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거냐? 걷는거냐?

퇴근하고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가면 늘 혼자 남아 있다. 혼자 심심해하고 외로워할까봐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방법이 없다. 오늘 아이는 어제 늦게 잔 탓인지,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낸 탓인지, 내가 도착했을때 혼자 졸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발걸음이 어긋난 비틀거린다. 반쯤 졸면서 걷고 있다.

조금 고민을 했다. 아이를 안고 가야 할까? 어떻게든 깨워서 데려가야 할까? 만약 안고 간다면 아이가 더 깊히 잠들텐데, 그럼 저녁도 못 먹고, 밤에 깨서 오히려 잠을 못 자게 되어 생활리듬이 완전 흐트러진다. 게다가 이 더운 날씨에 아이를 안고 15분 이상 오르막 길을 걷는 일은 쉽지 않다. 가능하면 정신을 차리도록 자꾸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 듯 자꾸 눈이 감기고, 자꾸 짜증을 낸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절반 가량 와서 안아달라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낸다. 어쩔수 없이 아이를 안았다. 이 더위에 아이를 안으니 땀이 줄줄 흘렀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땀이 비오듯 아니 폭우가 쏟아지듯 흘렀다. 이미 어린이집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려고 한참을 뛰면서 속옷까지 다 젖어있던 상태였다.

내 팔에 안겨,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든 아이가 한 편 측은하고, 한 편 사랑스러워 이마에 뽀뽀를 몇 차례 퍼붓고 아이를 깨웠다.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해줘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줘야 할텐데, 무슨 얘길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작은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흔들어 깨워 말을 걸었다. 그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꼬맹이가 엄마 뱃속에서 막 나오려고 할 때,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함께 병원에 갔어. 그런데 언니 태어날 때 줬던 겉싸개를 이젠 안 준다고 집에 가서 겉싸개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아빠와 언니는 집에 겉싸개를 가지러 갔어. 아직 시간 여유가 있을줄 알았지.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겉싸개를 챙긴 순간 간호사 언니에게 전화가 왔어. ˝큰일 났어요!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 병원은 아빠가 탯줄을 자르도록 하고 있고, 간호사 자신의 권유로 겉싸개를 가져오라고 보냈는데, 혹시 아이 아빠가 출산의 순간을 지켜보지 못할까봐 간호사가 당황하기 시작한 거야. 아빠도 깜짝 놀랐어. 언니가 태어날 때는 훨씸 여유가 있어서 괜찮겠지 싶어 집에 다녀왔는데, 금방 이렇게 아이가 나온다니 급하게 집을 나섰지.

당시 우리집은 산비탈에 있는, 큰 길까지 나오려면 한참을 걸어나와야 하는 곳이었어. 아빠는 아직 어렸던 언니를 들쳐메고 뛰기 시작했어. 언니는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었겠지. ˝아~아~아~빠~아~아, 뭠~춰~어~어˝ 언니는 아빠가 뛰니 힘들어 했지. 하지만 아빠는 멈출 수가 없었어. 우리 꼬맹이가 나오는 순간을 꼭 지켜보고, 탯줄을 자르고 싶었거든. 언니에게 했듯이 우리 꼬맹이에게도 꼭 그렇게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언니가 힘들어해도 아빠는 언니를 안은채로 비탈길을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 내려왔어. 아마 그순간 속도를 쟀다면 아빠가 올림픽 금메달도 땄을지 몰라.

언니는 계속 힘들다고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지는 아빠에겐 들리지 않았어. 아니 들리긴 했지만 먼 곳에서 들리는 것 처럼 그랬어. 아빠는 계속 ˝조금만 참아˝ 라고 말하며 빠른 속도로 뛰었어. 간신히 큰 길에 내려와서 택시를 잡았지. 택시 기사님께 아이가 태어나려 한다고 빨리 가달라고 했더니, 기사님도 깜짝 놀라서 속도를 올렸어. 곧 차가 막히디 시작했지만, 아빠의 간절한 표정을 본 기사님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빨리 가려고 노력했어. 무척 감사한 일이었지.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순간 그 간호사 언니가 사색이 다 된 얼굴로 입구에 나와 있었어. 우린 뛰었고 소독된 옷을 걸치고 분만실에 들어서는 순간 네가 엄마 몸 속에서 막 나왔어. 곧바로 엄마 배 위에 올려졌고, 아빠가 탯줄을 잘랐지. 그리고 아빠에게 안겼어. 작고 작은 별님이 아빠 품에 안긴 것 같았어.

다행히 작은 아이는 금방 이야기에 집중했고, 곧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아이를 안은 채 오르막길을 올랐다. 숨이 찼다.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어. 숨을 헐떡이며 평소 운동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잠든 후배를 앞에 두고

이 글을 폰으로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새벽 1시경까지 일을 하고 있던 나를 불러낸 건 친한 후배였다. 예전에 내가 출판사에 일할 당시엔 늘 술을 사줘야 했지만, 이제 내가 활동가가 되고, 녀석의 수입이 안정되면서 이젠 늘 술을 얻어먹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녀석의 연락을 받고 난 늦은 시간임에도 편한 마음으로 나섰다 어차피 술값은 녀석이 낼테고, 난 실컷 먹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겠구나.

1차로 배를 채우고, 2차로 맥주를 마시로 온 후 녀석은 졸려서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의 작은 아이를 보는 듯 후배는 자꾸만 눈이 감겼다.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이 녀석은 다 좋은데 취하면 잠들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이 다 되도록 곁을 지켜주다가 끌고 나와 택시에 태워야 하는 싱황이 대부분이다.

1차를 마치고 분명히 경고했건만, 잠들면 주저없이 버리고 가겠다고 강하게 경고했건만, 녀석은 오늘만은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고 큰 소리를 탕탕 쳤지만 2차 온 지 얼마 안 되어 곧 잠들었다.

혼자 알라딘 글 읽고, 글 쓰며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슬슬 녀석을 깨워봐야겠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아직 준비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걱정은 잠시 접어둔다. 뭐 늘 그렇듯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음에도, 취하지 못했음이 아쉽다. 담엔 기필코 내가 먼저 취해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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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7-1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 잘 하신거에요?? ㅋㅋㅋㅋ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ㅋㅋㅋ

감은빛 2016-08-05 23:5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이 댓글엔 답을 못 했네요. ㅎㅎ 조금 지각을 하긴 했지만 출근은 했죠. 다만 오전의 중요한 일정은 준비를 전혀 못해서 뒤로 미뤄야 했어요.
 

일요일 아니 월요일 새벽

일요일 저녁, 출근해서 할 일을 생각하며 조용히 저녁 먹을 준비를 하다가 마침 연락이 온 친한 후배를 만나 술을 마시고, 후배가 이끄는대로 2차를 갔다가, 녀석이 배 고프다고 편의점에 들어가 도시락과 컵라면을 사줬다. 캔 맥주를 함께 사서 나는 맥주만 들이키고, 녀석은 도시락과 컵라면을 비웠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은 많이 먹어 봤지만, 도시락을 파는 줄은 몰랐다. 제법 먹을만 해 보였다.

일요일 밤, 월요일 출근을 생각하며 우울하게, 외롭게 보냈을지도 몰랐을 시간을 녀석 덕분에 웃으며 보냈다. 아쉬운 건 술이 약한 녀석이 내가 원하는 만큼 같이 마셔주디 못했다는 것 뿐. 해 뜨기 전에 혼자 더 마시고 잠들어야지. 생각보다 편위점 도시락이 먹을만 하구나 하는 배움을 얻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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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6-07-04 21:01   좋아요 0 | URL
저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후배 말로는 생각보다 먹을만 하다고 하던데요.
하지만 저는 그거 먹을 바에야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김밥을 사먹을 것 같아요.
말씀처럼 계속 먹으면 그럴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6-06-2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도시락이 요즘 인기랍니다.
아시겠지만, 요즘 점심값 너무 비싸잖아요. ㅠㅠ, 서울에서 7-8천원 이하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여러가지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편의점 도시락의 활성화 같아요.
서글픈 현장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추억이나 또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바쁠 때는 편의점에 들러서 훈제 달걀, 바나나, 마시는 요구르트 등으로 한끼 때울 때가 많더라구요. 그런데 술, 그거 안 먹다보니 정말 못 먹겠더군요. 감은빛님과 술 마시던 저녁이 정말 까마득하네요. ^^

감은빛 2016-07-04 21:05   좋아요 0 | URL
인기~ 라는 단어까지 쓰일 정도인가요?
전 이글 썼던 새벽에 실제로 먹는 사람(바로 후배)을 처음 봤어요.
전반적으로 밥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아마 동네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는 할텐데,
그래도 찾아보면 적정한 가격에 먹을만한 곳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바쁘면 그냥 참고 건너뜁니다.
이게 한동안은 미칠듯이 배가 고픈데,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냥 견딜만 하더라구요.
대충 때우기보다는 나중에 제대로 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그 날이 까마득하네요. 또 한 번 마셔야죠! ^^

cyrus 2016-06-2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드디어 한 달 만에 맥주를 마십니다. 냉장고에 캔 맥주를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캔 맥주 하나 마시고 나서 다음 날에 통풍 재발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

감은빛 2016-07-04 21:06   좋아요 0 | URL
통풍으로 고생하시나봐요?
한 달 만에 술이라니.
저는 한 달에 술 안 마시는 날이 하루 이틀 밖에 안 될 것 같아요.
통풍 빨리 완치하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6-07-05 10:3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음식을 적당히 먹고, 절주하고, 물을 많이 마신다면 통풍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루쉰P 2016-06-2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출근 잘 하신거에요?????

감은빛 2016-07-04 21:08   좋아요 0 | URL
루쉰님, 저를 무시하시는 거죠?
이 글 쓴 시간이 3시 반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요.
평소 워낙 늦게 자는 편이고,
술을 이 시간까지 마시는 일도 늘 있는 일이예요. ㅎㅎ
 

2년 전부터 동네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출퇴근을 포함해서 활동 반경이 좁아졌다. 그 전에는 장거리 출퇴근을 주로 했고, 일의 특성상 낮에 이동거리도 어마어마했다. 그땐 늘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책이나 음악에 빠지기에 이동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그래서 이동거리가 짧은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어제, 오늘 깨닫고 있다. 어제는 진주를 다녀왔다. 아침 8시 반에 집을 나서서 9시쯤 돌아왔다. 진주에 머문 시간은 겨우 2시간이 못된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도로에서 보냈다. 고속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남북 종단을 두 번 하고 나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었다. 왜 굳이 계약서에 도장 하나 찍으려고 진주까지 갔어야 했을까? 그냥 등기우편으로 주고 받으면 안되는 거였을까?

좁은 의자에 갇혀 답답한 시간을 보내느라 힘들었지만, 한 가지는 좋았다. 원하는만큼 실컷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2년 동안 거의 음악을 안 듣고 살았구나. 즐겨듣던 노래들을 오랫만에 들으니 정말 좋았다.

로렌 크리스티, 핑크, 데비 깁슨, 켈리 클락슨, 알라니스 모리셋, 프로우 프로우, 크랜베리스, 미쉘 브랜치, 바넷사 칼튼, 더 코어스 등 한때 참 좋아했던 가수들을 그동안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외로울 땐 늘 노래를 듣고 지냈는데, 노래 한 곡 한 곡에 이런저런 사연들이 참 많은데, 어떻게 그걸 다 잊고 살았나 싶었다.

하루종일 이 노래, 저 노래를 들으며 지나온 추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머라이어 캐리의 `이모션`을 들으며 고등학생 때 모 여고의 축제에 놀러갔다가 만난 목선이 예뻤던 아이가 떠올랐고, 크랜베리스의 `링거`를 들으며 대핟 2학년때 사귀던 아이와 함께 등산갔던 일이 떠올랐고, 로렌 크리스티의 `테잌 미 투더 처치`를 들으며 20대 중반 혼자 놀러갔던 강원도 어느 바닷가가 떠올랐고, 핑크의 `저스트 라이크 어 필`을 들으며 20대 후반 좁은 고시원에서 밤새 습작에 몰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잠실 쪽에 일이 있었다. 가는데만 1시간 20분쯤 걸렸다. 돌아오는 시간도 비슷하겠지. 오늘은 켈리 클락슨의 `아니 헤이트 마이셀프 포 루징 유`와 로렌 크리스티의 `더 나잇 아이 쏘 피터 유그타프`가 참 좋았다. 나중에 이 두 곡을 들으면 잠실쪽 거리 풍경이나, 지하철 역에서 스쳐 지나간 긴 머리가 나풀거렸던 여성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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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2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엇 덕분에 저는 오늘 퇴근길 오랜만에 켈리 클락슨 들어요. Because of you 반복 청취중이에요. 오늘은 제가 못나게 느껴지는 날이라서 책도 인읽히고 ㅜㅜ 음악이나 들으며 한없이 찌질해져야겠어요 ㅜㅜ

감은빛 2016-07-04 20:54   좋아요 0 | URL
Because of you
저도 좋아하는 곡이예요.

답이 많이 늦었네요.
장마철이라 그만큼 자주 술이 땡기네요.
하긴 굳이 비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늘 술과 함께 하고 있지만요. ㅎㅎ

루쉰P 2016-06-2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ㅋ 엄청난 음악적 식견이셔요. 그나저나 잠실이면 멀지가 않은 곳인데유 ㅋ 근처에 계시는군요 푸하
이동거리가 긴 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운전을 했을 때는 음악을 들었는데 거의 대부분 그냥 한국 노래...허허허허:::
감은빛님의 음악적 소양과 여자만 기억하시는 기억력에 감탄했어요 ㅋ

감은빛 2016-07-04 20:56   좋아요 0 | URL
루쉰님, 식견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예요.
어려서부터 팝 음악을 좋아했는데, 두루 들었던 것도 아니고,
특정한 가수만 골라 듣는 편이었어요.
오래 들었더니, 그 골라듣던 특정한 가수들이 많아지긴 하네요.

여자만 기억하는 기억력이라~ 그랬군요.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6-06-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아가버리는 한없이 긴 시간들을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바꾸셨네요.
감은빛님을 보면, 에너지가 있는 분이라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어요.

저는 지금 컴퓨터로 음악 틀어놓고, 뻘짓 하는 중입니다. 부럽죠? ^^

감은빛 2016-07-04 20:58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에 음악을 들어서 긴 시간도 그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술을 먹을 때만 에너지가 팍팍 솓아나죠. ㅎㅎ

비가 오니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님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계실까? 궁금하네요.
 

왜 청바지는 항상 민망한 부분부터 해지는 걸까?


한 3주쯤 전에 여름에 주로 입던 청바지가 찢어졌다. 뒷주머니 바로 옆 엉덩이 부분, 허옇게 낡고 닳았던 부분이 뜯어졌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구멍이 나 있었다. 분명 이러고 돌아다니면서 남들에게 팬티가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서 이 옷을 다시 입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는데, 살펴보니 가랑이 부분도 여러군데 해져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예전부터 청바지는 대부분 가랑이 부분이 해지면서 못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 오래 입지 않았음에도 그 부분은 금방 닳아 찢어졌다. 팬티도 조금 오래 입으면 항상 그 부분이 해져서 구멍이 났다. 예전에 좋아했던 청바지는 다른 곳은 멀쩡했기 때문에 옷수선집에서 천을 덧대어 꿰매 입었는데, 착용감도 좋지 않았고, 금방 그 주위 부분이 다시 해졌다.


이번에 찢어진 청바지는 한 6년쯤 전에 동네 구제샾에서 샀다. 살때부터 제법 낡은 상태였다. 비교적 얇은 천이라 여름에 입기에 딱 좋았다. 하나 흠이라면 앞부분이 지퍼가 아니라 단추로 되어 있어서, 옷을 입고 벗을때와 화장실 다녀올때 불편했고, 가끔 앉을 때 단추 틈새가 벌어져서 주위 시선이 신경쓰이기도 했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사서 몇 년간 잘 입었으니 그만하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바지가 찢어지고 한 동안 봄, 가을에 주로 입던 청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활동량이 많은 날에는 땀이 나서 힘들었다. 한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여름 청바지를 사러 갔다. 신기하게 요샌 청바지도 쿨패션으로 여름에 입기 좋게 얇고 통풍이 잘되는 소재로 나온 옷들이 있더라. 마침 반 값 세일하는 품목들이 있어서 한참을 골랐다. 평소 입던 사이즈를 입어봤더니 허리가 조금 컸다. 확실히 요새 허리가 조금 가늘어졌음을 느낀다. 그보다 한 치수 아래 사이즈를 입어봤다. 허벅지에서부터 꽉 끼기 시작해서 허리가 들어가긴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불편한 느낌이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평소 입던 사이즈를 구매했다.


바로 그 옷을 입고 다녔는데 진짜 청바지를 입은 것 치곤 꽤 착용감이 좋았다. 다만 걷다보면 자꾸 바지가 내려가서 자꾸 끌어올려야 했다. 어디 급하게 뛰어갈 일이 있었는데 바지가 흘러 내려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고민을 시작했다. 한 치수 작은 것으로 바꿀 것인가? 허리띠를 찾아서 계속 입을 것인가? 바꾸러 다시 가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한 번 입었던 옷을 쉽게 바꿔주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허리띠를 찾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결혼할 때 허리띠를 산 기억이 있는데, 이 집 어느 구석에 박혀 있을텐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허리띠를 사용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정장을 입을 때만 썼던 것 같은데, 한동안 정장 입을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며칠동안 흘러내리는 바지를 끌어올려가며 그 옷을 입고 다녔다. 몇 번이나 처음부터 한 치수 아래 사이즈를 살 걸하고 후회를 하기도 하고, 바로 바꾸러 갔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리띠를 발견했다. 방 한 켠에 쌓여있던 책 더미 사이에 구겨져 숨어 있었다. 이제 더이상 바지가 흘러내리지는 않는데, 옷 맵시와 착용감이 좀 아쉽다. 그리고 허리띠 무게만큼 바지가 무거워진 것도 아쉽다.


'늙었다' 와 '어려보여요' 사이에서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한 사람을 만났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일상을 지켜보던 사이라, 한 5~6년만에 만났음에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 후로 시간이 지났만큼 서로 외모가 제법 변했다. 그 분은 오히려 더 젊어진 느낌이었다. 살도 좀 빠졌고, 얼굴에 생기가 느껴졌다.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비해 활동이 더 많아졌는데, 그래서 더 젊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분이 나를 보더니 첫 마디가 늙었다 였다. 근육은 다 어디갔냐며, 예전의 그 몸짱 청년을 찾더라. 그래서 그 몸짱 청년은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 분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이 직설적이다. 돌려말하지 않는다. 뭐 시간이 지난 만큼 늙었다는 건 어쩔수 없으니 인정하는데, 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반면 난 더 젊어졌다고,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칭찬을 마구 던졌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말도 많았다. 한 4시간 가량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처음에 그렇게 섭섭하게 해놓고는 나중엔 또 나에게 남자로서 매력이 있다고 자심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자신이 나이가 좀 더 어리고, 싱글이었다면 분명 나에게 관심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선배처럼 직설적인 분이라면 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던 어느 마을기업 대표님께서 나이를 물으셨다. 바로 답을 했더니, 인상을 확 바꾸면서 진짜냐고? 농담하지 말고 다시 말하란다. 맞다고 했더니, 그렇게 안 보인다고 했다. 자신은 20대로 봤다고, 많이 봐도 30대 중반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본인 큰 아들이 지금 30대 중반인데, 오히려 아들보다 내가 더 어려보인다고 했다.


이 반응은 대체 뭘까? 며칠 전 누군가는 나를 보자마자 늙었다고 했고, 오늘은 또 20대로 보인다는 소리를 듣다니. 물론 나와의 친밀도와 유대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가끔 처음 만났거나,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서 나이에 비해 어려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대표님과는 작년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같이 밥을 먹었는데, 나이 얘기는 처음이었나보다.


뭐 누군가에게 늙어보이거나, 젊어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나이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비가 쏟아지니 술 생각이 난다. 벌써 일주일째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마셨건만, 대낮부터 일은 때려치고 전 부쳐놓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다.


오늘도 책 이야기


한동안 일과 관련한 책만 읽었는데, 요즘은 일부러 소설을 좀 찾아 읽었다. 사놓고 안 읽었던 책들, 선물받고 안 읽었던 책들이 잔뜩 있었다. 소설을 몇 권 읽었더니,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침 책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서 오래전 써놓은 습작노트도 발견했다. 제법 오랫동안 차근차근 읽어봤다. 분명 내가 쓴 글이 맞는데, 무척 낯설었다. 대체로는 미숙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고, 가끔 이렇게 표현했구나 싶게 잘 썼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습작노트를 덮으며 내린 결론은 소설을 쓰려면 아직 멀었구나 였다. 아마 소설에 대한 욕심이 좀 더 컸다면, 당장이라도 시간을 쪼개어 글쓰기 연습을 할테지만, 그 보다는 지금의 삶에 좀 더 충실하다가 나중에 변화가 생기면 해보고 싶다는 정도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번 주부터 읽기 시작한 책. 열심히 읽고 소개글을 남기리라 결심한 책이다. 내일 장거리 출장을 다녀오면서 거의 다 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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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2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속으로 선배처럼 직설적인 분이라면 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이 부분 읽는데 저 왜이렇게 웃기죠? ㅎㅎㅎㅎㅎ 읽다가 웃었어요. 직설적인 여자는 감당 못하시겠습니까, 감은빛님? ㅎㅎㅎㅎㅎ 음.. 물론 제가 그 분을 본 건 아니지만, 그리고 `직설적`인 것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저는 액션과 리액션이 확실한 사람이 좋더라고요. 빙빙 돌리거나 마음 숨기거나 해서 혼자 속 끓이지 말고 `너 너무 좋아!`라고 말해주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물론 상대가 `난 아니야`라고 했을 때 `오케이 여기까지` 하고 그만둘 수도 있어야겠지만요. 왜 영화 [광식이동생 광태]에서 이요원이 그러잖아요.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라고. ㅎㅎ 여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만으로는 움직이기 힘드니까 앗싸리 똭- 말을 하는 게 낫지 않나, 라고 생각해봅니다.


음..
짐작만으로 움직였다가 처절하게 부숴졌던 저의 아픈 경험이 떠오르네요 ㅠㅠ

감은빛 2016-06-23 20:56   좋아요 0 | URL
그게 사실 그 선배는 `직설적인` 성격만이 아니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게 딱 맞는 표현을 못 찾겠더라구요.
안 그래도 글 쓰다가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저 단어만 쓴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돌려 말하는 스타일 보다는 바로 말하는 스타일이 더 좋지요.
저 때 제가 느낀 생각은은 `직설적인` 점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어떤 불편함이었습니다.

저도 짐작만으로 행동했다가 처절하게 부숴졌던 아픈 경험이 있어요.
아니 많아요! ㅠㅠ

루쉰P 2016-06-2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감은빛님과 저는 바지가 헤지는 부분이 비슷하네요. 전 제가 정력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어요 ㅋㅋㅋ 저도 가운데가 그렇게 헤지더라구요 ㅎ 전 허리띠를 매번 착용해요. 바지가 흘러내리는 걸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소설 한번 쓰셔야 하는데 술술 읽혀서 재미나게 읽었어요.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젊어 보인다고 하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요. 저 늙은거죠 ㅠ.ㅠ

감은빛 2016-07-04 20:50   좋아요 0 | URL
많은 남성들이 그 부분부터 바지가 해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청바지 회사들이 고의로 그 부분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정장이 아니라면 허리띠를 하지 않는 편이예요.
옷 입을때 그만큼 시간이 더 들기도 하고, 더 무겁기도 하구요.
옷 맵시를 고려해도 허리띠가 뽈록 튀어 나와 보기 싫더라구요.

비가 자주 오니 그만큼 자주 술이 땡기네요.
오늘도 한 잔 하고 자야겠어요.

카스피 2016-06-2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감은빛님처럼 엉덩이 뒷부분 포켓밑이 헤어지더군요.게다가 양무릎도 훤하게 찢어져서 여름에 아주 시원하게 다닙니다만,역시나 엉덩이쪽에서 팬티가 보일까봐 아무래도 검정색상의 팬티를 입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론 청바지 원단이 워낙 튼튼해서 너무 오래 입기에 청바지 회사들이 일부러 워싱을 심하게 해서 원단자체를 약하게 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용.

감은빛 2016-07-04 20:51   좋아요 0 | URL
저도 카스피님과 같은 의심을 늘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 오래 입지 않았는데도, 가랑이와 엉덩이는 금방 해지더라구요.
 

마감은 괴로워!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위원이라 돈 안되는 일을 제법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회의에 참석해서, 발행한 신문을 평가하고, 발행할 신문을 기획하고, 면 구성과 발행 일정까지 조율한다. 가끔 글도 써야 한다. 원고료는 없다. 지역의 행사 스케치 기사를 쓰기도 하고, 책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일과 관련해서 조금 전문적인 내용을 쓰기도 한다. 지난 회의에서 나는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사설의 초안을 쓰기로 했다.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시기에 맞는 주요 이슈를 다루는 사설의 초안을 써서, 여러 편집위원들이 글을 다듬어 신문에 싣는다. 딱 정해진 순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번쯤 쓸 때가 되었고, 마침 초미세먼지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에 초안 쓰기를 맡았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이틀 동안 퇴근 시간 이후에 자료를 찾았다. 알고 있던 내용 외에도 전문적인 내용들을 공부해가며 글의 얼개를 머릿속으로 그려 봤는데, 쉽지 않았다. 수요일과 목요일 밤에는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계속 술 약속이 잡혔다. 저녁에 글을 쓰다 말고 나가고, 새벽에 술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잘 써지지 않았다. 지역 신문 사설로서 글의 얼개가 잡히지 않았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쓰자니 사설의 성격에 맞지 않고, 또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중앙 언론에서 다룬 것들이었다. 미세먼지 혹은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지역의 이슈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쓰려고 했던 것들은 대부분 지역 신문에서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설로 풀어내기가 어려웠다.


편집장과 통화해서 이러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죄송하지만 이번 사설은 못 쓰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편집장은 그래도 써보라고 여러차례 권했고, 난 자신없는 목소리로 노력은 해보겠다고 했다. 지난주는 주말까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마감일이 지나도록 글을 쓰지 못했고, 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엊그제 퇴근 무렵, 편집장이 신문 교정교열을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다. 편집위원을 맡은 죄로 마감 시기에는 종종 교정을 도와주러 간다. 오탈자를 찾는 건 기본이고, 비문을 다듬고 흐름을 살리기 위해 글을 고치거나, 아예 다시 쓰는 경우도 있다. 지역 신문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취재기자도 모자란 판에 편집 기자를 두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글을 분량에 맞게 줄이는 일도 주로 내가 맡는 일이다. 직접 글을 쓴 기자는 보통 자기 글을 줄이지 못한다.


이번에는 아직 경험이 적은 기자의 기사 두 개를 맡았다. 하나는 기사의 흐름이 완전 엉망이고, 중복된 내용이 있는데, 편집장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다고 나에게 맡겼다. 편집장의 말처럼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기사였기 때문에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기자에게 취재한 소스를 달라고 했더니, 따로 취재내용을 기록한 것이 없다고, 보도자료와 유인물을 건네왔다. 어쩔수 없이 취재도 하지 않은 내가 인터넷 검색과 보도자료와 유인물만 갖고 기사를 다시 썼다. 편집장은 내가 다시 쓴 기사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썼냐고 놀랐다. 본인은 이 기사를 어쩌지 못해 몇 시간동안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다고 했다. 편집장은 한 두 군데 표현을 다듬고, 만족한 얼굴로 기사를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기사의 마지막에는 처음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들어갔다.


두번째 받은 기사도 같은 기자가 쓴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핵심 내용은 조금 밖에 없고, 주제와 관계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기사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측정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설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기사의 근거가 되는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를 찾아 팩트를 확인했다. 팩트 자체는 간단했는데, 이걸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단어나 개념 자체가 워낙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기자가 쓴 원문은 다 날리고, 처음부터 글을 다시 썼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고,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다시 쓴 기사를 보고 편집장은 짧은 시간에 잘 쓴 기사이긴 한데, 우리가 과학 전문지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내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쓴 핵심 부분을 다 날려버렸다. 속으로 좀 아깝긴 했지만, 편집장의 판단이 맞는 것 같아 반박하지 못했다. 편집장은 전문적인 용어나 설명 부분을 좀 더 줄인 후 나에게 다듬어 달라고 했다. 내용을 조금 더 줄이고 전체적으로 다듬은 후에 기사를 넘기면서 넌지시 말했다. 이 글은 기존 기사와 달리 완전히 새로 쓴 글인데, 내 이름을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편집장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편집장이 내 이름만 넣고, 원문을 쓴 기자 이름을 넣지 않길래, 처음 기사를 썼던 기자 이름도 넣어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첫번째 기사는 글을 다시 쓰긴 했지만, 원문의 내용을 대부분 살려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쓴 것이라 기자 이름만 들어가도 상관이 없지만, 두번째 기사는 원문의 내용 중 극히 일부만 들어가고, 대부분 새로 쓴 것이라 내 이름도 함께 들어가는 것이 맞는데, 원문을 쓴 기자의 노동은 당연히 인정해야 하므로 공동기사로 올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비록 초미세먼지를 주제로 사설은 쓰지 못했지만, 관련한 기사를 다시 썼으므로 그 노력은 인정해주겠다는 편집장의 말을 들으며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그는 밤새 원고를 더 볼 예정이었고, 난 술을 한 잔 마시고 잘 예정이었다.


강의가 너무 길어!


최근 강의를 두 차례 했고, 강의는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을 설명해야 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 두 차례의 강의는 지역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더운 날씨에도 학생들이 집중해서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 가끔 경로당 어르신들 대상으로 하는 강의나, 초등학생, 중학생 강의는 하지만, 고등학생 강의는 참 오랫만이다. 아주 오래전 학원 강사 시절에 고등부 수업했던 기억이 났고, 그 후 환경단체 활동가 시절 여고생들과 숲 생태 강의했던 기억이 났다.


이어 떠오른 생각은 역시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학원 강사 시절에도, 활동가 시절에도 여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나면 연락처를 묻고, 친해지려고 하는 학생들이 꼭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성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한 선생님에 대한 호감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암튼 그랬다. 생태 강의 이후 꾸준히 연락했던 학생 때문에 당시 여자친구가 질투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이번 두 차례의 강의에는 열심히 관심을 갖고 듣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강사인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당연하겠지.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청년이었을 때와 이미 아저씨가 되어버린 지금을 비교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난 옛 생각이 자꾸 떠올라 조금 서글펐다.


앞서 두 차례 강의했던 내용을 압축해서 주민들에게 설명할 일이 있었다. 여러모로 긴장이 되는 자리였다. 방송국 카메라도 비추고 있었고, 낯선 사람들은 낯설어서 부담이 되었고, 잘 아는 사람들은 혹시 실망할까 두려워서 또 부담스러웠다. 일단 집중을 시켜놓고 나니 많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데, 긴장해서 머릿 속이 하얗게 변했다. 잘 아는 내용이고, 여러번 설명했던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든 말을 떼야겠다 싶어서 일단 시작은 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었다. 초반에는 긴장 때문에 조금 발음이 불명확하게 나가기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여유를 되찾아 발음도 괜찮아졌다. 여유가 조금 생겨 말을 하면서 주욱 둘러보니 사람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음을 느꼈다. 속으로 어디서 끊어야 할까,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가 고민이었다. 되도록 짧게 끝내는 것이 좋긴한데, 하지만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이렇게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비록 강의는 아니지만, 이 기회에 확실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다. 사실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농담도 섞어가면서 분위기를 조절했을 텐데 마음이 급해서 빠른 말투에 설명이 좀 많았다.


역시나 끝나고 나를 잘 아는 선배가 이렇게 평가했다. 중반까지는 설명을 잘 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제법 성과가 있었다. 다만 조금 길었던 게 흠이다. 다들 집중해서 들으니까 설명이 계속 길어졌는데, 적절하게 끊었어야 했다. 나 역시 마지막에 설명이 좀 길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확하게 짚어줬다. 단점을 파악했으니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텐데, 문제는 이걸 극복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떠올려보니 설명이 길었다는 지적을 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언젠가 지역 녹색당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안건을 설명하고, 당원들의 질문에 답을 했는데, 혼자서 두 시간 넘게 떠들었다고, 잘라낼 부분은 잘라내고, 시간 조절을 했어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언젠가는 10분 발표를 맡았는데, 15분 이상을 마이크를 잡고 있어서 지적 받았던 적이 있었고, 5분 발표를 맡아 얘기중이었는데, 5분이 다 될 동안 얘기해야 할 내용의 절반도 못해서 절망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기억이 점점 더 많이 떠올랐다.


말이 느린 편은 아닌데, 핵심이 아닌 도입부에서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보니 글도 마찬가지다. 주제보다 도입부에서 더 많은 분량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건 정말 고치기 쉽지 않겠다. 특히 이번 처럼 즉흥적으로 설명해서는 절대 고칠 수 없다. 미리 설명할 내용을 준비하고, 시간을 재가면서 분량을 조절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또 다음에 발표나 강의가 예상보다 길어져서 곤란한 경우를 겪겠지.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또 글을 써도 주제보다 도입부가 긴 글을 쓸 것이고, 늘 마감 시간에 쫓겨 글을 쓸 것이고, 결국 마감을 넘기고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겠지. 뭐 그렇겠지.



디스크는 있다? 없다? 


한 이 주 전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깜짝 놀랐다. 잠을 잘 못 잔 것일까? 생각해보니 야근이 잦았고, 그만큼 컴퓨터 앞에 거북이 자세로 앉아 있었던 시간이 많았고, 제법 오랫동안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런지 유독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절을 다치거나, 아파서 문제가 된 적이 많았다. 군대에서 무릎을 다쳐 제법 오랫동안 고생했고, 역시 군대에서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둘 다 인대가 늘어났는데, 한번 망가지고 나니 다치기 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아직도 다쳤던 무릎과 어깨는 움직임의 폭이 좁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몇 년 전에는 골반 통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때 괜히 큰 병인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부터 허리 통증이 간혹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지금과 같았다. 아마도 나쁜 자세 탓일 것이고,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아프다. 하루종일 계속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한번씩 통증이 오면 깜짝 놀랄만큼 아프다. 그래서 요 며칠동안 디스크에 대해 알아봤다. 생각보다 통증이 오래가길래 이런게 디스크인가 싶어서다.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 읽고, 동영상도 여러 편을 찾아봤는데, 내가 느끼는 통증은 디스크와는 달랐다. 한편 안심하면서도 한편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디스크가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통증은 대체 뭘까? 뭘 어떻게 해야 통증이 사라질까?


분명 나쁜 자세 때문일텐데, 그래서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서 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고 앉아 있으면 일에 집중이 잘 안된다. 그리고 막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쭉 내민 거북이 자세로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이거 생각보다 답이 잘 안 나온다.

















작년 연말에 나온 현직 정형외과 의사 황윤권 선생의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철 선생의 책 역시 읽어보진 않았지만, 예전에 김철 선생의 다른 책들과 글을 읽었기에 어떤 내용인지 대체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의학과 과학 때문에 점점 더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의사나 과학자가 우리 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기대어 혹은 그들의 말만 믿고 우리 몸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발언하지 못하는 시대. 의사와 과학자가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과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까? 비록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해도 내 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내가 아닐까? 이를테면 비가 오기 전에 무릎에 미약하게 통증이 오는 이유를 어느 의사나 과학자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 무릎을 다쳤을 때, 연대 의무대에서도, 사단 의무대에서도 군의관들은 뼈가 툭 튀어나온 무릎을 보고 놀라기만 할 뿐 아무런 진단도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나중에 육군 통합병원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군의관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휴가를 받아 나가서 MRI를 찍어 오라고 했다. 어깨 뼈를 다쳤을 때, 휴가를 받아 나와 정형외과를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형외과 의사 역시 어깨 뼈가 이렇게 툭 튀어나온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그저 물리치료를 받고 가라고 했을 뿐이다. 골반 통증 때도 비슷했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큰 정형외과 의사는 X레이 사진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MRI를 찍자고 했다. 함께 동행했던, 내가 의심했던 병을 이미 오래전부터 앓아 왔던 큰 처남이 아니었다면, 속는 줄 알면서도 MRI를 찍을 뻔 했다. 통증이 생각보다 오래갔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릎도, 어깨도, 골반도 병원의 아무런 도움 없이 저절로 나았다. 물론 스트레칭을 자주 하고, 해당 부위 주변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노력 등을 하긴 했다. 덕분에 완전히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저절로 통증이 사라지고, 일상 생활도 가능할 정도로 돌아왔다. 지금 이 허리 통증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또 시간이 더 지나나면 나쁜 자세와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이 아니라 관심일 지 모른다.(이건 질병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근육이나 인대나 관절이 아플 때에 한정해서) 몸을 잘 못 쓰면 아플 수 밖에 없다. 몸을 잘 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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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02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신문 기자 얘기를 읽으니 예전 잡지사 기억이 나네요 ㅋ 저 역시 편집 봐줄 사람도 없고 해서 혼자 쓰고 교정하고 ㅋㅋㅋ 엄청 고생했죠 ㅎ 지역신문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 지역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중요한 신문입니다. 사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적어주는 신문은 거의 없어요. 그러기에 진짜 지역신문은 필요해요.ㅎ

감은빛님은 30대 시절 강의하실 때는 인기가 많으셨나봐요 ㅋ 전 20대도 지금은 완전 아저씨고 ㅋ 관심을 1도 받아 보지를 못해서 ㅋㅋㅋ

강의에다가 신문사 다니시고 정말 바쁘시네요. ㅎ 그래도 전문가로서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ㅋ

다만 허리는 진짜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허리 아픈 건 진짜 힘들어요...

감은빛 2016-06-10 13:31   좋아요 0 | URL
루쉰님 바쁘실텐데 댓글도 달아주시고 고맙습니다! ^^

저 전문가 아니예요.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에 자주 불려다니는 활동가일 뿐입니다.

허리는 다 낫지는 않았지만, 이글을 썼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쉰P 2016-06-18 23:04   좋아요 0 | URL
전문가세요(무척이나 단호한 표정 -.-)

진짜 허리는 아프면 답도 없습니다. 후~~ 진짜 물리치료나 이런 거 꾸준하게 받으셔서 더 안 아프셨으면 해요.

전 살이 쪄서 무릎관절이 아팠어요. 유비가 유표의 회식에 참여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살이 찐 자신의 허벅지를 보며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무얼 하였는가라고 슬퍼했다는 구절이 있는 데 저는 이 나이가 되어 무릎관절이라니 하며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

전 요즘 챔픽스 먹고 금연 중이에요. 담배가 인생의 낙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성피로 때문에 공부도 힘들더라구요. ㅠ.ㅠ

지금 4일 됐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푸하 우리 건강해요~~~

cyrus 2016-06-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는 학창 시절에 농구를 좋아해서 저랑 주말에 농구를 뛸 정도로 체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군대 갔다 오고 나서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더니 함부로 뛰지 못하고, 농구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병 때문에 한 사람의 일상생활이 크게 달라졌고, 평소에 친구와 함께 즐기는 놀이가 추억으로 남게 돼서 서글픕니다.

감은빛 2016-06-10 13:39   좋아요 0 | URL
저런! 좋아하는 운동을 하지 못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시루스님의 친구분께서 다시 농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예전부터 잊을만하면 어딘가 관절에 통증을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몸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그때 이상하다고 느꼈던게, 평생 이 몸으로 살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까 생각했어요.

요즘 저는 자주 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 전에는 몰랐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종종 깨닫습니다.
왜 좀 더 젊을 때 이런 생각을 못 했던가 안타깝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