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게 다가 온 문장들을 풀이해 보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전체를 알은척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파리의 한 귀퉁이 다녀오고서는 프랑스를 다녀 온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완벽할 수 있다. 그러나 맥락 안에, 상황 안에 들어가면, 타인과 만나게 되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하도록 하자. 서평이 구구절절해도, 요점은 이 책을 꼭 읽으라는 말이라는 것. 적어도 가짜가 아닌, 거짓과 인공은 아닌, 드라마가 아닌 다큐로 말하고 살아야지로... 

최근 누구를 만났는데, 자신과 가족에 대해, 뻔히 드러날 수 있고,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을 아닌 척하고 포장하여 말하고 있다. 특히, 자신만 옳고 공평하고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면서, 자신의 현 상황이 최고라는 식으로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달라진 모습이다. 그래서 불편하여 연중 행사로 만나는데, 이쯤에서 그만 만나야 될까. 어쩌면 너보다 내가 더 나은데 잘난 척 하는 게 싫어서 일까. 우리는 서로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지난 번 이야기와 지금 이야기가 다르게 포장한 거짓말?까지 조금씩 보태면서,,, 사는 게 고만 고만이지,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포장을 한들, 유유상종이라는 데, 이런 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맹자 공부는 [고자 상편]을 하고 있다. 사는 데도, 공부하는 데도, 일하는 데도 專心致志...

최근 내내 눈을 비비면서 홍상수의 '물안에서'를 보았다. 작금의 세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그렇게 본 것을 가지고 왈가 왈부하고 있다. 배우를 하겠다던 젊은이가, 아직도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으면서 영화를 찍겠다고 같은 학교를 다녔던 두 사람과 돌과 바람 많은 섬으로 온다. 경계도 모호하고 시야는 더 더욱 눈을 크게 떠 봐도 별 뽀죽한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물 속에 있다면, 상상할 뿐이다. 아니, 물 안에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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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삼중당문고 세대라는 표제가 눈에 띄어 집어든 책이다. 빽빽히 적혀있지만 숨벙숨벙 읽힌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음, 음, 음... 온전히 나의 책으로 온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서문문고가 기억난다. 몇 권의 책들이 아직도 책 꽂이에 있다. 흰 칼라의 교복을 입고 한 손에는 작은 독서노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학교를 오가며 단어도 외우고 시도 외우곤 했던 시절이었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오빠들과 친구들이 마음을 담아 선물로 줬던 삼중당문고도 기억난다.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60년대 대학생도, 청년이 아니라, 80년대 대학생이 되면서 계엄령이 내려지고 과외도 금지되고 그러했던 시대를 되돌아 본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게양식으로 길 가다가도 가슴에 손얹고 서 있었던 것, 계기교육을 빠짐없이 행사노래도 불렀는데, 교련복 입고 제식훈련 대회도 하고, 일과 학업을 공부할 수 있는 공장으로 가는 이도 있고, 여자가 대학을 당연하게 가는 일은 아닌 듯한, 교회도 대학부가 만들어졌다는 것(돌아보면, 대학 못 간 친구들이 태반이었는데), 오직 대통령은 그 사람만 당연하다고, 정말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알고 자랐던 시절이었다. 사고의 변혁, 시각의 변화는 무척 어려웠다. 이런 저런 책을 읽었고, 모임도 하고 토론도 하였지만,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돌아보니 이도 저도 못한 시절이었다. 세번째 동생 정도가 되어서야 대학생들이 다시 일어났다. 기껏 발령을 받고 전교조의 전신 모임에서 부터 전교조 활동을 했을 뿐, 하다보니 그들도 자기 몫만 챙기고 있어 탈퇴를 했다. 정말로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들, 경험하지 못한 과거와 그들의 목소리는 책을 통해 들려오고 있지만 내 삶과의 연결은 여전히 만드는 중이라고 할까. 책 읽기를 이렇게 숨벙 숨벙, 후르룩하고 하다니, 그러니 내 삶과의 연결점이 없는 걸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과거의 감정에 매몰되기 전에 흘러 보내고 현재를 즐기는 거다. 즐겁게 살자.   


* 좋아하는 사람, 장정일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추억을 공유한다.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 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 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 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 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홍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 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 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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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신이 인간에게 읽힐 요량으로 편찬한 책이라 할 수 있다.(10쪽)" 인간은 세상 만사를 아우르기 위해 메타포를 개발한 것이다. "메타포란 A 분야의 경험을 이용하여 B 분야의 경험을 환히 비추는 방법(10쪽)"이다. 이러한 메타포로 인간에게 세상을 읽도록 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단연코 책이 으뜸이다. 일회성이고, 되돌릴 수 없는 우리는 책을 통해 인생을 미리 알 수 있다. 세상이 곧 책이라는 메타포를 기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1) 여행자로 정의한다. 삶은 여행이다. 마치 세상을 여행하듯 책을 읽는다. 책은 사람이 다양하듯, 온갖 일들이 일어나듯, 천의 얼굴을 가진다.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는 우리의 몫이다. 무늬만 여행을 떠나기 보다, 탐구하는 여행으로 알뜰하게 챙겨서 기억 속에 저장하여 점차 익숙한 모습으로써 우리 삶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2) 상아탑으로 정의한다. 책이라는 상아탑을 안식처로 삼아 세상과 유리된 자신 만의 공간에서 무한 반복적인 배회를 하고 있을 수 있다. 그 상아탑에서 완전히 나와야 한다. 깊이 있고, 진득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심오한 독서를 반복하여 상아탑의 문을 박차고 나와 세상책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기반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책벌레로 정의한다. 제발 그대 책벌레들이여, '책 속의 사실'과 '현실'을 너무 꼼꼼하게 비교하지 말아 달라(132쪽)'고 부탁한다.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은 완전히 동일 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책을 모두 독파한다고 세상사를 완전히 알 수는 없고, 책은 세상을 비춰주는 도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으로 장강명이 말한 세계가 곧 책이고, 삶과 여행과 독서는 모두 똑같은 정도로 심각하고 위험한 행위임을 기억하기다. 그대가 여행을 하든, 상아탑 속에 있든, 책을 씹어 먹고 있던, 책은 읽어야 한다. 특히, 종이책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책은 인생의 등대이므로 책은 계속 읽어야 한다. 'you are what you read(당신이 읽는 것이 곧 당신) (169쪽)'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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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어릴 적 아버지와 고양이를 버리고 왔던 아주 평범한 기억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역사의 작은 한 조각이다. '역사라는 그런 것이다 - 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97쪽)'이다에 공감한다.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고, 굴복할 수 밖에 없는 현실(아버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중일전쟁)은 지금도 크거나 작게 반복되고 있다. 하루키 아버지는 역사 속에서 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하는, 누구에게나 말하기 어렵고,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 죽을 때까지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사건들, 응어리가 되어 있는 것들 중에서 포로로 잡힌 중국 병사를 처형한 일을 딱 한 번 속을 털어내 말해 준다. 그 중국 병사를 아버지가 처형했는지, 아님 지켜봤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하루키는 중국 병사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 내포된, 아버지에게 미친 영향은 자신에게로, 즉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그 조각난 이야기 하나하나의 아귀가 맞춰져 하루키 자신이 태어나고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의 삶이 덧없는 환상같다고 말하고 있다. 

부모님을 뵈러 가기 전에 읽은 글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한, 당신이 북한군에게 끌려가기 직전 꾀를 내어 무사히 빠져나온 그 집터를 보러 간 적이 기억났다. 아버지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으로 온 몸으로 전수되어 왔다... 가끔씩 동생들을 만나 어릴 적 기억을 나눠보면 서로 다른 부분이 아주 많다... 보웬의 다세대가족치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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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목수정의 글이 좋다. 이럴 때 읽으면 치유가 된다. 

어딘지 모르는 알 수 없는 근지러움이 온몸을 덮치면서, 마음과 정신까지 근질거리고, 잇몸조차 부어 먹는 거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모든 걸 알러지라고 치부해 버리면, 아직도 세상 만사가 알러지가 되고 있는, 그러면 나는 젊은이에 속한건가. 그건 분명 아닌데도, 긁고 있는 손가락이 미울 정도로, 이도 저도 못하는 마음의 흔들거림,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이렇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자신감과 바탕이 되는 지식과 마음의 근육이 부럽다. 

십여년 만에 예전에 같이 일했던 이들을 만났다. 그 당시 많은 도움을 받아서 만나고 싶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입속까지 근질거리고 있었다니, 이런 내가 싫다. 요즘 들어 듣고, 들어주는 자리에서 먼저 선점하여 이야기하고 수다쟁이가? 된 모습이다. 주변인들이 나를 만나는 이유는 분명 아주 잘 들어주고 긍정적인 피드백과 비밀유지가 완벽했기 때문일텐데, 그래도 그들보다는 덜 이야기하고, 이전의 나보다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애써 위로한다.

목수정의 아버지 목일신은 아동문학가이자 우리가 어릴 때 부른 '자전거'를 작사한 분이다. 이름을 딴 일신중학교와 목일신문화재단, 목일신아동문학상이 있다. 할아버지 목치숙은 독립유공자이다. 이러한 가족 배경을 가진 그녀가 어릴 때 만난 그녀와 정반대의 계급, 소위 친일파 배경을 가진 남자친구와의 이야기가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22-26쪽)'에 나온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아,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 지금을 알 수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말들이 조각조각 들어있다. 정리하면, 끝내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진실을 말하고,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고, 깜깜한 밤을 지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영혼을 보듬어,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기를 권하고 있다.    

혼자서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며 살려고 한 것 같다. 나에게만 집중하는데도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근질거림을 어쩌지 못한다. 알러지 때문이라고 뭉뚱거려 퉁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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