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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 어느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
민경우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7월
평점 :
대표적인 민족민주진영의 활동가중 한사람인 민경우씨가 많은 민족민주진영 활동가들에게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토론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저자는 현재 민족민주운동진영내의 이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제국주의하의 식민지반자본주의 논리는 금융자본의 시대, 서비스업 중심, 국내 대기업의 출현, 친미적 엘리트의 성장 등을 근거로 들며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운동은 과학이여야 한다. 과학이란 어제까지는 이를 아래위로 닦는게 좋다더니 또 요즘은 옆으로 닦는게 좋다는 식으로 수시로 변하는 법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민중이 주인되는, 인간다운 삶을 꿈꾸기 때문이지 이런저런 이론을 실행해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운동은 대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 활동가가 대신 해주는 어떤 것이 아니다. 몸대주기식 사업 작품에서 벗어나, 열심히 학습하고, 대중의 감성에 맞게 그것을 풀 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대학에서 어쩌다 만난 선배한테 배운 걸 우려먹으며 지내려고 하는가. 이제 맑은 물 밖에 거기서 더 나올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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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이론을 차용할 때는 한국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주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보면 주류는 너무 친미적이고 비주류 지식인 중 다수는 너무 유럽적이다.(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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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도 귀 얇은 인간이지만 이 말은 사실인거 같다. 공부를 하되 외우지 말고 더불어 생각도 하고, 그렇게 믿어마지않는 대중과 이야기도 나누어 보아야 한다. 내 옆의 한사람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 설익은 이야기로 이리저리 나뉘고 싸울일이 아니다.
반미라는 일국적 관점에서 다자간의 국제 관계를 기초로 한 분석
주류 운동진영이 실천에서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면서도 대도시 생활인의 인식을 바꾸어낼 수 없었던 점은 현실을 양국관계로 국한하는 관점의 협소함 때문이다.(p85)
언제까지 식민지반자본주의만 붙잡고 있을텐가?
이론과 이론이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과학과 종교가 토론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p93)
학생운동을 중시한 점,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 정치군사적인 차원의 자주통일 운동 중시, 학습과 대중운동 중시, 지사적인 풍모와 금욕적인 생활태도의 강조 등은 모두 식민지 반자본주의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하위 범주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한 조건에서 이론을 그에 맞게 수정하거나 해당시기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점이다. 그로 인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스러운 실천이 거듭되어 대중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간 운동진영은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게 된다. 다음에서는 이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p96)
민족은 과연 폐기해야 할 낡은 패러다임인가
농민과 학생이 주력군이라고?
1987~97년 민주주의의 확장과 내수 팽창으로 이 시기 대학을 졸업한 청년세대는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보수를 누릴 수 있었지만 1998년 IMF 이후에는 그러한 가능성이 빠르게 닫히고 있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1987년 6월 항쟁에서 승리하여 민주주의와 좋은 직장을 얻은 386세대가 민주주의를 보다 심화시켜 고용문제를 해결하자고 아랫세대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즉 학생에서 시민이 아니라 386세대에서 학생으로가 올바른 연대의 방향인 것이다. 그런데 왜 특별한 지적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고, 사회적 경험도 별반 없는 대학생들이 정작 자신과 동료들의 처지는 돌아보지 않고 한사코 거리로 나오려고 했을까? 이는 자신들이 '선봉대'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p109~110)
숫자의 많고 적음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대와의 호흡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집단은 도태되게 마련이다. 2008년의 촛불세대가 20년 전 386세대와 명확히 다른 것은 의제의 중심이 고용과 등록금과 같은 경제적 문제라는 점, 개인주의와 집단적 활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 질서정연한 일방향의 조직문화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쌍방향의 문화를 갖고 있는 점 등이다.
(중략)
등록금 투쟁 등 학내투쟁도 하고 촛불집회 등 사회 참여도 하는 비운동권 총학생회와 기존 운동권의 유일한 차이는 '족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고, 비운동권 총학생회도 '이제 매년 자신들을 계승하는 총학생회 후보를 당선시켜 노선을 계속 유지한다'고 쓰고 있다.
(p114)
동시대의 과제는 이를 체현한 집단에 의해 제기되고 그들 자신의 각고의 노력과 투쟁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실업과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이 땅의 20대 또한 마땅히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정면에서 받아 안고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포부와 통찰력이다. 이것이 있다면 적어도 사는 것이고 족보나 들이대며 숫자를 과시하는 집단은 버림받을 것이다.(p115)
1년 넘게 줄기차게 진행되었던 농민들의 싸움은 여론을 흔들지 못한 반면 도시민의 시위는 이명박 집권 초기 정권기반을 뒤흔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p117)
대도시 여론이 한미 FTA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농민들의 저항에 연민(?)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P118)
도시민에게 농의 중요성을 그들의 이해와 정서에 맞게 해설하지 못했다.
이제 도시 중소상인(도시빈민)에게 관심을 가질때다.
어제의 농민이 오늘의 자영업이라는 지적은 대단히 타당한 분석이다.(p122)
정규직 노동자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노동조합의 기본 임무는 고용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기본 임무는 고용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귀족 운운하며 정규직 노동자, 민주노총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정권과 대자본의 모략공세일 뿐이다. 그러나 해당 집단의 사회역사적 평가는 자신의 요구에 충실했느냐 여부와 함께 시대적 역할에 복무했는가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것이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노동조합 건설과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저임금구조를 혁파하는 역할을 했다면 1995년 이후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중서민 대중에 대한 분할지배 전략에 무력했다. (p128)
이명박 정부에서 이 땅의 노동운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심각한 지점에 섰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의 강도높은 탄압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될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이다.(p133)
경제파국이 코앞이다. 2010 선거 전략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상당히 발전된 보수엘리트 세력이라면 의회를 무대로 하여 전문가, 특권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제한적인 수준의 민주주의는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편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박세일 등 보수세력의 이데올로그들이 자유주의, 법치, 엘리트정치, 대의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략)
촛불은 선거와 무관한 1970~80년대식의 전민항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아무 때라도 국민의 의사에 다라 보수 엘리트 집단을 국민의 의사에 복종시킬 수 있는 제도화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이다.(p164)
한국에서는 수도권에 고도로 집중된 고학력 청년층이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 도전하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도시 빈민층을 중시하되 청년세대, 고학력 386세대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p176)
운동진영은 세 가지 점에서 중대한 한계에 봉착했다. 첫째는 조직역량과 대중적 동력 사이의 괴리, 둘째는 대중적 동력과 정치적 권위 사이의 괴리, 셋째 급변하는 정세와 전통적인 인식구조 사이의 괴리이다.(p180)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대중의 자발성이 극대화된 조건에서는 정보와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을 해당 단위 또는 대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층화된 의사결정기구를 간소화해야 한다.(p183)
이를 위해서 주류 운동진영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낮추고 고용, 교육, 주거 등 대도시 중서민 대중의 이해를 전면적으로 옹호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주정해야 한다.(중략)
또 주류 운동진영 외에 여타 진영은 한국사회에서 통일과 민족문제,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들여온 관념과 이론이 아니라 2008년 격동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보여준 집단적 열정에 호흡을 맞춰야 하며, 노자관계라는 도식을 넘어 고통 받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응당한 시선을 돌려야 한다.(p187)
셋째, 신자유주의 양극화에 아래쪽에 속하는 비정규직, 자영업, 농민, 20대 대학생들의 저항은 대부분 소수화되거나 고립되었다.(p192)
넷째 절박한 생활위협에 직면한 서민대중의 목소리와 참여가 적었다.(p194, 촛불의 특징)
대중적이면서 간명한 기치를 내걸고 국민대중과 호흡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