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주택자들이 집값을 올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구간에서는 다주택자들은 집을 추가로 매입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주택자가 집값이 더 오를까 봐 공포를 느끼며 신고가에 매입한다. 다주택자들은 오히려 집값이 내리는 시기에 멀리 내다보고 집을 구매하며, 가파르게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는 차익을 현실화하기 위해 집을 내다 판다.
다주택자들이 없으면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 매물이 자취를 감춘다. 무주택자는 집이 없으니 팔지 못하고, 1주택자는 집을 팔아도 다시 사야 하니 수급 균형에 도움이 안 된다. 다주택자들의 차익 매물이 있어야 집값이 오르는 구간에서도 매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어떤 선진국도 다주택자들만을 별도로 압박하는 정책을 펴지 않는 건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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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매수하거나, 보유하거나, 빌려주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정책은 그 이름이 임대차보호법이든, 보유세 강화이든, 대출 규제이든 항상 집값을 올리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고민이 깊은 수많은 국가에서는집값 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편다. 임대사업자의 세금부담을 줄이거나, 집을 짓는 건설업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대부분이다. 세금과 규제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은 전례도 없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작동되기 어려운 정책들이다. 다만 매우 단기적으로는 그로 인해 수요가 위축돼서 집값이 잡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수요는 다이어트의 요요현상처럼 곧 다시 고개를 쳐들고 살아나기 마련이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공급을 꾸준히 늘리는 것밖에는 없으며, 그 이외의 모든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공급을 부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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