠했는지. 그때를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품 앞부분에 빠져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다가 다시 도스도예프스키의 돌로 돌아왔다.

우리 안에 숨은 욕망이 만들어낸 돌.

그리고 또 하나 잊고 있던 것! 장 그르니에의 「섬」이다.

알베르 카뮈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장 그르니에의 책을 읽으며 푹 빠졌던 작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이지만 문학을 사랑하고 게다가 여자라면 더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책.

책에서 글을 쓰는 아내의 문서를 모두 삭제해버린 남편의 모습과 그런 행동 때문에 남편을 떠나 홀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글을 쓰는 아내의 모습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테니까.

난 작가도 아니고 지망생도 아니지만 공감한다.

+ 문영심 작가 개인 블로그 ​http://insomnia9.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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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짜리 집 100층짜리 집 1
이와이 도시오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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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남아가 열광하며 읽는 100층짜리 집. 숫자 세어가며 100층에 도달해서는 신나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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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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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풍파 속에서도 작은 일상의 행복을 꿈꾸며 조용히 견디는 소녀의 성장보고서. 밥이 끓는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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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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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사진을 아예 뒤표지로 대체했다. 작가의 말이 이미 제목을 그대로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밥냄새가 나는가 싶어 코를 벌렁이게 하는 이 책은 일상의 소중함을 누리는 일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그 정겨움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추억 중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서면 배가 고르고 마침 집에는 늘 밥이 있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이었지만 보온밥통에는 밥이 따끈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도 출출하면 동생들과 당시 슈퍼를 하는 엄마를 보러가는겸 과자도 먹으러 가고는 했다. 집에서도 가까운 곳이어서 엄마의 부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상의 모습을 누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책에서 만난 순지의 시간은 너무도 더딘듯했다.
 
 주인공 순지는 가난하지만 가족과 행복했다. 그러나 거듭된 불행으로 경제적으로도 힘겹지만 엄마도 돌아가신다. 아빠의 술주정과 폭행, 새엄마, 배다른 동생 등 그야말로 고등학생 순지가 겪어가기에는 벅찬 사건의 연속이다. 옛날 드라마처럼 신파적이게까지 느껴지는 풍파 속에서도 순지는 작은 일상을 꿈꾸고 지켜가려 노력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라는 게 서글프다. 어린 사춘기 소녀가 겪어가는 혹독한 성장보고서였다.
 
 

 살림이란, 아니 삶이란 이처럼 지나간 손길 위에 또 하나의 손길을 얹는 것일까? 할머니의 손길 위에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손길이 얹힌다. 물론 모든 것은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으면서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232쪽.
  그러나 순지는 곧고 강했다. 환경 탓을 할만도 하지만 미련할 만큼 사람을 믿었고 기다리고 삶에 순응한다. 결국, 기다림의 끝에서 만난 아빠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때에도 이 우직한 소녀는 말없이 밥 짓는 것으로 마음을 다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대신 아이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견뎌냈다. 그렇게 훌쩍 커간다.
 
 박상률 작가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데 어른의 관점으로 읽더라도 정겨웠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읽는다면 어떨지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신파적이라고 느꼈을 부분도 어쩌면 그들은 더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된다. 그 시기는 모든 감정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장했다가 끝없이 변화하는 시기이니 말이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책이다. 밥을 해주는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순지처럼 꿋꿋하게 나서서 직접 밥을 해먹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순진하고 속없어 보이는 순지가 미련한 게 아니라 실은 누구보다 예쁘게 보였다. 붉고 강렬한 맨드라미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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