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farewell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이젠 가늠도 잘 안 되는데, 그게 정확한 시작 시점을 기억할만한 어떤 계기 없이 차츰 나를 잠식해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길고 긴 이 침체기를 좀 벗어나보려고 다양한 뭔가를 시도중이다.


영화에 몰두해보기도 하고, 잘 안 읽던 종류의 책에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꽤 오래 연락할 일이 없던 이에게 뜬금없이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건 운동인데, 이건 비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관절 통증 때문에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고 있는데, 과연 예전처럼 씻은 듯이 관절 통증 없이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내 우울한 감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다크하고 딮하고 블루한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일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서, 일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주째 무겁게 내 어깨를 내리누르던 큰 일 하나를 일차 완료 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첫 번째 고개를 넘었다 정도로 살짝 부담감을 덜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한결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좀 제발 이별했으면 좋겠다. 슬럼프여. 침체기여, 우울증이여, 무기력감이여, 이만하면 오래 만났으니 그만 떠나줄래? 너 때문에 인생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안녕! 굿바이! 페어웰! 아디오스! 아듀! 아우프 비더젠! 짜이찌엔! 사요나라! 




승진? 활동비 인상?


어제 이사회 회의에서 실무자로서 개인적인 감정을 살짝 드러냈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해는 없었지만, 작년 한 해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았고, 힘들었다. 일은 훨씬 더 많이 했는데,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내가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소모되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부당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연 가능 할지는 모르지만.


시민단체에서 조금 경력을 쌓았을 때 팀장이란 직책을 얻었다. 출판사에서도 조금 일에 익숙해지고 한 사람 몫을 할 때쯤부터 팀장이란 직책을 달았다. 여기 협동조합에 와선 처음부터 팀장이었다. 그 위도 그 아래도 없다. 나 혼자 실무자로 일하는 곳이니까. 우리 법인의 모든 일을 나 혼자 다하고, 심지어 거기에 더해 실무자가 없었던 연합회 법인의 일까지도 나 혼자 다 해야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계속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어제 이사회에서 내 직책을 사무국장으로 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사실 주위에선 직책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벌써부터 내가 사무국장이 되어야 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가 하면,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어떤 한 가지가 부족해서 아직 사무국장이 되지 못한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사무국장이어도 관계없고, 팀장이어도 아무 상관 없다. 어차피 이 법인의 일은 나 혼자 해왔고, 지금도 혼자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확률이 높다. 게다가 밖에선 다들 나를 국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내 직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으며, 내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국장일거라 여기고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사실 한동안 한 명 더 있었다. 1년 간 일을 배웠고, 조금 익숙해 질 때쯤 건강 악화로 병가를 냈다가 복귀 후엔 반상근으로 일을 했다. 다만 병가를 냈던 시점부터 다시 혼자가 되었고 복귀 후에도 본인 업무 영역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나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계속 건강이 나아지지 않아 곧 그만둘 예정이다. 암튼 결국 그래서 나 혼자인데 이걸 승진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그냥 직책명이 바뀌는 정도라고 여기기로 하자.


올해 지자체에 제공하는 청년 인턴 제도에 응모해, 만 39세 이하의 청년 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를 제공받게 되었다. 지자체에서 인건비의 90%를 부담하고, 우리 법인이 나머지 10%를 부담하면 된다. 그런데 인건비가 딱 정해져 있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금액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지금 이 법인에서 일한지 5년차인데, 내 활동비보다 더 많더라.


그래서 이사장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신입 활동가보다 내 활동비가 적을 수는 없으니, 다른 사례를 참조해서 상식적인 활동비 인상안을 만들어 보란다. 사실 해마다 조금씩 활동비가 오르긴 했다. 늘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지만, 해마다 최저임금도 늘 조금씩은 오르니 오를 수 밖에 없긴 하다. 처음 여기 들어올 때는 진짜 적은 액수를 받았다. 이사장도 그 돈 받아서 애들 키우면서 살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당시 나는 여기 일이 이렇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을 거라 예상 못하고 비 정기적으로 교정교열 알바와 영업 대행 알바 등 출판계에서 조금씩 돈을 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있을 때보다 터무니없이 낮아진 활동비에도 이 일을 선택했던 거였다. 다행히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내 활동비도 오르긴 했지만,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고 나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뭐 물론 내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술값으로 나가는데, 술을 조금 덜 먹으면 조금 더 안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수 있으므로 고려하지 않겠다.


얼마가 될 지 모르겠으나, 아니 얼마나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법인의 재정 상황이 뻔하기에 큰 금액을 올리진 못하겠지만, 사실 새로 채용할 청년 인턴의 월 급여액보다 많이 받는다면 현재 보다는 그래도 제법 오르는 것이긴 하니까 큰 금액을 올리는 것이라 여겨야 하려나? 암튼 활동비가 오른다니 그건 좀 기분이 괜찮다. 직책이 바뀌는 건 정말 요즘 말로 1도 기쁘지 않았건만, 역시 돈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이 달라질 수 밖에 없나보다.



그래봐야 매달 활동비가 통장을 스쳐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찰나의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심할 경우 고작 하루도 가지 못할 그 행복을 차라리 느끼지 않으면 좋으련만.


지역 공동체 화폐


우리 지역 공동체 화폐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이상 지났다. 창립 회원으로 공동체 화폐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어서 열심히 사용하려 마음 먹었으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각자 수첩을 갖고 다니며 공동에 화폐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이용하고 수첩에 기록해야 하는데, 그 수첩을 늘 갖고 다니는 일이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몇 번 이용 후엔 영수증만 챙겨놓으면 나중에 정산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영수증까지 챙기는 일조차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난 우리 법인 영수증을 챙기는 일만 해도 너무 힘들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공동체 화폐가 진화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거기에 소액의 적립금을 추가한 금액이 앱에 충전된다. 가맹점에서 이용하면서 앱 자체에서 가맹점을 선택해 내가 이용한 금액만큼 바로 결제가 가능했다. 와! 이거 진짜 편리하더라.


대개 5만원을 입금하면 10%가량 적립금이 붙어 5만5천원이 충전된다. 게다가 몇몇 가맹점은 이 공동체 화폐로 결제할 경우 추가 할인을 제공했는데, 이 역시 5~10% 가량 되었다. 작년에 나는 10%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주로 공동체 화폐를 이용했는데, 그 결과 나는 충전한 금액보다 약 20% 가량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식당 뿐 생협과 북카페 등에서 쓸 수 있으니 점점 사용할 기회는 늘어났다. 재미있는 건 수제 생맥주집, 치킨집 등의 가맹점도 있어서 가끔 동네 술꾼 선배들이 술을 산다면서 오늘 공동체 화폐 충전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물론 가맹점이 아직 적어서 더 늘려야 한다. 내 경우엔 일터 근처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고, 가끔 생협을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지만, 그외에는 쓸 일이 별로 없다. 일터 근처 치킨집이 있긴 한데, 사실 치킨과 맥주가 취향이 아니다보니 그닥 갈 일이 없다. 수제 생맥주집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거리가 있어서 역시 갈 일이 없다.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이나, 집 근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괜찮은 술집이 가맹점에 추가된다면 아마 사용하는 금액의 단위가 바뀔 수도 있을 듯한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공동체 화폐가 꾸준히 성장해서 가맹점과 이용자가 더 늘어나고, 그래서 지역에서 사용하는 돈이 대기업이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돌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한 몫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씩 이 자본주의의 견고한 틀을 허물었으면 좋겠다. 일단 나도 활동비가 오르면 조금 더 이용 금액을 높이겠다.(공동체 화폐 담당자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 좋아하겠지)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안화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시도했다가 없어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사례도 많겠지만, 수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시도들이 일어나 조금씩 자본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전환마을로 유명한 토트네스처럼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대안화폐를 사갈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오늘 낮에 평소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저 멀리 강남까지 회의 때문에 다녀왔는데, 그 회의가 또 정말 짜증나고, 답답하고, 암만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이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면서부터 계속 술이 땡겼다. 남아 있는 일은 그냥 내일로 확 미뤄버리고 이제 술 마시러 가야겠다. 오늘은 무슨 안주에 소주를 마실지 고민해보자. 일을 미룬 만큼 내일의 나는 괴롭고 힘들겠지만, 그건 내일의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술 마실 생각에 즐거우면 될 일이다. 아, 내일의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건네자. 


미안! 쏘리! 꼬메나사이! 엔슐디궁! 빼르동! 뚜이부치! 제수위디줄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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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감은빛 >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 문제

북플에 예전 오늘 날짜에 쓴 글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네. 이건 아마도 페이스북 따라하기인 것 같다.

8년 전 잡지에 실었던 서평을 그대로 알라딘 서재에 올린 글이다. 그러고보면 예전엔 청탁 받고 쓰거나 짧게 연재하며 서평을 의무적으로 썼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책을 읽어도 서평을 쓰지 않는다. 서평을 쓰는 건 책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당시 잡지에 실린 내 서평이 좋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했던 내 경험을 살린 글이라 아마 가장 잘 쓸 수 있는 영역이어서 그럴 것이다.

마음 아픈 건, 그때 이후로 GMO, 식용색소, 합성착향료 등 다양한 식품첨가물 문제는 훨씬 더 나빠졌다. 이 글에 아이들이 매일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걸 보고 충격받은 얘길 썼는데, 요즘 사람들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게다가 혼자 살면서 가끔 나조차도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는다.

최근 작은 아이의 입을 통해 애들엄마가 내게 불만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 외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생협 먹거리로 식사를 준비하는 애들엄마와 달리 나는 애들과 식당에서 사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끔 집에서 먹어도 가공식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혼자 살면서 게을러진 내 잘못이긴한데, 요즘 혼자 쉽게 먹을 수 있는 온갖 가공식품들이 많다. 사실 그런 것들을 생협 재료로 만들어 먹으려면 훨씬 더 돈이 많이 들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그래야 한다는 건 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저 귀찮음이 문제이고, 정신없이 바쁜 삶이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도 주말동안 애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노력중이다. 새삼 예전의 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고, 잘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애들이 다녀가고 혼자 남으면 다시 귀찮아진다. 내 뱃속을 채우려고 음식을 만들기에 내 삶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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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1-16 19:00   좋아요 0 | URL
황대권 선생이었던가?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은 글에
도시 아이들이 싸는 똥으로는 제대로 된 퇴비도 못 만든다고 했어요.
워낙 불량한 먹거리만 먹어서 그렇다고.
그게 그냥 한 말인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네요.

저야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몸이니,
뭐 그깟 불량한 음식들 좀 먹어도 상관없겠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답답하죠.

cyrus 2019-01-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식품도 몸을 망가지게 하는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건강관리를 꼼꼼하게 하지 않을 거고, 비타민제 같은 약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하루에 비타민제를 두 개 이상 챙겨 먹어요. 건강 방송 프로그램에 수입산 건강식품이 많이 소개됩니다. 말이야 건강 예능 프로그램이지 건강식품 홍보 방송이죠.

감은빛 2019-01-16 19:07   좋아요 0 | URL
주위에서 저보고 이제 나이가 있으니 비타민 챙겨먹어야 한다고 하던데,
저는 꼭 필요한 식사와 술 외에는 다른 건 거의 안 먹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방송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음식 먹는 거예요.
왜 그런 걸 찍고, 왜 그런 걸 보는지 모르겠어요.
남들 먹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좋은가요?
다행히 집에 티비가 없어서 그런 방송을 지나가면서라도 안 볼 수 있어요.

근데 영화에서 나오는 먹는 장면은 피해가기가 어렵더라구요.
새벽에 혼자 [내부자들] 보다가 이병헌이 라면에 소주 먹는 장면 보고
당장 소주와 라면을 사러 나가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집이 엄청난 언덕 위라, 언덕 아래 편의점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다녀올 용기가 없어서 참을 수 있었어요.

syo 2019-01-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치킨을 너무 사랑하여 지구에 죄송스럽습니다.... 뻑하면 조류독감을 발생시키는 지도관 양계환경이나 분뇨, 사료로 낭비되는 곡물들, 무자비한 살처분까지..... 이게 다 나같은 치킨환자들이 많아서 벌어지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ㅠㅠ

감은빛 2019-01-16 19:09   좋아요 1 | URL
쇼님 글에 댓글로 달았듯이,
저는 먹고 싶을 때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3끼를 꼬박 먹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자주 먹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데,
그것도 그들이 잘못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이죠.
 

물이 샌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저녁이나 밤 시간을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베란다 쪽 벽과 천장이 젖어 있었고, 곰팡이가 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지나 다른 쪽 벽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그리고 다시 하루 이틀이 지나 방문 쪽 벽이 젖어 있는 걸 깨달았고, 곧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베란다 쪽 창틀 위 천장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이라 벽과 천장이 젖어 있음을 느꼈을 때까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뭘 해야하는 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손을 썼으면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텐데. 지난 주 갑자기 상황이 급박하게 나빠졌다. 곰팡이가 생긴 벽면은 시커멓고 큰 둥근 자국이 여러개 생겼다.


다행이 물이 새긴하지만,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수준이라 걸레만 받쳐놓아도 괜찮았다. 암튼 주말 이틀 동안 계속 위층을 찾아갔지만, 계속 사람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물이 새니 연락을 달라."는 내용과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현관문에 붙여두고 출근했다. 저녁 늦게 아니 밤 늦게 연락이 왔다. 위층 거주자인 세입자에게 연락을 받은 위층 집주인인 듯 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했다.


위층에서 물이 새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만약 해결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조금 들고, 지금 벽에 생긴 물 자국과 곰팡이 자국 등은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다. 무척 보기 싫어서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집이 언덕 꼭대기이고, 옛날 집이라 단열이 거의 안 되어 있어 춥고 덥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점들도 있어서 가능하면 돈을 좀 모을때까지 오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아주 낡은 보일러가 말썽을 부렸고, 물이 새는 일을 겪고 나니 오래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사실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차라리 내 집이면 내 돈 들여서 제대로 고칠 수 있을텐데. 남의 집 보일러를 거액을 주고 바꿀 수도 없고, 큰 돈 들여서 단열 공사를 할 수도 없다. 무려 18년이나 된 수명이 벌써 지난 보일러를 사용하는 것도, 단열이 안되는 방에서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온도 때문에 겨울엔 추위로, 여름엔 더위로 고생하는 것도 다 세입자의 몫이다. 이렇게 물이 새도 집주인은 그저 "위층에 연락해서 빨리 해결해라."는 말 뿐, 한 번 와서 보지도 않더라.


결혼 직후부터 집주인들과 갈등을 많이 겪었다. 결혼 후 처음 얻었던 집에서도 보일러 문제가 터졌었다. 15년도 넘은 낡은 보일러가 당시 한겨울 가장 추운 날 작동하지 않았다. 맨 바닥은 거의 얼음과 같은 상태여서 당시 갓난 아기였던 큰 아이를 도저히 바닥에 누일 수 없어서 애들엄마와 내가 밤새 번갈아가면 안고 있었다. 다음날 보일러 기사가 와서 수명이 지난 보일러라고 지금 고쳐도 임시방편이니 보일러를 갈아야 한다고 했지만, 집주인 아줌마는 멀쩡한 보일러를 우리가 고장난 거라고 오히려 목청을 높였다. 결국 경찰까지 부르는 소동 끝에 우리는 한 겨울에 그 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4년 쯤 후였던가. 또 다른 집에서는 수도에서 녹물이 심하게 나왔다.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집이라고 했다. 문제는 분명 집을 보러왔을 때는 녹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사를 여러번 다녔던 경험 때문에 분명 확인했었다. 우리가 집을 보러 가기 전에 누군가를 시켜 미리 수도를 틀어놓았던 것이 분명했다. 암튼 우리는 곧바로 녹물 문제를 해결해달라 했지만, 집주인과 부동산은 계속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녁에 아이를 씻기려면 미리 물을 5분 이상 틀어놓아야 녹물이 아닌 물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녹물을 틀어놓는 시간이 조금씩 줄긴 했지만, 매번 흘려버려야 하는 녹물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3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십번을 집주인과 전화로 싸우고, 부동산 사장과도 얼굴 붉히며 난리가 났었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변호사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내용증명을 보내고, 법정에서 만나자고 집주인에게 통보했다. 사실 소송으로 가더라도 별로 승산이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그렇게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집주인은 그제서야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내가 다 거절했다. 다음엔 변호사를 통해 연락할거다. 지난 3달 동안 우리가 입은 피해와 고통도 다 청구할테니 기다리시라고 했다. 지난 3달간 그렇게 피해다니고 연락이 안되던 집주인은 곧바로 우릴 찾아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돌아가라고 했다. 손해배상을 얼마나 청구할지 변호사 자문을 받는 중이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결국 집주인은 곧바로 수도 배관 교체 공사를 약속하고, 그동안 입은 불편에 대해 소액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 다음 집에서는 베란다에 물이 새는 문제와 집주인의 위장전입 문제가 있었고, 계약 기간 만료 3개월 전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가 있었다. 우린 계약금을 주면 이사갈 집을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이 집주인이 계약금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우리가 들어올 때도 미리 계약금을 걸었고, 그 돈으로 이전 세입자가 이사갈 집을 구한 거라고, 우리나라 임대 체계가 다 그렇게 돌아가는 걸 모르냐고 아무리 입 아프게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조건 자기는 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결국 전화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가, 이번에도 변호사 친구의 도움으로 내용증명을 보낸 후에야 해결되었다.


그렇게 여러번 집주인들과 악연을 맺은 후에 나는 어지간하면 싸우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며 살았다. 무조건 세입자는 약자일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 겨울 보일러가 고장났을 때, 보일러 기사님이 18년 된 보일러라고 확인해줬을 때, 오래전 그 15년 이상 되었다는 보일러가 생각났다. 그땐 갓난 아기가 있어서 다급한 마음이었겠지만, 지금은 별로 화가 나거나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는 주말에는 좀 문제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고장날 때마다 고치고, 그 비용을 청구하면 될 일이다. 꼭 낡은 보일러를 갈아달라고 집주인과 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고장날 때마다 불편할 뿐이다. 암튼 천장과 벽에서 새는 물이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주말에 아이들이 다녀가고 혼자 남았을 때, [라라랜드]를 봤다. 아마 세번째던가? 아니 네번째인거 같기도 하다. 고가도로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시작 장면과 중간쯤 그 유명한 탭댄스 장면과 맨 마지막 장면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니 시작 장면과 탭댄스 장면은 그저 연출이 참 잘 된 장면이라 생각나는 것이지만, 맨 마지막 장면은 라이언 고슬링의 감정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그 감정에 푹 빠져들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 반복해서 돌려보고 있었다. 피아노 연주와 이루지 못했던 바람과 그의 눈빛.














이유를 찾는 것은,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 어쩌면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몇 번을 같은 장면을 돌려보며 나는 어느새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마 알 수 없겠지만, 어쩌면 후회한다해도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겠지만, 다 알고 있어도 어쩔수 없이 자꾸만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아쉬워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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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1-1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얘긴데,

케이블에서 [사랑과 영혼Ghost]을 가끔 재방송 해주더라고요. 저 중학교 때 이 영화 봤을 때는 딱히 재미있게 보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 보는데 와 계속 제가 울더라고요. 재방할 때 마다 보고 볼 때마다 울어요.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울게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감은빛님이 라라랜드 마지막 장면 때문에 반복해 보신다 하니, 갑자기 사랑과 영혼 떠올랐어요.

감은빛 2019-01-16 18:56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께선 [사랑과 영혼]의 어떤 면에 아주 공감하시나봐요.
감정선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

언제 한 번 그 영화를 찾아봐야겠어요.
오래 전 친하게 지냈던 미국인 영어강사가 데미무어를 좋아한다면서
덧붙인 말이 가슴이 커서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데미무어만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상상이......

2019-01-15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1-16 18:53   좋아요 0 | URL
아마 평생 가난하게 살 거라, 평생 집을 살일은 없을텐데요.
이사 자주 다니는 것도 정말 귀찮고 피곤한데(특히 책 때문에)
제발 집주인의 어이없는 갑질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집주인을 만나는 일은 아마 벼락 맞을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19-01-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새는 문제 다음으로 골치 아픈 게 곰팡이에요. 곰팡이가 남아 있으면 실내 공기가 안 좋아져요. 2년 전에 제 방의 구석진 벽에 곰팡이가 생긴 적이 있었어요. 그 해 겨울에 감기 때문에 엄청 고생했어요. 아마도 원인은 곰팡이였을 거예요.. ^^;;

감은빛 2019-01-16 18:51   좋아요 0 | URL
윗집에서 이틀동안 공사를 해서 일단 물이 새는 문제는 해결했네요.
말씀처럼 곰팡이가 문제인데, 이건 조금 덜 바쁠때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나와같다면 2019-01-1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랜드의 엔딩신에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것 같아요. ‘그때 그랬더라면..‘
다시 시작했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감은빛 2019-01-16 18:50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 님께서도 그러셨군요.
이상하게 멈출 수가 없더라구요.
계속 반복 또 반복해서 보았어요.
그 감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헤어나올 수가 없었어요.
 

오랜만에 학교 강의


오늘 오전 오랜만에 학교 강의를 했다. 그 학교에 계신, 동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해당 학교 법인의 비리 사학재단과 아주 오래 싸워오신 전교조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뵈어 또 정말 반가웠다. 그 선생님은 조금은 험악할 수 있는 인상이지만, 아주 함빡 웃음을 얼굴 가득 지어 나를 반겨주셨다. 악수에 이어 툭 하고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는 동작이 참 좋았다. 친근감의 표현이니 말이다. 내가 맡은 반이 몇 반이냐 물으시더니, 애들이 다들 잘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난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이곤 자면 또 자는 대로 내버려둬야죠. 억지로 깨울 수는 없다고 했다. 나 역시 학창시절엔 선생님이 들어오던 말던 늘 잠만 잤으니 말이다.


강의도 꽤 좋았다. 사실 1월에 왠 학교 강의냐며 의아했는데, 큰 아이를 보니 아예 봄방학 없이 3월 개학까지 쭉 이어지도록 방학을 늦게 시작하는 거라고 했다. 교실에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목요일에 방학 시작이라고 했다. 방학을 코 앞에 두고 이 추운 날에 학교에 와서 공부가 될 리가 없을 터.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아예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깨서 듣는 아이들만 데리고 강의를 했다.


근데 약 3분의 1가량, 그러니까 10명 정도 아이들이 열심히 듣고, 대답도 곧잘 하며 잘 따라왔다. 정말 기특하고 고마웠다. 나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아침부터 목 상태도 영 별로였다. 게다가 서둘러 나오느라 늘 갖고 다니던 물병도 못 챙겨나와 강의 중에 물을 마실 수 없었다.


평소처럼 열을 올리며 강의했다간 금방 목이 가버릴 것 같아서 페이스 조절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애들이 자거나 딴 짓은 해도 떠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고 고마웠다. 강의를 잘 듣고 따라온 10명 가량은 기후변화와 핵발전에 대해 상식 수준의 지식은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사회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그렇다고 했다. 이래서 학교 선생님이 중요하다.


오늘은 물도 없고, 목도 상태가 나빠 평소처럼 진도를 빼거나, 정보 전달에 애쓰지 않고, 이야기 중심으로 풀었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 당시 기록들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들려줬는데, 애들이 엄청 집중해서 잘 들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선생님이 수업하다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데, 나도 그점을 자주 활용하곤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슬쩍 운을 떼면서 호기심을 자극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흥미로운 요소들을 잘 배열해 서사를 끌고나가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대신 엉터리 이야기를 할 순 없으니 옛 기록들을 뒤져 이야기 꺼리를 많이 찾아야 한다.


암튼 2시간 강의를 시작할 때는 좀 일찍 마쳐서 애들 쉬는 시간을 배려해주려 했는데, 이야기 들려주는 재미에 푹 빠져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더라. 열심히 들어주는 애들이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목이 아픈 것 따위 다 잊을만큼 좋은 기분으로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2시간 떠들면 에너지 소모가 커서 많이 지치지만, 또 그만큼 아이들에게 힘을 받아 오곤 한다. 그래서 난 학교 강의가 좋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어른들 대상 강의와 달리 특유의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책들


체르노빌에 대한 아래 책 3권은 모두 읽었다. 아,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다 읽지는 못했으니 2권은 다 읽고, 1권은 아직 읽는 중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사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쉽게 읽히지만, 실제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많이 다르다.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후쿠시마에 대한 책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한 권 밖에 못 읽어봤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야지.










































언젠가 여유가 있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법정책] 저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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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1-14 18:01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하신 그 지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아무리 일본 정부가 숨기고 속이려해도 방사능 피해는 해가 갈수록 심해질텐데,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을텐데,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작년부터 라돈 방사능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더라구요.
92년 미국 환경보호청 자료에 의하면 매년 라돈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1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더라구요.(워낙 오래된 데이터이긴하죠.)

요즘 건물은 대체로 괜찮은데, 낡은 주택은 집안으로 방사능이 새어들어온다죠?
근데 도시에 낡은 주택이 워낙 많아요! (우리집도) ㅠㅠ
 


기네스북 기록 갱신 중인 고공농성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때문에 옥상을 살펴봐야 할 일이 생긴다. 그나마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면 괜찮지만, 가끔 사다리로 올라야 하는 경우는 좀 무섭다. 작년 여름엔 긴 사다리로도 옥상까지 닿지 않아, 사다리 맨 끝에서 약 1미터 이상을 팔 힘으로 버텨 올라야했다. 사다리 자체도 부실해서 휘청거려 오르는 동안 불안했지만, 맨 끝에서 양 팔에 힘을 주고 몸을 끌어올일때는 이러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얼마나 다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서도 작업하는 내내 많이 불안했지만, 가장 무서울 때는 내려올 때였다. 몸을 뒤로 상체를 양 팔로 받친채 하체를 내려 사다리를 밟아야 했는데, 사다리가 멀리 있어서 발이 잘 닿지 않았다. 간신히 사다리에 발이 닿아 내려올 수 있었는데, 대략 3~4분 남짓 걸렸을 그 시간 동안 나는 몇 십번이나 미끄러져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해가 바뀌어 이젠 작년이 되어버린 12월 초엔 또 눈이 쌓인 곳의 철제 사다리를 밟고 옥상을 올라야 했는데, 사다리가 많이 미끄러웠다. 그때도 역시 미끄러져 곤두박질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무려 75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서 420일이 넘게 농성중인 두 노동자가 있다. 오늘(1월 7일) 기준으로 422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일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 중이란다. 이전 기록 역시 같은 건으로 인한 고공농성이었다. 바로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 이야기다. 2014년 차광호 씨가 408일간 벌인 고공농성이 바로 이전 기록이었다. 지금은 박준호 씨와 홍기탁 씨 두 분이 동료의 기록을 갱신했다. 이전에 고공농성을 했던 차광호 씨는 현재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고, 29일째다. 파인텍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자 무기한 연대단식에 돌입한 4명(박래군․나승구․박승렬․송경동)은 21일째다. 그리고 김우 씨는 15일차, 이해성 씨는 14일차 단식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굴뚝 위 두 노동자가 420일 이상 굴뚝 위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이 매우 나빠져 몸무게가 채 50킬로그램이 되지 않는데, 어제부터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통보하고 음식과 물을 전달하던 줄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굴뚝 위 농성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섭취하며 지냈을텐데, 여기에 더해 아예 곡기를 끊는다니. 아니 물조차 올려보낼 수 없다니. 이건 아예 그냥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75미터 굴뚝 위 좁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온갖 불편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여름의 그 폭염과 이 겨울의 혹한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저 높이에선 폭염과 혹한이 수십배는 더 심하게 느껴질텐데 말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언론은 그닥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하다. 연예인들의 온갖 잡다한 소식들이 각종 포털 사이트를 장식해도, 목숨을 걸고 악덕 기업메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다. 


작년에 마무리 했어야 할 일을 붙들고 사무실에 앉아,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주말 아이들이 왔을 때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었다고 페이스북에 자랑했던 일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마음을 보태는 일 뿐. 부디 무사히 내려오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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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8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1-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기사를 보았는데 회사가 얼른 근로자와 문제 해결을 했음을 하는 바램입니다.감은빛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감은빛 2019-01-08 19:11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말씀츠럼 회사가 얼른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하는 꼴을 보니
그렇게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