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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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00권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빈곤한 내 책장. 성격상 쌓아두고는 못살아서 바로바로 정리하던 습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나마 임시방편으로 상자에 넣어두다 보니 책장이 많이 비었다. 그럼에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남았다는 사실은 행복인지도. 그러나 가끔은 읽었는지 가물가물하거나 내게 이런 책도 있었나 싶은 책도 심심찮게 만난다. 오늘의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손에 들고는 어떤 경로로 내게 왔었나 잠시 고민해본 책이다. 아무런 정보도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산 책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했다. 제목은 별로인데 저자와 가족의 이력을 보니 흥미가 바로 생겼다.

 
 아, 이 책을 왜 이제야 보았을까! 아주 재미있잖아! 저자 임혜지는 독일인 남편과 아들, 딸과 독일에서 산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공학박사 학위도 받았으며 글도 쓰고 주부로 사는 자유영혼이었다. 개인적으로 건축학에 관심이 많은데 보통 사람과 다른 환경까지 속한 저자에게 호감이 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저자와 가족의 삶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인생관, 철학 이야기를 듣는 순간 상대의 반짝이는 눈빛이란.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그 자유로움과 확고함에 상쾌함마저 느껴진다. 
 
 물리학 박사로 고학력이지만 돈보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적정량의 돈만 벌고 사는 남편. 환경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 저자의 남편이다. 또한, 아들은 아빠처럼 물리학을 공부하고 학교생활을 아주 두루 즐겨서 바쁜데도 대학시험을 앞두고 취직까지 한다. 이 가족의 막내인 딸은 식구 중 자기만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술도 마시고 춤도 추러 다니고 멋쟁이라 옷을 사고자 빚까지 낸단다. 책 출간이 2009년이니 지금 조금씩 변화가 있으리라 추정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이 가족의 유대감과 철학은 크게 달라졌을 거 같지 않다.
 
 지금은 둘 다 예전의 꿈과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돈은 소중하게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걸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풍요로운 인생을 맛볼 생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 85쪽, 아이들이 선물한 풍요로운 인생중에서.

 돈을 많이 벌지 않지만, 절약을 하기에 돈이 더 필요하지 않은 소박한 가족. 환경을 생각해서 에너지를 아끼며 추운 겨울에는 보온 물주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행복감에 빠질 줄 아는 사람. 아이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부모. 의견을 나누고 충돌과 화해를 반복하는 부부. 서로의 의견을 나눌 줄 아는 대화하는 부모와 아이들.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공감하는 바도 있었고 정말이지 심심하지 않은 가족이다 싶었다. 딸 성교육 이야기는 생각해본 적 없는 거였는데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왜 지금까지 난 아들 성교육만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첫째가 아들이라 그런가. 아직 어린 유아기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모의 인생관이 얼마나 그 집안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돌아보았다.

 

 책 후반기로 가면 독일 이야기로 그중에서 특히 대재앙이었던 나치 이야기와 역사청산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과 비교되는 독일의 반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책 전반을 차지하는 가족 이야기에서 유모와 사랑이 가득하다면 후반은 역사에 대한 진지함과 성찰이 담겼다. 물론 저자의 자유로움과 거침없음이 시원시원하다. 저자처럼 우리는 무지개색이란 빨주노초파남보라 배우는데 독일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 또 다른 화두를 주었다. 당연한 사실이란 무엇인가. 이 책이 더 많이 알려져서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좋겠다.

 

 

 

■간단 서평: 가족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책. 독일에 사는 한국인 주부와 독일인 남편과 아들, 딸. 이들이 펼치는 유쾌한 하모니. 자유영혼. 교육관. 역사관.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하지?

 

□저자의 웹사이트: http://www.hanamana.de/hana/ (빨간치마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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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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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기억이 앞선다. 신선한 소설이라고들 했었다. 읽어볼까라는 마음이 한 번쯤 들었지만 읽지 못한 채 지나갔다. 이후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제목이나 대략의 이야기만으로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고 이제야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주인공은 청소년.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포근해야 할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그야말로 동거인으로 혼자 밥 먹고 자신의 방에서 문을 닫고 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밥이 아니라 빵이다. 지겹도록 먹는 빵이 소년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지겹지만 따뜻한 집밥의 자리를 대신해서 다양한 빵을 먹으며 어느덧 익숙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눈물 젖은 빵까지는 아니지만 빵은 소년에게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었다.
 
 매혹적인 제목처럼 마법사의 빵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소년. 성장소설과 환상소설은 정말이지 조합이 잘 어울린다. 무서운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자면 이런 마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도 각박하니까 그래서 더욱 현실과 환상은 경계 없이 무너진다. 그러나 결국 우리네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마법처럼 달콤하지만도 않다. 작가의 말처럼 선택의 순간이 있고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ㅡ도대체가, 지금을 부정하는 인간이 이런 걸로 조금 도움을 얻어보았자 무얼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거지?
기억해둬,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야.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처가 나면 난 대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단지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실은 더 많을터다.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작가의 말중에서.
 책 끝 부분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이리라. 이 소설의 흡입력 강하고 섬뜩한 현실과 달콤한 마법 속에서 독자가 읽어내야 할 의미심장함. 결론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 걸 읽으며 개인적으로 N(NO) 편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조차도 고스란히 겪어내고 선택(이 선택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다는 점. 나이가 들어가니 모든 것이 선택의 연장이고 자신의 몫임이 뚜렷해짐을 느낀다. 
 
 전체적으로 가독성도 좋고 재미도 있으며 현실적이며 동시에 환상적이다. 구병모 작가의 책도 조금씩 만나야겠다. 이후의 작품도 궁금하다. 무거운 주제인 지독한 현실을 이렇듯 표현해내며 전달하는 메시지도 분명해서 좋았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어떠했을까. 예전에 읽은「완득이」도 떠오른다. 다른 방식의 청소년 소설이지만 두 소설 다 누구나 읽기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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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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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과 만나기 그 네 번째 책. 이 책 또한「미학 오디세이」세 권과 함께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이다. 이제 사둔 책 중 단 한 권이 남았다. 그 책도 아마도 2주 안에 읽을 계획인데 이후에는 사야 할지 생각 중이다. 사실 저자의 책은 아주 흥미롭고 영감을 주기에 계속 사고 싶기는 하다. 이번 책은 제목 그대로이며 여러 가지 꼭지를 묶어두었다.「미학 오디세이」가 여러 가지를 묶었다면 이 책은 비교적 작은 하나의 소재를 짧게 들려준다. 가볍게 먼저 읽어봐도 괜찮을 책이다. 그러나 책을 통한 확장성은「미학 오디세이」만큼이나 커질 수 있다. 무지개색으로 나뉜 소재는 그 이상의 색을 창조하게 상상력을 키우라 말하는듯하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찌나 재미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관심거리가 제법 많이 나온다. 체스, 광대, 애너그램, 아크로스틱 등. 특히 광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더 알아보고 싶었다. 재치 넘치는 익살꾼이자 비판자 그리고 인간이면서 아닌듯한 묘한 존재라 느껴졌다. 그런데 저자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광대를 언급한다. 역시나 광대가 인상적이었던 건 나만이 아닌듯하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린도전서> 3장 18절.) - 57쪽, 우연과 필연中에서.

 

 

고대에 광우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에라스무스의 책에 인용된 호라티우스가 이르기를, "그대의 생각에 약간의 광기를 섞으라. 알맞게 헛소리를 함은 즐겁도다."라고 하였다. 중세만 해도 광우는 경외의 대상으로 일상의 일부였다. 광인이 사회에서 추방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 58쪽, 우연과 필연中에서. 

 광인이 사회에서 추방되기 전에는 일상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새롭다. 어쩐지 낭만적이다. 광대의 애매모호한 말속에는 지혜와 일침이 공존했다. 지금 세상에서는 그 자리를 예술인이 대신하고 있기는 하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근하거나 흥미로운 주제로 접근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선함보다는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놀이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가까운 예로 빛과 그림자놀이, 숨바꼭질의 연속성 등이 그렇다. 아기 때 까꿍 놀이부터 시작된 놀이문화 그리고 예술. 거창하게 예술가가 아니어도 이미 우린 모두 놀이와 예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느끼는 소소한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고 인간에게 자양분이 되는지 느껴본 바로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한다.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이 이 책에 다 있으니 저자는 그것을 꺼내들춰 보이며 내 머릿 속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아이에게는 물을 쏟는 일을 비롯해서 세계는 연속이 아니라 단편들로 주어진다(242쪽.)는 글을 읽으며 이 책은 부모들이 읽어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게는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되지만 크게 보면 부모가 놀이와 예술, 상상력에 대해 돌아보고 아이를 그 세계로 이끄며 도움을 주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을 대충 넘겨보고는 관심사가 많아서 흥미롭다고만 생각하고 덮었는데 제대로 읽어보니 몇 년의 시간만큼의 나를 뛰어넘게 된다. 묵혀둔 시간만큼 나는 더 넓어진 시야로 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때 읽어도 괜찮았겠지만 지금 읽어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이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거기서 얻는 영감은 제법 많았다. 읽을수록 캐낼 수 있다면 더욱 근사하겠다. 아, 영감을 상상력으로 이어가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삶에 치여 먼지가 뽀얗게 쌓여버린 나만의 창고를 닦아내야겠다. 그 즐거움이야말로 삶의 윤활유가 될 테니까.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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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처럼 살아요 - 효재 에세이
이효재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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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이던가. TV를 통해 효재의 삶을 본 기억이 있다. 당시 타샤 튜더를 좋아하던 내게는 한국에는 이효재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계기였다. 더구나 그녀는 한복 디자이너였다. 전통적이고 자연적이며 바지런하고 살림을 잘하는 사람. 단아하고 순박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사는 삶을 보여주는 여자였다. 보자기로 멋지게 선물포장을 하고 음식 하나를 대접해도 정성을 다하며 한시도 손을 가만두지 않는 사람.
 
 육아를 하다 보면 지쳐서 살림은 누가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전부는 아니어도 청소만이라도 아니면 음식만이라도. 그래서 힘들고 짜증이 나서 살림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럴 때 이 책은 많은 안식을 준다고 할까. 효재의 살림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가짐 또한 어찌나 아름다운지 말이다. 물론 효재는 자식이 없고 남편도 자유영혼이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니 그녀만큼 아름답게 살림하고 가꿀 수는 없겠다. 그러나 사실 그녀와 같은 상황이라도 이렇게나 바지런하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선물하기를 좋아해서 조카에게 첫 해외여행을 선물한 사람. 여름에는 부채를 만들어 선물하고 온갖 나물도 말려보내고 곽티슈를 보자기로 싸서 보내는 등.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선물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사서 보내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이 모두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정성이 들어간다. 이런 선물이니 받는 사람도 얼마나 기쁠까.

 
 그녀의 고독은 슬프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간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변모시킨 효재의 긍정 에너지와 여유 있는 마음이 돋보였다. '나는 나를 충분히 산다.' (38쪽)고 자신 있게 말할만하다. 사람에게 참으로 잘하는 사람. 날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그녀는 값비싼 부담 가는 선물은 주지 않으면서 소소하고 부담 없지만 마음에 남는 행복을 선물한다. 얼마나 현명한 판단인가. 아마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은 기억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그때그때, 지금이 다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드니 매 순간이 선물이다. 삶 자체가 선물이더라.

 육아로 지친 요즘 다시 만난 효재는 내게도 선물을 주었다. 일상의 소중함과 살림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아이들을 위해 외식을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힘들어서 하는 일이 있었는데 주말을 제외하고는 평일은 꼭 내 손으로 차려주기. 그 시간이 피곤에 쩔어서 하는게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다 아는 사실이 내가 비로소 받아들였을 때에야 진실이 된다.
 
 예쁜 책으로 만든 효재의 이야기였다. 사진이 많지만 난 왜 그 많은 사진 속에서 시원하게 발을 씻는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맨발의 자유로움이 시원해 보였나 보다. 살림 속에서 아니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자유의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저 사진으로 대변될 수 있지 않을까. 바쁜 가운데의 휴식이야말로 달콤하지 않은가. 그러고자 나도 나로 충분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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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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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 오디세이의 마지막은 피라네시와 함께 했다. 책표지만 보자면 피라네시의 이름은 몰라도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겸 화가인 피라네시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가 많을만하다. 영감을 부르는 그의 작품과 마주하니 에셔와는 확실하게 다름을 알았다. 몽환적인 느낌 그리고 지금은 잊혀진 오랜 과거의 어느 순간을 보는듯한 착각.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은 그만의 능력이리라. 첫눈에 어디가 논리적이지 않은지 보이는 에셔와 다르게 피라네시는 인지가 어려웠다. 에셔도 재미있지만 피라네시 역시도 놀랍다. 18세기의 환상적 리얼리스트라는 명칭은 그냥 얻은 게 아니다.
 
 모르는 예술가만 나오면 섭섭하지. 모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루앙 성당이나 수련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저 인상주의 화가였거니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수련 작품을 많이 좋아한다. 객관이 아닌 주관을 지향한 화가의 눈을 통해 보여진 작품 앞에서 나 역시도 객관과 주관에 대해 돌아본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발러가 다시 그린 걸 보며 두 작품의 차이에서 차이보다는 공존을 느꼈다.
 
미메시스는 인식론적 모방(imitation)이 아니다. 그것은 주위 환경에 맞춰 제 몸의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를 말한다.
 
- 86쪽, 창조의 언어中.
 모방과 닮기, 복제 그리고 원본 이 모든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복잡함과 다양함. 이것이 현대미술인가 보다. 오래전부터도 있어왔겠지만 더 후대로 갈수록 과거와는 구별되는 획을 긋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와중에도 과거로의 회귀도 공존하니 우리네 세상은 참 재미있다.
 
 또 보르헤스는 역시!! 보르헤스의 글은 정말로 매력적인데 사실 많이 읽어보지 못해 아쉽다. 새롭게 발터 벤야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베이컨의 작품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롭다. 예술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다는 공식을 깬 이들은 꽤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단연코 강렬했다. 내게는.
 
 그리고 클레. 처음 클레의 작품을 보았을 때 어린아이처럼 천진함과 단순함과 색채 등에 끌려 좋아했다. 책에서 다시 만난 클레는 더욱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적인 예술가였다. 저자의 말처럼 마그리트와 클레가 통한다는 사실. 그래서 둘 다 더 좋아지고 내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했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베이컨 등의 작품을 통해 정말 수많은 예술가가 표현하는 방법 앞에서 다양성과 치열한 예술혼을 본다. 더불어 그들의 사유를 느꼈다. 그에 반해 바쁜 현대인은 정신적으로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사고하는지 자문한다. 이것은 내게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너무도 쉽게 정보를 얻는지라 그래서 생각의 체력이 약해진 게 아닐까 싶다. 관념은 보편타당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하다. 아하~~ 이건 말장난이 아니다.
 
실재와 가상을 가르는 기준 역시 가상이며, 현실과 허구를 나누는 기준마저 허구일 수 있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실재이며 무엇이 가상인가? 대체 어디까지 현실이며 어디부터 가상인가? 그런 의미에서 사라지는 것은 예술만이 아니다.
 
- 360쪽, 다시 가상과 현실中.
 저자가 줄기차게 말해왔던 안과 밖 그리고 실재와 가상까지. 그의 언급처럼 영화 <매트릭스>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 현대예술까지 달려온 탁월한 구성의 미학 오디세이! 다른 책과 철학자의 사상과 예술을 잘 골라 버무려 흥미 있고 쉽게 독자에게 다가왔다. 저자 진중권의 생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따지자면 과거의 활자나 관념에 빚지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하나. 정말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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