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827.
안 그래도 독서량이 적은데 완전히 급감했다.
그 와중에 읽은 책,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북플 리뷰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
책보다 '듀오링고' 후기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올해 초 듀오링고를 알게 되었을 때 영어를 시작했는데 꾸준히 하지는 않았었다.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러다 스페인어 후기를 보고는 나도 2년 꾸준히 하면 어느 수준에는 도달하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목표가 생겼다.
그래 나도 외국어를 공부해 보자. 영어 말고.
노화 예방에도 좋다잖아.
스페인어권 여행 계획은 없는데 그럼 어떤 목표를 세울까 하다
아주 오래전 재미있게 보고 소장 중인 '태양소년 에스테반'을 원어로 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후 다시 찾아보니 '태양소년 에스테반'은 불어로 만들어졌더라는... ㅋ
그럼 어때!
프랑스에서 살면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에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드는 단상들에 많이 공감했다.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요새 새로 '자전거 라이딩'에 흠뻑 빠져있는데 주어만 바꾸면 느끼는 점들이 비슷하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에 이입이 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전 이미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하루에 사실 빈틈이 아주 많음을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그 틈을 쪼개면 쪼갤수록, 시간은 계속 만들어졌다. 틈새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움도 느꼈다. 나는 공간의 소유보다 시간의 소유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p.57
일상의 틈을 쪼갤 수 있다는 것, 알면서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을 듀오링고를 하면서 많이 느낀다.
하루 10분, 그렇게 시작한 듀오링고, 지금은 연속 134일차.
100일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내 생활에 루틴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나 스스로 칭찬해.
일상에서 크게 쓰임이 없을 어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미래의 방문에 대한 기약 없는 약속이고, 그러므로 더욱 뜨겁고 순수한 사랑의 의지다.
p.58
(...) "최소한 주어와 동사가 온전히 갖추어진 문장으로 말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언어는 성장할 수 없어요" (...) "쉽게 생각하세요. 쉬운 문장들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돼야 복잡한 문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 "이 수업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실수의 권리는 초보에게만 있습니다. 그 권리를 마음껏 누리세요. 언어에는 왕도가 없어요. 최대한 많이 실수하며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p.92
언어는 운전면허 시험처럼 속성 마스터가 가능한 공부가 아니다. 하나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헤엄쳐가는 일과 같다.
p.99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이 그날이군‘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드물지만 한 번씩 그런 순간이 온다. 지겹도록 늘지 않는 실력에 지치는 단계를 극복하고 ‘그래도 계속하는 수밖에‘ 하면서 지속하다 보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순간. 문장 하나를 만들어 이야기하는데도 버벅대던 실력이었는데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몇 개의 문장이 술술 입에서 나오는 순간. 혹은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버벅대던 실력이었는데, 긴 문장을 물 흐르듯 주르륵 읽게 되어 자신도 놀라는 그런 순간. 그것은 마치 간밤에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인 눈을 새벽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묵묵하게 쉼 없이 꾸준하게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빛이 밝아 오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간밤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시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녹아 없어질 풍경임을 알아도, 마음 깊이 벅차오르는 그런 뿌듯한 순간. 다시 찾아올 밤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있도록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격려의 순간. 우리는 그 힘으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계속할 수 있다.
p.131
'간밤에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인 눈'이란 표현 참 맘에 든다.
그렇게 나의 스페인어도, 자전거도 늘어갈 것이다.
쉬는 날 설렁설렁 취미 삼아 시작한 이탈리아어 공부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인생의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p.143
아직 스페인어로 '인생의 사건'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품은 뉘앙스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가끔 아는 단어가 귀에 꽂히거나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읽는 경우가 생기면서 아, 내게 스페인어 패치가 장착된 것 같아 흐뭇해진다.
처음엔 하루 10분 정도 투자했던 것이 이제 따로 노트를 정리하고 약간의 경쟁심이 생겨 순위를 올리려고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닌데, 그래서 가능한 것 같다.
물론 자전거 역시 그렇다.
자전거를 타면서 물리적인 일상의 생활 반경뿐만 아니라 시야가 넓어지고 '인생의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만 이 두 가지 때문에 혹은 덕분에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줄었다는 단점이 있다.
하루의 또 다른 빈틈을 찾아야겠다.
살다 보면 사실상 결심이 전부인 일들이 있다. 배에 올라타기 전에는 파도와 바람의 세기를 예측하기가 힘든 것처럼,
모든 일은 시작된 뒤에야 파악할 수 있고 이후 펼쳐지는 우연과 사건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다만 궁금했다. 자발적으로 일으킨 인생의 사건이 나머지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p.146
삶의 스펙트럼이 또 한 자락 열리는 기분이었다.
p.205
그래, 이거야.
이 문장 너무 맘에 들잖아!
삶의 스펙트럼.
듀오링고도 자전거도 내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수험용도 취업용도 아닌 그냥 외국어를 그리고 자전거를 시작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훗날 스페인어에 자신감이 붙으면 저자처럼 이탈리아어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