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거냐? 걷는거냐?

퇴근하고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가면 늘 혼자 남아 있다. 혼자 심심해하고 외로워할까봐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방법이 없다. 오늘 아이는 어제 늦게 잔 탓인지,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낸 탓인지, 내가 도착했을때 혼자 졸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발걸음이 어긋난 비틀거린다. 반쯤 졸면서 걷고 있다.

조금 고민을 했다. 아이를 안고 가야 할까? 어떻게든 깨워서 데려가야 할까? 만약 안고 간다면 아이가 더 깊히 잠들텐데, 그럼 저녁도 못 먹고, 밤에 깨서 오히려 잠을 못 자게 되어 생활리듬이 완전 흐트러진다. 게다가 이 더운 날씨에 아이를 안고 15분 이상 오르막 길을 걷는 일은 쉽지 않다. 가능하면 정신을 차리도록 자꾸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 듯 자꾸 눈이 감기고, 자꾸 짜증을 낸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절반 가량 와서 안아달라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낸다. 어쩔수 없이 아이를 안았다. 이 더위에 아이를 안으니 땀이 줄줄 흘렀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땀이 비오듯 아니 폭우가 쏟아지듯 흘렀다. 이미 어린이집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려고 한참을 뛰면서 속옷까지 다 젖어있던 상태였다.

내 팔에 안겨,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든 아이가 한 편 측은하고, 한 편 사랑스러워 이마에 뽀뽀를 몇 차례 퍼붓고 아이를 깨웠다.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해줘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줘야 할텐데, 무슨 얘길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작은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흔들어 깨워 말을 걸었다. 그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꼬맹이가 엄마 뱃속에서 막 나오려고 할 때,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함께 병원에 갔어. 그런데 언니 태어날 때 줬던 겉싸개를 이젠 안 준다고 집에 가서 겉싸개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아빠와 언니는 집에 겉싸개를 가지러 갔어. 아직 시간 여유가 있을줄 알았지.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겉싸개를 챙긴 순간 간호사 언니에게 전화가 왔어. ˝큰일 났어요!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 병원은 아빠가 탯줄을 자르도록 하고 있고, 간호사 자신의 권유로 겉싸개를 가져오라고 보냈는데, 혹시 아이 아빠가 출산의 순간을 지켜보지 못할까봐 간호사가 당황하기 시작한 거야. 아빠도 깜짝 놀랐어. 언니가 태어날 때는 훨씸 여유가 있어서 괜찮겠지 싶어 집에 다녀왔는데, 금방 이렇게 아이가 나온다니 급하게 집을 나섰지.

당시 우리집은 산비탈에 있는, 큰 길까지 나오려면 한참을 걸어나와야 하는 곳이었어. 아빠는 아직 어렸던 언니를 들쳐메고 뛰기 시작했어. 언니는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었겠지. ˝아~아~아~빠~아~아, 뭠~춰~어~어˝ 언니는 아빠가 뛰니 힘들어 했지. 하지만 아빠는 멈출 수가 없었어. 우리 꼬맹이가 나오는 순간을 꼭 지켜보고, 탯줄을 자르고 싶었거든. 언니에게 했듯이 우리 꼬맹이에게도 꼭 그렇게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언니가 힘들어해도 아빠는 언니를 안은채로 비탈길을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 내려왔어. 아마 그순간 속도를 쟀다면 아빠가 올림픽 금메달도 땄을지 몰라.

언니는 계속 힘들다고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지는 아빠에겐 들리지 않았어. 아니 들리긴 했지만 먼 곳에서 들리는 것 처럼 그랬어. 아빠는 계속 ˝조금만 참아˝ 라고 말하며 빠른 속도로 뛰었어. 간신히 큰 길에 내려와서 택시를 잡았지. 택시 기사님께 아이가 태어나려 한다고 빨리 가달라고 했더니, 기사님도 깜짝 놀라서 속도를 올렸어. 곧 차가 막히디 시작했지만, 아빠의 간절한 표정을 본 기사님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빨리 가려고 노력했어. 무척 감사한 일이었지.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순간 그 간호사 언니가 사색이 다 된 얼굴로 입구에 나와 있었어. 우린 뛰었고 소독된 옷을 걸치고 분만실에 들어서는 순간 네가 엄마 몸 속에서 막 나왔어. 곧바로 엄마 배 위에 올려졌고, 아빠가 탯줄을 잘랐지. 그리고 아빠에게 안겼어. 작고 작은 별님이 아빠 품에 안긴 것 같았어.

다행히 작은 아이는 금방 이야기에 집중했고, 곧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아이를 안은 채 오르막길을 올랐다. 숨이 찼다.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어. 숨을 헐떡이며 평소 운동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잠든 후배를 앞에 두고

이 글을 폰으로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새벽 1시경까지 일을 하고 있던 나를 불러낸 건 친한 후배였다. 예전에 내가 출판사에 일할 당시엔 늘 술을 사줘야 했지만, 이제 내가 활동가가 되고, 녀석의 수입이 안정되면서 이젠 늘 술을 얻어먹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녀석의 연락을 받고 난 늦은 시간임에도 편한 마음으로 나섰다 어차피 술값은 녀석이 낼테고, 난 실컷 먹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겠구나.

1차로 배를 채우고, 2차로 맥주를 마시로 온 후 녀석은 졸려서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의 작은 아이를 보는 듯 후배는 자꾸만 눈이 감겼다.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이 녀석은 다 좋은데 취하면 잠들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이 다 되도록 곁을 지켜주다가 끌고 나와 택시에 태워야 하는 싱황이 대부분이다.

1차를 마치고 분명히 경고했건만, 잠들면 주저없이 버리고 가겠다고 강하게 경고했건만, 녀석은 오늘만은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고 큰 소리를 탕탕 쳤지만 2차 온 지 얼마 안 되어 곧 잠들었다.

혼자 알라딘 글 읽고, 글 쓰며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슬슬 녀석을 깨워봐야겠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아직 준비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걱정은 잠시 접어둔다. 뭐 늘 그렇듯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음에도, 취하지 못했음이 아쉽다. 담엔 기필코 내가 먼저 취해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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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7-1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 잘 하신거에요?? ㅋㅋㅋㅋ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ㅋㅋㅋ

감은빛 2016-08-05 23:5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이 댓글엔 답을 못 했네요. ㅎㅎ 조금 지각을 하긴 했지만 출근은 했죠. 다만 오전의 중요한 일정은 준비를 전혀 못해서 뒤로 미뤄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