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뜨기를 마무리하면서(뭔가가 미진하여 그 후 이것 저것을 찾아봤다. 양말을 3종류로 떴는데, toe up/ top down 으로 정하고, 발끝 코늘리기와 코줄이기, 뒤꿈치의 다양한 방법, 발등의 무늬 등이 무수히 많아서 아쉬운 점이 마음 속에 가득했다), 우연히 최고의 뜨개인 '엘리자베스 짐머만' 글을 만났다. 특히 심리스라는 새로운 방식에 겨드랑이 잇기 방식은 많은 뜨개인들을 황홀하게 했다. 

*뜨개에는 개인의 '풍부한 기지', 즉 센스를 발휘할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뜨개바늘을 손에 쥔 사람의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들 수 있다(비교와 평가를 하는 순간은 다르다). 또한 모든 기다림을 대신할 수 있고,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고 치료를 해 준다(양말을 뜨면서 내가 화가 많은 사람임을 새로이 알았고, 하나씩 풀어가는 기회가 되었다).  

*짐머만 방식으로 솔기가 없는 심리스 스웨터를 뜨고 싶다. 그리고 울실로 발꿈치가 직각이 되는 양말도 도전해 보고 싶다.   

*하지만 뜨개와 독서는 병행할 수는 없다. 오디오북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좋아하는 감정은 안개처럼 스며들지만, 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감정과 사고의 흐름을 박해일과 탕웨이를 통해 보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영원히 미해결과제로 남기로 결심하고, 각각의 결심은 다르니, 정훈희와 송창식이 부른 '안개'도 다시 들어본다.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 뭔지 아직 마음에 한참 머무른다. 안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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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을 인용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칼빈은 [로마서 5장 2절 주석]에서 '현재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의 이야기에 맞게 재구성한다면 '현재를 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인문학 지식이 없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가 된다. 바르트의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신문'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즉,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뿐 아니라 그 시대의 인문학에, 더 넓게는 그 시대의 모든 지적 사조와 경향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이야기만 떠도는 작금의 세대에서, 즉 신과 그의 이름으로 추구되던 신본주의 가치와 그것들을 위한 인간의 헌신, 자기 비움,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이성과 주체, 사회적 진보와 혁명과 같은 인본주의 가치와 그것들을 위한 인간의 연대, 협동에 대해서도 입다물고 있으면서 오직 탈근대적 이야기들에만 관심이 있는 요즘에서, 신본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인본주의적 가치를 복원하고, 다시 그것을 토대로 탈근대적 가치를 구축하여 '온전한 가치'를 정립해 나가야 하며, 기독교 신학이 시대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인문학을 끌어안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온전함을 지향해야 한다. 즉 지금의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들을 수용해서 말씀에 합당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온전한 가치의 지향', '온전한 신학의 추구'는 지난 2천 년 동안 사도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들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부단히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독교 신학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을 잇는 건실한 교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 책의 주된 독자는 그리스도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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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을 통 큰 하나로 연결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쓴 개론서이다. 저자는 말한다, '구약이라는 숲을 읽으면서 큰 숲을 이루는 작은 숲들을 만나고, 또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만지면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를 알 수 있게 된다.'고.

구약은 말한다, 공평과 정의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행해져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제의적인 차원과 사회윤리적 차원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따라서 하루와 한주, 한 달, 한 해가, 일상의 나날들이 희년의 참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들을 수 있는 지혜와 순종으로 일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 되는 삶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역사와 미래를 기대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이론?과 실제의 간극이 크다. 또한 믿음과 순종, 듣는 마음을 내가 먼저가 아니라 너에게 먼저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알랑한 자존심과 얄팍한 지식으로 모른 척, 아닌 척 살고 있다. 공평과 정의가 내로남불이 아닌, 나와 너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길 기대한다, 나부터 먼저...


* 아주 작고 얇은 책, 'ON BULLSHIT 개소리에대하여' 읽는 중이다. 어렵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나 또한 개소리 하나를 더 보태는 중일까... 개소리는 아니면말고니까, 편하게 지껄이고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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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 '나와 너'를 오래동안 읽었다.

A라는 존재는 B와의 관계에서만 드러난다. 내 앞에 거울이 있다면, 나의 모습은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진다. 즉 나를 너로 바라보느냐, 내가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나는 달라진다.    

A는 B를 '너' 또는 '그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즉 나가 너와의 관계에 따라 나는 또 다른 너가 되고, 나가 그것으로 관계를 맺을 경우, 나는 그것으로 전락된다. 

내가 가지는 너에 대한 감정은 '사이'에 있다. 그래야만 서로가 유일무이한 인격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너는 영원한 너와 관련이 있다.

어찌됐든, 영원자 너는 잘 모르겠다. 이 어려운 책을 수십년 전에 읽었다니, 다시 읽어 보았는데, 암튼 번역을 굉장히 잘 하셨다. 받아들이는 나의 그릇이 모자랄 뿐이다.


그 간 강원도를 다녀왔고, 발 끝에 바닷물이 닿을 듯한 숙소, 간만에 숙면을 취했다.

마동석 '범죄도시2'를 보았다. 손석구는 귀엽고 사랑스런(?) 빌런같아, 몰입도가 떨어졌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난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는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일부라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초등동창들은 환갑을 맞아 여행을 간다는데, 그 동안 모임을 빠졌더니, 몇몇이 으싸으싸하여 그리도 보고 싶다하여 만났다. 역시 별루였다. 모임을 떠날 때는 분명한 나만의 이유가 있었던게다... 

양말뜨기 중독에서 벗어나 남은 실을 모아모아 몇 개의 모자를 뜨고 뜨개질은 벗어났다.. 

복지관 카페 봉사는 두명이서 같이 해야 하는데, 함께 하는 이들이 3명이나 그만 두는 관계로 중단했다. 역시 봉사하는 댓가?가 있어야 하는지, 봉사는 어렵다.  

이제부터는 맹자 공부와 책 읽기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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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이 1년 8개월간 구미를 일주하면서, 요새 말로 관광지와 여러 나라를 오가며, 각 나라의 특징, 사람들, 사는 모습, 경치, 날씨, 화가들, 박물관, 성당, 자연경관 등등을 세세한 묘사와 느낌을 쓴 글이다. 그녀가 다닌 건물과 풍광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듯 하다. 화가라 그런지 표현이 굉장히 뛰어나다. 특히, 내가 가 본 곳이 나올 때는 사진 찍은 듯 그대로 눈앞에서 보인다. 간결하면서 맛깔나게 쓴 글이다. 

아깝다. 적어도 구미에서라도 태어났더라면..., 그 후 남편과 자식들의 삶도... 물론 자신의 삶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지난 번 봉사활동 한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서양화가 고희동과 비교된다.  

그녀가 처한 시대와 나라가 그녀의 삶을 그렇게 만든걸까...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하는 것은 어떻게 잘 살 것인지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세월은 빨리도 간다. 성큼성큼... 고민할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내 삶은 누가 살고 있는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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