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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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 에셔와 함께 하는 미적 탐험 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그리트와의 2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미진진함이 계속되었다. 마그리트의 철학과 예술은 익히 관심분야였지만 더불어 달리도 살짝 다시 만났고 무엇보다 세잔의 그림을 다시 접하게 된다면 천천히 들여다봐야겠다. 그저 내가 선호하는 그림이 아니네 했는데 그림을 알고 보니 관심이 생겼다.
 
 원초적 지각(64쪽.) 편에서 마그리트와 메를로-퐁티의 철학이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보며 이후 세잔의 애매모호한 그림까지 연결되는 하나의 축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보인다. 불투명한 경계의 뭉게짐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랄까. 이쪽 철학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꽤 신빙성 있어 보인다. 사실 산다는 게 어떤 철학 하나만이 옳은 진리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나이가 먹어가면서 제법 두루뭉실해지고 있다. 또한 그 어떠한 것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진짜 화가는 손이 아니라 머리로 그린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론적 기술만이 다가 아닌 세상이다. 저것도 예술이냐는 논란을 받은 작품이 나온 지 꽤 되었으니까 말이다. 모두의 눈에 아름답고 완벽한 예술은 없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공존이 곧 예술의 새로움으로 이어지니까. 현대 예술이 내면의 직관을 밖으로 표현하는(87쪽.) 모습은 공감하는 바인데 정말이지 말해주지 않으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예술은 쉽고도 어려운 것인가 보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의 열린 눈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술가의 자화상을 앞으로는 더욱 쳐다보게 생겼다. 렘트란트의 자화상은 특히!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해야 하니 거론하지 않겠다.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면 점점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인식의 틀을 벗어던지게 된다. 과연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이 책에서 나갈 수 있을까? 책 밖으로!! 이 이야기는 내가「미학 오디세이 1」에서도 했던 이야기인데. (316쪽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책의 거의 끝부분에 에셔와 마그리트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내가 에셔보다 마그리트를 더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개인적으로 난 수학과 논리학 쪽 형식 체계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에셔의 발상이 재미는 있지만 감성과 다른 부분까지는 공명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에 반해 마그리트의 사유적 내용은! 나와 강하게 공명한다. 새삼 확인하며 예나 지금이나 난 변함이 없음을 알았다.
 
 1권만큼 재미있는 2권. 3권도 그럴까? 내가 모르는 피라네시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생각해보니 3권은 넘겨본 기억이 전혀 없다. 미지의 세계로 흠뻑 빠져봐야겠다. 거참 재미있는 책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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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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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는 세 권을 오래도록 책장에 두었어도 정독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가끔 생각날 때나 뒤적이며 읽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셔나 마그리트 그리고 몰랐던 피라네시까지 두루 볼 수 있었고 미학뿐 아니라 철학적인 사유까지 겸할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흔히 미학 입문서로 추천하는데 공감한다.

 
 "새 책은 유한성이 지난 다음에 읽는다."는 벤야민의 말을 저자가 언급했는데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 그렇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되거나 책장의 묵은 책 혹은 사두고 몇 년이 지나서 읽는 경우가 흔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기를 고대하다 막상 사서는 바로 읽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거품이 빠진 후 읽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듯 시간이 지난 후에 읽는 이유는 좋은 책은 언제 읽어도 똑같다는 믿음 때문이다. 결국은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좋은 책이라도 절판되는 일이 많으니 신간 정보는 놓치지 않는 편이 좋은 거 같다.
 
 이 책도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별로 주목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독자들 사이에서는 미학 입문서로 소문난 책이다. 앞으로도 많은 독자와 만날 것이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1권은 에셔와 2권은 마그리트, 3권은 피라네시와 함께 하며 미학과 상상, 철학 등으로 연결된 이야기에서 뻗어나갈 가지가 무수하다. 제법 많은 곁가지를 품은 아름드리나무와도 같다. 그러니 읽으며 가슴이 뛰거나 영감을 얻거나 하는 게 아닐까. 나처럼 철학책을 체계적으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읽은 탓에(그것도 고등학생 때라 가물가물.) 깊이가 없어서 말이다.
 
 이집트 벽화 등을 보며 그네들이 보이는 대로가 아닌 중요한 본질을 보고 그렸다는 사실은 다시 읽어도 새롭다. 사실 사람은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어떠한 생각의 장벽 없이 오롯하게 다 볼 수 있으려면 미술사만 공부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도상학이나 미술사 같은 지식보다 무의식과 의식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얼마나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할까. 그래야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림이나 작품뿐 아니라 모든 사물을 비롯해 사람까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저절로 돌아보게 되었다.
 
 이는 플로티노스의 독창성과 같은 맥락이다. '예술가가 사물의 외관을 모방하지 않고 내면의 형상에 따라 창작을 한다고 본 점.'(127쪽.)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중세 예술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오래전 고딕 예술에 매료되었던 때를 떠올려보니 통(通) 하는 바가 있어서였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지나고 나니 정리가 된다.
 
 책은 어렵지 않게 잘 풀어서 이야기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처럼 흥미를 끄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미학 입문서로 추천하는 것이겠지만. 저자 진중권은 무엇보다 쉬운 설명과 짧은 글로 독자를 이끌어 나간다. 삽입된 작품들만 보아도 즐거운 책이다. 더구나 1권은 에셔의 작품과 함께여서 경계의 구별 혹은 그 무의미함이나 어울림의 매력을 잘 활용하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 인간의 유한성과 세계의 무한성에 대한 글도 공감한다. 이런 공감의 글을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하늘 아래 새로운 사상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내가 하는 생각과 말이 내가 아닌 그 누구의 경험과  습득해온 것들에서 나왔다는 걸 문득 느낀다. 생각의 체력이 강한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열어 본 느낌이다. 대중적인 공감으로 위안을 얻는 책도 있겠고 개인의 철학이나 미묘한 감정의 공감으로 재미있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연 후자의 책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둘 다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전자가 공감으로 위안을 얻는다면 후자는 공감으로 위안뿐 아니라 희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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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동방 김소진 문학전집 6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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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책인데 내가 모르는 작가의 책이라 오래도록 책표지와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 무렵 이제는 읽어보고 싶어졌다. 참 희한한 버릇이지만 새로운 작가의 책은 그 어떤 선입견이나 기대도 없기에 나름 제목과 책표지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대부분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더러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리움이 주는 아련함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있어서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다만 동방을 나 혼자 동아리방이라고 생각한 게 우습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 중 마지막 6권인「그리운 동방」은 산문이다. 그래서 작가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절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 아쉽다. 그가 삶을 끝낼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 진작 작가가 살아있을 때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렇게나 왕성하게 글을 남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아직 읽지 않은 5권의 책이 남아있지만, 더 많은 작품을 읽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건 역시나 슬프다.
 
 산문의 중심은 작가의 아버지이다. 자전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그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에서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사연 없는 가족은 없겠지만, 시대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오게 된 아버지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노라니 내 가족이 아니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가 사람 냄새나게 그렸기 때문이리라. 기억, 추억, 유년기라는 단어에서는 향수가 어려있어서인지 한없이 푸근하면서도 쌔하다. 우리가 소설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 유독 유년기의 추억은 더 정겹다. '유년 시절은 생애 최대의 풍경'(125쪽)이라는 말에 한없이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김연수의「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도 떠오르면서 글에 빠져들었다.
 
  작가려면 정녕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솜씨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는지. 그러나 나는 작품을 하나 다듬어서 내놓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냈다는 보람보다는 아슬아슬한 기억을 하나 되살려놓았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곤 한다. 이것은 앞으로 나의 글쓰기 작업에 한계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것인가?
 
- 32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사라져가는 것들. 어쩌면 소설이란 그런 것들을 추억하는 기억 위에서 구축됐다가 또다시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과 안타까움 없이 소설을 읽는 간 큰(?) 사람이 요즘 아무리 많아졌다 해도.
 
- 36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1부 산문이 끝나고 2부 습작소설과 시에서 <아버지의 슈퍼마켓>에 빠져들었다. 끝나서 무척이나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이다. 학회지에 실린 <소외>도 인상적이었다. 3부 책글에서는 여러 작가의 책이 나온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지만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책을 찾아 있고 싶어졌다. 여기까지는 제법 개인적인 느낌인지라 작가 김소진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4부 인물글 또한 흥미롭다. 문예지 등에 있던 글모음인데 저자가 기자였을 때 만난 인물글 같다.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의 누구, 서울토박이회의 누구, 도시 코디네이터 누구를 비롯하여 대중에게 친근한 개그맨 전유성까지 만날 수 있다. 글을 쓴 때는 내가 대학생일 때였다. 20대의 질풍노도 속에 철없이 고심하고 있었을 어린 나와 당시의 인물과 시대를 만날 수 있어서 새롭게 느껴진다. 저자는 요절했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5부 대담글은 글, 소설에 대한 대화형식이다. 개인적으로 5부를 읽을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 작가들의 문학과 소설에 대한 치열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진, 김형경, 박상우 세 작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문학을 공부할 때, 문학이란 사사로운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되, 그것이 이 사회와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과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다 큰 의미망을 가진 이야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제 체험을 소설 속에 그리 많이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이하 중략…)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썼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으며, 얼마나 독자에게 진실성있게 다가가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293쪽, 원체험, 현실 그리고 독자中 김형경의 말 일부발췌. 

 작가 김소진과 대조되는 김형경의 소설 쓰는 방식이지만 결국 어떤 방식이건 상관없이(김형경 작가의 말처럼) 독자에게 작가들의 책은 공평하게 다가온다.

 

 모르는 작가의 마지막 전집과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 권부터 읽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격이다. 바로 완전한 장편 혹은 단편의 책을 읽었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거꾸로 만나는 김소진 편으로 계획해서 읽어봐야겠다.「관촌수필」처럼 구수함이 어린 우리소설이었다. 작가의 어머니 영향으로 얻은 구수한 입담과 아버지와 유년기를 쏟아낸 김소진. 소설과 아내 함정임까지 김소진을 둘러싼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 오롯하게 글로 만나고자 다음에는 소설을 꼭 읽어야겠다.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11주에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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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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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신영복을 처음 만난 책은「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첫 권의 묵직하고 진지한 성찰력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은 또한 생각이 끝없이 이어지는 책.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곳을 대학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넓혀갔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나름의 희망을 안고 인간성도 상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간다는 것.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으로 희망을 항상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사람이다. 책장에 있는 저자의 책은 바로 이 책「처음처럼」과「엽서」까지 3권을 갖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더 있지만 이 책들을 가끔씩 펴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마음이 든든했다. 
 
 이 책은 '처음처럼'에서 시작하여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획 의도를 필자는 물론 많은 독자들도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아마 역경逆境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하생략)
 
 
7쪽, 저자의 여는 글 중에서.
「처음처럼」은 저자의 글과 글씨, 그림이 어우러진 한 편의 잠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씨를 정말 좋아한다. 그의 글만큼이나 마음을 움직이는데 글에서 성찰력이 돋보인다면 글씨에서는 여유와 행복이 느껴진달까. 말랑하면서도 굳건함까지 느낄 수 있어서 너무 딱딱하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18쪽. 

 
 짧은 글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데 여운은 길다. 잠시 멈추고 호흡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돌아본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들인지 읽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살면서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이런 순간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사람인지라 알면서도 지나친다. 자꾸 되새겨야겠다. 깨어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떠올리며 그럴수록 노력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절반折半과 동반同伴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40쪽.
  책장 잘 보이는 곳에 늘 두었지만 생각만큼 자주 꺼내보지 못 했다. 그래서 제목만 읽지 말고 이제는 펴들 수 있도록 작은 책장으로 옮겨두었다. 의식하고 익숙해지려는 노력없이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곱씹는 생각의 시간을 늘리자고 계획하며 책을 읽은 게 여러 해. 권 수는 확실하게 줄었는데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지는 미지수이다. 아무튼 반성도 하며 기쁨의 시간을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맨 끝에 쓴 석과불식에 대한 글을 남긴다. 해마다 가을의 끝자락에 과수원에서 남겨두는 사과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사진으로 찍고는 했는데 이젠 사진을 담지 않아도 저자의 석과불식이 늦가을과 겨울까지 생각날듯하다. 공감하며 그 따스함이 세상으로 진하게 번지길 기원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희망의 언어'입니다.
무성한 잎사귀 죄다 떨구고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는 비극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한 개는 '희망'입니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그 봄을 위하여 나무는 엽락분본葉落奮本
잎사귀를 떨구어 뿌리를 거름하고 있습니다.
 
229쪽.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10주에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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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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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대학생 때「상실의 시대」로 처음 만났다. 최근 민음사에서「노르웨이의 숲」으로 새로 나왔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더 와닿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만큼 기대가 크다. 아무튼 20대에 만난 하루키의 책 한권으로 난 도서관을 뒤져서 그의 책을 닥치는대로 읽어치웠다. 마치 굶주린 영혼의 양식을 찾아먹듯 말이다. 이런 책이, 이런 작가가 있었나 싶었던 시기였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책은「해변의 카프카」였다. 당시 새로운 직장와 환경에서 위로해준 책 중 하나여서였다. 그리고는 또 인상적인 작품으로「1Q84」가 있다. 명절에 친정에 가서 모두 잘 때 불을 켜기가 그래서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으로 집중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하루키 작품과는 재미있는 상황이나 인상적인 기억이 연결되어 있어서 잊지 못한다. 물론 내용도 그렇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부가 최고인 건 아니지만 대체로 좋아한다. 참 담담하게 나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읽으며 좋아 미치는 건 아닌데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의 말처럼(21쪽.) 작가의 이야기를 내 안에 유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게 바로 하루키의 필력이리라. 그러다 이번에는 잡문집이라는 제법 두툼한 책을 손에 넣었다. 단편집도 아니고 지루할까도 싶었지만 역시나 하루키의 글인지라 즐겁게 읽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좀 별로인 것도 있었지만 음악이나 번역 그리고 글쓰는 이야기 부분은 흥미롭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15쪽, 머리말中 일부. 

 책을 읽노라면 하루키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드문드문 나오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마도 난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권이라도 읽어서겠지만, 설혹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읽고 싶은 작품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음악 이야기는 재즈뿐 아니라 비틀즈, 빌리 할러데이 등 여러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작품「노르웨이의 숲」은 이미 알려진 대로 비틀즈의 곡이고 <러버 소울>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곡 중 하나인 '노웨어 맨(Nowhere Man)' 부분도 좋았다. 정말로 별말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하루키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라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 이야기에서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렸다.

 

 새로운 음은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406쪽,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의 말.

 멍크의 말처럼 새로운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의미를 담아 삶을 지속한다. 누구는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잡문집이라 거참 건질 거 없고 하릴없어 읽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하루키의 독자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게다가 역으로 잡문집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제법 있으니까. 담백하고 싱겁지만 그런대로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까지가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밖의 기준은 내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456쪽, 끝부분 인용.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8주에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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